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억8000만 달러. 작년 한국 농식품 수출 실적이다. 농식품 수출 1위 품목은 라면으로, 12억5000만 달러를 달성했다. 재작년 대비 31.1% 상승한 수치다. 쌀 가공식품 또한 재작년 대비 38.4% 성장해 3억 달러를 기록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숫자가 아니더라도, 지금 K-식품이 전 세계에서 인기가 높다는 걸 우린 체감할 수 있다. 미국 뮤직 페스티벌에서 불닭볶음면 부스가 이슈를 끌고, 해외 케이콘 행사장에서 비비고 만두를 만날 수 있다. 요샌 눈 깜짝할 사이에 세상이 바뀐다지만, 어느새 이렇게 K-식품이 인기를 끌게 된 걸까. 이쯤 되면 하나의 콘텐츠로 조명할 수 있겠다 싶었다. K-식품이 얼마나 전 세계에 퍼져 있는지, 대표 K-식품들은 어떻게 세계를 주름잡게 됐는지, 앞으로 K-식품의 루키로 등극할 제품은 뭐가 있을지. 군침 삼키고 알아봤다.
“이탈리아가 배경인 드라마를 보면 파스타가 먹고 싶고,
멕시코가 배경인 드라마를 보면 타코가 먹고 싶어진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게 한국 음식,
즉 K-푸드에 세계인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또 다른 콘텐츠로서
K-식품의 인기는 어디서 기인했을까.
되짚어보니 콘텐츠의 힘이 작용했다.
시작은 드라마였다. 해외에서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그 역사와 농도가 꽤 길고 진하다. 드라마에서 촉발된 관심은 영화로도 확장했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삶을 보여준다. 로맨스든 액션이든 스릴러든 그 안에는 일상의 풍경이 스며든다. 그렇다. 일상의 풍경. 무언가를 먹는 행위야말로 일상의 핵심 아닌가. 뭘 먹을까. 한국이 배경이니 한국 음식이다. 게다가 영상 매체는 시각적으로 자극한다. 보이면 관심이 생기고 궁금해진다. 이탈리아가 배경인 드라마를 보면 파스타가 먹고 싶고, 멕시코가 배경인 드라마를 보면 타코가 먹고 싶어진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렇게 한국 음식, 즉 K-푸드에 세계인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폭발적인 성장은 K-팝이 유발했다. 정확히 말하면 K-팝을 이끈 아이돌과 걸 그룹이다. 동경하는 대상의 일거수일투족은 관심도가 높다. K-팝 스타들은 자체 영상에서, 예능에서 친근하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줬다. 친근하고 편안하기로는 역시 먹는 모습이 제일이다.
그들이 먹는 것 역시 한국 음식. 특히 라면과 떡볶이 같은 분식이 많았다. 젊은 세대가 좋아할 음식이자 식품으로 판매하기 용이한 것들이다. 맛이야 라면, 만두, 과자, 아이스크림이니까. K-푸드라는 커다란 카테고리에서 K-식품이 선명하게 부각된 셈이다. 게다가 라면, 만두, 과자, 아이스크림 같은 식품은 부담이 적고 접하기도 쉽다. 불고기에 관심이 생기면 한식당까지 찾아가야 한다. 어지간한 애정 아니면 관심만 두고 끝난다. 반면 라면 같은 식품은 마트에서 사면 그만이다. 가볍게 시도해볼 수 있다. 원래 처음 접하는 게 어렵다. 일단 접하면 익숙해진다. 화제성과 접근성은 K-식품의 핵심이다. 블랙핑크 제니와 바나나킥이 좋은 예다. 제니는 미국 유명 토크쇼에서 바나나킥을 소개했다.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라고 하면서. 이후 미국 내 바나나킥 판매율은 수직 상승했다. 제니가 그 말을 한 시점은 3월 말이었다. 농심의 4월 미국 수출은 전월 대비 69% 늘어났다. 이런 반응에 농심은 수출 전략 품목을 라면에 이어 과자로도 확대한다고 발표했다. 놀라운 영향력이다. 물론 제니와 바나나킥은 특별한 경우다. 하지만 K-식품의 전반적인 인기는 이런 화제성과 접근성을 기반으로 한다. 이런 특징은 콘텐츠로도 기능한다. 불닭볶음면이 급성장한 결정적 요인으로 SNS의 ‘매운 라면 챌린지’를 빼놓을 수 없다. 콘텐츠 관심도가 높아진 K-식품이 다시 콘텐츠로 재확산했다. 그러는 사이, 화제성과 접근성은 가속도가 붙는다. 이런 특이성이 K-식품 성장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 불씨든 동력이든 콘텐츠의 힘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렇게 해외 식품을 알게 된 경우가 흔하다. 아주 오래전 할리우드 영화를 보며 햄버거, 콜라와 친해졌으니까. 이제 K-식품이 그 기회를 잡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K-콘텐츠의 인기가 높다는 방증일 테다.
물론 그것만으로 전 세계적으로 관심이 높아진 K-식품을 모두 설명할 수 없다. 식품회사마다 흐름을 파악하고 제대로 전략을 짠 비즈니스 동력도 있다.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화 전략으로 점유율을 올린 식품이 더 많다. 오래전부터 석공의 마음으로 돌을 조각한 시간도 영향력을 발휘했다. 새로운 흐름은 여러 요인이 맞물릴 때 발생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하나 있다. 그 흐름의 중심에 K-콘텐츠가 있다는 점이다. 계기를 만들고 꾸준히 화제를 이어나갔다. 콘텐츠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 K-식품의 인기 역시 반짝하는 유행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이제 시작이다.
Editor 김종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