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의 대원칙은 간단하다. 가장 빠르게 결승선을 통과하는 사람이 승리하는 것.
하지만 우리가 F1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영화 <F1 더 무비>를 보며 감탄하는 와중에도 궁금증이 들었던 건 그만큼 F1에 볼거리가 많은 스포츠라는 뜻이기도 하다. F1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커져가는 지금, 입문자들을 위해 준비했다. F1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여덟 가지 관전 포인트.
위기를 기회로, 세이프티 카
<F1 더 무비>에서 소니 헤이스는 의도적으로 사고를 낸다. 모르는 사람 눈에는 경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세이프티 카를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스무 대의 레이싱카가 시속 350km로 달리는 F1 서킷에서는 온갖 사고가 터진다. 이때 투입되는 것이 세이프티 카다. 세이프티 카가 모든 레이싱카 앞에서 교통정리를 하는 동안, 안전요원들이 도로 곳곳의 잔해를 치운다. 여기서 기회가 생긴다. 세이프티 카 상황에서는 속도를 낼 수 없기 때문에 앞차와 벌어졌던 간격이 사라진다. 혼란을 틈타 피트로 향해 새 타이어로 교체할 수 있는데, 순위가 밀려날 수도 있기에 전략적으로 아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타이어가 무기다
극 중 소니 헤이스가 ‘플랜 C’를 언급하며 소프트 타이어를 팀에 요구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하지만 테크니컬 디렉터 케이트는 ‘소프트 타이어는 10랩도 못 버틴다’라며 만류한다. F1 경기가 시작되면 레이싱카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중 경기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부품이 바로 타이어다. F1 레이싱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타이어 테두리에 색깔이 있다. 색깔은 각 타이어의 성능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F1 경기에서 사용하는 타이어는 크게 세 종류다. 흰색은 하드 타이어, 노란색은 미디엄 타이어, 빨간색은 소프트 타이어를 뜻한다. 하드 타이어는 내구성이 강해 오래 사용할 수 있지만, 높은 마찰로 인해 에너지 손실이 크다. 반면 소프트 타이어는 속도를 내는 데 유리하지만, 그만큼 마모가 빨라 사용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리해진다. 미디엄 타이어는 내구성과 성능 모두 중간에 해당한다. 우천 시 사용하는 타이어 2종도 별도로 준비된다. 초록색 인터미디어트는 노면이 젖어 있을 때, 파란색 웨트 타이어는 폭우가 내리거나 트랙에 물웅덩이가 있을 때 주로 사용한다.
시작이 반이다, 퀄리파잉
<F1 더 무비>의 두 주인공, 소니 헤이스와 조슈아 피어스는 경기마다 각기 다른 순서로 출발선에 선다. 앞쪽에서 시작하는 게 유리한 건 확실해 보이지만, 이걸 매번 누가 어떻게 정하는 걸까? 바로 퀄리파잉이다. F1 경기가 열리는 주말을 ‘레이스 위크엔드’라고 한다. 각 팀은 금요일 연습주행, 토요일 퀄리파잉, 일요일 본선 경기까지 모든 세션이 끝날 때마다 유의미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퀄리파잉은 총 3번에 걸쳐 진행되며, 서킷 한 바퀴를 가장 빠르게 달린 순서대로 순번이 매겨진다. 이때 가장 선두에 서는 것을 ‘폴 포지션’이라고 한다. 트랙에 따라 퀄리파잉이 유독 중요한 곳도 있다. 모나코 그랑프리는 시가지를 달리는데, 여느 서킷보다 좌우 폭이 좁아 추월이 매우 어렵다. 따라서 시작부터 선두를 차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올해 모나코 그랑프리 우승자 역시 퀄리파잉에서 폴 포지션을 차지한 맥라렌의 랜도 노리스였다.
1.8초의 미학, 피트 스톱
2.9초. <F1 더 무비>에서 에이펙스GP가 선두를 지키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은 피트 스톱 2.9초였다. F1 선수들은 한 경기당 약 50바퀴에서 많게는 70바퀴 이상 서킷을 달린다. 따라서 적절한 타이밍에 타이어를 교체하거나, 필요한 부품을 빠르게 교체하는 것이 승부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때 재정비를 위해 레이싱카가 피트 박스로 들어가는 것을 ‘피트 스톱’이라고 한다. 피트 스톱은 F1을 상징하는 장면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소수점 단위로 시간을 다투는 F1에서는 피트 스톱 시간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역대 가장 빠른 피트 스톱 기록은 맥라렌이 갖고 있다. 2023년 카타르 그랑프리에서 맥라렌 피트 크루들이 바퀴 네 개를 교체하는 시간은 단 1.8초에 불과했다. 경기의 박진감을 더하기 위해 피트 스톱을 2회로 규정한 대회도 있는데, 올해부터 모나코 그랑프리에서는 피트 스톱 2회가 의무다.
명대사 제조기, 팀 라디오
브래드 피트는 영화에서 대사 절반을 차에 올라탄 채로 주고받는다. F1은 경기 중 실시간으로 선수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다. 그래서 실제 경기 장면은 물론 팀 라디오가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남는다. 2024 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아부다비 그랑프리. 모든 F1 팬들은 메르세데스 팀의 라디오를 주목했다. 페라리 이적을 앞둔 루이스 해밀턴이 12년간 함께했던 메르세데스 유니폼을 입고 치른 마지막 경기였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의 황금기를 함께 견인한 토토 울프 감독은 해밀턴에게 감사 인사와 함께 이런 명대사를 남겼다. “넌 언제나 이 가족의 일부일 거야. 그리고 우리가 이길 수 없다면, 네가 이겨줘.”
F1은 경기 중 실시간으로 선수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스포츠다.
그래서 실제 경기 장면은 물론
팀 라디오가 하이라이트 장면으로 남는다.
천연 부스터, DRS
<F1 더 무비>를 보면 DRS라는 말이 적잖게 등장한다. 곧이어 레이싱카는 마치 부스터를 쓴 것처럼 속도를 올리며 앞차를 추월하는 모습이 연출된다. DRS는 레이싱카 뒤에 있는 리어 윙 플랩을 열고 닫는 장치다. 평소 리어윙은 차가 달릴 때 발생하는 공기의 저항을 활용해 차를 바닥에 누르는 힘(다운포스)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플랩을 열면 다운포스는 약해지지만, 그만큼 공기저항이 줄어 속도가 올라간다. DRS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경기장 내 지정된 DRS 존에서만, 앞차와의 간격이 1초 이내일 때만 사용할 수 있다. 2026년부터는 DRS가 사라진다. 레이싱카 규정이 바뀌면서 기존 DRS는 ‘X-모드’로 대체될 예정이다. 평상시 주행 모드는 Z-모드라고 말하며, X-모드를 사용하면 앞뒤로 달린 윙에서 플랩 각도를 조절해 공기저항을 줄인다. DRS와 작동 원리는 같지만, 공기저항을 줄이는 위치가 바뀌는 것이다.
스물네 번의 그랑프리, 두 개의 왕좌
F1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로 <F1 더 무비>를 본다면 가장 먼저 이 질문을 하게 된다. F1은 팀 스포츠인가, 개인 스포츠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모두 해당한다. F1 시즌은 3월부터 12월까지 총 24번의 그랑프리로 진행된다. 매 시즌이 끝나면 두 챔피언이 탄생한다.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과 ‘월드 컨스트럭터 챔피언’. 드라이버 챔피언은 가장 많은 포인트를 획득한 드라이버 한 명에게, 컨스트럭터 챔피언은 팀 소속 두 드라이버의 총합 포인트가 가장 많은 팀에게 수여된다. 때문에 드라이버 챔피언의 소속 팀과 컨스트럭터 챔피언이 각기 다른 경우도 생긴다. 지난 2024 시즌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은 437포인트를 쌓은 막스 베르스타펜이었다. 하지만 함께 레드불에 소속된 세르히오 페레스는 152포인트에 그쳤고, 레드불은 컨스트럭터 순위에서 3위를 기록했다. 반면 드라이버 챔피언십에서 각각 2위와 4위를 차지한 랜도 노리스(374포인트), 오스카 피아스트리(292포인트)를 보유한 맥라렌은 월드 컨스트럭터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갔다.
베테랑 vs 루키
소니 헤이스는 한때 주목받는 루키였지만, 큰 사고로 은퇴한 이후 용병 생활을 전전한다. 관객은 오랜 시간 F1을 떠났던 드라이버가 수십 년 만에 복귀하는 게 가능한지, 복귀하더라도 성적을 내는 게 가능한지 의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역 선수 중에도 비슷한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있다. F1 월드 챔피언이자 르망 24시, WEC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다시 F1으로 돌아온 페르난도 알론소다. 영화 속 에이펙스GP에 소속된 헤이스와 조슈아 피어스는 동료이자 라이벌로 그려진다. 실제로 F1에서 같은 팀의 두 드라이버는 살벌한 경쟁을 펼친다. 2007 시즌 맥라렌으로 이적한 페르난도 알론소는 당대 최고 성능의 레이싱카를 타고 3년 연속 월드 챔피언에 오를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즌 내내 루키였던 팀메이트와 경쟁을 벌였고, 결국 2위에 그치며 월드 드라이버 챔피언 자리를 페라리의 키미 래이쾨넨에게 넘겨야 했다. 이때 알론소의 팀메이트가 바로 <F1 더 무비> 제작자이자 현역 최고 베테랑 선수인 루이스 해밀턴이다. 같은 레이싱카를 타는 만큼, 상위 팀일수록 월드 챔피언 자리를 두고 펼쳐지는 팀메이트 간의 대결은 흥미로워진다.
Editor 주현욱
Images 페라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