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렌드로낙 21년은 셰리 캐스크에서 21년간 숙성했다. 시간을 이겨낸 포도와 나무의 풍미가 한 잔에 가득하다.
카테고리 - 싱글 몰트 스카치 위스키 | 알코올 함유량 - 48% | 용량 - 700mL
뭘 이렇게까지. 더 글렌드로낙 21년이 든 상자를 본 소감이다. 큼직하고 질감이 고급스럽다. 소재가 나무는 아니다. 종이지만, 만지면 쓰다듬고 싶어지는 재질이다. 병을 꺼내는 순간도 극적으로 표현했다. 보통 덮개를 여는데, 신선하게도 덮개를 회전시켜 병이 드러나게 했다. 상자를 열어 병을 확인하는 일련의 행동에서 기품이 느껴졌다. 절로 그 안에 담긴 병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뭘 이렇게까지 할까 싶었는데, 이렇게까지 하니 위스키 마시기 전 근사한 여흥으로 다가왔다. 더 글렌드로낙 21년은 ‘울트라 프리미엄’ 라인의 시작이다. 30년과 40년 제품도 있다. 고숙성 3종 제품을 한 라인으로 묶어 새로 출시하며 패키지를 바꿨다. 바꾸니 확실히 달라 보였다. 근사한 한 잔을 기대하게 한다.
병에 담긴 위스키의 색이 진하다. 오크통에 머문 21년이란 시간을 시각적으로 설명한다. 고숙성 위스키의 증표는 확실히 기대감을 품게 한다. 겸허한 마음으로 마개를 열었다. 잔에 따르자 향이 퍼졌다. 향긋하다. 단지 잔에 따랐을 뿐인데. 셰리 계열 위스키다운 싱그럽고 달콤한 향이 은은하게 공간을 채웠다. 함께한 사람은 디퓨저로 만들고 싶은 향이라고 했다. 무채색 일상에 색을 더하는 향인 건 분명하다. 잔을 흔들고 바라보니 잔 표면에 묻은 위스키가 끈적이게 흘렀다. 시각적 포만감이 차올랐다. 흡족한 마음으로, 다시 향을 맡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아니 속이 알찬 포도송이가 빼곡한 포도밭을 지나는 기분. 포도의 새콤함과 달콤함을 중심으로 포도밭 주변에 핀 화사한 꽃향기도 살짝 스쳤다. 깊게 들이마시니 쌓인 시간이 드러났다. 처음 맡은 화사함보다 말린 과일과 꿀의 끈적임이 도드라졌다. 뭐든 혀를 행복하게 할 맛이 기다린다는 걸 향이 먼저 예고한다. 기꺼이 잔에 입을 가져다 댔다.
미끈한 촉감이 입안을 코팅하듯 감쌌다. 향에서 기대한 대로 혀끝에 달콤함이 번졌다. 처음에는 가벼운가 싶더니 이내 말린 과일의 눅진한 달콤함으로 진해졌다. 향에서 느낀 시간의 흐름은 맛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점점 진해진 달콤함은 끈적이는 질감을 더해 녹은 초콜릿처럼 짙은 맛을 혀에 새겼다. 셰리 계열 위스키라는 단호한 웅변. 그러다가 화끈한 매콤함이 다음 장을 펼쳤다. 더 글렌드로낙 21년은 알코올 도수 48도로 높다. 찌릿한 열기가 화르륵, 혀를 훑고 지나갔다. 불길이 잦아들 때쯤 견과류의 고소함도 번졌다. 달콤하다가 뜨겁고, 얼얼하다가 고소한 각기 다른 전후반. 과실의 풍요로움을 만끽하다가 대지의 여운을 음미하게 했다. 첫 잔으로도 분명한 성격을 드러냈다.
두 번째 잔부터 시간의 힘이 완연히 살아났다. 향부터 그윽해졌다. 와인 창고의 숙성된 향이랄까. 시간을 머금은 나무 향이 짙게 묻어났다. 맛 또한 보다 짙어졌다. 21년이란 시간이 한층 선명하게 다가왔다. 오크통에서 숨 쉬면서 스며든 시간의 맛. 진득한 달콤함과 찌릿한 매콤함이 들고 나다가 은은하게 고소함이 오래 이어졌다. 피니시에서 피어오르는 훈연 향도 새로 알게 된 면모다. 알코올 도수도 보다 선명해졌다. 입안에 얼얼함이 오래 지속했다. 안주로는 초콜릿과 건포도 모두 어울렸다. 셰리 계열 위스키는 그랬으니까. 초콜릿은 끈적이는 여운을 길게 이어주고, 건포도는 셰리의 흥취와 연결됐다. 그럼에도 가장 잘 어울리는 건 캐슈너트. 고소함이 얼얼한 입안을 다독였다. 게다가 마지막에 은은하게 이어지는 위스키 자체의 고소함을 길게 연장하는 역할도 했다.
더 글렌드로낙 21년은 위스키와 시간의 관계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예전 더 글렌드로낙 21년에는 ‘팔리아먼트(Parliament)’란 부제가 붙었다. 증류소 주변 나무에 오래전부터 서식해온 까마귀 떼에서 유래했다. 어두운 셰리 풍미와 깊은 여운을 상징한다고. 또 마스터 블렌더 레이첼 베리는 더 글렌드로낙 21년을 ‘우아하면서도 숭고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모두 시간이 쌓인 위스키의 짙은 풍미와 연결된다. 더 글렌드로낙 21년을 홀짝이며 혀에 선명하게 새겨진 그 시간 말이다.
Editor 김종훈
Photographer 이준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