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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규, 본능과 태도

팟캐스트 <갓경규>로 라디오 콘텐츠에 복귀한 이경규의 말.

UpdatedOn September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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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갓경규> 제안을 수락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라디오를 좋아했어요. 원래 라디오 출신이에요. 1980년대 초반에 공개 방송을 하면서 라디오 출연자로 일주일에 7회인가를 다녔던 추억이 있죠. 팟캐스트 제안이 와서 생각해보니 (팟캐스트는) 실시간으로 듣는 게 아니잖아요. 언제든지 들을 수 있어요. ‘여기에 내가 하는 생각이나 여러 가지를 담아놓으면 듣고 싶은 분들께서 재미있게 듣겠구나’라는 생각에 하게 됐어요.

<갓경규>에는 어느 정도로 참여하셨습니까?
몇 개월 상의했습니다. 뭘 할 건지 같이 회의하고, 제 유튜브에 ‘갓경규’라는 토크쇼가 나갑니다. 그게 저희가 녹화하면 60분 정도인데 편집하면 20분 정도예요. 편집본은 유튜브로, 원본은 여기(팟캐스트)로 나가요. 그러면 재미있죠. (팟캐스트에서는) 좀 막 하는 것도 나가고, ‘저런 걸 잘라냈구나’라고 알 수도 있겠죠.

<갓경규>로 이루고픈 목표가 있습니까?
제가 나왔던 <별이 빛나는 밤에> 같은 방송, 그런 게 요즘 남아 있더군요. 그걸 다시 들으니까 좋았어요. 제 영상은 많이 남아 있겠죠. 그러니 목소리만 남아 있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경규 님의 데뷔가 1981년 라디오 개그 콘테스트더군요. 그때 하셨던 개그가 기억나십니까?
가짜 중국말 하고 그랬어요. 요즘 ‘다나카’를 보며 그때 생각을 해요. 다나카가 일본 사람 ‘부캐’로 떴잖아요. 우리 때는 일본 걸 할 수가 없었어요. 일본 문화를 개방하기도 전이고 생활 속에서 쓰는 일본말도 편집해서 잘랐어요. 당시 흔히 쓰던 ‘와리바시(나무젓가락)’ 같은 말도요.

그렇죠. ‘쓰메키리(손톱깎이)’ 같은 것도.
‘오뎅(어묵)’이라고 해도 편집으로 잘라내야 해요. 지금 다나카는 막 하고 돌아다니잖아요. 노래 이름도 ‘와스레나이(잊지 못해)’고. 제가 했던 가짜 중국말은 떴어요. 그래서 야간 업소 가도 중국 옷 입고 일했어요. (당시에는) 제 이름보다 (당시 하던 가짜 중국말인) ‘짜짜로니’가 더 유명했으니까요. 중국 모자도 쓰고. 짜짜로니로 활동하다 (이경규로) 돌아온 거죠.

‘짜짜로니’에서 ‘이경규’가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습니까?
한 5년? 그런데 짜짜로니가 얻어 걸렸어요. 내가 중국 사람 흉내를 잘 내고 인기가 생기니까 광고하시는 분이 보고 ‘짜짜로니’ 모델로 저를 써서 짜짜로니가 짜파게티를 이기기도 했어요.

조금 전 ‘다나카’ 씨 말씀도 해주셨는데요, 2021년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TV 많이 보고 코미디도 다 보고 드라마도 10분씩은 본다”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요즘은 어떤 걸 보십니까?
유튜브도 많이 봐요.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유튜버가 있으면 구성을 어떻게 하나, 어떤 내용을 다루나 유심히 봅니다.

이경규 님께서 보시기에 유튜버는 확실히 다릅니까?
다르더라고요. 격식이 없어. 등·퇴장도 없고. 하다가 중간에 툭 잘라버리기도 하고. 그것(유튜브) 때문에 TV에 위기가 왔잖아요. 저는 집에 웨이브, 왓챠, 디즈니플러스 다 깔아놨어요. 거기서 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거의 다 봅니다. 사람들이 뭘 하나, 저 콘텐츠와 저 플랫폼에서는 지금 뭘 하는가, 과연 뭘 하길래 사람들이 다 저리 가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실 만큼 여전히 일이 재미있으십니까? 평생 하던 코미디를 계속하시는 게요?
(이경규는 잠깐 말을 멈췄다) 일을 안 하면 뭘 해요?

저도 이경규 님과 같은 생각입니다.
나이 먹어봐야 알아요. (일을 안 하려는 게) 얼마나 후회되는지를. 왜 놀아, 일을 해야죠. 성경에도 있잖아요. 일하지 않는 사람 먹지도 마라. 일 안 하고 먹으려고 하면 나중에 후회해요. 어차피 나이 먹어요. 나이 먹으면 누가 케어를 해줘. 자기가 스스로를 케어해야 하는데. 일이라는 게 아주 옛날부터 쭉 해왔던 일을 나이 먹어도 계속하게 되지, 나이 먹어서 갑자기 다른 일을 하게 되지는 않을 거예요. 일을 해야 돼요.

그래서 어떤 분들은 돈을 많이 번 다음에 빨리 은퇴하고 싶어 합니다. 일 안 하려고.
얼마나 번다고.

2008년 <레이디 경향> 인터뷰에서는 스포츠인이 연예계로 올 것을 예측하셨습니다.
1999년도에 일본에서 유학했어요. 그때 스모 선수가 일본의 최고 MC하고 진행을 했어요. 오사카에 가면 요시모토 흥업이 있어요. 거기를 방문했어요. 당시 소속 연예인들을 보려 했더니 이만한 책을 하나 갖다 주더라고. 보고 깜짝 놀랐어요. 야구선수, 축구선수 다 계약돼 있더라고요. 이 사람들이 은퇴하면 채용하려고 미리 계약을 했는지는 잘 모르지만요. 그러면서 일본 예능에도 운동선수가 많이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유학 다녀와서 책을 한 권 냈어요. 그 책에도 썼어요. 셰프들의 시대가 온다. 그다음에 운동선수들의 시대가 올 것이다.

20년 전인데, 진짜 ‘갓경규’시군요.
20년 전에 강호동이 데뷔했죠. 강호동 씨름할 때 내가 방송에 데뷔시켜서 씨름판에 욕 많이 먹었어요. 멀쩡하게 씨름하는 애 코미디 시킨다고. 그때 그분들께 얘기했어요. 세월이 조금만 지나봐라. 어떻게 되나. 그 세월 지나니까 씨름판 사람들이 막 이쪽으로 오려 했죠. 지금 (종목 불문하고) 다 오고요.

서장훈 씨, 현주엽 씨, 허재 씨.
다 왔는데 잘된 분들이 남아 있는 거죠. 왔다 그냥 가는 분들도 많아요.

운동선수가 방송에 순조롭게 안착하는 이유는 순발력이 좋기 때문입니까?
일단 인지도가 있고, 그 분야에서 한 번 뭔가를 이루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는 거예요. 완전히 신인이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조금 더 유리한 측면이 있죠. 트레이닝이 많이 돼 있는 거예요.

방송인은 아니었지만 방송적 경험을 쌓은 거네요.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예요. 전현무나 김성주는 월급 받으면서 연습했어요. 프리 선언하고 돈을 더 받으면서 방송하고요.

그러게요. 이경규 님은 말하자면 ‘짜짜로니’로 연습한 건데.
(웃음) 우리는 밑바닥에서, 흙바닥 위에서 마이크 잡고 사람들 웃기면서 해왔죠. 다 똑같아졌지만요. 방송국도 아나운서를 안 뽑고 다른 곳에서 갖다 써요. 운동선수들은 꾸준히 은퇴하고 방송에 들어올 겁니다. 조선의 4번 타자 이대호 선수 (은퇴하자마자) 바로 나오잖아요. 나올 줄 알았어요. 저도 기다렸다가 썼습니다. 나오게 되어 있어요. 이대호 선수 역시 자신감이 있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은 달라요. 이승엽 감독도 잘했어요. 같이 <편먹고 공치리> 할 때 보니 프로그램 잘해요. 지금은 프로야구 감독이니 안 하지만요.

막연한 질문입니다만 예능 촬영 현장에서 출연자가 잘한다는 건 무엇일까요?
가수는 노래를 잘하고 배우들은 연기를 잘한다고 하잖아요. 근데 우리는 뭘 잘하는가. 참 애매해요. ‘잘 웃긴다’는 좀 이상하고요. 뭐라고 해야 하나… 프로그램을 잘 소화해내는 능력? 예능 프로그램 PD의 의도나 프로그램이 추구하는 바를 잘 표현해내는 사람이 잘 하는 사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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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변에도 방송인이 몇 분 계십니다. 그 이야기를 들어도 어려워요. “남 말을 잘 끊어야 한다” “열심히 했는데 분량이 안 나온다” 잘하기 쉽지 않은 분야 같습니다.
쉽지 않죠. 대본이 없잖아요. 자기 건 자기가 챙겨야 하고. 대본이 없는데 자기 걸 챙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경규 님께서 대본이 없는 데서 계속 자기 걸 챙겨온 비결이 뭡니까?
고함지르고 윽박지르고(웃음) 물줄기를 이쪽으로 막 돌려야 되고 이런 게 많죠.

1999년에 운동선수와 셰프들의 방송 진출을 예측하셨고, 2023년인 지금은 무엇을 예측하세요?
지식인이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지식인, 학자들이 왔는데 그분들은 아무래도 (지식인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다 보니 오락물에 막 녹아들지는 않아요. 어느 정도 프로그램만 좋아지고 사람은 별로 뜨지 못하고 지나가더라고요. 지금 누가 뜨느냐고 물어본다면 일반인. 요즘은 1인 TV잖아요. 자기가 편집하고 다 하는 상황에서 잘되는 사람들이 뜨는 것 같아요. ‘꽈추형’, 그런 사람들이 뜨는 걸 말릴 수가 없죠.

누구든 그렇게 인기가 생기면 방송국같이 더 큰 플랫폼이 부를 거고요.
그렇죠. 방송국도 새로운 인물이 필요한데 못 만들어내잖아요. 예전에는 배우도 방송국 소속이었어요. 공채 탤런트라고 몇 년 동안 소속되어 있었죠. 지금 그거 없어졌잖아요. 그러니 타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가 (채널과 콘텐츠를) 만들어서, ‘랄랄’처럼 자기가 만들어서 뜨면 공중파나 종편이 쓰는 거죠. 그쪽도 콘텐츠가 없으니까.

이경규 님처럼 훈련받은 방송인이 보시기에는 그렇게 새로 들어온 일반인이 어떻습니까?
그걸 어떻게 뭐라고 하겠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끼리 뭉쳐놓고 프로그램을 만들면 잘 안 될 거예요. (유튜브에서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부캐’ 가지고 했던 건데, 여러 사람 사이에 끼면 자기 ‘부캐’를 못 하잖아요.

그 말씀을 들어보니 예능 프로그램 진행은 또 다른 능력이겠네요. 유재석이나 강호동처럼.
다른 능력이죠. 여러 사람을 지휘하며 사람들한테 말 시키는 건, 유튜브 하시는 분들이 하기에는 아직이라고 봅니다. 유튜버 중 MC가 나오기에는 트레이닝이 덜 돼 있기 때문에. 그래서 (유튜버 출신) MC가 안 나오잖아요.

그렇네요. 여전히 유재석, 강호동.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일본에서는 MC를 보는 사람이 20명 정도 있고, 한 2백 명이 고정 패널을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MC를 보는 사람이 많으면 20명. 패널은 1백 명 정도. 일본은 시장이 조금 더 크니까(고정 패널이 많은 대신) 유튜버가 별로 없죠. (유튜버의) 인기가 한국 같지는 않아요. 우리나라는 새로운 걸 잘 받아들이는 것 같습니다. 그 점에서 일본과 차이가 있는 것 같고요.

이경규 님은 한국 MC 20명 안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시고요.
저요? 제가 하려고 한 게 아니라 하다 보니까 그렇게 돼버린 거예요. 저는 MC 될 줄도 몰랐어요. 옛날에는 경상도 말 하는 MC를 용납 못 했어요. (고치려) 많이 노력했죠.

코미디언의 유튜브 활동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십니까?
굉장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어요. 실질적으로 코미디라는 게 3~4명이 해보면 그중 한 사람이 떠요. 이 사람이 제일 웃기게끔 몰아주는 걸 ‘받쳐준다’고 그러죠. 주위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받쳐주는 사람은 뜨는 게 늦어져요. 가려져 있으면 자기가 나가고 싶어도 선배들이 먼저 나가고, 좀 더 인기 있는 사람이 먼저 하고, 그다음에 자기 차례죠. 그런데 유튜브에선 그 순서가 없어졌어요. 그만큼 빨리 뜨기도 하고요.

대신 그만큼 빨리 사라지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이경규 님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계속 새로운 곳으로 가는 걸 멈추지 않았습니다.
TV나 새로운 걸 보는 걸 좋아합니다. 쉽게 말하면 저희 일은 냉장고와 비슷해요. (기능은) 똑같은데 (환경을) 조금씩 바꿔줍니다. (재미를) 보여주는 장소가 바뀌면 조금씩 달라 보이겠죠. 그래서 많은 플랫폼이 생긴 게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됐습니다.

어느 분야에서나 내가 잘할 수 있는 곳에서만 계속 활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업자도, 직장인도, MC나 코미디언도요. 저는 그것도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경규 님은 계속 도전했습니다.
저는 조금 그런 성향이 있어요. ‘‘이렇게 가다가는 방송국이 날 내치겠구나’라는 느낌이 오면 빨리 종편으로 뛰자.’(웃음) 이런 동물적인 느낌으로 살았습니다. 케이블 TV 출연도 제가 제일 먼저 시작했을 거예요. tvN에서 <화성인 바이러스> 하고 있는데 종편이 개국했어요. 바로 갔죠. 채널 A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 어부>. 뭔가 새로 생기면 바로 가야 돼요.

언젠가 어느 방송작가께 ‘지금 현재 방송 스태프 중 가장 고된 팀이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 어부>다’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노동이죠.(웃음) 힘들어요. 우리는 동해 낚시 있으면 새벽 4시에 갔다가 저녁 7시에 들어와요.

진짜요? 저도 동해 문어 출조 취재 나갔다가 촬영 불가 상태가 되어 돌아온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상태가 안 좋아져도 계속하나요?
스태프들 멀미 많이 하죠. 멀미하면 구석에 눕혀놓고 계속 가는 거예요. 멀미하면 뒤에 실어놓고 우리는 계속 낚시를 해요. 저는 원래 멀미를 안 해요. (낚시는) 어릴 때부터 했고.

낚시뿐 아니라 취미가 많으시죠 쿵후, 애견 일이 이렇게 바쁜데 취미는 어떻게 하십니까?
취미를 다 프로그램으로 했잖아요. 요즘은 또 내가 무슨 취미가 있나 생각 중이에요.

취미는 일이 될 줄 모르고 하십니까?
아니죠. 예를 들어 골프를 하면서 내가 골프에 돈을 이렇게 많이 썼는데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까, 프로그램으로 해야겠다. 그래서 기획해서 하자고 그랬죠.

그럼 이경규 님은 영화 사랑으로 유명하시니 영화 프로그램도 하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안 하는 이유가 있어요. 내가 영화를 제작하면 (그런 프로그램이) 나한테 독이 되어 돌아와요. 내가 남의 영화를 비난하면 충무로 영화인에게 얼마나 많은 비난을 받겠어요. 그건 조금 불안하더라고요.

여전히 영화 제작의 꿈이 있나요?
그럼요. 계속. 시나리오도 있지만 비밀입니다. 아직 될지도 모르겠고요. 하긴 할 겁니다.

방송은 생업, 영화는 명예라는 말씀을 종종 하셨는데요. 이번 팟캐스트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라디오는 굉장히 소중한 추억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난 잘 몰랐는데 옛날에 내가 시도 낭독한 적이 있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라디오는 목소리로 가는 거잖아요. 나이를 먹으면 제일 먼저 눈이 안 좋아지고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게 목소리예요. 잘 다듬고 관리하면 목소리는 그렇게 늙지 않아요. 그러니까 몸을 좀 못 쓰게 되더라도.

이를테면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 어부> 같은 게 힘들어져도요.
예. 만에 하나 어딘가 다쳐서 영상을 못 해도 라디오는 계속할 수 있잖아요. 노후 대비용.(웃음) 오디오 콘텐츠가 나이 먹어서도 꾸준히 할 수 있는 매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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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경력이 40년 이상이니 방송 촬영 현장에서 체감하시는 변화도 아주 클 것 같습니다. 촬영 장비도 그렇고요. 생각나시는 것 중 가장 큰 변화는 무엇입니까?
카메라가 너무 많다는 거죠. 일본에서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제작사 사장님과 밥을 먹은 적이 있어요. 제가 물어봤어요. “배 위에서 낚시를 합니다. 그럼 카메라 몇 대를 쓰시겠습니까?” 사장님의 예상은 5대였어요. 제가 50대를 쓴다고 하니 깜짝 놀라시더군요.

저도 지금 말씀 듣고 조금 놀랐습니다. 큰 배가 아닐 텐데 어떻게 50대를 씁니까?
50대 쓰죠. 곳곳에 거치된 카메라 있고, 드론 띄우고, 1인당 한 명씩 다 카메라 붙어 있고 그 소스가 굉장히 많죠.

그렇다면 출연자도 다른 방식으로 임해야겠습니다만 편집도 어렵지 않습니까? 최종본 파일을 이루는 소스가 그만큼 많은 건데요.
그게 어려워요. 프로그램을 자세히 보면 아시겠지만 (요즘 프로그램은) ‘카메라 무빙’이라는 게 없어요. 카메라의 움직임이 없다고요. 전부 다 컷, 컷, 컷, 컷. (카메라가) 이 사람을 보다가 쓱 저 사람을 보고, 이런 게 없습니다.

‘카메라 워크’라는 게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 예능에는 없네요.
일본 오락물에는 아직 카메라 워킹이 참 많아요. 우리는 없어요. 예전에는 드라마나 영화 쪽에 진정한 카메라 감독님이 있었어요. 지금은 전부 VJ예요. 그냥 이렇게 (서서 찍고) 있어요. 저는 “그만 찍어. 뭐 소장하려고 그러니, 그만 찍어라”라고 하지만.(웃음)

예전 예능에는 카메라 워크가 있었겠죠. 그때 카메라는 몇 대였습니까?
<이경규가 간다, 양심냉장고> 할 때는 ENG 한 대. 메인 ENG 카메라 하나, (운전자 교통법규 준수의 표식인) 정지선이 찍히는 6mm 카메라 하나. 옛날에는 6mm 카메라를 들고 왔다 갔다 하면 카메라 감독님이 뭐라고 했어요. “어디서 6mm가 지금 이걸 찍고 있는데 뭐 하는 거야!” 그때 유독 그 갈등이 심했어요.

6mm 캠코더와 ENG 카메라 사이에서요?
6mm 카메라맨은 비기너잖아요. 카메라 감독님은 공부해서 감독이 된 사람이에요. 그리고 장비는 어깨가 빠질 것처럼 무겁죠. 그런데 6mm 카메라가 왔다 갔다 하는 게 싫었을 거예요. 그러다 (콘텐츠 제작이) 외주로 많이 넘어가다 보니 카메라맨이 다 없어졌어요. 저도 (현장에서 만난) 저 사람이 카메라를 얼마나 많이 공부했는지 잘 몰라요. 그렇게 돼버렸어요.

아까 지나가듯 말씀하셨지만 이경규 님은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시대에서 누구나 자기 채널을 열 수 있는 유튜브 시대까지 살아남았습니다. 생존과 성공의 비결을 자평해주실 수 있습니까?
운이 따른 것도 있죠. 이거 하다가 갈 때 되면 이런 매체가 또 하나 생기고, 이렇게 갈아탈 수 있는 타이밍이 좋았어요.

타이밍이 잘 왔다기보다는 잘 읽으신 거 아닐까요? 계속 머무르다가 주춤했던 분도 있잖아요. 환경은 누구한테나 똑같았는데 선생님은 계속 잘 옮기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다른 길을 (갔죠). 야외 촬영도 제가 처음 했어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을 가지고 몰래카메라 스튜디오에서. 외국 나가서 촬영하는 것도 제가 처음으로 했죠. 스튜디오에서 코미디언이 콩트를 하고 있을 때 저는 야외에서 촬영하고 있었어요.

그 옛날에 왜 그런 도전을 하셨어요?
야외에서는 더 연기가 안 되니까요. (날것의 뭔가가 나오니까요?) 네. 그게 더 저는 좋았어요.

어떻게 그 흐름을 계속 읽으십니까? 그게 아까 말씀하신 동물적인 본능입니까?
그런 거겠죠(부끄럽다는 듯 크크크 웃음). 그런 운이 좀 따라요. 팟캐스트도 내가 하게 될 줄 몰랐어요.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잘 모르겠어요. 안 하지는 않았잖아요. 그러니까 좋았던 것 같아요.

방금 질문은 인터뷰 질문인 동시에 저의 개인적 궁금증이기도 합니다. 저희 잡지 일도 지금 유행을 반영하는 일이고, 언제 그만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더라고요. 뭔가 만들어내는 분야의 선배께 여쭙는 마음으로 오래가는 비결을 재차 여쭤봤습니다.
자리를 비우면 안 되죠. 끝까지 자리를 비우면 안 됩니다. 저는 제 대신 녹화를 한 사람이 없어요. 예를 들어서 누가 다쳐서 대신 다른 사람이 하루 MC를 봐주고 그런 거 있잖아요. 저는 제 프로그램에서 한 번도 그렇게 해본 적이 없어요.

개근을 하신 셈이군요.
그렇죠. 조기 축구하다가 다리 부러져서 잠깐 쉬면 다른 사람이 MC 봐줄 수 있죠. 저는 조기 축구를 안 해요. 몸이 다칠 수 있는 것들을 안 합니다. 그러니 누가 나 대신 녹화한 적이 없어요. 방송을 펑크 낸 적도 한 번도 없고. 축구선수는 축구를 잘하는 것도 중요한데 부상을 안 입는 게 제일 중요해요. 메시는 부상을 안 입어요. 그래서 계속할 수 있어요. 우리 직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다치면 안 돼요. 쉬면 안 돼요. 부상당하지 않고 계속해야죠.

플레이 스타일이 변해도 플레이는 계속하라.
당연하죠. 그런 것들이 오래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았나 합니다. 자리를 비우지 마세요. 항상 얘기합니다. 하나 전학 가면 또 하나 전학 온다고.

이경규 님은 국내외 방송인이나 희극인 중에 롤모델이 있었습니까?
사실상 없었어요. 롤모델이 저예요.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를 스스로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많은 희극인이 존경하는 분으로 이경규 님을 꼽습니다. 본인은 누구를 존경하십니까? 롤모델과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인가요?
존경까지는 하지 않아요.(웃음) 내가 나를 잘 아는데 어떻게 나를 존경할 수 있겠어요. 우리나라에선 송해 선생님, 외국에서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90대인데도 연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정말 대단합니다. 좋아해요.

저는 이경규 님이 한국의 클린트 이스트우드 같은 분이라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국의 <그랜 토리노> 같은 걸 만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꿈도 있으십니까?
그럼요. 영화를 만드는 거죠. 지금까지 7년마다 하나씩 3편을 했더라고요. 하나 하는 데 5~7년 걸리니까, 7개까지 만들면 다 만들지 않는가 싶어요.

인터뷰는 거의 끝나갑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끝없이 열심히 일한 사람. 자기 일에 매진했다가 가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죠.

 영화를 사랑하는 이경규가 <아레나> 독자를 위해 꼽은 영화 5선 

<그랜 토리노> 클린트 이스트우드, “평범한 걸 비범하게 만든 영화. 그 영화가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를 굉장히 좋아한다.”
<용쟁호투> 로버트 클루즈, “멋있는 영화. ”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정말 재미있게 본 영화.”
<오토라는 남자> 마크 포스터, “요 근래 본 영화 중에서 참 좋았던 영화.”
<헤어질 결심> 박찬욱, “박찬욱 감독 영화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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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신동훈

202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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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 빈곤, 질병 등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들을 기술로 해결한다. 채팅 앱으로 아프리카의 허기를 채우려는 농업테크, 전기차 시대에 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기회를 주는 모빌리티 기업, 착한 박테리아로 식품 유통기한을 늘리는 푸드테크, 저소득층 아이들의 발달장애 치료를 위한 에듀테크, 중력을 사용한 신개념 청정 에너지까지. 인류애를 품은 스타트업을 소개한다.

  • FASHION

    DEEP BLUE

    저 깊고 찬연한 하늘에 닿을 듯이.

  • ISSUE

    오메가 X 황대헌

  • FASHION

    고유한 이름의 스니커즈

    저마다 고유한 이름을 간직한 새 시즌 스니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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