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미’ 세 글자를 이제 서울 이태원에서도 만날 수 있다. 전 세계에서 세 번째, 서울에서는 첫 번째인 우영미 플래그십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새빨간 커튼 앞에 선 우영미가 말한다. 일이 즐겁다는 말이 이제는 어떤 뜻인지 알겠다고, 여전히 하고 싶은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다고. 인간 우영미가 들려준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의 세계.

“미세한 차이야말로 섬세하고 우아한 매력을 만든다고 믿어요.”


패션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늘 궁금했는데요. 매일 아침 입을 옷은 어떻게 고르세요? 
사실 저는 매일매일이 전투복이에요. 오늘처럼 매거진 촬영이나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때는 차려입지만, 평소 아침에는 뭘 입을지 고민할 만큼 여유롭지 못해요. 대신 회사에 나가면 저희 젊은 디자이너들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하죠. 보는 재미가 있어요. 자기 몸을 마네킹 삼아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입어보면서 다양하게 시도하거든요. 저마다 정답을 찾는 거죠. 

그럼에도 옷을 고를 때 ‘이것만큼은 지키자’ 하는 점이 있다면요? 
너무 젊어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지금 나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옷, 그리고 편한 옷을 입으려고 합니다. 편안함이 제게는 굉장히 중요해요.

오늘 입은 옷도 설명 부탁드립니다.
저희 옷이에요. 2020 시즌부터 우영미도 여성 컬렉션이 생겼거든요. 오늘은 <아레나>와 인사하는 날인 만큼 격식을 갖춰보려고 수트를 챙겨 입었어요.

© 쏠리드
© 쏠리드

2022년에는 창립 20주년을 맞아 ‘우영미 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올해 한국 첫 플래그십 스토어가 오픈했습니다. 한국에도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어야겠다는 생각은 꽤 오래전부터 하셨을 것 같아요. 
플래그십 스토어는 모든 디자이너들의 바람일 거예요. 백화점에도 매장이 들어갈 순 있지만,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구현하는 데는 한계가 있잖아요. 우영미는 파리에서 시작했으니, 첫 플래그십도 본사도 파리에 먼저 세웠어요. 거기서 20년 동안 고군분투하느라 서울에 매장을 차릴 여유가 없었죠. 도산공원에 ‘맨메이드 도산’을 만들고, 솔리드 옴므와 우영미를 선보이는 데 만족해야 했어요. 저는 두 브랜드를 늘 형제처럼 말하는데, 세월이 지나니 우영미가 슬슬 형 밑에서 독립해야 할 것 같더라고요. 마침 여자친구도 생겼고요. 여성복 라인이죠. 그 무렵부터 우영미만을 위한 단독 유니버스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영미 이름이 걸린 공간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죠. 입구에 자리 잡은 빨간색 귀 모양 조각상. 여기에도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조금 심각한 이야기라서 <아레나> 독자분들이 재미있어하실지 모르겠네요.(웃음) 개인적인 철학에서 시작된 오브제인데요. 저는 불교 철학을 받아들여요. 패션은 엄청 빨리 변하잖아요. 세대를 거듭할수록 광적으로 빨라지고 있어요. 살아남으려면 진화는 필수예요. 그때 필요한 게 오픈 마인드예요. 편견은 보고 만지고 듣는 것들로부터 생기잖아요. 불교에서는 ‘안이비설신의’라고 하는데요. 경험이 쌓이면 자연스레 편견이 생기고, 편견이 생기면 집착하게 돼요. ‘나는 빨간색 아니면 안 돼’ ‘나는 꼭 검정색이어야 해’ 하는 식으로요. 거기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이건 취향이 아닌 생존의 문제죠. 계속 귀를 열어두자. 집착하지도 편견을 갖지도 말자. 그런 의미에서 귀 모양 조각상을 모든 건물 입구에 두고 있어요.

편견에서 벗어나는 건 누구에게나 필요하지만, 무척 어려운 일이기도 하죠. 
그래서 저도 잘 못해요. 나름대로 잘해보려고 매일 수행도, 명상도 하는데요. 언제 또 잊어버릴지 모르니 건물에 이런 조각을 세우면서 스스로 다짐하는 거죠. 

© 쏠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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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문을 연 우영미 하우스에도,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에도 빨간 커튼들이 보이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언제부터인가 빨간색이 끌렸어요. 이렇다 할 계기도 없이요. 저는 스스로 빨간색이 안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실제로 제 옷장에도 빨간색은 거의 없어요. 그럼에도 어느 시점부터 빨간색이 눈에 자꾸 밟히더라고요. 아마도 저한테 빨간색이 필요한 시점이 온 거겠죠. 그 후로 빨간색을 공간에 끌어들이기 시작했어요.

한 인터뷰에서는 ‘공간은 옷의 확장된 버전’이라고 했어요.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를 옷에 비유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제가 만든 공간과 옷이 서로 닮았으면 했어요. 우영미 옷은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구조감이 단단하다고 생각해요.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도 겉으로는 단단한 인상이지만, 내부에는 섬세함과 우아함이 곳곳에 녹아들길 바랐어요. 겉으로 볼 때랑 직접 입었을 때 느낌이 확 달라지는 옷들이 있잖아요.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도 그러길 바랐고요.

© 쏠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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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우영미스러운’ 특징이 가장 도드라지는 곳을 골라본다면요?
저는 특정 공간보다 재료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한쪽 벽면 전체에 유리 블록을 쓰거나, 2층 높이의 레드 커튼에 촘촘히 주름을 넣는 식으로요. 자세히 보시면 마룻바닥도 굉장히 폭이 좁아요. 한국에서는 저희가 처음 쓰는 소재인데 이 선들이 주는 느낌이 무척 우아해요. 벽도 그냥 단색이 아니에요. 돌을 갈아서 만든 미네랄 페인트를 썼는데, 이것도 한국에서는 처음 시도해보는 거라 시행착오가 많았죠. 페인트가 콘크리트에 천천히 스며드는 게 특징인데, 자칫하면 얼룩덜룩해 보일 수 있거든요. 미세한 차이야말로 섬세하고 우아한 매력을 만든다고 믿어요.

이번 공간 소개문에 이런 문장이 있더라고요. ‘평면은 기능적이고, 수직 구조는 감성적이다.’ 
옷을 디자인할 때 항상 생각해요. 옷은 실용적이어야 한다. 옷은 감상하는 물건이 아니라 사용하는 물건이잖아요. 저는 가구나 소품도 기능에 충실하지 않은 건 잘 안 사요.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아름답기까지 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제 디자인 철학이 바우하우스에 닿아 있어서 기능을 고집하는 걸 수도 있는데요. 건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옷도 불편하면 하루가 힘든데, 건물은 오죽하겠어요.

말씀을 듣다 보니 문득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궁금해지네요.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은 종묘예요. 이른 아침에 가면 무척 조용한데요. 수평으로 뻗어 있는 지붕들, 그걸 수직으로 버티고 있는 기둥들을 보고 있으면 엄청난 힘이 느껴져요. 패션과 무관한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게는 큰 영감을 주는 곳입니다. 

이번 스토어는 이동준 건축가가 이끄는 스토커 리 아키레티와 함께했죠. 전 세계 많은 건축사 중에서도 스토커 리 아키테리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했어요.
스토커 리 아키테리는 이동준 건축가, 아내인 스토커 멜라니가 함께 운영하고 있어요. 아내분이 스위스 사람이라 2주에 한 번씩 서울과 스위스를 오가며 작업하는데요. 저도 파리와 서울을 오가면서 일하잖아요. 각기 다른 두 문화에 걸쳐서 작업을 한다는 점 때문인지 처음부터 대화가 수월했어요. 건축가를 찾을 때 가장 중요하게 앞세운 조건은 ‘나랑 깊게 대화할 수 있는가’였어요. 건축가들은 저마다 철학이 견고하잖아요. 그럼 자칫 제가 그리는 우영미 유니버스를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물어봤죠. ‘나와 깨알같이 협업을 해야 한다. 그 점이 가능하겠느냐’고요. 실제로 조명부터 가구 하나하나까지 제 의견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어요. 그만큼 징글징글하게 싸웠죠.(웃음)

그동안 건축가와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이것만큼은 타협할 수 없다’고 강조한 점이 있다면요? 
서로가 생각하는 럭셔리가 달랐어요. 제일 많이 싸운 건 정문이었어요. 입구를 딱 막아버리는 나무 문을 디자인해 오셨는데요. 협의가 100% 끝나기 전이었는데, 이미 이탈리아 장인이 만든 문이 배에 실려서 한국으로 오고 있었거든요. 그때는 거의 3차 세계대전까지 갔어요.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끝까지 싸웠죠. 유럽의 고급 맨션에 가면 도어맨들이 딱 버티고 있잖아요. 자칫 배타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모습이죠. 저는 이 건물이 배타적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가뜩이나 큰 건물이라 사람들이 선뜻 들어서기 어려울 수 있는데, 커다란 문까지 달아버리면 어떻겠어요. 근사한 공간을 만들어놓고 큰 문으로 막아버린다? 엄청나게 잘난 체하는 거잖아요. 옷을 사지 않더라도, 누구나 편안하게 들어와서 커피 한잔 마시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지막까지 결사반대했죠. 그나마 저희에게 최선이었던 유리문을 달았고요. 마음 같아서는 그 문도 없앴으면 좋겠어요.

지하 1층에도 아주 특별한 공간을 준비 중이죠. 모나코의 미쉐린 3스타 셰프, 알랭 뒤카스가 참여했는데 여기에도 사연이 있을 것 같아요. 
알랭 뒤카스는 예전부터 서울에 레스토랑을 열고 싶어 했어요. 오랫동안 파트너를 찾았는데, 하이패션 디자이너랑 협업하길 바란다고 하더라고요. 마침 파리 생토노레에 있는 우영미 매장이 알랭 뒤카스 사무실과 가까워서 저희를 알고 있었고요. 덕분에 이야기가 일사천리로 진행됐죠. 다만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이 아닌 브런치 카페로 준비하기로 했어요. 저희 주 소비층인 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즐겼으면 했거든요. 메뉴는 비건은 아니지만, 굉장히 가벼운 음식으로 꾸려질 거예요.

여담이지만 직장인에게는 점심시간이 무척 소중하잖아요. 평소 점심에는 어떤 메뉴 즐겨 드세요?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사람들이 저와 밥 먹는 거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어요.

왠지 사찰 음식 좋아하실 것 같은데.
어머, 어떻게 아셨어요? 제가 고기를 별로 안 좋아해요. 자극적이고 향이 강한 음식보다는, 가벼운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이번 레스토랑에서 선보일 메뉴도 드셔보셨어요?
그럼요. 프렌치 특유의 정교하고 섬세한 메뉴들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저랑 입맛이 다른 분들도 근사하다고 느끼실 겁니다.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다른 이유로 우영미 플래그십 스토어를 찾을 텐데요. 그때 어떤 첫인상을 느꼈으면 하나요?
우선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어요. 옷을 살 생각이 없어도, 누구나 입어보고 만져볼 수 있는 편안한 분위기. 컬렉션 피스들을 전시한 아카이브 홀도 준비했는데요. 필요하면 꺼내서 입어보셔도 좋겠어요. 그런 곳 있잖아요. 괜히 만졌다가 배상해야 하면 어쩌지 하는 분위기. 그런 인상만큼은 절대 주고 싶지 않았어요. 저는 럭셔리는 편안함이라고 생각해요. 옷이든 공간이든 소비할 때 편안함이 느껴져야죠. 

‘럭셔리는 편안함이다.’ 멋진 말이네요. 옷을 잘 만드는 것과 잘 입는 것은 다른 일이죠. 우영미가 생각하는 좋은 옷은 어떤 옷인가요? 
좋은 옷은 간단해요. 그 사람을 더 멋있게 만들어주는 옷. 동시에 편안해야겠죠. 근사한 전투복처럼 옷을 입었을 때 자신감이 올라간다면, 그 옷은 좋은 옷이겠죠. 그래서 저희 팀원들한테 늘 이야기해요. 우리의 미션은 사람들의 몸을 매우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거다. 그 일에 최선을 다하자. 

‘옷 잘 입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정답은 뻔해요. 자기 몸을 잘 이해하는 사람. 사람마다 팔이 길 수도, 다리가 짧을 수도, 어깨가 넓을 수도, 몸통이 두꺼울 수도 있잖아요. 그걸 잘 알아야죠. 심지어 몸은 계속 변하잖아요. 지금 내 몸 상태를 먼저 이해하고, 가장 잘 어울리게 스타일링하는 사람이 옷을 잘 입는 사람이죠. 거기에 달리 방법은 없어요. 시간과 관심을 쏟는 수밖에. 

그동안 우영미 옷을 입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보셨을 텐데요.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요?
최근에는 티모시 샬라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희 도산 매장에 왔을 때 밝은 민트색 니트 스웨터를 구매했는데요. 그걸 입은 사진을 봤는데, 이 사람은 자신의 체형과 스킨 컬러를 100% 이해하는 사람이구나 싶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우영미 2023 F/W 컬렉션에서 신라 왕족의 장신구를 모티브로 삼은 게 인상 깊었거든요. 요즘 새롭게 관심을 쏟는 것이 있을까요?
말씀하신 신라 장신구로 컬렉션을 준비한 게 제게는 중요한 전환점이 됐어요. 한국인의 정체성에 대해 관심이 더욱 커졌거든요. 어떻게 하면 한국적인 것을 세련되게 포장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제가 하고 싶은, 또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제가 역사가는 아니잖아요. 한국적인 요소를 잘 추려내되, 우영미만의 미학을 버무려서 설득력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경청의 힘을 믿어요.
당장 이해할 수 없더라도 모두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을 앞두고 굿판을 벌였죠.
그날은 유럽에서 온 여러 에디터들이 참석하기로 했어요. 가장 한국적인 문화를 보여주고 싶었는데요. 그래서 생각한 게 고사였어요. 우리가 새로 이사를 하거나 차를 사면 고사 지내잖아요. 시루떡이랑 돼지머리까지 준비해서 고사를 지내기로 했어요. 굿판 악사도 모시고요. 다만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면 과연 설득력이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악사들이 두르는 오방색 가슴띠를 비롯해서 병풍, 방석도 저희가 직접 새로 만들었어요. 다행히 낯설기보다 세련되게 느껴졌다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 

남들은 ‘이런 것까지 신경 써야 되나’ 하는 부분까지 세심하게 살피네요. 
그래서 어딜 가나 포스트잇, 볼펜은 필수예요.

스트레스 관리도 실력의 한 부분이잖아요. 예전에는 <금강경>을 읽거나 백팔배 하신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어떠세요?
요즘도 똑같아요. 명상하고, <금강경> 읽고, 백팔배 하고. 저도 뭘 좀 하면 좋을까 싶은데, 취미랄 게 없네요. 

야식도 안 드세요?
아, 최근 몇 년 전부터 시작한 게 하나 있어요. 저녁 안 먹기. 저녁 시간이 저는 하루 중에 가장 한가롭거든요. 밥을 먹으면 한두 시간은 분주해지는데, 저녁 식사를 건너뛰니까 여유가 생겨서 좋더라고요. 건강 때문에 시작했는데, 습관이 되니까 지금은 하루를 보상받는 것처럼 느껴져요. 

저는 저녁 먹을 때 보상받는 느낌인데 반대네요. 패션도 건축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좋은 팀원은 어떤 팀원인가요? 
오픈 마인드를 가진 팀원. 귀가 닫혀 있으면 반드시 뒤처질 수밖에 없어요. 한 팀원이 자기 생각에 갇혀 있으면, 팀 전체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없고요. 가뜩이나 패션은 아주 빠르게 변하잖아요. 매일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게 중요한데, 그러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죠.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볼게요. 좋은 리더는 어떤 리더일까요? 
똑같아요. 귀가 열려 있는 사람. 저는 팀원들이 말할 때 절대 말을 끊지 않아요. ‘이건 아닌데’ 싶어도 일단 끝까지 들으려고 합니다.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도, 따지고 보면 내 편견이거든요. 좋은 리더는 팀원들이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리더겠죠. 아이러니하게도 결과물은 결국 다 저를 닮아 있더라고요. 저는 경청의 힘을 믿어요. 당장 이해할 수 없더라도 모두가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팀원들한테 가장 자주 하는 말 있으세요?
글쎄요. 뭐가 있으려나··· 한 끗?

‘한 끗이 모자라네’ 할 때 그 한 끗이요?
정확해요. 팀원들이 저한테 와서 장황하게 설명해요. 그럼 저는 꾹 참고 듣다가 한마디 하죠. “그런데 한 끗이 없다.” 저희가 만드는 옷은 구조적으로 크게 다를 수 없잖아요. 갑자기 소매가 4~5개 달린 옷을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디테일에 집착할 수밖에 없어요. 좋은 옷의 완성도는 디테일에 좌우된다고 생각해요.

패션 디자이너는 변호사처럼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배우처럼 오디션을 통과해야 하는 직업도 아니죠. 그래서 더 막연하게 느껴질 것도 같은데요. 그런 시기는 어떻게 넘기셨나요?
그 막연함은 지금도 여전해요. 우리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는 무엇인지, 나는 뭘 잘하는지 매일 의구심이 들거든요. 패션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럴 거예요. 물론 이따금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천재도 있지만, 불행히도 저는 그렇지 못해요. 질문은 늘 같아요. ‘우영미 넌 뭘 정말 좋아해? 어떤 말을 하고 싶어?’ 나 자신을 관찰하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뻔한 이야기지만, 나 자신을 잘 아는 것. 그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패션 디자이너 우영미가 아닌, 인간 우영미는 어떤 사람일까요?
어떤 사람이려나···. 저는 비교적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아닌가···?(웃음) 저희 집에 매일 놀러 오는 고양이가 한 마리 있어요. 겨울에는 걔가 신경 쓰여서 제가 휴가를 못 가요. 

한 가지 일을 40년 가까이 하셨잖아요. 그럼에도 여전히 재미있다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까?
이번에 인테리어를 해보니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요즘 “나 때려치우고 가구 할까?”라고 종종 동료들한테 이야기하는데요. 저도 한 번씩 생각해보죠. 40년 가까이 패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결국 재미 있어서 했던 일이더라고요. 운이 좋은 거죠.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는 40년 뒤에도 내가 재미있어할지 몰랐으니까요. 

40년이 지나도 일이 재미있다는 건 확실히 축복일 것 같네요. 
지금도 컬렉션을 준비하다 보면 아이처럼 신날 때가 있어요. 공진단도 안 먹었는데 하루 종일 방언 터지듯 이야기를 막 쏟아내거든요. 그때마다 생각하죠. 아직도 난 이 일이 너무 재미있구나. 물론 힘들 때도 있었지만, 진짜 재미를 알려면 그 힘든 시기를 넘겨봐야 해요. 이제는 일을 즐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아요.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신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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