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극장가에는 유독 재개봉 영화가 많다. 남은 하반기 재상영작도 한가득. 수십 년 만에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온 영화들을 보며 생각했다. 그때 그 시절, 이 영화를 처음 봤다면 어땠을까?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인생은 아름다워> <바람의 나우시카> <델마와 루이스>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누구나 한 번쯤 제목을 들어본 이 영화들은 뜻밖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모두 2025년 국내 극장에서 상영됐다는 것. 영화 산업이 주춤하면서 극장들은 작품성과 흥행성이 보증된 고전 명작들로 상영표를 채우고 있다. 꼭 흥행이 보장되어야만 상영하는 건 아니다. 지난 6월에는 60년 전에 개봉한 장 뤽 고다르의 <미치광이 피에로>를 재상영했다. 재개봉 영화를 찾는 관객 수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재개봉한 작품은 전년보다 80편 더 많은 228편이었으며, 관객 수는 전년 대비 29.9% 증가한 250만 명을 기록했다. 재개봉작 매출액 또한 전년보다 16.1% 오른 245억원을 달성했다. 

업계에서는 재개봉 영화 열풍의 시작으로  <이터널 선샤인>을 꼽는다. 지난 2015년, 개봉 10년 만에 다시 극장으로 돌아온 <이터널 선샤인>은 32만 명이 관람하며 총 2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후 <노트북> <500일의 썸머> <이프 온리> 같은 로맨스 영화들이 잇달아 재개봉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팬데믹이 저물어가던 2022년에는 재개봉 영화 편수가 크게 줄었다. 그간 개봉이 미뤄졌던 작품들이 대거 공개되면서 자연스레 재개봉 영화 상영관이 줄었던 것. 하지만 코로나19가 종결된 후에도 영화 시장은 계속 위축되었고, 수백만 명을 동원하던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틈을 메운 것이 재개봉 영화 열풍이다. 참고로 지난해 가장 큰 인기를 모은 재상영작은 <남은 인생 10년>. 사카구치 켄타로와 고마츠 나나가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관객 수 42만5169명을 기록했다.  

재개봉 영화는 두 가지다. ‘처음 보는 영화’와 ‘다시 보는 영화’.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젊은 관객의 유입이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공개된 영화를 보며 재미와 감동을 느끼는 관객들이 늘고 있다. CGV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재개봉한 영화 <더 폴: 디렉터스 컷>의 관객 중 70%는 20~30대였다고 한다. 이런 현상을 두고 사람들은 ‘아네모이아’라는 말을 꺼내기도 한다. 경험하지 못한 시대를 그리워하며 낭만을 찾는다는 뜻이다.

재개봉 영화가 인기라는 것은 이제 모두가 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은 이 영화들이 처음 상영되던 당시에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하는 것이다. 캐러멜 팝콘도, 아이맥스 상영관도, 커플석도 없던 그 시절. 지금은 고전이 된 작품들은 수십 년 전 관객에게 어떤 영화로 다가갔을까? 당시 홍콩 영화는 지금의 유명 제작사 A24의 영화와 같은 ‘힙스터’ 영화였을까? 20년 전 ‘감성 영화’는 어떤 영화였을까? 때마침 이 질문에 답해줄 적임자가 책상 건너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어지는 대화는 20년 터울 선배이자, 영화 기자 출신인 <아레나> 이주영 편집장과 나눈 영화 이야기다.

그때 그 영화, 지금 이 영화
1990년생 에디터가 묻고 1970년대생 편집장이 답하는 영화 이야기.

시대마다 영화 수업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작품들이 있죠. 제가 학교를 다니던 2010년대는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그랬는데요. 편집장님이 영화 공부를 하던 당시 ‘꼭 봐야 하는 영화 리스트’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 시절 영화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당시에는 복제 비디오테이프로 이와이 슌지의 <러브레터>를 비롯해 <피크닉>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등이 인기가 많았어요. 아직 일본 문화가 전면 개방되기 전이었거든요. 극장 개봉작 중에서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이 인기를 많이 끌었죠. 

요즘 ‘재개봉 영화’ 하면 홍콩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듯합니다. 워낙 자주 재개봉하기도 하지만, 젊은 관객에게 인기가 있어서인 듯한데요. 첫 개봉 당시 홍콩 영화가 어떤 인상으로 다가왔는지 궁금합니다. 
X세대쯤 되는 이들이라면 먼저 1980년대 후반의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을 기억할 거예요. 오우삼 감독의 홍콩 누아르죠. 그 당시 청춘이라면, 특히 남성 관객은 홍콩 누아르에 열광했죠. 주윤발, 유덕화, 알란 탐, 양조위가 시대의 히어로였어요. 그때는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어야 하는 데다, 세기말이 기다리고 있던 시절이었요. 영국령으로 자유 경제를 누렸던 홍콩인의 미래에 대한 불안, 두려움이 누아르 영화 속 암울하게 그려졌던 시기죠. 

사실 제가 20대에 <중경삼림> <화양연화> <아비정전>을 처음 보고 들었던 생각은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였거든요. 왕가위 영화들이 처음 개봉하던 당시 어떤 감상이 들었나요? 
왕가위 감독은 앞서 말한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둔 시기이자, 홍콩 누아르의 전성기에 데뷔작 <열혈남아>(1988, 한국 개봉 1989)를 선보였어요. 유덕화, 그리고 만인의 연인이었던 장만옥이 주연을 맡았죠. 당시 영화 잡지 <스크린> <로드쇼> 등에서는 새로운 시네아스트의 등장이라며 왕가위 감독의 데뷔작에 찬사를 보냈어요. 그리고 2년 후인 1990년에 <아비정전>을 선보여요. 남성 중심의 누아르, 성룡과 주성치로 대변되던 코미디가 대세였던 홍콩 영화에 시대의 전환점이 되어준 작품이었죠. 흥행은 참패했던 걸로 기억하지만, 왕가위는 20세기 말 청춘에게 일종의 아이콘으로 등극했어요. 30년이 지난 현시점에 왕가위 열풍이 Z세대에게 다시 불어오는 것도 이해할 만해요. 왕가위의 영화 문법은 그 당시 우리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으니까요. 

흔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를 한국 영화 르네상스 시대라고도 말하죠. 올해 3월 재개봉한 <쉬리>(1999)를 비롯해 때마다 재개봉하는 <8월의 크리스마스>(1998), <봄날은 간다>(2001)가 대표적인데요. 이 시기에 유독 한국 영화 명작들이 많이 나온 이유가 궁금합니다. 
이전 시대와 비교해, 당시를 흔히 ‘프로듀서의 시대’라고 칭해요. 영화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개발하는 젊은 프로듀서들이 등장했고, 그들이 낙점한 감독들이 신선한 에너지를 스크린에 불어넣을 때였죠. 그래서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장윤현 감독의 <접속> 등이 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러브 액츄얼리>로 잘 알려진 제작사 워킹 타이틀, <존 오브 인터레스트> 등으로 유명한 요즘의 A24 같은 제작사들이 한국에도 있었어요. 명필름, 싸이더스가 대표적이죠. 

20년 전에도 재개봉하는 영화들이 있었나요?
20년 전에도 저는 에디터 일을 하고 있었는데요. 그때는 재개봉 영화들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할리우드도, 충무로도 전성시대였거든요. 한국 영화가 1년에 100편 이상씩 만들어지던 황금기예요. 그러니 극장들이 굳이 옛 영화를 찾아와 걸 필요가 없었죠. 동시에 DVD 같은 미디어가 많은 인기를 끌 때였어요. 그러니 지난 영화는 그 포맷으로 보면 됐고요. 

1990~2000년대에도 일종의 ‘힙스터 영화’가 있었을 것 같아요. 요즘 젊은 세대가 A24 영화에 환호하는 것처럼요.  당시 ‘영화 좀 본다’ 소리 들으려면 꼭 봐야 했던 영화(감독)들이 궁금합니다. 
그 당시에 힙한 영화라면 <점원들>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을 연출한 케빈 스미스 감독,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연출하기 전 스플래터와 호러 무비의 제왕이었던 피터 잭슨 감독의 작품이 있었어요. 특히 피터 잭슨은 <천상의 피조물> <데드 얼라이브>로 우리 시대의 히어로가 됐어요. 당시는 미국과 영국에서 젊은 감독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던 시기였어요. 독립 제작사를 통해 영화를 선보인 감독들이 메이저 제작사와 계약하며 블록버스터를 연출하던 시대였죠. 여기에 상업적으로는 앞서 말한 제작사 워킹 타이틀이 선보인 <노팅힐> <러브 액츄얼리> <빌리 엘리어트> 등의 영화들이 있겠네요. 

요즘 재개봉 영화와 관련해 ‘아네모이아’라는 말이 자주 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젊은 세대가 고전을 찾는 이유 중에는 지적 허영심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젊은 세대가 옛날 영화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오늘날 젊은 세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취향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자신의 취향을 존중하듯, 타인의 취향 역시 존중하죠. 어쩌면 지금 시대에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기 때문에 과거의 경험하지 못한 것을 새로운 것, 즉 뉴트로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자기가 좋으면 좋은 거지만, 남에게 좋아하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그래서 지적 허영심이라는 말은 그닥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저희 때도 남들이 다 보는 것과는 다른 걸 좋아하는 시대였어요. 저 역시 그랬고요. 그래서 대중가요보다는 해외의 인디 록, 팝을 찾아 들었죠. 영화도 <타이타닉>을 봐야 하지만, 예술 영화를 찾아다니는 걸 재미있다고 느꼈고요. 그런데 말이에요. 우리가 당시에 찾아다니던 예술 영화도 동시대의 것도 있었지만 과거의 작품이 더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나를 포함한 그 시대의 우리도 지금 세대처럼 과거에서 새로운 것을 찾기도 했네요.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저는 극장 가는 이유 중에 팝콘도 있거든요. 1990년대 극장에서는 무얼 먹었는지 궁금하네요. 
그때 영화 좀 본다고 하는 사람들은 딱 물 한 병 가지고 들어갔어요. 하하. 그거 알아요?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멀티플렉스라는 개념이 생긴 게 1998년이라는 거? 그 이전의 극장은 모두 단관이었어요. 1990년대 종로 거리에 나가면 극장 앞에는 오징어, 문어, 쥐포 등을 구워 파는 노점들이 엄청 많았어요. 극장 안 매점에서도 팝콘을 팔았지만 캐러멜, 허니 등의 단맛 팝콘은 없었죠. 그냥 버터 향 나는 일반 팝콘만 있었고, 극장에서도 쥐포 등을 팔았어요. 그 냄새가 너무 싫었고, 물 한 병 가지고 극장 가는 관객이 쿨해 보였죠.   


“지금 좋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다면
재개봉작은 극장을 잡는 게 불가능할 것이고,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도 없었을 거예요.
동시대에 볼 영화가 없으니, 관객은 어차피 옛 영화도
새로운 것이니 보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예전에는 극장에서 담배를 피울 수 있었다고 들었거든요. 1990~2000년대 극장 풍경은 어땠을지도 궁금합니다.
아 너무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니까 패스할게요. 1980년대 후반의 지방 극장을 상기해보면, 그때도 금연이긴 했지만 뒷자리 어딘가에서는 담배 냄새가 풍겼어요. 질문한 시대에는 극장에서 담배 못 피웠어요. 

지금처럼 프랜차이즈 영화관(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이 없던 시절에는, 극장마다 찾는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대한극장에서만 개봉하는 영화가 있는가 하면, 이 영화만큼은 꼭 피카디리 극장에서 보고 싶다는 식으로요. 요즘 극장에서는 느낄 수 없는, 20년 전 서울의 극장들이 지닌 매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질문은 영화를 산업적으로 접근해야 이해가 가능할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하기에는 너무 방대하기도 하고요. 사실 극장에 특색이 있는 건 아니었어요. 영화는 배급사가 극장에 필름을 납품해주는 형식으로 판매되는 제품이에요. 과거 단관 시절에는 크고 좋은 극장을 가진 업주가 힘이 있었고, 배급사는 좌석이 더 많은 극장에 자기 영화를 걸기 위해 로비를 했겠죠. 하지만 지금 시대는 배급사가 더 힘이 강해서 뭐라 말하기가 힘들어요. CGV 강변이 1998년에 처음 멀티플렉스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을 때, 당시 대학생이던 우리는 환호했어요. 한 건물 안에서 여러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페스티벌 같았죠. 실례로 CGV 강변이 정식으로 문을 열기 전에 일종의 이벤트로 영화제 형식의 행사를 열기도 했어요. 

이번 여름에는 이와이 슌지의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가 재개봉했죠. 사실 제게 이와이 슌지는 <러브레터> 감독으로 익숙하지만, 당대 최고의 감독이라고 들었습니다. 편집장님이 생각하는 이와이 슌지 영화의 매력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그 시대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왕가위, 기타노 다케시, 이와이 슌지 등이 각광을 받았어요. 돌이켜보면 이들은 당시 기성세대의 영화와는 다른 무엇을 내재한 작품을 선보였죠. <저수지의 개들>에서부터 시작된 타란티노의 영화들. <열혈남아>로부터 출발한 왕가위, <그 남자 흉폭하다>로 출발한 기타노 다케시 등을 떠올려보면 왜 이와이 슌지가 각광받았는지를 동일 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어요. 이와이 슌지의 첫 출발은 영화감독이 아닌 TV 연출자였어요. <쏘아올린 불꽃, 밑에서 볼까? 옆에서 볼까?> <프라이드 드래곤 피쉬> 같은 TV 단막 드라마로 단숨에 인기를 얻었죠. 이후 장편이 아닌 중편 정도의 <언두> <피크닉>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화제를 모았어요. 참, <피크닉>도 곧 재개봉하죠. 이와이 슌지의 매력이요? <러브레터>를 한번 보세요. 장르적으로는 멜로드라마라 할 수 있는데, 결코 그런 장르로 느껴지지 않아요. 그는 그렇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 있었어요. 

이와이 슌지 작품 중에서도 과소평가된 작품을 골라본다면요?
사실 과소평가라고 할 게 없다고 봐요. 그의 영화들 대부분이 예전에 극장에서 개봉했고, 마니아에게는 좋은 평가를 얻었죠.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러브레터> 같은 작품들은 제때 개봉되지 못하고, 일본 문화 개방 이후 뒤늦게 극장에 걸렸다는 점이죠.  그의 초기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게 늦게 대중에게 소개되었어요. 

곧 국내 재개봉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모노노케 히메>는 일본에서는 1997년에 개봉했지만, 한국에서는 2003년 개봉 전까지 해적판으로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2000년대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던 당시 한국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타깝지만 일본의 대중문화가 우리나라에 완전히 개방된 건 2004년부터예요. 그전에도 일본 영화들이 조금씩 개봉되긴 했어요. 다만 해외 영화제 수상작 등의 조건을 통과해야만 가능했죠. 그렇게 된 것도 1998년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하나비>가 처음이었어요. 그러니 질문한 <모노노케 히메>도 늦게 개봉될 수밖에 없었고요. 저희가 대학 시절 <러브레터>를 복제 비디오테이프로 본 것과 동일한 이유예요. 저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의 <붉은 돼지> <이웃집 토토로> <모노노케 히메> 등을 비디오로 먼저 봤고요. 모두가 좋아했지만, 그때 법적으로 개방이 된 것 뿐이에요. 

재개봉 열풍은 팬데믹 이후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라고 합니다. 세대 간의 공감대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는데요. 재개봉 열풍의 장단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기본적으로 1년에 제작되는 영화가 확연히 줄었어요. 한국은 팬데믹을 거치면서 10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하죠. 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가 도래했다고들 합니다. 그 틈새시장을 파고든 게 재개봉작들이에요. 지금 좋은 영화가 많이 만들어진다면 재개봉작은 극장을 잡는 게 불가능할 것이고, 지금 우리가 나누는 대화도 없었을 거예요. 동시대에 볼 영화가 없으니, 관객은 어차피 옛 영화도 새로운 것이니 보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합니다. 또 중요한 것은 그 시대의 화질이 아닌 리마스터링된, 마치 지금의 영화처럼 깨끗한 화질로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죠. 

처음 보는 영화와 다시 보는 영화. 각각 극장에 가는 이유가 다를 것 같습니다. 편집장님은 어떠세요?
솔직히 말해 저는 영화를 공부했고, 영화 잡지에서도 일을 했고, 영화 제작 배급사에서도 일을 해봤어요. 그럼에도 팬데믹과 동시에 아이가 생기면서 극장에 가는 횟수가 현격히 줄었습니다. 사람 눈이 참 간사해요. 팬데믹 동안 극장에 가지 않았더니 모바일 화면으로 보는 영화에 제 눈이 적응했나 봅니다. 과거에 그토록 사랑했던 공간인 극장이 그리 그립지 않습니다. 슬픈 일이죠. 동시에 극장 입장료가 너무 비싸졌어요. 이런저런 이유가 현재 극장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봅니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자면, 과거의 저를 상기해보면, 좋은 영화는 여러 번 볼수록 다르게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선사합니다. 큰 화면 속에 포진된 모든 걸 우리의 눈은 단박에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N차 관람을 할 때 계속 새로운 것들이 보입니다. 물론 잘 만든 좋은 영화에 한해서요. 

OTT 시대에도 우리가 극장을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굳이 극장을 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그건 시청각적 경험의 문제겠지요. 요즘은 굳이 아이맥스로 촬영하지 않아도 될 영화를 아이맥스 포맷으로 제작해 극장에서 보길 권하기도 합니다. 사실 우리가 극장에 갈 이유는 영화의 형식이 아니라 그 영화가 얼마나 잘 만들어졌느냐에서 도출됩니다. 과거의 극장은 데이트 필수 코스였고, 킬링 타임의 대표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데이트할 공간이 수없이 많고, 시간을 죽이기에 훌륭한 놀이와 공간도 많아요. 그렇다면 극장은 이제 ‘영화를 보는 곳이다’라는 본연의 임무를 훌륭히 완수해야만 합니다. 이를 위해선 훌륭한 영화가 필요하죠. 하지만 현실은 훌륭한 영화를 만들 제반 여건이 소실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훌륭한 영화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십니까?
훌륭한 영화는 개인별로 다르겠죠. 지극히 주관적인 답변을 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예술 영화를 공부를 위해, 또 그것이 좋다는 이유로 참고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제게 좋은 영화는 극장 안에서 시계를 쳐다보지 않게 하는 작품입니다. 

에디터가 뽑은 2025 최고의 재개봉작

3월 19일 | 쉬리  강제규, 1999
말로만 들었다. 이 영화가 한국 영화계의 황금기를 열어젖힌 작품이라고. 한석규, 최민식, 송강호. 셋 중 한 명만 나와도 영화관에 가서 볼 마음이 있는데, 세 배우가 한꺼번에 나온다니 보지 않을 이유가 없다. 참고로 <쉬리>는 지난해 일본에서 먼저 재개봉됐을 정도로 큰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6월 25일 | 라이언 일병 구하기  스티븐 스필버그, 1998 
극장에서 본 게 아니라면 봤다고 할 수 없는 영화들이 있다. 같은 이유로 지난 27년 동안 이 영화가 한 번도 재개봉한 적 없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 영화의 첫 30분은 모든 전쟁 영화를 통틀어 최고의 시퀀스라고 생각한다. 이번 재개봉은 확실히 늦은 감이 있지만 4K 리마스터링 버전임에 감사했다. 


6월 25일 | 그을린 사랑  드니 빌뇌브, 2010
드니 빌뇌브를 처음 알게 된 건 2015년 작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때문이었다. 이후 그가 만든 모든 영화를 챙겨 봤지만, 정작 많은 이들이 수작으로 꼽는 <그을린 사랑>은 영화관에서 볼 기회가 없었다. 내후년까지 <듄: 파트 3>를 기다려야 하는 팬들에게는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 재개봉 소식. 


9월 17일 | 대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1972
컴퓨터 모니터로 보았던 <대부> 속 돈 꼴레오네는 늘 흐릿했다. 9월 17일 <대부>가 4K 리마스터링을 거쳐 극장으로 돌아온다. 10월 15일에는 <대부 2>도 개봉할 예정. 수백 번은 따라 불렀던 그 유명한 테마 곡을 영화관 스피커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재개봉 소식이 반가운 이유 중 하나다. 


9월 17일 | 모노노케 히메 미야자키 하야오, 1997
<원령공주>라는 제목으로 이 영화를 처음 봤던 게 기억난다. 일본에서는 1997년 개봉해 큰 성공을 거뒀지만, 국내에서는 해적판으로 유통되다 2003년 뒤늦게 극장에서 개봉했다. <모노노케 히메> 사운드트랙은 히사이시 조의 최고 걸작 중 하나다. 이 작품은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한다. 아니, 들어야 한다.

에디터가 뽑은 2026 재상영 희망작

1998 | 조 블랙의 사랑  마틴 브레스트
한동안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떠돌던 ‘브래드 피트 리즈 시절’ 쇼츠의 원작. 브래드 피트, 클레어 폴라니의 외모가 정점을 찍었던 시기에 촬영한 작품이다. 넷플릭스로 보려고 시도는 해봤지만 3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을 견디지 못하고 중도 하차했다. 영화관에서라면 결말을 알 수 있지 않을까. 


2004 | 맨 온 파이어  토니 스콧
누아르 영화에 <대부>가 있다면, 인질극 영화에는 <맨 온 파이어>가 있다. ‘과묵한 특수부대 출신 남자가 힘없는 여자아이를 구하는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지만, 이보다 아름다운 복수극은 아직 보지 못했다. 내년은 토니 스콧이 세상을 떠난 지 15주년이 되는 해인 만큼, 그의 회고전이 열려도 좋겠다. 


2009 | 마더  봉준호
두 편의 천만 영화에 가려 덜 주목받지만, 봉준호 감독의 최고 걸작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컬러판이 아닌 흑백판으로 상영됐는데, 촬영을 담당한 홍경표 감독이 <설국열차>를 촬영하면서 제안한 아이디어라고 한다. 기왕이면 흑백판으로 보고 싶다.


2015 | 바닷마을 다이어리  고레에다 히로카즈
10년 전 영화관에서 처음 봤을 때는 ‘아무 내용도 없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중에서 결국 가장 자주 돌려 보게 된 건 <바닷마을 다이어리>였다. 20대에서 30대가 된 지금, 다시 영화관에서 이 영화를 만난다면 어떤 감상이 떠오를지 궁금하다. 


2020 | 아웃포스트  로드 루리
실제 아프가니스탄에서 있었던 미 육군의 전투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관객을 전투 현장으로 몰아넣는 듯한 현실감은 <라이언 일병 구하기> <블랙 호크 다운>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 운이 안 좋게도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국내 개봉했다. 완성도에 비해 덜 알려진 작품.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Images 미드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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