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트로터의 비전을 담아 직조한 새로운 언어, 보테가 베네타 2026 서머 컬렉션.

1 다채로운 컬러와 사이즈로 등장한 아이코닉한 베네타 백. 2 상징적인 로렌 백을 들고 쇼에 참석한 로렌 허튼. 3 웅장하게 이어진 피날레 군단. 4 쇼에 참석한 배우 빅키 크리엡스.
1 다채로운 컬러와 사이즈로 등장한 아이코닉한 베네타 백.
2 상징적인 로렌 백을 들고 쇼에 참석한 로렌 허튼.
3 웅장하게 이어진 피날레 군단.
4 쇼에 참석한 배우 빅키 크리엡스.

내내 날이 궂었던 밀라노 패션위크의 다섯째 날, 이날을 고대하게 한 건 루이스 트로터의 보테가 베네타 데뷔 쇼였다. 디자이너의 대대적인 이동 안에서 드물게 눈에 띄는 여성 디자이너라는 점, 하우스의 실질적인 초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로라 브라지온(Laura Braggion) 이후 첫 여성 디자이너라는 점이 새로운 목소리를 낼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쇼의 무대이자, 과거 공장이었던 파브리카 오로비아(Fabbrica Orobia)는 자연광이 넉넉하게 드는 순백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곳에는 밀라노 기반의 스튜디오 6:AM이 제작한 무라노 글라스 큐브가 나란히 빛나고 있었으며, 무라노 글라스 스툴의 투명한 그림자가 수채화처럼 낙천적인 앙상블을 만들어냈다. 쇼장 곳곳에 설치된 한국 아티스트 이광호 작가의 ‘옵세션 시리즈’는 인트레치아토 기법을 연상시키며, 보테가 베네타의 공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쇼의 시작에는 담담하고 구조적인 피코트가 등장했다. 인트레치아토를 덧댄 칼라와 놋 모티브 버튼으로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포용했다. 루이스 트로터는 남성복과 마찬가지로 여성복에도 전통적인 남성복 테일러링을 접목했다고 밝혔다. 쇼 전반은 그녀가 새롭게 정의한 볼륨 있는 테일러링이 주를 이뤘다. 박시한 어깨와 낮게 떨어지는 허리 라인으로 무게감을 달리한 수트와 코트, 셔츠와 버뮤다팬츠의 매치,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완성한 셋업은 과거의 컬렉션들이 스쳐 지나가면서도 모처럼 새로웠다. 베네타 백을 드는 방식, 한쪽 어깨끈이 자연스레 흘러내리는 드레스까지 무심하게 아름다웠고. 

쇼가 진행될수록 보테가 베네타의 바탕이 되는 집요하고 견고한 디테일을 보여주는 깃털처럼 나부끼는 스커트와 코트, 태슬 디테일 맥시 드레스가 이어져 나왔다. 특히, 모델의 걸음마다 표표하게 흔들리는 프린지 재킷과 스커트, 케이프는 압도적이었다. 재활용 유리섬유를 머리카락처럼 가늘게 가공해 하나하나 손으로 붙여 만든 이 실험적인 피스들은 장인정신의 저력을 보여줬다. 

5 프런트 로에 나란히 앉은 RM과 우마 서먼.6 재활용 유리섬유로 제작한 프린지 소재는 신선함을 더했다.
5 프런트 로에 나란히 앉은 RM과 우마 서먼.
6 재활용 유리섬유로 제작한 프린지 소재는 신선함을 더했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와인 컬러의 가죽 프린지 케이프 드레스였는데, 4000시간에 걸쳐 인트레치아토 기법으로 완성해 수공예의 경지를 보여줬다. 이처럼 루이스 트로터는 힘 있는 테일러링에 다채로운 소재를 교차해 낭만적인 균형을 완성했다. 리넨과 실크 수트에 퍼 클러치를 매치한다거나, 잉크가 번진 듯 워싱한 스웨이드 셋업과 매끄러운 광택의 클로그, 양감과 질감이 다채로운 나파 레더 피스들이 런웨이에 생동감을 더했다. 

‘베네치아의 풍요, 뉴욕의 에너지, 밀라노의 본질주의’로부터 현재를 발견했다는 컬렉션 주제는 백 컬렉션에서도 살펴볼 수 있었다. 로렌 백은 새로운 비율로 재탄생하고, 한결 모던해진 베네타 백도 오랜만에 런웨이에 올랐다. 스쿼시, 롱 프레임드 토트, 크래프티 바스켓 같은 새로운 스타일도 등장했는데, 인트레치아토 기법이 컬렉션 전반에 시각적 모티브로 활용된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루이스 트로터의 데뷔와 더불어 2026년은 브랜드가 창립 60주년을 맞는 의미 있는 해다. 그녀는 이번 쇼를 위해 영국 감독 스티브 맥퀸과 협업한 오디오 아트워크를 준비했다. ‘66-77’은 니나 시몬과 데이비드 보위가 각각 1966년, 1976년에 부른 ‘Wild Is the Wind’를 혼합한 편곡으로, 1966년은 보테가 베네타의 설립 연도이기도 하다. 맥퀸은 이 사운드트랙을 ‘청각적 인트레치아토’로 표현했다. 호소력 짙은 음성이 교차하고 고조되며, 협업과 연결성이 관통하는 이번 컬렉션에 짙은 여운을 남겼다. 편리함으로만 흘러가는 시대, 루이스 트로터는 경이로운 장인정신이라는 공통적 가치를 실용적이고 우아한, 무엇보다 지금 당장 입고 싶은 옷으로 구현했다. 한 번뿐인 데뷔 무대를 마친 그녀는 피날레 모델이 떨어뜨린 구두 한 켤레를 주워 들고 경쾌한 걸음걸이로 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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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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