어느 기업 회장은 처자식 빼고 다 바꿔야 살아남는다 말했지만, 세상에는 바뀌지 않는 것이 실력이 되는 세계도 있다. 1954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시계. 그래서 더 매력적인 시계. 론진의 신형 헤리티지 콘퀘스트를 차보며 느낀 것.

론진 헤리티지 콘퀘스트


레퍼런스     L16494622
케이스 지름     38mm  
러그 너비     19mm 
두께     10.8mm   
케이스 소재     스테인리스 스틸 
방수     50m
브레이슬릿     스테인리스 스틸 
무브먼트     L888  
기능     시·분·초 
파워 리저브     72시간
구동 방식     오토매틱 
가격     460만원

한동안 드레스 워치를 찾고 있었다. 긴소매 옷을 꺼낼 무렵이 되면 자연스레 드레스 워치 생각이 나니까. 매달 새로운 시계들을 보며 나름대로 정해둔 ‘좋은 드레스 워치’ 조건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는 39mm 이하 사이즈. 한국인 남자 평균으로 통하는 17cm 손목둘레에 넘치지 않으려면 39mm 이하의 크기가 적절하다. 두 번째는 얇은 두께. 셔츠를 입었을 때 소매 안에 쏙 들어갈 만큼 얇아야 거추장스럽지 않다. 세 번째는 이야깃거리. 드레스 워치 특성상 ‘ 최초로 달에 간 시계’ ‘최초로 심해 잠수에 성공한 시계’ 같은 타이틀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몇 번이고 곱씹게 되는 이야깃거리 하나쯤은 있었으면 했다.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시계가 적은 것은 아니다. 문제는 가격이다. 시계 애호가들이 ‘궁극의 드레스워치’라고 하는 시계들이 있긴 하지만, 시계 하나에 수입차 한 대 가격을 쓸 수 있는 직장인은 많지 않다. 현실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고 후보를 추리던 중, 한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론진의 콘퀘스트 헤리티지. 콘퀘스트는 론진이 스위스 연방 특허청에 상표권을 등록한 최초의 모델이다. 론진은 1832년 설립했지만, 컬렉션으로 시계를 선보이기 시작한 건 1954년 출시한 콘퀘스트가 처음이다. 달리 말하자면 콘퀘스트는 론진의 현역 모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컬렉션이다. 구매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으로 들릴 법한 이야기지만, 사실 신형 콘퀘스트에 눈길이 갔던 진짜 이유는 외모 때문이었다. 그 실물을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다.

올해 하반기 출시된 신형 콘퀘스트 헤리티지는 38mm, 40mm 두 가지 버전으로 제작된다. 이번 기사를 위해 받은 건 38mm 모델. 오밀조밀한 다이얼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인덱스다. 열두 개의 화살촉 모양 인덱스는 로즈 골드 컬러로 완성됐다. 인덱스와 더불어 날카롭게 다듬은 시·분·초침에는 슈퍼 루미노바 코팅을 적용해 어둠 속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진한 갈색 다이얼에는 선레이 마감을 했는데, 햇빛 아래서 은은하게 빛을 반사하며 고급스러운 인상을 자아낸다. 

다이얼의 12시 방향에는 날개가 달린 모래시계 엠블럼이, 6시 방향에는 ‘Conquest’가 새겨졌다. 여기까지 언급한 모든 요소는 1954년 오리지널 콘퀘스트 디자인을 고스란히 따른 결과물이다. 시계를 뒤집으면 콘퀘스트 특유의 장식이 등장한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 완성한 원형 케이스백 한가운데는 메달리온을 얹었다. 이 역시 1954년부터 이어지는 특징 중 하나. 초록색 물고기를 새긴 메달리온은 18K 골드에 수작업으로 에나멜을 입혀 완성한다고. 시시각각 돌아가는 무브먼트를 감상할 수는 없지만, 다른 시계에서는 볼 수 없는 디테일을 손에 넣는다는 점이 만족감을 더한다. 

시계 안에는 40mm 모델과 동일하게 칼리버 L888이 탑재됐다. 칼리버는 셀프 와인딩 방식으로 작동하며, 72시간의 여유로운 파워 리저브를 자랑한다. 또 항자성이 뛰어난 실리콘 밸런스 스프링을 사용해 더욱 정교한 시간 정보를 제공한다. 방수 성능은 수심 50m까지. 애초에 

드레스 워치를 차고 바다에 들어갈 일도 없을 테지만, 일상에서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악어가죽 스트랩은 다이얼과 똑같은 컬러로 마감했다. 다이얼 컬러를 바꾸면 브레이슬릿 버전으로도 구입할 수 있다. 신형 콘퀘스트 헤리티지 컬렉션은 총 다섯 가지 컬러로 꾸려졌다. 이번 기사에 소개한 브라운 다이얼은 유일하게 가죽 스트랩만 체결되지만, 화이트·블랙·그린·블루 다이얼 모델은 브레이슬릿 버전으로 선택 가능하다. 신형 콘퀘스트 헤리티지 38mm 모델의 가격은 460만원. 40mm 모델에도 같은 가격표가 붙었다. 단, 브레이슬릿 버전은 20만원 더 비싼 480만원이다. 

콘퀘스트는 론진에서 가장 유명한 모델도, 가장 인기 있는 모델도 아니다. 당장 론진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슈퍼맨 헨리 카빌이 근사한 미소를 짓고 파일럿 워치 스피릿을 제안한다. 다른 세계적인 배우들 중에도 콘퀘스트를 찬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같은 이유로 콘퀘스트는 자신의 취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시계라고 생각한다. 콘퀘스트는 명성보다 완성도로 설득하는 시계니까. 세상에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차는 시계도 있지만, 내가 만족스러워 차는 시계도 있다. 그리고 어디선가 콘퀘스트를 찬 사람을 본다면 ‘확실히 후자에 가까운 사람이군’ 하고 생각할 것이다. ‘남들이 알아보는 시계’만 머릿속에서 지우면, 460만원으로도 평생 만족하며 찰 만한 드레스 워치를 손에 넣을 수 있다.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이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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