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명료함으로 시대를 앞서간 이탈리아 패션의 황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경이로운 반세기.
이탈리아 패션 제국의 개척자, 우아함의 정수로 통하는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올해로 창립 50주년을 맞이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6월 밀라노 남성 패션위크 기간에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던 아르마니가 9월 4일 향년 91세로 부고를 전했다. 패션계의 전설적인 거장이 세상을 떠난 소식은 모두를 충격과 슬픔에 빠지게 했다. 짧고도 깊은 애도의 기간을 지나, 시대를 초월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고고한 여정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50주년에 대한 헌사는 일련의 프로젝트로 이어진다. 먼저,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진화를 되짚었다. 아르마니가 자신의 이름을 내건 브랜드를 설립한 7월 25일에 맞춰 ‘아르마니/아르키비오(ARMANI/Archivio)’ 론칭을 예고한 것. 베니스 국제 영화제 기간에 공개된 아르마니/아르키비오는 하우스의 유산을 공유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 지금까지 보존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오리지널 컬렉션을 망라했다. archivio.armani.com를 통해 57개의 상징적인 룩과 함께 광고 캠페인, 스케치, 인터뷰 등 컬렉션에 담긴 서사를 다채로운 관점에서 조명했다. 1975년부터 최근 시즌에 이르기까지 5000개 이상의 룩을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해 공개하며, 주제별로 세분화된 큐레이션은 물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한다.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하우스가 50년간 보존해온 아카이브가 여전히 생명력을 지니며 새로운 세대의 아르마니 팬들과 소통한다. 과거와 현재의 소통에 집중한 프로젝트의 론칭 기념 이벤트는 브레라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개막으로 이어진다.
9월 24일 개막한 <밀라노, 페르 아모레(Milano, per Amore)>는 미술관이 소장한 예술품과 133벌의 조르지오 아르마니 아카이브 피스를 전시했다. 전시 제목은 아르마니의 자서전 <페르 아모레>에서 영감받았다. 중세부터 19세기 이탈리아 미술 걸작들을 통해 아르마니의 진화하는 스타일을 재조명한 의상들은 아르마니가 지켜온 예술성과 일관성이 교차하며 다채로운 인상을 남겼다.
밀라노 패션위크 기간에 브레라 궁전 명예의 정원에서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에게 헌사하는 또 다른 이벤트를 선보였다. 공식적으로 아르마니가 직접 작업한 마지막 컬렉션, 조르지오 아르마니 2026 봄·여름 여성 컬렉션을 공개한 것. ‘판텔레리아, 밀라노’는 아르마니에게 깊은 영향을 준 두 장소를 통해 시각적인 여정을 선사한다. 이번 컬렉션은 조르지오 아르마니가 생전에 거주하고 일했던 브레라 미술관에서 시작해 유럽과 아프리카 경계에 있는 지중해 화산섬, 판텔레리아로 떠난다. 황혼이 질 무렵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피아노 선율이 퍼지면서 쇼가 시작되고, 아르마니 특유의 자연스럽고 이국적인 코드로 풀어낸 캐주얼한 수트들이 등장했다.
힘을 뺀 테일러링에 매치된 하렘 팬츠, 실크와 리넨, 새틴처럼 가볍게 몸에 흘러내리는 소재들로 우아한 실루엣을 한층 강조했다. 중성적인 그레이지 톤은 화산암의 절벽을, 코발트 블루와 짙은 보랏빛이 일렁이는 푸른 컬러 팔레트에 자카르와 시퀸, 글리터 소재가 날카로운 빛을 반사하며 소금기 어린 밤바다를 연상케 했다. 컬렉션이 깊어질수록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고유한 디자인 언어는 정교하고 화려해진다. 남성복의 실루엣은 느슨하고 풍성해졌고, 반대로 남성성과 여성성이 교차하는 여성복은 절제된 우아함을 표현했다. 담백한 선에 시폰과 새틴, 벨벳으로 풍성한 질감과 양감을 만들어낸 이브닝 웨어가 등장하면서 쇼가 후반을 향해가고 있음을 전했다. 대망의 피날레는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오랜 뮤즈 아그네스 조글라(Agnese Zogla)가 장식했다. 그의 초상화를 스톤으로 섬세하게 올린 푸른 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장면은 이번 컬렉션의 극적인 순간이자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완벽한 피날레 인사였다. 쇼가 끝난 뒤, 게스트들은 브레라 미술관 전시장에 모여 그를 향한 추모와 경의를 표하는 시간을 나눴다. 이 자리에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 앰배서더 케이트 블란쳇, 배우 리처드 기어와 장쯔이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경이로운 반세기 여정을 뒤로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와의 이별이 헤어짐도 사라짐도 아닌 또 다른 만남의 시작으로 남았다.
Editor 이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