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알아서 코딩하고, 로봇이 춤추는 시대다. 기술 발전의 끝을 가늠할 수 없는 지금, 오히려 우리 주변의 사소하지만 유용한 물건이 궁금해졌다. 이 물건들은 언제부터, 어떻게 쓰이기 시작했을까.
클립
지금 이 기사를 쓰는 책상 위에도 클립이 있다. 철사를 한 바퀴 반 구부린 이중 타원 형태는 볼수록 신통방통하다. 앙증맞은 크기와 적당한 탄성, 유용한 활용성은 사무실의 마스코트라 부를 만하다. 클립에 관한 최초의 특허는 1867년 미국의 새무얼 B. 페이가 획득했다. 직물에 티켓을 부착하기 위한 도구로 발명했다. 당시 클립은 지금 형태는 아니었다. 클립 하면 떠오르는 지금 형태가 등장한 시기는 1890년대 초다. 영국의 ‘더 젬 매뉴팩처링 컴퍼니(The Gem Manufacturing Company)’에서 처음 생산했다는 게 정설이다. 1904년에는 상표명 ‘젬 클립(Gem Clip)’도 등록했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선 클립을 ‘젬 페이퍼 클립(Gem Paper Clip)’이라 부른다. 상표명이 제품명이 된 경우다. 클립은 보석처럼 귀하진 않아도 보석보다 유용한 도구로 100년 넘게 이어왔다.
면봉
면봉의 쓰임새는 다양하다. 귀를 청소할 때, 약품을 바를 때, 누군가처럼 끝을 잘라 이를 쑤실 때도 유용하다. 그럼에도 면봉의 첫 번째 용도는 귀 청소다. 귀 청소 전문 도구인 귀이개는 역사가 깊다. 고대 게르만족 유적에서도 발견했다니 인류의 발전과 함께했다. 반면 귀이개에 창의력을 발휘해 발전시킨 면봉은 20세기 초에 등장했다. 1923년 폴란드계 미국인 레오 게르스텐장의 발명품이다. 그는 생활 속에서 발명의 단초를 찾았다. 아내가 아기의 귀를 청소할 때 이쑤시개에 솜을 감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면봉을 발명했다. 더 안전하고 위생적인, 진보한 도구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최초 상품명은 ‘베이비 게이스(Baby Gays)’. 이후 ‘큐-팁(Q-Tip)’으로 이름 바꿔 전 세계에 퍼뜨렸다. 누군가는 이렇게 일상에서 세상을 바꿀 발명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드라이버
집집마다 드라이버 하나씩은 꼭 있다. 가장 기본적인 도구지만, 이것 하나만으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드라이버에 관련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중세 후기 유럽에서 찾을 수 있다. 15세기 후반,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발명돼 쓰였을 거라고 추정한다. 당시 기사의 갑옷을 만드는 데 나사와 드라이버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초기 드라이버는 날 끝이 일자형이었다. 홈에 끼워 나사를 조이고 푸는 가장 단순한 형태는 오랫동안 표준으로 쓰였다. 십자형 드라이버는 20세기 초가 돼서야 본격적으로 쓰였다. 1936년 헨리 F. 필립스가 십자나사로 특허를 받았고, 개선된 도구는 당시 부흥하는 자동차 산업과 맞물려 널리 퍼졌다. 현재 십자나사를 ‘필립스 나사(Philips Screw)’로 부르는 이유다. 십자드라이버를 단순한 형태라 생각했는데 커다란 진보였다. 발상의 전환이 이렇게 어렵다.
병따개
병따개를 볼 때마다 절묘한 모양과 편리한 사용성에 감탄한다. 물론 숟가락과 라이터, 심지어 치아로도 병뚜껑을 딸 수 있지만, 편하기로는 병따개만 한 게 없다. 병따개의 기원은 명확하다. 아일랜드계 미국인 윌리엄 페인터가 만들었다. 1894년 일이었다. 흥미로운 건 병따개로 여는 ‘왕관형’ 병뚜껑 역시 그가 만들었다는 점이다. 병따개 만들기 2년 전에 발명해 특허를 취득했다. 게다가 그는 회사를 세워 병뚜껑과 병따개가 함께 쓰이는 병이 표준이 되도록 노력했다. 고도의 비즈니스 전략이 지금 우리 손에 병따개를 쥐어준 셈이다. 한국에서 병따개는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쓰였다. 당시 서양 음료와 맥주가 들어와 자연스레 병따개도 넘어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집집마다 있진 않았다. 병따개가 흔해진 건 1980년대 후반 보급형 제품이 퍼진 이후다. 우리가 병따개와 친해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구둣주걱
끈을 꽉 묶은 신발을 신을 때마다 구둣주걱의 소중함을 실감한다. 구둣주걱이 없었다면 신발과 발 사이에서 손가락이 매번 고생할 테니까. 구둣주걱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어 신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도구가 필요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부터 구둣주걱과 유사한 도구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땐 동물의 뼈나 상아를 깎아 만든 원시적인 형태였다. 구둣주걱의 부흥기는 중세 후기부터다. 슈혼(shoehorn)이란 단어 역시 16세기에 처음 쓰였다. 가죽 신발이 유행하면서 덩달아 구둣주걱도 퍼졌다. 주로 쓰는 사람이 상류층이기에 도구를 넘어 세공을 가미한 사치품으로도 발돋움했다. 상류층이 아닌 우리가 지금 구둣주걱을 편하게 쓸 수 있는 건 산업혁명 덕분이다. 저렴한 소재로 대량 생산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칫솔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손에 드는 물건은 칫솔이다. 저녁에 자기 전에 꼭 사용하는 물건도 칫솔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칫솔의 기원은 까마득한 과거로 거슬러 간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칫솔 역할을 하는 도구의 기원이 그렇다. 기원전 3500년 바빌로니아인이 나뭇가지 끝을 다듬어 사용한 기록이 있다. 칫솔다운 형태는 15세기 중국에서 찾을 수 있다. 대나무 손잡이에 시베리아 멧돼지의 털을 심어 만들었다. 18세기 영국에선 대량 생산 가능한 칫솔을 만들어 상품화했다. 이 시절 역시 돼지털이나 말털을 솔로 사용했다. 칫솔 역사에서 결정적 전환점은 20세기 초다. 1938년 미국 듀퐁이 최초로 나일론을 사용한 칫솔을 개발했다. 역시 저렴한 재료로 만든 대량 생산품은 삶의 질을 달라지게 한다. 덕분에 손가락에 소금 얹어 이 닦지 않아도 됐다.
이쑤시개
이쑤시개의 기원은 아득하다. 무려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인류의 치아 화석에서 나뭇가지나 뼈, 깃털 등으로 치아 사이를 청소한 흔적을 발견했다. 지금 같은 형태는 아니어도 이쑤시개는 분명히 존재한 셈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선 금, 은, 청동으로 만든 이쑤시개도 쓰였다. 중국 역시 송나라 시대부터 귀족과 서민 모두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이쑤시개를 일상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지금 널리 쓰이는 나무 이쑤시개는 19세기 중반에 처음 제품으로 등장했다. 미국 메인주의 사업가 찰스 포스터의 사업 아이템이었다. 기계로 대량 생산할 수 있었기에 이후 전 세계로 퍼졌다. 찰스 포스터의 사업가적 기질 덕분에 우린 지금 식사한 후에 찝찝함에서 간편하게 벗어날 수 있다. 물론 고대인도 깨달은 것처럼 대체품이야 다양하겠지만.
빨대
빨대가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다. 매일 아침 빨대 꽂은 아이스아메리카노는 출근길의 동반자다. 물론 빨대가 없어도 음료는 마실 수 있다. 있지만, 그만큼 일상은 덜 편할 수밖에 없다. 이런 마음은 약 7000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명인 수메르 시대에도 빨대가 쓰였으니까. 수메르인은 맥주를 마시기 위해 갈대나 풀을 말린 대롱을 빨대처럼 사용했다. 지금 같은 플라스틱 빨대는 아니어도, 빨대를 필요로 하는 인류의 본능은 그만큼 유서 깊다. 지금 같은 형태의 빨대는 1888년 미국인 마빈 스톤이 종이 재질 빨대를 발명해 특허를 받으며 퍼졌다. 플라스틱 재질 빨대는 20세기 초에 등장했다. 간편한 일회용 빨대가 등장하며 폭발적으로 확산돼 지금에 이르렀다. 빨대를 사용한다는 건 기원전 수메르인의 생활상을 접하는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