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를 보면 눈을 홀리는 장소가 여럿 등장한다. 어디어디 ‘맛집’, 어디어디 명소 같은 수많은 정보들. 보기 좋은 부분만 보기 좋게 담아 보기 좋을 편집으로 소개한다. 가보면 글쎄, 사람만 많고 실망하는 경우가 흔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허수가 다수를 차지하는 건 분명하다. 우린 예전부터 실패하지 않는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물으면 된다. 지방에 여행 가면 택시 기사에게 진정한 ‘맛집’을 물어보면 확실한 것처럼. 현지인의 내공은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전국 방방곡곡 다 소개할 순 없어도 에디터들이 자신이 살아온 곳은 전할 수 있다. 동네 산책하듯 한 바퀴 돌며 그곳에서 살아온 시간이 담긴 장소를 추천하기로 했다. 가로수길, 낙성대, 양재천 인근 그리고 그 외 다양한 곳까지. SNS 추천 장소처럼 자극적이진 않아도 깨알 같은 경험이 담겼다. 자, 우리 동네는요.
이젠 가로수길보다 세로수길
흥하고 쇠락하는 서울의 길 중에서 가로수길은 여전히 북적인다.
메인 도로보다 주변이 발달한 새로운 번화가로서.
Editor 김종훈
어느새 10년을 넘겼다. 이렇게 오래 살지 몰랐다. 그 10년 사이 가로수길은 흥망성쇠를 거쳤다. 처음 살기 시작했을 땐 브랜드 플래그십 스토어가 즐비했다. 팝업스토어도 끊이지 않았다. 그랬는데 이제는 메인 도로에 임대 간판 붙은 공실이 즐비하다. 세상에 영원한 건 없었다. 메인 도로는 쇠락했지만, 대신 주변 골목길이 흥했다. 특히 ‘세로수길’로 불리는 지역은 새로운 상권으로 등극했다. 유행에 민감한 가게가 들고 나길 반복하며 ‘놀러 오는 곳’이 됐다. 낮에는 차를 마시고, 밤에는 술을 마시러 온다. 심지어 클럽도 있다. 좁은 골목길 사이로 개성 있는 가게도 점점 늘었다. 세로수길 전성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10년 동안 동네는 태가 달라졌지만, 사실 난 가던 곳을 주로 간다. 그러니까 이 지면에 소개하는 장소는 유행보다 내공이 있는 곳이다. 언제 가도 그 자리를 지킬 저력이 있다.
01 삼바리 신사점
해산물 직화구이 전문점이다. 조개구이는 물론 조개탕, 낙지구이도 판다. 부산에서 성공한 프랜차이즈인데, 부산에선 안 먹어봤으니 그냥 개성 있는 가게로 보인다. 많은 사람이 조개구이를 시키지만 조개탕을 주로 먹었다. 조개 다 건져 먹고 칼국수까지 끓여 먹으면 행복해진다. 조개탕도 좋지만, 이곳의 별미는 낙지숯불구이다. 산낙지를 특제 소스에 묻혀 숯불에 구워 먹는다. 깻잎에 마요네즈, 날치알까지 곁들이니 맛없을 수 없는 조합이다. 특히 특제 소스가 꽤 매운데 감칠맛이 농후하다. 주변에 맛있는 곳 없어? 하고 누가 물어보면 언제나 이곳을 첫 번째로 말해준다.
02 현대옥 신사점
번화가는 놀긴 좋지만 밥 먹기에는 좀 꺼려진다. 술집이든가, 고기를 굽든가, 거한 무언가를 먹는 곳이 대부분이다. 이럴 때 현대옥 신사점은 든든한 한 끼를 보장한다. 집에 있다가 나가서 뭐 먹어볼까 하면, 언제나 현대옥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현대옥은 콩나물국밥 프랜차이즈 가게다. 동네마다 지점이 여럿이다. 그럼에도 현대옥 신사점을 추천한 건 특히 맛있어서다. 다른 지점에서 먹어본 사람도 맛의 차이를 인정했다. 이곳에선 ‘끓이는 콩나물국밥’과 ‘얼큰돼지국밥’을 주로 먹는다. 둘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03 폼드팡 베이커리 신사점
동네가 번화하면 일상 공간은 줄어든다. 가로수길 인근은 그렇게 변해갔다. 그 사이에서 동네 빵집 같은 소박한 공간은 더없이 소중하다. 폼드팡 베이커리는 커피도, 좌석도 없이 온전히 빵만 파는 빵집이다. 품질 대비 가격 적당하고, 유행하는 빵부터 고전적인 빵까지 두루 있다. 내가 즐겨 먹는 빵은 ‘누네띠네’로 불리는 스폴리아티네 글라사테와 쿡살라미. 처음에는 오가는 사람 많은 거리 특성상 살아남을까 싶었다. 괜한 걱정이었다. 거리에 부쩍 늘어난 외국 관광객이 즐겨 찾는다. 앞으로도 자주 찾아주길 바라면서 꼽았다.
04 알라딘 중고서점
줄곧 뜬금없다고 생각했다. 소비 지향적인 거리에 중고서점이라니. 그러고 보면 강남역에도 알라딘 중고서점을 본 기억이 있다. 알라딘의 전략은 잘 모르겠지만, 다른 곳이 아닌 우리 동네에 만들어줘서 감사한 곳 중 하나다. 그동안 사둔 책을 팔기에 좋고, 무심코 들어가 편하게 책을 사기에도 좋다. 꼭 책을 사고팔지 않더라도 읽기에도 좋다. 따로 독서할 공간도 마련해놓았다. 최고의 장점은 여느 번화가 서점과 달리 한적하다는 점이다. 분주한 거리에서 차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05 와라야키 쿠이신보
본격적인 이자카야다. 번화가라면 어디든 이자카야 하나쯤 있다. 그만큼 생존 가능성도 낮다. 와라야키 쿠이신보는 쉴 새 없이 들고 나는 가로수길 술집 사이에서 오랫동안 건재한 가게다. 당연한 말이지만, 요리가 정갈하고 맛도 일품이다. 분위기도 좋다. 대표 메뉴는 볏짚타다키. 주문하면 화력 좋은 볏짚을 태우며 굽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음식마다 양이 작아 여러 개 주문해 먹는 재미도 크다. 의외로 소박한 안주가 매력적이다. 달걀노른자에 고기 완자 꼬치를 찍어 먹는 츠쿠네와 바삭한 야키 오니기리는 꼭 주문하길.
06 탬버린즈 신사 플래그십 스토어
탬버린즈의 플래그십 스토어다. 거리의 랜드마크로서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외관이 특별하다. 건물 벽에 모델 사진을 크게, 아니 거대하게 붙여놓았다. 블랙핑크 제니가 모델이었을 땐 외국 관광객이 줄 서서 찍었다. 거대한 제니의 사진과 줄을 길게 서서 차례대로 사진 찍는 외국 관광객의 모습이 달라진 시대상을 느끼게 했다. 지금은 스트레이 키즈 필릭스로 모델이 바뀌었다. 산 정상의 기념비처럼 가로수길에는 탬버린즈 플래그십 스토어가 있다.
07 이코복스커피 스튜디오 신사점
가로수길에는 카페가 많다. SNS 인증 사진을 찍는 데 특화된 대형 카페부터 작은 개인 카페까지. 많다는 건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그 안에서 이코복스커피 스튜디오 신사점은 긴 세월 자리를 지켰다. 일단 위치가 좋다. 메인 도로 왼쪽 길, 이제는 새로운 메인이 된 길 중간에 있다. 실내는 넓지 않지만, 넓지 않아서 유럽 골목길 카페처럼 정겹다. 세월이 묻어나는 짙은 갈색 나무 인테리어도 유럽 카페의 정취를 살린다. 야외 테이블도 마찬가지. 야외는 둘이서, 실내는 혼자서 마시기 좋다. 고소한 라테와 에스프레소가 유명한데, 난 주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고소한 원두를 선택해도 적당한 산미가 어우러져 맛이 다채롭다.
08 에뚜왈 가로수길점
마들렌과 휘낭시에가 유명한 구움 과자 전문점이다. 길 가다 보면 항상 문 앞에 사람들이 길게 줄 서 있다. 실내가 좁아서 그렇지만, 꾸준히 줄이 이어지는 건 맛있다고 소문이 나서다. 특히 인기 있는 마들렌은 레몬, 홍차, 호우지차 등 다양한 맛을 선택할 수 있다. 사실 내가 즐겨 찾는 가게는 아니다. 굳이 꼽은 이유는 줄 선 손님의 99.9%가 여자인 까닭이다. 여자의 취향을 자극하는 결정적 장소를 아는 남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09 한추
가로수길 술집의 진정한 터줏대감이다. ‘한 잔의 추억’의 앞 글자를 따서 한추다. 30년 넘게 영업하며 신사동 ‘치맥’의 성공 신화를 썼다. 그 사이 좌우로 옆 가게를 터 공간도 확장했다. 그럼에도 인테리어나 분위기는 꿋꿋하게 20세기를 고수한다. 딱 ‘호프집’ 느낌. 대표 메뉴인 ‘후라이드’ 치킨은 옛 전기 구이식이어서 바삭하다. 치킨과 더불어 고추튀김도 인기 있는 메뉴다. 과거에는 직장인의 쉼터였는데 이젠 젊은이의 술집으로 통한다. 밤이면 밤마다 북적이는 놀라운 술집.
10 잠원 한강공원
가로수길에는 브랜드 숍과 술집만 있지 않다. 근처에 근사한 한강공원이 있다. 가로수길 끝 신사중학교와 현대고등학교 사이로 나아가면 잔디밭과 한강이 펼쳐진다. 한강과 남산, 그 위에 쫑긋 솟은 남산타워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봄가을이면 공원에서 피크닉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요즘엔 밤에 러닝하는 사람도 많다. 사람 많고 복잡한 번화가와 맞닿은 탁 트인 공원은 그 자체로 특별한 공간이 된다.
웰컴 투 낙성대
누군가 낙성대가 어떤 동네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다.
강감찬 장군의 탄생 신화와 2호선 지하철의 쾌적함을 겸비한 곳.
경상도 출신 에디터가 소개하는 낙성대 가이드.
Editor 주현욱
서울살이는 대학교 4학년 기말고사를 일주일 앞두고 갑작스레 시작됐다. 군대를 전역한 후 줄곧 에디터가 되고 싶었지만, 방법은 달리 없었다. 어떻게든 잡지사에 들어가 일을 배우는 수밖에. 대치동의 한 잡지사에서 급하게 어시스턴트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면접을 보러 갔다 덜컥 합격했다. 막상 시작하려니 서울에 살 곳이 없었다. 그때 집을 구하러 가장 처음 간 곳이 낙성대였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먼저 상경한 친구가 이곳에 살고 있었다. 그 친구는 다른 동네로 떠났지만, 여전히 나는 이 동네에 산다. 낙성대는 오래됐지만 젊은 동네다. 유독 대학생과 사회 초년생이 많지만, 수십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터줏대감 가게도 많은 동네. 사람 냄새 나는 이 동네를 나는 무척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공간을 추리고 추려봤다.
01 피기스타코
타코는 돼지국밥 같은 음식이라고 생각한다. 웬만해선 질리는 법이 없고, 다른 어떤 음식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타코를 먹고 싶은 욕구는 오직 타코로만 해결할 수 있다. 타코 마니아로서 동네에 훌륭한 타코집이 있는 건 큰 행운이다. 피기스타코를 직역하면 ‘돼지네 타코’가 되겠지만, 이름과는 다르게 우삼겹, 차돌 양지, 소고기 패티를 사용한 타코 메뉴들이 준비되어 있다. 피기스타코의 별미 중 하나는 차돌 양지를 끓여 얻은 육수를 넣은 ‘비리아 라멘’. 테라스 자리도 있어 화창한 가을날에는 더욱 자주 찾게 되는 가게다.
02 기절초풍왕순대
얼마나 자신 있길래 기절초풍일까. 이름이 허풍처럼 느껴져 처음 몇 년간은 발길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유튜브 채널에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먹방 유튜브 크리에이터 쯔양이 이곳을 다녀온 후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가게를 찾았다. 지금은 비가 오는 날이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찾아가는 식당이다. 이곳 순댓국 맛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폭력적. 다대기를 기본값으로 넣는 이 집 순댓국은 기분 좋은 칼칼함을 선사한다. 순대 정식을 주문하면 막창 순대와 머릿고기 수육이 딸려 나온다. 가격은 1만8000원. 이 한 접시만으로도 낙성대를 찾을 이유는 충분하다.
03 에르디
‘샤로수길’ 초입에 자리 잡은 에르디 서울대점. 북적거리는 메인 골목과는 거리가 있어 여유롭게 커피를 음미할 수 있다. 이곳은 동네 주민들이 산책과 러닝을 하는 낙성대공원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붙어 있다. 덕분에 러닝 후 시원한 커피를 마시러 오는 손님들이 많아 유독 활기찬 기운이 맴도는 곳. 매장 앞에는 캠핑용 의자를 마련한 테라스가 있어 땀 냄새 걱정할 필요도 없다. 당 충전이 필요하다면 시그너처 메뉴인 커스터드 크림 라테를 추천한다. 음료 위에 올린 커스터드 크림을 불로 살짝 그슬려 크렘브륄레 같은 식감을 자랑한다.
04 시골집
‘신선한 야채와 함께하는 시골쌈밥은 면역력 증진에 좋은 음식입니다.’ 시골집 현관에 붙어 있는 소개 문구다. 평소 야채를 찾아 먹지 않지만, 정말 이러다 죽겠다 싶을 때 한 달에 두어 번은 꼭 찾는 식당이다. 사실 말이 쌈밥집이지 이곳의 메인 메뉴는 제육볶음과 고등어구이다. A코스를 시키면 제육볶음, 생선구이와 함께 알배추, 적겨자, 당귀, 로메인, 치커리, 케일, 오크리 등 평소 쉽게 먹을 수 없는 야채를 소쿠리 가득 담아 내온다. 시골집은 관악산 등산로로 가는 길목에 있어 주말 점심시간에는 등산객들로 늘 붐빈다. 그 분위기에 섞여 있으면 대낮부터 막걸리를 찾게 될지도.
05 버들골 풍산마당
아파트 단지를 만들 때 일정 비율은 녹지로 꾸미듯, 동네 생활 반경 안에서도 꼭 녹지를 찾는다. 그렇게 산책할 곳을 찾고 찾다 이곳까지 흘러들었다. 동네 사람들만 찾는다는 버들골 풍산마당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이곳에 올 때마다 에덴동산 같다는 생각을 한다. 봄에는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하고, 겨울에는 머리 위로 눈 쌓인 관악산 풍경이 펼쳐지는 곳. 공원 가장자리를 따라 조성된 소나무 숲 아래 화창한 날이면 가족과 커플들이 피크닉을 즐기며 더욱 낭만적인 풍경을 만든다.
06 서울대학교 종합운동장
서울대생은 아니지만, 매주 2회는 서울대로 향한다. 그 유명한 서울대학교 ‘샤’ 정문을 통과하면 왼쪽에 커다란 운동장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대학교 종합운동장 트랙은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어 저녁 시간대면 러너들로 북적거린다. 트랙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뱅글뱅글 도는 건 무척 지루한 일이지만, 이곳이라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서울대 트랙은 관악산에 둘러싸여 있어 사시사철 산바람과 풀 냄새로 가득하다. 이따금 잔디구장에서는 축구나 미식축구 경기가 열리는데, 왼쪽으로 힐끔힐끔 경기를 관람하며 뛰면 마치 내가 선수라도 된 기분이다.
07 낙성대공원
낙성대는 대학교가 아니다. ‘별이 떨어진 곳(落星垈)’이라 하여 이름 붙은 낙성대는 고려의 명장 강감찬 장군이 태어났다고 알려진 곳이다. 낙성대에는 이를 기념하는 낙성대공원이 있다. 말을 탄 강감찬 장군 동상 아래는 언제나 태평성대.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노부부, 배드민턴을 치는 대학생 커플, 엄마 손 잡고 소풍 나온 아이들로 가득하다. 낙성대공원에만 오면 마음이 편해지는 이유다. 공원에는 강감찬 장군의 영정을 모신 사당 ‘안국사’가 있다. 고려시대 목조 건축양식을 본떠 만든 곳으로 서울 도심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정취를 느낄 수 있다.
08 쟝블랑제리
낙성대역 4번 출구에서 한 블록만 안으로 들어가면 노란색 간판의 빵집이 나온다. ‘서울 5대 빵집’ 중 하나라는 쟝블랑제리다. 이 동네에 처음 정착했을 때는 가게 앞 늘어선 긴 줄을 보고 연예인이라도 온 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매일 정해진 시간에만 나오는 맘모스 빵을 사러 온 사람들이었다. 요즘도 매장에 들어가면 비상 식량이라도 챙기려는 듯 빵바구니를 한가득 채운 외지인들이 줄지어 서 있다. 입소문을 타면서 지금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도 매장이 생겼지만, 동네 산책을 하다가도 유명 빵집을 이용할 수 있다는 감흥은 여전히 만족스럽다. 맘모스 빵도 좋지만, 개인적으로는 앙버터와 크림치즈 소보루를 추천한다.
09 경원치킨
대한민국의 모든 동네에는 각 지역구를 대표하는 치킨집이 하나씩 있기 마련이다. 낙성대 동네 치킨의 일 인자는 단연 경원치킨. 메뉴는 기본적으로 ‘반반치킨’으로 준비된다. 프라이드를 시작으로 간장순한맛, 간장매운맛, 양념순한맛, 닭강정순한맛 등을 조합해 총 28가지 구성이 메뉴판을 채우고 있다. 경원치킨에 처음 왔다면 간장순한맛은 꼭 주문해보길 권한다. 파채가 올라가는 여느 파닭과 달리, 동그랗게 송송 썬 파를 간장에 버무려 치킨 위에 한가득 올린다. 간이 짭조름한 편이라 흰쌀밥을 곁들이면 더 맛있게 즐길 수 있다.
10 페어필드커피
한국인에게 아이스아메리카노는 기호식품이 아닌 생필품이다. 매일 아침이면 맛보다는 그저 카페인으로 몸과 정신을 깨워줄 커피를 찾는다. 느지막이 일어난 주말 아침만큼은 맛있는 커피를 여유롭게 마시고 싶어진다. 지난해 서울미술고 앞에 호주식 커피를 선보이는 카페가 문을 열었다. 가게 이름은 페어필드커피. 멜버른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던 사장이 자신이 살았던 호주 동네 이름을 그대로 가져왔다. 이곳에서는 아메리카노보다 풍미가 더 진한 롱블랙을 마셔보자. 부드러운 풍미를 즐기고 싶다면 초코 파우더가 올라간 카푸치노를 시켜보길.
양재천 근처에 산다는 것
동네에 탁 트인 하천이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도, 가볍게 뛰기도 좋다.
Editor 김지수
관악산에서 흐르는 물이 서초구와 강남구를 타고 흐른다. 약 15.6km 길이의 하천 이름은 양재천. 30년 전 공원화사업을 통해 근사한 모습으로 탄생했다. 영동 1교와 2교, 3교 사이 양재천에는 카페거리를 비롯해 아기자기한 가게들도 자리 잡았다. 양재천은 주민만 아는 벚꽃 명소였는데 몇 년 전부터 입소문을 탔다. 봄이면 풍성한 벚꽃이 빼곡하게 늘어서고, 여름에는 신록이 가득하다. 가을은 그윽한 분위기로 단풍이 물들고, 겨울은 쓸쓸하지만 고요한 매력을 지닌 곳. 유명해진 덕에 특히 봄이면 인파로 북적이지만 보물 같은 장소들도 생겨났다. 카페거리 곳곳에, 메타세콰이어길이 아름다운 양재천로 옆에. 모처럼 그 주변을 산책하면서 좋아하는 장소와 새로운 공간을 들여다봤다.
01 크레미엘
문을 열자마자 화제가 된 카페다. 과장을 더하면 벚꽃길만큼 양재천을 알린 곳 중 하나다. 크레미엘에서는 프랑스인 남편과 한국인 아내, 파티시에 부부가 황홀한 맛의 페이스트리를 구워낸다. 대표 메뉴인 크루아상은 파리 현지의 맛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발 빠른 카페 인플루언서들이 오픈 초기에 다녀갔고, 대기 없이는 입장하기 어려운 날도 많았다. 지금은 바로 들어갈 수 있지만 오후면 인기 있는 종류가 품절된다. ‘숍인숍’으로 판매하는 사브르 커틀러리를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02 꼼뚜아 그로서리
크레미엘과 가까이 있는 자매 가게다. 작지만 알찬 식료품점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 등에서 온 제품과 요리 도구를 판매한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품은 저렴하게 판매하는 것도 꼼뚜아 그로서리의 매력이다. 방문한 날도 캔 오렌지 와인과 함께 먹을 파르메산 치즈 비스킷, 이탈리아 까르미아노사의 쇼트 파스타 면을 기존보다 싼 가격으로 구매했다.
03 노빅딜 하우스
‘Life is no big deal’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들어서면 동심의 세계가 펼쳐진다. 브랜드 노빅딜의 쇼룸이자 카페다. 디즈니 및 유니버설과 협업한 제품이 가득한데, 캐릭터를 좋아하는 이라면 지갑을 사수해야 할 만큼 눈이 돌아간다. 솜사탕을 얹어 트롤 머리가 떠오르는 에이드 종류, 공룡 화석 모양 쿠키 등 익살스러운 메뉴를 만날 수 있다. 반려동물 동반이 가능해 종종 귀여운 친구들도 마주친다.
04 이노메싸
이노메싸에 갈 때면 동네 주민이라는 사실이 흐뭇해진다. 대표적인 리빙 편집숍 중 하나이고, 유려한 북유럽 가구를 직접 볼 수 있기 때문. 마음에 든다고 쉽게 살 만한 가격은 아니지만 그릇과 컵, 조명과 가구, 오브제 등으로 근사하게 꾸민 공간을 보면 ‘아이쇼핑’하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헤이’와 ‘앤트레디션’ ‘구비’ ‘헴’ 등 온라인으로 찜한 브랜드 제품을 직접 보고 싶을 때 방문해도 좋다.
05 레니 LP 뮤직 바
동네의 밤을 지키는 바. 늦은 시간 영동 2교를 지날 때면 음악과 적당히 어우러지는 대화가 기분 좋게 들린다. 저녁 7시부터 새벽 1시까지 문을 여는 바에서는 올드 팝과 최신 음악이 다채롭게 흐른다. 사장이 어릴 적부터 모은 LP와 CD만 8000장이 넘는다고. 여느 LP 바처럼 신청곡을 받지만, DJ인 사장이 분위기에 맞춰 조금씩 순서를 바꾸거나 어울리는 곡을 끼워 재생한다.
06 티그로타
양재천 카페거리 초입에 지중해식 레스토랑이 생겼다. 흔치 않은 지중해 요리를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어 내심 반가웠다.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식당에 들어갔다. 뭘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고민하며 메뉴를 훑었다. 여러 종류 중 파프리카와 페타 치즈, 올리브와 레몬 치킨이 담긴 ‘그릭샐러드’를 골랐다. 피타 브레드를 추가해 차지키 소스와 곁들이니 꽤 든든하고 건강한 한 끼 식사가 됐다. 레스토랑은 널따란 1층 외에도 모임이나 작은 행사를 할 수 있는 지하 공간을 갖췄다. 다음에는 여럿이 와서 와인과 함께 다양한 메뉴를 즐겨도 좋겠다.
07 라폰다
맛집을 정하는 나만의 방식이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 다음을 기약하게 하는 곳. 라폰다가 그렇다. 옥수에서 유명했던 타코집이 최근 양재천 근처로 이전했다. 세련된 간판이 달린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남미풍 음악이 흐르고, 외국인 직원들이 친절하게 맞아준다. 이국적인 분위기에서 멕시코 맥주 도스 에퀴스와 바삭한 케사디야, 현지 맛이 물씬 나는 타코를 먹으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08 퀸즈베리도넛하우스 양재점
도넛의 인기가 한창 치솟던 시절이 있었다. 해외에서 물 건너오거나 F&B 브랜드에서 야심 차게 선보이거나. 저마다 화려한 옷을 입은 도넛 사이에서 퀸즈베리도넛하우스가 등장했다. 겉으로는 단순해 보이지만, 발효 과정 없이 바로 튀겨내는 ‘케이크 도넛’은 파운드케이크처럼 밀도 높고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클래식 시나몬 또는 오리지널 글레이즈드처럼 고명을 최소화한 종류를 먹을 때 진가를 느낄 수 있다.
09 2448 아트스페이스
양재천을 오가면서 갤러리의 존재는 알고 있었다. 동네를 찬찬히 살피니 생각보다 많은 갤러리들이 자리한 걸 깨달았다. 아담한 갤러리 여러 곳이 전시를 준비하거나 진행 중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권하고 싶은 곳은 2448 아트스페이스다. 국내 신진 및 중견 작가 위주로 소개하고, 크지 않은 공간을 작품으로 알차게 채운 점이 인상적이다. 2관에서는 작가 ‘레지나’의 전시를 한다. 은은한 겨울밤을 떠올리게 하는 그림에는 정교한 선으로 표현한 작가의 어린 시절 추억이 담겨 있다.
10 시트롱
시트롱은 언제 가도 좋지만 여름과 가을에는 필수로 방문한다. 그때만 맛볼 수 있는 시즌 메뉴가 있고, 그 맛이 계절을 기다리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여름에는 망고 빙수와 초당옥수수 피자, 가을에는 무화과 프로슈토 피자와 애플파이를 기억할 것. 특히 넉넉히 담은 애플망고에 부드러운 우유 얼음이 조화로운 망고 빙수와 질 좋은 홍옥으로 구워낸 애플파이가 일품이다. 물론, 상시 메뉴인 스콘과 크렘브륄레의 맛도 훌륭하다.
우리 동네에 온다면
누구에게나 하나쯤 나만 알고 싶은 동네 장소가 있다.
하지만 즐거움은 나눌 때 두 배가 되는 법.
<아레나> 에디터들이 사심 담아 추천하는 동네별 명소.
Editor 주현욱, 김지수
01 넘버린 - 서울 용산구 한강대로 356 1층
1년간 떠났던 후암동에 다시 돌아왔다. 이곳에서 6년을 살고 다른 동네로 떠났지만, 살아보니 ‘역시 이만한 곳은 없구나’ 하는 결론을 얻고 지난달 후암동으로 이사했다. 특유의 점잖은 분위기도 좋지만, 어디서나 두 눈 가득 담기는 남산 풍경은 한강 뷰보다도 만족스럽다. 후암동에서 서울역으로 이어지는 골목에는 아기자기한 카페들이 많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곳은 넘버린. 시그너처 메뉴인 얼그레이 크림 라테도 훌륭하지만, 이곳은 주변 직장인들에게 휘낭시에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하다. 아침에 찾는 넘버린은 언제나 기분 좋은 버터 향으로 가득하다. 가장 즐겨 먹는 건 ‘대파 & 치즈’ 휘낭시에. 한동안 메뉴에서 제외됐지만 곧 판매를 다시 시작한다고. 서울역 근처에 갈 일이 생긴다면 꼭 한 번 들러보시길.
노현진 | 디지털 디렉터
02 석촌동 고분군 - 서울 송파구 가락로7길 21
서울 송파구에는 수백 년째 같은 자리를 지키는 백제시대 유적지가 있다. 백제의 왕과 귀족이 잠든 석촌동 고분군이다. 집 앞 현관에서 이곳까지 걸리는 시간은 도보로 10초. 고분군 전체가 나의 출퇴근길이다. 고분 중 하나는 백제의 13대 왕, 근초고왕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발굴 조사를 진행하고 있어 고분군 안은 고층 빌딩 없이 하나의 공원 같다. 덕분에 내게는 최고의 산책 장소다. 해 질 녘이 되면 강아지 산책시키는 사람으로 북적이며, 주말에는 강아지와 벤치에 나란히 앉아 책을 읽기에도 좋다. 유적지인 만큼 잔디도 언제나 깔끔하게 관리되는데, 잔디를 깎은 다음 날 진하게 풍기는 풀 비린내도 이곳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다.
유선호 | 디지털 에디터
03 하이드마리 - 서울 성동구 성수일로12길 33 2층
하이드마리는 성수동뿐만 아니라 서울에서 가장 추천하는 빈티지 숍이다. 최근 성수동2가에 새롭게 문을 열면서 특유의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한껏 진해졌다. 이곳에서는 더 로우, 게스트 인 레지던스처럼 다른 빈티지 숍에서는 보기 어려운 브랜드들을 접할 수 있다. 아직 빈티지 시장에 많이 나오지 않은 고가 브랜드의 아이템을 합리적인 가격대로 구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 하이드마리 옷장은 여성복 비중이 높지만, 여자친구에게 선물할 옷을 사러 온 남자 손님들로 늘 붐빈다. 참고로 이곳 사장은 드라이클리닝에 진심이다. 오래된 빈티지 옷 특유의 냄새가 없어 쇼핑 직후에도 기분 좋게 착용할 수 있다.
홍서영 | 디지털 에디터
04 플라츠2 - 서울 성동구 뚝섬로17길 35
성수동은 내게 아이러니한 감정이 들게 하는 동네다. 매일같이 새로운 팝업으로 분주한 동네인 만큼, 행사 취재가 업무인 내겐 사무실 다음으로 가장 자주 출근해야 하는 곳이다. 동시에 성수동은 없는 게 없는 동네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친구들과 쌓은 추억이 한가득이다. 그런 성수동에서 내게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되어주는 곳이 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 중인 플라츠2. 지인인 주인 덕분에 이곳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다. 지인들과 플리마켓을 열기도 했고, 특별한 생일 파티를 보내기도 했다. 플라츠2의 한편은 평소 카페로 운영된다. 건물 한가운데는 천장이 뻥 뚫린 중정이 있는데, 수많은 인파에 치여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면 이곳을 찾아보길.
이아름 | 디지털 에디터
05 광교호수공원 - 경기 수원시 영통구 광교호수로 165
해외 출장을 갔다 들어오면 늘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 있다. 우리나라에 공원이 많지 않다는 것. 그래서 집 근처 광교호수공원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국내에서 가장 큰 호수 공원답게 탁 트인 풍광을 자랑하고, 낮과 밤의 매력이 사뭇 다르다. 낮에는 넓고 푸른 숲에서 사랑하는 반려견과 함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밤이 되면 공원은 마치 뉴욕의 센트럴 파크처럼 도회적인 분위기로 변한다. 주변 빌딩들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며 화려한 야경을 만든다. 낭만적인 배경에서 음악을 들으며 달리는 시간은 하루를 돌아보고 마무리하기에도 훌륭하다.
김장군 | 패션 디렉터
06 푸른수목원 & 항동철길 - 서울 구로구 서해안로 2117
만남과 이별이 있어서일까. 기찻길에 가면 고유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동네에 있는 항동철길은 서울에 몇 없는 폐철도 중 하나다. 한때 화물 철도로 운영해 사람도 물건도 분주하게 오갔으나 지금은 얼핏 쓸쓸함이 묻어난다.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고요한 운치도 이곳이 지닌 멋이다. 항동철길을 따라 쭉 걸어가다 보면 푸른수목원이 나온다. 항동저수지와 수변 데크로 조성한 장소다. 수변 공원과 항동철길을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데다 입장료가 없어서 누구나 쉽게 찾는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이곳까지 여행을 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주민으로서 여유를 즐긴다. 그렇게 주말이면 이곳으로 향한다. 평일 도심에서 마주하기 어려운 풍경과 공기를 채우기 위해.
김지수 | 게스트 에디터
07 노가리공장 - 서울 용산구 신흥로 99-13 1층
원래도 자주 찾았지만 후암동으로 이사한 뒤 완전히 단골이 됐다. 이유는 단순하다. 노가리공장은 저렴하고, 맥주 맛이 좋다. 안주가 2000~5000원이다. 야장 공간도 갖추고 있어 요즘 같은 가을 날씨에 딱이다. 친구와 소월길을 산책하다가 가볍게 한잔하러 가거나 많이 허기지지 않은 날에는 주전부리를 곁들여 저녁 시간을 보낸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안주는 ‘구운 김’이다. 별것 없어 보이지만 감칠맛이 뛰어나 술이 술술 넘어간다. 출출할 때는 ‘빠삭이’도 좋은 선택이다. 바싹 구운 황태포를 하나둘 집어먹다 보면 점점 배가 차오른다. 정감 있는 사장님도 발길을 끄는 이유 중 하나다. 한적한 시간이면 옆자리로 와서 이런저런 옛이야기를 해준다. 마주 보고 떠들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되어간다.
이다솔 | 패션 에디터
08 피시즈(PCS) - 서울 용산구 임정로 43
내가 사는 신공덕동은 효창공원과 ‘슈퍼마켙’이 있는 소박한 동네다. 올여름, 집 근처 걸어서 5분 거리에 피시즈가 생겼다. 낯설고 불분명하지만 귀여운 세라믹을 다루고, 방문객을 환대하며 차도 내어준다. 쇼룸 옆 한편에는 모두에게 열린 작은 서재도 마련했다. 아담하지만 방문한다면 찬찬히 오래 머물 수 있는 공간. 지도에서도 아직 검색되지 않는, 나만 알고 싶은 아지트 같은 장소다. 사적인 큐레이션으로 가득한 피시즈에서 남다른 취향을 보고, 만지고, 이야기 나누다 보면 복잡했던 머리도 금세 차분해진다.
이상 | 패션 에디터
Illustrator 이주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