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물건을 고집스럽게 모으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들을 욕심쟁이가 아닌 컬렉터라고 부른다. 이 세상 모든 컬렉션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깃들기 때문. 특별한 수집가들을 찾아가 그들의 지난 모험담을 듣고 왔다.
지폐
알파고 시나씨 • 기자·작가·방송인
“돈이 아닌 이야깃거리로 지폐를 바라볼 때 세상은 훨씬 흥미로워진다.”
초등학생이었던 1990년대는 튀르키예에서 화폐 가치가 가장 빠르게 떨어지던 시기였다. 용돈을 받으면 곧장 환전소로 달려가 달러나 마크로 환전해야 했던 시절. 그때부터 다양한 외국 지폐에 관심을 가졌다. 외할아버지의 영향도 컸다. 사업차 58개국을 다닌 외할아버지는 자잘한 잔돈을 모아두셨는데, 그 모습을 보며 나도 지폐 컬렉션을 만들겠노라 다짐했다. 지금 갖고 있는 화폐는 대부분 언론사 특파원 시절 모았다. 여행으로는 가지 않을 법한 전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화폐를 모았고, 지금은 대륙별로 구분해 보관 중이다.
손바닥만 한 지폐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 시절 신원을 알 수 없는 남자를 새겨 발행한 조선 엔, 소비에트 연방 시절 블라미디르 레닌의 초상을 새긴 러시아 루블, 인플레이션으로 500만 단위까지 올라간 튀르키예 리라, 일본이 미얀마를 통치하던 시절 발행한 루피, 여전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새겨진 동카리브 달러. 돈이 아닌 이야깃거리로 지폐를 바라볼 때 세상은 훨씬 흥미로워진다. 컬렉션을 불려가며 화폐 속 인물을 소개하는 책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까지 냈으니, 지폐 수집은 내게 취미를 넘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됐다.
마라톤 메달
김문환 • 의료기기 회사 ‘아이센스’ 연구원
“메달 컬렉션에 꼭 추가하고 싶은 메달은 없다.
그저 오래 달리고 싶을 뿐이다.”
생애 첫 마라톤은 2019년 시애틀 마라톤이었다. 사실 마라톤은 둘째치고, 한 번에 10km 이상 뛰어본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놀러 간 미국의 사촌동생 집. 주말에 할 것이 없어 아무 생각 없이 참가했다. 기록은 5시간 30분. 처음으로 사람이 뛰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는 뛰지 않겠다 결심했지만, 막상 한국에 돌아오니 한 번도 쉬지 않고 42.195km를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러닝을 시작한 지 5년 차에 접어들었고, 지난해에는 보스턴 마라톤을 끝으로 세계 6대 마라톤 메달을 모두 목에 걸었다.
메달을 모으려고 마라톤을 시작한 건 아니다. 뛰다 보니 메달이 쌓이게 됐다. 가장 의미 있는 건 지난해 ‘물사랑 낙동강 200km 울트라마라톤대회’에서 획득한 메달. 국내 울트라 마라톤 대회 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은 코스를 자랑하는데, 24시간 5분 걸려 1등으로 완주했다. 인생 첫 마라톤 메달(시애틀)과 첫 마라톤 1등 메달(낙동강)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거다. 요즘 러닝이 대세라지만, 내게 러닝은 유행도 훈련도 아니다. 그저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하듯, 당연히 하는 일이 됐다. 메달 컬렉션에 꼭 추가하고 싶은 메달은 없다. 그저 오래 달리고 싶을 뿐이다.
리버풀 FC 유니폼
홍석준 • PR대행사 드밀커뮤니케이션 대리
“내가 리버풀을 좋아하는 이유?
리버풀보다 강한 팀은 있어도, 리버풀만큼 낭만 있는 팀이 있을까.”
리버풀 엠블럼이 새겨진 첫 번째 물건은 유니폼이 아닌 장갑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08년. 겨울용 장갑을 사러 들른 아디다스 매장에서 리버풀 장갑이 눈에 띄었다. 만일 그날 함께 진열된 첼시나 레알 마드리드 장갑을 샀다면 지금의 컬렉션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때마침 당시 리버풀은 다시 한번 황금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캡틴 스티븐 제라드를 중심으로 페르난도 토레스, 사비 알론소, 하비에르 마스체라노가 리그를 장악하던 시절. 2008-09 시즌 리버풀은 프리미어리그 2위를 차지했고, 그 후로 매년 유니폼을 사 모으고 있다.
리버풀 FC는 역사가 130년도 더 된 구단이다. 그 모든 유니폼을 모을 수는 없어 기준을 하나 정했다. 내가 태어난 1992년 이후 나온 유니폼을 수집하기로. 지금까지 모은 유니폼 수는 총 70장. 그중 가장 아끼는 건 제라드 이름을 새긴 2004-06 시즌 홈 유니폼이다. ‘이스탄불의 기적’이라 불리는 챔피언스리그 당시 리버풀이 입었던 유니폼이다. 올해 9월에는 여기에 제라드 친필 사인을 받아 오랜 숙원을 이뤘다. 내가 리버풀을 좋아하는 이유? 리버풀보다 강한 팀은 있어도, 리버풀만큼 낭만 있는 팀이 있을까. 응원가 ‘You’ll Never Walk Alone’이 가장 잘 어울리는 팀이다.
포켓몬스터 굿즈
양의식 • 게임 문화 편집숍 ‘마우스 포테이토’ 매니저
“성격상 한 번 품으면 되팔지 못하는 내게
포켓몬 인형들은 반려동물이나 다름없다.
지우에게 피카츄가 그랬던 것처럼.”
어릴 적 사진첩 속 내 손에는 언제나 포켓몬이 들려 있었다. 지금은 포켓몬 수십 마리가 집 안 곳곳을 병정처럼 지키고 있는데, 그중 가장 아끼는 건 2001년 아버지가 선물해준 피카츄 인형이다. 이듬해 <포켓몬스터 골드·실버>가 한국에 출시되면서 본격적으로 포켓몬 세계에 빠져들었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는 건 피카츄. 지난 29년 동안 1000마리 넘는 포켓몬들이 나왔지만, 피카츄만큼 소년 만화의 감동을 선사한 캐릭터는 없다. 포켓몬 인형, 포켓몬 카드, 포켓몬 피규어 등 포켓몬과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모으고 있지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언제나 피카츄였다.
포켓몬 굿즈를 재테크로 수집하는 이들도 있다. 기본적으로 모든 포켓몬 굿즈는 한 번 출시되면 다시 복각되지 않기에,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오르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성격상 한 번 품으면 되팔지 못하는 내게 포켓몬 인형들은 반려동물이나 다름없다. 지우에게 피카츄가 그랬던 것처럼. 포켓몬 인형을 구하는 일은 좋은 부동산 매물을 구하는 것과 같다. 발품은 필수다. 몇 달에 걸쳐 수소문한 끝에 원하던 인형을 손에 넣을 때는 ‘전설의 포켓몬을 만나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어진다. 참고로 내년은 <포켓몬스터> 탄생 30주년이 되는 해다. 벌써부터 새해를 기다리는 이유다.
Editor 주현욱
Photographer 신동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