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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까지의 한 걸음

아시아 여성 최초로 보급 없이 남극점을 밟으며 김영미(노스페이스 애슬리트팀 소속)는 한국 등반사에 한 번 더 이름을 올렸다. 막상 김영미는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녀에게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UpdatedOn January 30,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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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오른쪽 가슴에 붙어 있는 와펜은 자신이 디자인한 것이다.

 

“남극이라는 대자연이 체력 단련장은 아니잖아요.
제가 아시아 여성 최연소 최초 무보급 남극점 기록 보유자라는 건
도전한 사람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해요.”

 

입고 계신 옷의 와펜이 눈에 띕니다. 저는 탐험가나 작전을 수행한 사람들이 자기 와펜을 만드는 걸 늘 동경했습니다.
여러 번 원정을 나가다 보니 특정 연도와 원정을 정리해두지 않으면 언제 썼는지 알 수 없더라고요. 제 전공이 미술 쪽이라, 이런 걸 만들어 붙이는 게 재미이기도 합니다.

남극점에 다녀오신 지 1년쯤 되었습니다만 건강은 완전히 회복되셨습니까?
멀쩡해 보이지 않아요? 산악인 선배님들께서 원정 다녀오시면 얼굴이 까맣게 타는 경우가 많았어요. 돌아왔을 때 저는 너무 깨끗했어요. 동상도 거의 없었고. 너무 멀쩡해서 사람들이 “남산 갔다 왔냐”고 농담도 했어요.(웃음)

정말 극한 환경에 다녀오셨는데 말입니다.
51일 동안 14kg쯤 빠졌는데, 그 정도는 계산했어요. 다녀와서 7~8개월 정도는 회복에 시간이 걸렸어요. 전에는 운동을 하면 빨리빨리 체력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는데 몇 달 동안은 운동을 하면 이제 오히려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었습니다.

전에도 많은 원정 경험과 기록이 있었는데요. 그 경험과 이번 남극 원정은 달랐습니까?
많이 다르죠. 히말라야 등반하고는 비교할 수 없게 다른 영역이에요. 사람이 일상생활을 할 때도 휴식 없이 50일 동안 일하면 흔들리는데, 그만큼 이것도 힘들었죠. 예를 들어 전에 바이칼 원정을 갔을 때는 잠을 못 잤어요. 각성 상태이기 때문에 쉽게 잠이 안 들어요. 바이칼에서는 얼음 깨지는 소리가 엄청 심하기도 하고요. 그런 소리 때문에 자다가 몇 번씩 깼고, 남극에서는 빛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어요. 한국 들어와도 그 상태가 몇 개월 지속되니 회복이 느릴 수밖에 없죠.

남극에서는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주무셨습니까?
요즘 시계는 숙면 등이 체크되잖아요. 6시간 30분에서 7시간을 자면, 1시간 이상 숙면한 적이 없었어요. 자면서도 계속 움직이니까, 실질적으로 자다 깨서 시계를 최소 세 번은 보고 잠이 들어요. 식욕하고 수면욕 중에 수면욕이 더 리듬에 지장을 많이 주더라고요. 너무 배가 고픈데 먹을 게 옆에 있어도 자고 싶었거든요.

그럴 때 잠들어도 꿈을 꿉니까?
저는 원래 꿈 잘 안 꾸는데 한 번 꿨어요. 텐트를 치다가 기록하던 휴대전화가 빠졌는지 자기 전에 잃어버린 걸 알았어요. 그 휴대전화를 누가 주워서 제게 갖다주는 꿈을 그날 밤에 세 번 꿨어요. 다음 날 아침에 텐트 접다 보니 텐트 밑바닥에 깔려 있었어요. 그만큼 걱정되었던 거겠죠.

남극점까지 가시는 중에 무섭거나 외롭기도 하셨습니까?
오히려 더 차분해질 수밖에 없어요. 위험한 상황에 직면하면 사람이 생각보다 차분해져요. 옆에서 보기에는 더 어렵고 힘들 것 같지만 되게 냉정해지고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먼저 찾게 되거든요.
그런 게 곧장 나오는 게 경험과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히말라야에서 더 위험한 순간도 많이 겪는 등 등반 경험이 많으니까 그 경험의 힘을 믿었죠. 바이칼에서 23일 동안 혼자 지낸 시간도 있고요. 혼자 가려고 떠났는데 그게 무서우면 어떻게 갈 수가 있겠어요.

등반을 ‘수직의 세계’라고 말씀하셨고, 바이칼호 횡단과 남극점 도달을 ‘수평의 세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연하겠지만 수직과 수평 세계의 위험이 다릅니까?
완전 다르죠. 수평의 세계는 추락에 대한 리스크는 없지만 아무것에도 보호받지 못해요. 바람이 제일 무서운데 바람에 노출되어 있죠. 텐트 안에서도 텐트가 찢어질 걱정을 해요. 그러면 끝이거든요. 바람의 저항을 덜 받기 위해 키가 작은 사람도 머리가 닿을 정도로 낮은 텐트를 써요. 그런 일에 대비하는 장비나 기술은 준비되어 있으니, 텐트를 칠 때 바람 방향 등을 다 고려합니다.

남극점에 도달하는 여정 중 심박수가 계속 150~160회라는 걸 봤어요. 실제로 내내 각성 상태였겠습니다.
그 정도 심박수면 전력 질주거든요. 숨소리가 되게 커요. 계속 숨을 거칠게 쉬어야 해요. 걷는 속도인데도 바람 소리만큼 내 숨소리가 크게 들려요. 내내 그 소리가 내 귀를 때리는 것 같아요. 바람 소리와 숨소리가.

바람, 숨, 추위, 그 일상이 거의 똑같이 반복되는 51일을 보내신 거군요.
매일 똑같은 일상의 반복을 얼마나 능숙하게 하느냐, 얼마나 빠르게 대처해 시간을 줄이느냐에 따라 내가 쉴 수 있는 시간이 결정돼요. 처음 몇 번은 앉아서 간식을 먹었어요. 몸에서 썰매를 해체했고요. 스키도 벗고. 그런데 한 15일쯤 지나자 앉을 시간도 없었고, 나중에는 스키 해체도 안 했어요. 잠깐 서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추워요. 겉옷까지 다 젖어 있거든요. 쉬면 습기 찬 옷의 안쪽이 다 얼어버리죠. 그래서 쉴 수 없었어요. 매일 정해진 거리를 가야 하고, 정해진 식량 계획만큼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거든요. 그러니 계속 쫓길 수밖에 없었죠. 5분씩 하루 동안 쉬는 시간을 몇 번씩 모으면 몇백 미터는 더 가니까요. 하루 1km가 50일이면 2일치의 이동 거리가 돼요. 정신없이 한 걸음 나가는 것밖에 생각할 수 없었어요.

목표만 계속 있었던 거네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있고 시간은 쫓기죠. 체력이 줄고 식량이 줄어드는 만큼 썰매가 가벼워지긴 하지만 시간에 대한 압박을 엄청 많이 느꼈어요. 채울 거리는 남아 있고, 남은 시간과 식량을 계산했을 때 더 빨리 스피드를 끌어올려야 했고 촬영도 해야 했어요. 하지만 저는 힘든 이야기는 잘 안 해요. 힘든 건 끝이 없기도 하고, 이야기하면 넋두리 같기도 하고, 사람들은 왜 육체적 고통만 궁금해할까 싶기도 해요. 남극이라는 대자연이 체력 단련장은 아니잖아요. 제가 아시아 여성 최연소 최초 무보급 남극점 기록 보유자라는 건 도전한 사람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해요. 내가 최초인 게 신기한 게 아니에요. 제가 남극점에 섰을 때의 옵션에 불과한 거고, 이걸(기록을) 위해 나는 남극점에 간 게 아닌데. 출발할 때부터 그 타이틀로 기사가 나가다 보니 혼자 가는 당사자인 저는 심리적 부담이 컸어요. 그런 인식은 개선됐으면 좋겠어요.

그럼 무엇을 위해서 가셨어요? 남극점 도달을 목표로 하신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2004년에 남극 최고봉 등반을 마치고 나올 때였어요. 비행기가 떠서 창밖으로 수평선이 보였어요. 수평선 너머에 두 사람이 걸어가는 이미지를, 그게 나라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내가 다시 남극에 간다면 저 끝을 향해서 걸어가게 되겠다’는 상상을 했어요. 그때 <우리는 얼음 사막을 걷는다>는 책을 가져갔거든요. 여자 둘이 연을 이용해 바람을 타고 남극 횡단을 시도한 내용을 다룬 책이에요. 그 책 보고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뒤 귀국하고 잊고 있다가 함께 히말라야 등반하던 분들께 남극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남극, 북극, 히말라야 등 수직과 수평을 종횡무진하던 분들이었거든요. 그분들과 등반하다 보니 ‘이들도 이렇게 해냈는데 나도 준비만 잘하면 할 수 있겠다’는 상상도 했고요. 결정적인 계기는 2013년의 암푸 1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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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가 남극 원정 당시에 착용한 장비를 스튜디오에서 다시 착용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옷을 장비라고 불렀다.

 

“높은 데 올라가 있으면 작은 나라도 되게 크게 느껴졌어요.
정상에 가는 거리는 남자든 여자든 키가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똑같으니 세간의 편견을 깰 수 있으니까요. ”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거기서 폭설을 만났어요. 삽으로 대여섯 번을 퍼내야 한 발을 내딛을 수 있을 정도의 폭설이었어요. 원래 하루면 내려갈 거리인데 2박 3일이 걸렸고, 눈이 그렇게 많은데 눈 녹일 연료가 없어 마실 물이 없었어요. 컵 하나로 셋이서 물을 나눠 마시며 하루 종일 눈을 헤치고 나가야 했어요. 마지막 날 거의 밤을 새워 새벽에 마지막 민가에 도착했어요. 힘을 다 써버려서 따뜻한 물을 마셔도 체온이 안 올라가고, 침낭 안에 있어도 발이 시리고, 물을 몇 리터를 먹어도 보충이 안 됐어요. 수분을 다 짜내서 내 몸이 바스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게 오히려 묘한 자극이 됐어요. 어제까지도 극한이었고, 오늘 편안한 장소에 있는데, 그럼에도 살아 있으니 다음 날 에너지가 채워지더라고요. 그때 수평의 세계에서 매일 에너지를 쏟아내는 등반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저는 남극도 산이라고 봤고, 남극 자체가 해발 180m에서 시작해 2835m까지 이르는 거대한 하나의 빙산이거든요. 세계에서 평균 고도가 가장 높은 대륙이고요.

2835m까지 간다면 실제로 등반이네요.
오르막길이 꾸준히 이어진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서도 파도처럼 10km, 20km 사이에 한 번씩 살짝 꿀렁꿀렁한 느낌이 있어요. 멀리서 사진을 보면 파도치는 물결의 윤슬이 빛나는 듯하지만 실제로 오르막을 오르는 거예요. 쉽게 설명을 드리면 제주도 밑 이어도부터 백두산까지의 직선 거리가 1170km 정도고, 백두산 높이가 2744m 정도니까 그 정도를 걸어서 백두산 높이만큼의 산을 오른다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초반에는 경사가 굉장히 급하고, 한 달 정도 지난 뒤 살이 10kg 이상 빠진 상태에서 오르막길이 있어요. 100m 고도를 오를 때마다 온도는 0.6℃씩 떨어지고요. 그런 상태니까 극점으로 갈수록 추위는 더 강해져요.

말하자면 썰매를 끌고 업힐을 계속하신 거군요.
뒤에서 계속 누가 잡아당기는데 뒤돌아보면 평지 같아요. 스키장에서도 경사도가 완만한 곳이 흰색이면 지형 구분이 잘 안 되는 것처럼요. 살짝 내려가는 구간도 있어요. 그래서 이 경사를 화면으로 보여드리기가 힘들어요. 그런 곳을 하루에 30km씩 걷는 게 어떤지 설명할 수가 없고요. 영상으로는 눈보라를 보여줄 수도 없어요. 남극은 사막 기후라 적설량이 많지 않거든요. 바람이 늘 최소 5~6m/s로 불어대니까 눈을 다 쓸고 가요. 어젯밤 신설이 내리지 않는 이상 눈보라가 치는 건 볼 수 없어요. 바람도 한 방향으로 불어서, 마이크를 잘못 잡고 있으면 바람에 소리가 다 날아가고, 녹음을 하려 마이크를 돌리면 바람이 안 느껴져요.

영상까지 촬영하는 게 더 난관이었군요. 나침반이 초반에 망가져 고생하셨다고도 들었습니다.
거기서 엄청 헤맸어요. 저는 45일 만에 끝날 줄 알았고 촬영 시간 등의 예비일을 더해 50일치 식량을 준비했어요. 그런데 나침반이 고장 나서 방향을 잘못 본 바람에 1도를 넘는 데 전체 일정 중 20%의 식량을 쓴 거예요. 갈수록 어려운 게 더 많이 남아 있는데. 그때 어떻게 할지 생각하다 ‘시간을 좀 더 갈아 넣어야겠다’고 결정했어요.

약간 오버페이스를 하셔야 했군요.
‘해볼 때까지 해보자. 뒤로는 방법이 없다. 앞으로 가자. 탈출할 거면 남극점으로 하자’는 마음을 먹었어요. 앞선 1도를 올라가는 데 10일 걸렸는데, 81도에서 남극점까지 1도를 넘는 데 정확히 4일에서 5일 페이스로. 끝날 때까지 그 페이스를 유지했어요. 나침반은 고장 났지만 어차피 남극으로 갈수록 자기장의 영향을 더 많이 받기 때문에 결국 나침반은 고장 나요. 지형지물이 없는 상황에서도 남쪽 방향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어요.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기억하거나 스키의 그림자를 보면 돼요. 각도가 계속 틀어지니까 수시로 체크해야 하지만요.

정말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네요.
틈이 없죠. 잠깐 음악 들을 여유도 없고. GPS를 보면서 스키와 그림자가 있는 각도를 확인하고, 바람은 남쪽에서 계속 부니까 바람 방향을 확인하고. 그런데 경험이 쌓이면 스키 밑과 그림자만 보다가 좀 멀리 보게 돼요. 바람은 한쪽 방향에서 부니까, 5~6m마다 하나씩 눈이 쓸고 간 파도의 결처럼 일정한 패턴이 있어요. 그 언덕을 사스투르기라고 해요. 내가 사스트루기를 밟고 갈 때의 각도를 유지하며 가다 보면 동물적으로 남극 방향이 어딘지 나중에는 자연스럽게 알게 돼요.

이번 등정을 통해 앞으로의 탐험에 참고가 될 만한 교훈을 얻은 게 있을까요?
보통 사람이 경험을 하면 성숙해질 거라 생각하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혼자 있는데도 밑바닥까지 갔구나 싶었어요. 체력이 있고 여유가 있어야 견딜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한계에서 사람이 냉정하게 교훈을 얻기는 쉽지 않아요. (남극점에 도달했을 때) 그냥 끝났다. 내일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된다. 내가 주어진 시간 안에 이걸 끝냈구나. 그냥 나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안심하겠구나 이 정도죠.

제가 극한까지 가보지 않아서 질문이 얕았습니다.
그건 있어요. 무모한 건 도전이 아니에요.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해야 해요. 제가 짐을 싼 걸 보고 어떤 분은 저보고 편집증이 있냐고도 했어요. 그 정도는 당연하게 해야 하는데. 내가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계속하며 짐을 줄이고 줄여 나가야 해요. 백두대간에 갈 때도 짐을 다 등에 메고 움직여야 하니까 0.1cm의 종이 지도도 다 가위로 잘라서 갔어요.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넘어설 수 있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해요. 그 실수를 줄여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거죠. 자연환경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어요. 나침반이 고장 나고, 블리저드가 불고, 화이트아웃이 와도 내가 컨트롤할 수 없잖아요. 거기서 평정심을 찾는 건 내 선택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냥 나아가는 거고요. 5km를 가야 하는데 방향을 잃어서 3km밖에 안 갔을 때 휘둘리지 않고 최선의 선택을 하는 마음이 중요해요. 대자연과 마주하는 원정을 떠날 때마다 저는 사람이 진짜 나약하구나, 자연 앞에 정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어서 제 존재가 작게 느껴지거든요.

그렇게 많은 탐험을 하시고 나서도요?
20대에 산을 다닐 때는 높은 산에 많이 갔어요. 생각이 정상에 있었죠. 높은 데 올라가 있으면 작은 나라도 되게 크게 느껴졌어요. 정상에 가는 거리는 남자든 여자든 키가 큰 사람이든 작은 사람이든 똑같으니 세간의 편견을 깰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웅장한 자연 속에 있는 내가 멋있어 보이기도 하고, 20대는 그런 나이였어요. 계속 정상을 향해 갔으니까요. 그런데 바이칼이나 남극점은 어찌 보면 밥 먹고 텐트 걷는 게 일이에요. 그런데 목표를 이루고 돌아오면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끼게 돼요.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을 더 잘 알게 되고, 다음 등반을 할 때는 더 잘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 준비 과정이 나를 바꾸는 거지, 거기 도달한 순간은 그냥 과거일 뿐이에요.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고 인생이 계속되듯 나아가야 한다면 내가 과거에 했던 하나의 일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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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가 남극점까지 도달하는 동안 착용한 점퍼. 천연 동물 털을 사용하는 등 일반 사양과는 조금 다르다. 천연 동물 털을 사용한 이유는 다른 소재를 쓰면 얼음이 다 들어가버리기 때문이다. 소매 끝에 달린 카라비너에는 장갑을 매달아서 쓴다. 햇빛이 하도 강해서 51일의 원정 기간에 점퍼 등 부분의 빛이 바랬다. 남극의 혹독한 자연환경을 짐작하게 한다.

김영미가 남극점까지 도달하는 동안 착용한 점퍼. 천연 동물 털을 사용하는 등 일반 사양과는 조금 다르다. 천연 동물 털을 사용한 이유는 다른 소재를 쓰면 얼음이 다 들어가버리기 때문이다. 소매 끝에 달린 카라비너에는 장갑을 매달아서 쓴다. 햇빛이 하도 강해서 51일의 원정 기간에 점퍼 등 부분의 빛이 바랬다. 남극의 혹독한 자연환경을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남극점에 도달하셨을 때 ‘더 안 걸어도 된다’는 생각을 하신 거군요.
‘사람이 생각보다 약하지는 않구나’라는 생각은 해요. 내가 나조차도 의심하면서 이 일을 준비했지만 그래도 목표한 지점에 왔구나. 그냥 잘 견뎠다. 그런 생각은 해요.

여러 준비를 하셨다면 여러 위험 요소와 우려 요소가 있었을 텐데, 가장 우려하셨던 건 무엇이었습니까?
일단은 오버페이스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바이칼에서 평소에 30km 정도 걷다가 하루에 42km를 걸은 적이 있어요. 마라톤 풀코스 거리잖아요. 다음 날 못 걷겠더라고요. 오래 멀리 가려면 힘 안배를 잘해야 해요. 내가 갈 수 있을 것 같아 더 간다고 해서 그다음 날 더 많이 가는 게 아니더라고요. 이번에도 막판에 많이 걸어볼까 하고 하루에 12시간 반 걸은 적이 있었는데 다음 날 못 걸었어요. 한 번 리듬이 깨진 순간에 옷도 태운 거예요. 정신 집중이 안 되니까 장비를 떨어뜨려서 탔거든요. 위험하다고 생각하면 다 위험해요.

구체적인 극한 상황인데 인생의 일반론 같은 면이 있네요.
성냥에 불이 안 붙는 것도 위험한 상황이에요. 가져간 라이터가 안 돼서 성냥을 켰는데 성냥 7~8개를 쓰는 데도 불이 안 붙는 거예요. 그럼 불을 못 때잖아요. 그날따라 너무 추웠고, 텐트 안으로 찬 기운이 공포 영화 귀신처럼 계속 들어오고, 나는 너무 손이 시리고 뜨거운 물을 빨리 마셔야겠는데 성냥이 한 30분 넘게 안 켜지는 거예요. 봤더니 습기를 먹어서더라고요. 그래서 잘 때 성냥을 품고 잤죠. 그런 걸 하나부터 열까지 계속 신경 쓰고 있어야 해요. 그러니까 과거의 사사로운 감정, 혹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음, 고민이나 걱정이 파고들 틈이 없어요.

생존만 남는 거군요.
사회에서도 생존 법칙이 있잖아요. 야생에서도 생존하기 위한 노하우와 법칙이 있는데 그게 아주 단순하면서도 위험과 바로 연결될 수도 있죠. 불이 옷에 떨어졌는데 내가 못 느끼면 텐트가 탈 수도 있어요. 텐트가 타버리면 끝나는 거고요.

하루에 평균 몇 시간을 걸으셨어요? 일과는 어떻게 됐습니까?
기본 11시간 반을 걸었어요. 촬영도 해야 했는데 밖에서 걸으면서 촬영한 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텐트 안에서 생활하는 걸 찍은 적도 많아요. 그냥 썰매에 달고 가면서 찍기도 했고요. 1도를 넘을 때마다 원정 일지를 한 번씩 썼는데, 사람들이 너무 걱정하니까 힘든 이야기 안 하려고 했죠. 제가 메시지 전송하는 기계가 작아요. 버튼 2개로 문자를 찍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왔다. 지금 상태 좋다’고 저장된 메시지를 그냥 보낸 거예요. 위성 전화기가 2대 있었는데, 하나는 그냥 통화만 하는 거고 하나는 핸드폰으로 글을 써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거예요.

김영미가 착용했던 하의 장비. 탐험가의 신체 사이즈에 맞춰 수선했다. 이렇게 장비를 착용하고 나면 그 모든 경험이 필드 테스트가 된다. 김영미는 자신이 속한 노스페이스를 두고 ‘자신의 경험을 가치 있게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김영미가 착용했던 하의 장비. 탐험가의 신체 사이즈에 맞춰 수선했다. 이렇게 장비를 착용하고 나면 그 모든 경험이 필드 테스트가 된다. 김영미는 자신이 속한 노스페이스를 두고 ‘자신의 경험을 가치 있게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김영미가 착용했던 하의 장비. 탐험가의 신체 사이즈에 맞춰 수선했다. 이렇게 장비를 착용하고 나면 그 모든 경험이 필드 테스트가 된다. 김영미는 자신이 속한 노스페이스를 두고 ‘자신의 경험을 가치 있게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김영미가 어깨에 메고 썰매를 끌던 어깨끈. 51일간의 강행군 동안 썰매 끈이 끊어졌다. 김영미는 자신의 육체적 고생이나 무용담을 말하려 하지 않는 점잖은 사람이었으나, 이 끊어진 끈이 자신의 이번 원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비라고 말했다.

김영미가 어깨에 메고 썰매를 끌던 어깨끈. 51일간의 강행군 동안 썰매 끈이 끊어졌다. 김영미는 자신의 육체적 고생이나 무용담을 말하려 하지 않는 점잖은 사람이었으나, 이 끊어진 끈이 자신의 이번 원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비라고 말했다.

김영미가 어깨에 메고 썰매를 끌던 어깨끈. 51일간의 강행군 동안 썰매 끈이 끊어졌다. 김영미는 자신의 육체적 고생이나 무용담을 말하려 하지 않는 점잖은 사람이었으나, 이 끊어진 끈이 자신의 이번 원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비라고 말했다.

세상에, 남극에서도 데이터 전송이 됩니까?
위성으로 가능해요. 비싸죠. 그런데 저도 고요함이나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찾아서 가는 건데 그렇게까지 자세하게 소식을 전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메시지를 보내는 것 자체가 일이 되기도 하고요. 그래서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1도를 넘을 때마다 한 번씩 글을 정리해서 전송을 하겠다”고 말해뒀어요. 89도에서 90도 갈 때까지만 제 날짜에 일지를 못 보냈어요. (남극점에서) 저를 기다리고 있는 팀이 있었고, 힘들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국의 메인 비상 연락망으로 전화를 걸어서 “오늘은 일지를 못 쓰겠다. 이제 100km 남았다”라고 하고 안정적으로 완주했습니다.

홈페이지의 기록을 지켜보곤 했습니다. 저는 남극에 가본 적이 없으니 극한 상황일 거란 상상만 할 수 있었고요. 그러나 제가 산악인은 아니어도 몸은 있고 고통을 느낄 수는 있으니 ‘괜찮으실까, 잘 가고 계실까’ 그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고독이나 외로움을 느끼는 건 사치예요. 낭만 등도 전혀 없고요. 영상 일지에도 다른 게 없어요. ‘내가 오늘 가야 할 거리가 몇 킬로미터 남았는데 지금 어느 스피드로 가고 남은 거리가 몇 킬로미터고, 이걸 하려면 여유 시간이 얼마나 있어야 하고’ 외에는 딴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어요. ‘당장 물을 빨리 끓여서 밥을 빨리 먹고 누워야지’ ‘조금이라도 더 쉬어야 내일 아침에 일찍 도착할 텐데’ ‘꿈이 있다면 오늘은 30분만 더 자고 싶다’ 같은 생각만 났습니다.

일종의 실무 생각만 한 거네요. 비행기로 남극점을 벗어날 때부터 탐험 생각에서 빠져나오셨습니까?
그런 구체적인 생각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돌아올 때는 칠레 푼타아레나스를 거쳤어요. 저는 백야에서 50일 이상 보내다 칠레에 오니 한밤중이었어요. 창문을 올리니 까만 밤이 신기했어요. 숙소의 가로등 불빛이 있는데 되게 거슬리는 거예요. 백야 상태에서 (밤이 있는 세계에 오면) 오히려 피곤하니까 잠이 잘 올 것 같았는데 아니었어요. 몇 대 안 되는 자동차 소리, 가로등 불빛 때문에 쉽게 잠이 안 들었어요. 나는 이미 각성되어 있고 예민해져 있으니까요. 일단 도착하자마자 씻었어요. 몸이 너무 말라 있었고요.

그런 탐험 이후 씻을 때는 말로 못 할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약간 무장해제돼요. 연료 생각 안 하고 물 안 끓여도 뜨거운 물 나오니까요. 하루에 연료 0.25L로 녹일 수 있는 물은 제한돼 있는데, 그 시간을 안 기다려도 되고요. 이제까지 긴장하던 것들이 몸에서 내 에너지와 함께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듯한 희열이 있어요. 그 기분은 히말라야 등반이나 남극, 바이칼이나 다 통해요. 그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충분한 휴식이 또 필요해요. 그게 원상태로 나를 돌려놓는 시간이에요.

그 휴식은 충분히 하셨습니까?
못 했죠. 바로 귀국하고 휴식이 필요했는데 갔다 오자마자 공항에서부터 인터뷰를 시작했으니까요. 저는 산악인이자 탐험가이지만 (직장의) 일상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으니까 빨리 회사에 출근하고 싶었어요. 일도 해야 되고, 기다리는 일이 있고 하니까 빨리 일상의 정상궤도로 돌려놓고픈 마음이 많이 들었어요. 진짜 빨리 잊어버리고 싶었어요. 그래야 다음 계획을 하니까요.

지금 회사에서 하시는 실무는 어떤 일인가요?
트레일 러닝 대회 준비가 메인 프로젝트예요. 산악인 활동으로 회사에 들어온 거라 제품 리뷰나 필드 테스트도 많이 하고요. 남극을 다녀온 사항이 제품에 반영되기도 하고요. 노스페이스는 이전에도 거의 20년 가까이 산악인을 후원했기 때문에 저 아니어도 이미 많은 걸 알고 있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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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의 방한 장비들. 특수 제작한 다운 스커트와 다운 이너 점퍼. 텐트에 있을 때 불이 붙어서 구멍이 난 것을 덕트테이프로 메운 자국이다. 그는 늘 심박수가 105~160일 정도로 숨이 찼고 앉으면 머리가 닿을 텐트를 치며 남극에서 51일간 머물렀는데도 한 번도 무언가 다른 요소의 탓을 하지 않았다. 옷이 탄 것도 자신의 부주의라고 말했다. 역으로 그래서 더 인품이 넓어 보였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기부라고 하셨죠. 어디에 하셨어요?
고향사랑 기부제로 (고향인) 강원도에 했고, 어제도 월드비전에 기부했어요. 새해를 시작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더 멀리 나아가려고요. 남극에서 텐트를 매일 쳤다 걷었다 하다 보니까 작은 천막 하나를 통해 내가 느끼는 안정감이 되게 크거든요. 제가 단독으로 남극점까지 갔지만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거든요. 이 프로젝트에 얽혀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내가 노력한 것보다 더 많은 도움을 받고 더 많은 걸 얻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한 약간의 수익을 기부했습니다. 혼자 걸었지만 저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남극에서 어려운 부분이 많았지만 아직까지 기억나는 멋진 풍경이 있습니까?
남극은 구름 말고 바뀌는 게 없어요. 구름은 바람에 의해 바뀌죠. 해는 항상 제 뒤에 있는데 해가 있으면 온 하늘 위에 큰 햇무리가 생겨요. 구름이 몽글몽글하게 있으면 내 마음이 몽글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죠. 어떤 때는 되게 얇은 구름이 바로 머리 위에 깔려 장판처럼 움직이지 않았어요. 점프를 해서 손으로 구름을 툭 치면 사라질 것처럼요. 구름이 하늘부터 땅까지 꽉 차 있을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구름이 꽉 차 있으면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땅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때 제가 고프로를 썰매 뒤에 달고 구름이 다 걷힐 때까지 촬영했는데, 그 구름이 한순간에 흩어졌어요. 그런 것들이 다 순간적이에요.

무사히 도전을 끝내시고 잘 다녀오셔서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시는 것부터가 희망의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어떤 말씀을 전하지 않으셔도 적어도 저는 좋은 메시지를 받았어요.
어떤 메시지를 받으셨나요?

대장님께서 남극점으로 향하던 때가 저도 개인적으로 힘들 때였어요. 밤에 잠을 못 자거나 야근을 할 때 대장님의 도전을 보여주는 홈페이지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저도 제 일이 있으니 대장님의 동선을 매일 체크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2~3일 만에 봐도 대장님은 하루만큼의 거리를 걸어가고 계셨고, 걸어간 거리가 쌓여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저 추운 남극에도 자기 길을 가는 분이 있는데, 나도 열심히 해야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도 역으로 에너지를 얻어요. 좋은 에너지는 돌고 돈다고 하죠. 남극에서 제가 한 일이 일상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어요. 우리도 사회를 살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살잖아요. 남극 가서 그렇게 걷는 게 더 빡빡한 면도 있어요. 쉬운 게 하나도 없고요. 이 도전이 끝나고 조금 바뀐 게 있어요. 사람이 사는데 되게 많은 게 필요하지 않음을 깨달았어요. 썰매에 들어가는 짐으로 바이칼에서는 한 달을, 지금은 두 달을 살았잖아요. 산에 다니면서도 등짐 23kg 정도 지고 다니면 한 달을 살고 컵 하나를 가지고서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차도 마시는데, 너무 많은 걸 소유하려 하거든요. 그런 걸 많이 바꾸게 됐어요. 전에는 산에 다녀오면 장비도 쟁여두고 새로운 것도 사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런 욕심이 많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하나 설명하고 싶은 게 있어요.

어떤 건가요?
남극에서 처음 출발할 때 짐의 총 무게가 113kg이었어요. 매일 쓰는 식량이 1kg, 매일 쓰는 연료가 0.25L예요 합이 1.25kg이니 20일이면 25kg이 줄죠. 50일 동안 없어지는 총 식량의 양이 50kg, 연료가 11kg이었어요. 그럼 막판에는 (다 썼으니 가벼워진 만큼) 쉬워져야 하잖아요. 그런데 안 쉬워져요. 그때 깨달았어요. 인생의 무게가 줄어들길 바라며 요행을 바랄 필요 없구나.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구나. 처음에는 짐 자체가 무겁고 몸이 아직 워밍업이 안 되어서 힘들고 온몸이 아파요. 승모근부터 다 굳고 목 디스크 걸린 것 같아 잠을 못 잘 정도예요. 무게가 적당히 줄어들면 처음에 내지 못한 속도를 끌어올려서 만회를 해야 해요. 그러면 에너지 소모는 똑같아요. 그러다 한 달쯤 지나면 오르막이 나와요. 썰매는 가벼워졌지만 장애물이 나오는 거죠. 그 이후 마지막 150km 정도는 평지예요. 거기부터 남극점까지는 좀 수월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내 몸이 에너지를 다 잃은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다 받아들이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인생의 무게가 줄어들지 않는 것과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근데 돌아오면 우리는 또 사회를 살아야 되니까 원래대로 다시 돌아가죠. 잠깐 깨달을 뿐 또 잊히는 이야기이기는 해요.

왠지 저는 이 이야기를 안 잊을 것 같은데요.
남극점까지의 거리를 재는 두 가지 기계가 있었어요. GPS 시계는 제가 채운 거리를 보여주고, GPS는 내비게이션처럼 남극점까지 남아 있는 거리를 알려줬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제가 채운 거리보다 남아 있는 거리를 봤어요. 똑같은 숫자인데도요. 똑같은 거리와 똑같은 기록이라도 비우는 게 훨씬 쉬워요. 하루에 제가 가는 거리가 22~25km인데 그걸 채우는 1km가 너무 고통스러워요. 하루의 끝에 20km쯤 걸을 때는 먹을 것도 없고 배도 고프고 마실 물도 없어요. 오후에는 화장실 가는 것도 참고 걸어요. 화장실을 가면 몸에서 체온이 빠져나가는 만큼 추워지고 갑자기 손발이 시려요. 해발 2000m를 넘어가면 그래요. 그때는 1km가 아니라 100m, 진짜 딱 한 걸음 한 걸음, 이것밖에 생각하지 못해요. 한국에서 남극까지 얼마나 멀어요. 푼타아레나스에서 유니언 빙하를 거쳐 출발지까지 가는 데도 거의 16일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도 남극점까지가 너무 멀어요. 남극점까지 가려고 생각하면 너무 괴로웠어요. 그래서 오늘 걸을 거리 중 1km 남았을 때, 시계 안 보고 (도착) 알람 울릴 때까지 그냥 가는 거예요. ‘한 걸음 한 걸음 채워지겠지’ 딱 그 심정이었어요.

그 한 걸음들이 모여 남극점까지 간 거군요.
곁에서는 제가 남극 다녀오니 “대한민국의 탐험 역사를 세웠다”고 해주시기도 해요. 들여다보면 아주 근본적이고 단순한 이야기밖에 없어요. 곁에서 바라보는 분들께서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고 제가 엄청 큰 사람이 된 것처럼 막 하시니까 돌아왔을 때 좀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대단한 업적입니다만 해주신 말씀도 이해가 갑니다. 그런데 <아레나> 독자 중에서는 저처럼 등산에 대해 거의 모르는 분도 많을 거예요. 그런 분들을 위한 산을 한두 개만 추천해주실 수도 있을까요?
붐비지 않는 산. 제가 제일 좋아하는 산은 설악산이지만 국립공원에는 아무 때나 들어가기 힘들어요. 처음 산에 가시는 분들께서는 너무 멀리서 찾지 말고, 집 근처에 자주 찾아가며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나만의 휴식 장소 같은 곳을 하나 정해놓으면 좋겠어요. 어떤 장소에 인연을 두면 보통 그 산은 내가 나이 들어도 그대로 있거든요. 그게 내 삶을 지탱해주는 어떤 힘이 될 때가 있어요. 우리는 설악산에 갈 때 “산에 간다”고 안 하고 “산에 들어왔다” “설악산 언제 들어가?” 같은 식으로 이야기해요. 집에 가듯이. 그렇듯 내 마음의 고향 같은 나만의 장소를 정해두면, 사람에게 받을 수 없는 위로나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어떤 산악인으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저는 어떤 산악인인 것 같아요? 듣고 싶어요.

뵙기 전에는 그냥 대단한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특정한 뭔가로 정의하는 게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누군가에 의해 정의되길 바라지도 않는 분 같고요. 그냥 앞으로 계속 응원하고 싶어졌습니다.
맞아요. 제가 23세일 때 저를 박영석 대장님에게 소개해주신 산악부 선배님이 있어요. 그때 저를 두고 “얘는 산을 정말 즐길 줄 아는 애”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렇게 한 20년을 살아왔어요. ‘김영미’라고 생각했을 때 산에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떠올랐으면 좋겠어요. 정직하게 땀 흘리는 것, 산을 닮아가는 것,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등반을 하는 것, 그런 가치들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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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신동훈

2024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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