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예 웨스트의 내한 콘서트가 급거 취소됐다. 또 한 번 충격적인 행보와 논란이
불러온 결과다. 숱한 위기를 극복해온 칸예지만 이번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
그럼에도 시대의 아이콘은 다시 부활의 날갯짓을 할 수 있을까?
2025년 5월 19일, 칸예 웨스트(Ye Ye)의 첫 한국 단독 콘서트가 단 12일 앞두고 갑작스레 취소됐다. 쿠팡플레이는 “최근 가수 칸예 웨스트의 논란으로 인해 오는 5월 31일 예정이었던 ‘YE 내한 콘서트’가 부득이하게 취소됐다”고 발표했고, 동시에 진행 중이던 ‘이지(Yeezy)' 브랜드 상품도 판매를 중단했다. 갑작스러운 뉴스였지만, 한편으론 그리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콘서트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된 과정을 되짚어보면 쉽게 이해된다. 많은 이들이 이번 내한 공연에 큰 기대를 품은 것은 지난해 8월 리스닝 파티에서 그가 보여준 전례 없는 무대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모두를 열광시킨 그 순간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돌발적인 사건이기도 했다. 단지 이번에는 그 돌발성이 또 다른 방향으로 향했을 뿐이다. 최근 행보를 보면, 실제로 수만 명의 관객 앞에서 히틀러 찬양 곡이 울려 퍼지는 아찔한 장면이 현실화됐을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공연 취소가 오히려 다행이라는 반응도 있다. 동시에 이 정도 대규모 공연이 직전에 중단될 만큼 최근 그의 상황이 심각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칸예 웨스트에게 논란과 위기는 하루이틀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정치·경제·사회·문화를 넘나드는 온갖 스캔들 속에서도 몇 번이나 음악 산업을 뒤흔드는 업적과 파격적인 행보로 천재성을 증명하며 위기를 극복해왔다. 그리고 2025년, 칸예는 또다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그의 음악 커리어와 비즈니스 그리고 개인적 삶이 중첩되고 뒤엉킨 가장 심각한 위기다. 과연 그는 이번에도 우리의 취소표 수만 장을 불태운 잿더미 위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여 날아오를 수 있을까?
극단으로 내달리는 칸예
칸예 웨스트의 돌발 행동이 더 이상 예술가적 기행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 급진주의로 선회한 것은 2010년대 후반부터였다. 2018년, 그는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하며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모자를 쓰고 백악관을 방문하더니 “노예제는 선택이었다”는 발언으로 도마에 올랐다. 2020년에는 아예 직접 대선에 출마하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에도 그의 급진적 정치 성향과 문제 발언들이 논란은 됐지만, 아직은 ‘칸예이기에 가능한 기행’쯤으로 소비되거나, 개인의 정치적 선택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2022년 10월, 칸예 웨스트의 행보는 더 이상 가볍게 넘어가기 어려운 수준으로 치달았다. 그가 흑인 보수 논객 캔디스 오웬스와 함께 ‘White Lives Matter(백인의 목숨도 소중하다)’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파리 패션위크의 이지 시즌 9 컬렉션 쇼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이 문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대한 경찰의 과잉 진압을 비판하는 ‘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된 슬로건이자, 미국 최대 유대인 단체이자 반인종주의 단체인 명예훼손방지연맹(ADL)이 지정한 ‘혐오 슬로건’이다. 패션 업계와 미디어는 강하게 반발했고, 분위기는 단숨에 냉각됐다. 그럼에도 칸예는 한발 더 나아갔다. 트위터를 통해 유대인에 대한 폭력적 메시지를 남기며 파문을 일으켰고, 이후에도 유대인 음모론과 증오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 수위는 한계 없이 치솟아 급기야 12월에는 히틀러 및 나치에 대한 옹호 발언으로 모두를 경악시켰다. 홀로코스트의 상흔이 남아 있는 서방 사회에서 히틀러를 긍정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좌우를 막론하고 용납되지 않는 금기다. 이에 패션, 음악, 금융, 미디어를 막론하고 주요 파트너들이 일제히 관계를 끊었고, 각계각층에서 비난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2023년을 거쳐 2024년에는 문제 발언이 상대적으로 줄어들면서 리스닝 파티를 열고 신작을 발표하는 등 활동을 이어갔다. 그 덕분에 내한 리스닝 파티도 무사히 열릴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2025년 들어 그의 언행이 다시금 극단을 향해 치달은 것. 자신의 SNS 계정에 나치와 히틀러에 대한 직접적 애정을 표현하더니, 음악에서도 반유대주의 내용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내한 콘서트를 3주 앞두고 발표한 마지막 싱글 제목이 ‘Heil Hitler’인 것이 많은 설명을 대신한다. 이런 충격적 행보에 등을 돌린 팬들도 늘어났고, 남은 지지자들마저도 공개적으로 옹호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됐다.
모든 것을 잃은 지금 칸예 웨스트가 또 한 번 전환점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사과와 타협이 아니라 또다시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납득시킬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
이번 위기는 무엇이 다른가
칸예 웨스트의 논란과 위기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2008년, 그는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파혼이라는 이중의 충격을 겪으며 깊은 정신적 슬럼프에 빠졌지만, 그 상실감을 새로운 사운드로 승화한 <808s & Heartbreak>로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이끌어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VMA 수상 소감 도중 마이크를 강탈한 악명 높은 사건을 비롯해 각종 돌발 행동이 이어진 시기에도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라는 역사에 남을 명반으로 논란을 잠재웠다. 2010년대 중반 이후엔 온갖 문제 발언과 파격적 정치 행보 그리고 킴 카다시안과의 결별 등 일련의 혼란스러운 사생활이 위기를 불러왔지만, 2021년 <Donda> 프로젝트를 통해 폭발적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여전한 아티스트로서 존재감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이전과 차원이 다르다. 그간 칸예 웨스트가 쌓아온 창조적 인프라인 패션, 미디어, 금융, 콘텐츠 제작 등 다방면의 기반이 2022년 10월부터 불과 몇 개월 사이 무너져내렸다. 아디다스, 발렌시아가, JP모건 체이스, CAA 그리고 <보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파트너들이 줄줄이 이탈하며 그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이는 단순한 계약 해지 이상의 의미였다. 오랜 시간 그의 독보적인 창의성과 글로벌 영향력을 높이 평가하며 숱한 리스크를 감내한 이들이 한목소리로 ‘한계에 도달했다’고 선언한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과의 신뢰를 최우선하는 글로벌 브랜드 입장에서 그의 발언과 행동을 더 이상 공동체 내에서 수용할 수 없다고 판결한 셈이다.
이제 칸예 웨스트에게 남은 마지막 무기는 음악이다. 문제는 위기의 돌파구가 되어야 하는 음악조차 더는 ‘회복’의 서사가 아닌 ‘파괴’의 상징으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새 앨범 <Cuck>은 앨범 커버부터 폭력적 백인우월주의 단체 KKK(쿠 클럭스 클랜)의 복장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유출된 트랙리스트에는 ‘Heil Hitler’ ‘Gas Chambers’ ‘Hitler Ye Jesus’ 등 나치와 홀로코스트를 직접 언급하는 충격적인 제목이 즐비하다. 심지어 ‘Heil Hitler’에는 실제 히틀러의 목소리가 삽입됐다. 이 곡은 발표 직후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유튜브 등 모든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차단당했고,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법적으로도 감상이 금지됐다. 이것은 근본적 차원의 위기다. 칸예는 커리어 내내 갖가지 논란 속에서도 파격적인 음악성 그리고 패션, 아트 등 여러 분야에서 펼쳐 보인 예술성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해왔다.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파트너들은 그의 곁을 떠났고, 활동의 토대이자 칸예 예술성의 정수였던 음악은 이제 또 다른 논란의 진원지가 됐다. 2022년 대규모 손절 사태보다 더욱 심각한 상황이다. 패션, 미디어, 재정적 파트너십이 붕괴되었을 때도 그는 음악으로 복귀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그의 음악 자체가 더 이상 예술로 소비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단순한 호불호나 정치적 편향성의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의 본질이 윤리적으로 수용 불가능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 대중문화계, 특히 힙합 문화는 표현의 자유를 폭넓게 인정하고, 아티스트 개인의 도덕성에 높은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과거에는 칸예 발언이 논란이 되더라도 그의 음악은 별개의 차원에서 존중받았다. 그러나 이제 그의 음악은 그 자신이기도 하다. <Vultures>와 <Bully>를 거치며 심화하던 윤리적 도발은 <Cuck>에서 도저히 방어가 불가능한 노골적 증오 메시지로 치달았다. 이 시점에서 창작물과 창작자 사이의 경계는 사실상 무의미해졌다. 음악이 그의 급진적 세계관과 완전히 결합되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음악이 삶의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됐지만, 지금은 오히려 음악이 그의 추락을 가속화하고 있다. 그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와 오락가락하는 입장도 여전하다. 당초 칸예 웨스트는 ‘Heil Hitler’가 음원 플랫폼에서 차단되자 불공정한 검열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며칠 뒤, 돌연 “반유대주의를 그만두기로 했다”고 선언하며 히틀러에 대한 직접적 언급을 기독교적 메시지로 대체한 버전의 ‘Hallelujah’를 발표했다. 과연 이것이 진심 어린 반성과 새로운 방향성의 징표일까. 아직까지 업계와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는 2023년에도 몇 차례 반유대주의 발언을 사과했다가 입장을 바꾼 적이 있다. 올해 2월에 “나는 나치가 아님을 깨달았다”라고 하더니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금 “나는 나치다”라고 말을 뒤집었다. 이런 전례를 볼 때, 이제 와서 그가 모두를 설득할 만한 무게 있는 태도를 보이기를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
결국 칸예는 칸예이기 때문에
칸예의 음악을 듣고 성장한 사람들에게 지금 상황은 안타깝다는 말로 다 담기 어렵다. 여전히 그들의 책장에는 과거의 앨범들이 꽂혀 있고, 신발장엔 꽤 오랫동안 꺼내 신지 못한 이지 스니커즈가 잠들어 있다. 전설로 회자되는 2010년 ‘서머 위크앤티’ 페스티벌에서 빨간 수트를 입고 열창하던 그를 기억하고, 다큐멘터리 <지-니어스: 카니예 3부작>을 보며 그의 열정과 비전에 감명받은 사람이 필자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리스닝 파티에서는 오랜만에 예전의 에너지를 되찾은 듯한 퍼포먼스로 과거 명곡들을 잇달아 선보이며 많은 팬들을 환호하게 했다. 그래서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의 예술적 성취와 유산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하고, 부활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그에게 과거와 같은 활동과 영향력을 다시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칸예가 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뒤로 물러서 자신의 과오를 진심으로 반성하고 타협할까? 그것이 지금 그에게 필요한 책임 있는 대응인 건 맞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가장 ‘칸예답지 않은’ 태도다. 그는 언제나 기존의 형식과 금기를 거부하며, 위기를 오히려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삼아왔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 또한 그의 반골 기질이 극단으로 치달은 결과라면, 극복 가능성도 그 연장선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다시 말해, 모든 것을 잃은 지금 칸예 웨스트가 또 한 번 전환점을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사과와 타협이 아니라 또다시 경계를 넘어 사람들을 납득시킬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하는 방식이 될 거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 상황에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 솔직히 말해, 범인의 시각으로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혼란 속에서도, 누군가는 그가 또 한 번 세상을 뒤흔드는 ‘한 방’을 꺼내 들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 한 방은 (만약 정말 존재한다면) 우리의 예측과 상식을 다시 한번 뒤엎는, 지금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형태로 등장할 것이다.
Contributing Editor 최용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