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연기하고 노래했지만 매 순간 최고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 가장 본질적인 걸 탐구하고, 그저 담담하게 걸어가는 사람. 니노미야 카즈나리는 그런 아티스트다. 영화 <8번 출구>에 등장하는 끝없는 통로처럼 막막한 길에 서 있을지라도 기꺼이 그 길에 뛰어드는. 니노미야 카즈나리는 그렇게 우리 곁에 있다.
“시대의 선두 주자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즐겁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 이렇게 재미있는 걸 하니,
다음 세대는 더 재미있는 걸 만들기를 바라고요.”
영화 <8번 출구> 열기가 뜨겁습니다. 지난 5월 ‘칸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 이어, ‘부산국제영화제’ 미드나잇 패션 섹션에도 초청받았어요.
<8번 출구>는 스릴러 장르인 데다 기이한 소재의 작품이에요. 그럼에도 많은 관심을 받았죠. 관객들이 이야기의 본질을 알아주신 것 같아 감사한 마음입니다.
어떤 부분에서 관객이 작품의 본질을 이해했다고 느꼈나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작품과 연기에 대해 얘기하는 프로그램 ‘액터스 하우스’에 참여했어요. 그때 영화에 대한 열띤 토론이 오갔어요. 영화 관련 질문 하나하나 깊이가 있어서 ‘부산국제영화제 오는 분들은 모두 시네필이구나’라고 여길 정도였죠. ‘같은 공간이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매번 다른 느낌을 주기 위해 고민했나요?’ 같은 질문을 비롯해 여러 번은 봐야 할 수 있는 질문도 단번에 나와서 놀랐어요.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죠.
배우로서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겠네요.
그럼요. 순수하게 영화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토론의 장을 많이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는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영화를 선보였어요. 현장에서 공개하기 전 마음은 어땠나요?
한국 관객은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지, 좋아해주실지 계속 설레는 마음이었어요. 다행히 흥미롭게 봐주신 것 같습니다.(웃음)
내한 일정 중 인상 깊은 순간도 있었나요?
이번에 처음 부산에 와봤어요. 따뜻한 환대가 기억에 남고, 머무는 동안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무엇보다 일본 영화를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했는데 저희 말고도 많은 일본 영화팀이 참석했고, <8번 출구> 역시 환영해주셔서 기뻤습니다.
게임 원작이라는 점에서 <8번 출구>가 더 궁금해집니다. 스스로 각본에도 참여할 만큼 작품에 매료된 이유가 있나요?
<8번 출구>를 통해 영화의 가능성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원작인 게임 자체가 특이하거든요. 지하도를 무한 반복하며 이상한 현상을 만나는 식이죠. 어떤 영화가 나올지 기대감이 컸어요. 단순히 독특한 게임을 영화화하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각본과 촬영에 임했어요.
영화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나요?
시대의 선두 주자는 아니더라도 여전히 즐겁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요. 지금 이렇게 재미있는 걸 하니, 다음 세대는 더 재미있는 걸 만들기를 바라고요. 불후의 명작인 원작 게임을 존중하면서 영화 각색에 참여한 이유이기도 해요. 다행히 많은 관객이 흥미롭게 보시고, 새로운 도전에도 주목하는 것 같아요.
본인이 맡은 배역은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면서 극 전체를 이끌어요.
<8번 출구>는 역대 제 작품 중 니노미야가 가장 많이 나오는 작품이에요.(웃음) 상영 시간의 95% 이상은 제가 나와요. 환경이나 배경이 거의 변하지 않는 설정인 만큼 감정과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그리고 잘 전달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어요. 연기적으로도 큰 도전이었죠.
제한된 환경에서 극을 잘 전개하기 위해 어떤 고민을 했나요?
어떻게 하면 관객이 균형 감각을 잃거나 두근거리는 등 스트레스를 느끼며 빠져들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현장에서 감독님, 제작진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연구하면서 각 장면을 완성했죠. 매 순간 정답을 찾기 위해 노력했어요. 보통 실내 장면에서는 카메라나 마이크, 조명의 움직임 때문에 천장까지 잘 나오지 않거든요. <8번 출구>에서는 아주 긴 통로에 끝없이 천장이 보이는 화면이 이어져요. 이런 장면이 나오는 영화가 드물다는 점도 작품이 지닌 새로운 점이에요. 시각적으로 탈출구가 없는 모습은 압박감을 주죠.
연기적으로 신경 쓴 부분도 있나요?
대사를 말할 때 천장으로 막혀 있으면 멀리까지 전달되기 어려워요. 평소보다 짧은 거리에서도 목소리가 반사돼 음량 조절이나 감정 표현이 쉽지 않거든요. 스트레스받기도 하고, 계산하면서 연기하는 묘미가 있었습니다.
상상에만 그친 고민도 있는지?
호러 영화라면 소름 끼치는 공포감을 전달하려고 상영 중인 극장 온도를 1~2℃ 낮추고 싶을 텐데, <8번 출구>는 지글지글 무더운 공기가 어울리는 작품이라 ‘갑자기 에어컨이 고장 나면 몰입이 배가되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웃음)
촬영 현장 분위기는 어땠어요?
한마디로 요약하면 ‘창의성이 넘치는 현장’이었어요. 즐거웠습니다. 보통은 영화를 만들고 연기하는 입장에서 기본 감정선을 유지하며 관객이 잘 따라오게 하는 데 중점을 둬요. 앞서 말한 것처럼 이번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보다 관객이 어떻게 느낄지, 관객 중심으로 만들었어요. 작업하면서 가장 신선했던 점이에요.
어느덧 배우로 활동한 지 20년이 넘었습니다. ‘연기’는 니노미야 카즈나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연기는 할 때마다 가장 좋은 정답을 찾고 싶어지는 일이에요. 동사로 말하자면 저는 ‘보는’ 것뿐 아니라 ‘하는’ ‘만드는’ 등 여러 시각으로 연기를 바라보려고 해요. 다양한 시각이 훌륭한 결과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고 믿거든요. 그만큼 연기는 모호하고 계속 변화해요. 현장에서는 항상 ‘연기하는’ 입장에서 캐릭터에 이입된 상태여야 하지만, ‘보는’ 쪽에만 치우쳐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못하는’ 연기가 더 자연스럽게 전달될 수도 있어요. ‘잘하는’ 연기에만 집중하면 더 좋은 연기를 못하는 거죠. 단순한 연기를 할 때 빛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기술적으로 관객을 사로잡아야 하는 작품도 있어요. 그래서 매번 고뇌하면서 최고를 뽑아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 지나면서 연기 방식이 달라지기도 했나요?
오직 나만 할 수 있는 연기를 터득했어요. 정통 연기로 치면 변종에 속하고 연극 학교에서는 낙제생이 될 수도 있지만요.(웃음) 제가 생각하는 연기는 거짓말을 관통해요. ‘거짓말을 어떻게 할 건지’ ‘어떻게 들키지 않을 것인지’의 연속이죠. 실제로 죽을 수 없고, 때릴 수 없듯 여러 제약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사에서는 거짓말을 할 수 있어요. 대사를 통해 배역과 이야기를 관철시키려고 하죠. 그게 연기라고 생각하고요. 대중과 영화·드라마 시장이 원하는 ‘니노미야 카즈나리’가 어떤 모습인지 생각하면서 연기하게 된 것도 하나의 변화예요.
배우 활동을 주로 하지만 음악 활동도 꾸준히 병행하고 있죠.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요?
음악을 할 때도 늘 연기처럼 들떠요. 음악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점에서 소중하게 느껴져요. 같은 음악과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공연이나 콘서트를 통해 모이니까요.
연기와 음악 활동이 서로 긍정적 영향도 주고받는지 궁금합니다.
모든 표현에서 중요한 것은 리듬감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음악과 연극을 하면서 어떤 흐름이 좋은지, 정석적인 움직임을 일부러 벗어날 때 오는 재미는 무엇인지 감각적으로 알게 됐어요. 두 가지가 계속 큰 영향을 주고받은 것 같아요. 설렘을 입력하고 설렘을 출력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고요.
오랜 시간 같은 일을 해온 분들을 동경합니다. 활동하면서 지치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를 유지하는 비결이 있나요?
담담하게 계속하는 것. 시간이 지나면 ‘그때 힘들었구나’ 하겠지만, 담담하게 해내는 것 외에는 나아갈 방법이 없어요. 되돌아보면 어릴 때부터 단체 생활을 했고, 숨 가쁜 일정이 힘들 때도 있었을 텐데 도망치지 않았더라고요. 그렇게 담담하게 해온 것 같아요. 묵묵히 해내는 자세가 여전히 중요하다고 느끼고요.
스스로 꼭 지키고 싶은 일상의 작은 습관이나 신념도 있다면요?
매일 아침 X(트위터) 계정에 “여러분 안녕~” 하고 포스팅하는 정도일까요.(웃음)
시간이 지날수록 ‘성공’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달라지죠. 현재 니노미야 카즈나리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당장은 <8번 출구>가 처음 생각한 대로 세상에 퍼져나가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대성공’이겠죠. 각본을 다듬고 연기하면서 ‘재미있다’ ‘새롭다’ ‘굉장하다’고 느낀 걸 보는 사람들이 순도 100%로 체감하면 성공한 것 아닐까요.(웃음)
“음악을 할 때도 늘 연기처럼 들떠요.
음악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는 가운데 사람과 사람을
한자리에 모은다는 점에서 소중하게 느껴져요.”
Editor 김지수
Photographer 김영준
Stylist 전진오
Hair 이혜영
Make-up 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