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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쇼의 하루

“웰컴 투 더 그레이티스트 쇼 인 더 월드.” 지금 가장 뜨거운 유튜브 쇼, <피식쇼>의 녹화 현장을 찾았다.

UpdatedOn February 2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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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 쇼를 시작하기 전

평일 오전 홍대 주변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동네 어딘가의 길가에 카니발이 서고 남자들이 내렸다. 한 명은 키가 크고 두 명은 중간 키. 이들은 나를 보고 인사를 건넸다. “<아레나>에서 오셨다고요? 이야기 들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인 유튜브 <피식쇼> 녹화 현장. 나에게 인사한 사람들은 <피식쇼>에 출연하는 코미디언이었다. 이용주, 정재형, 김민수.

<피식쇼>는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에서 만드는 콘텐츠 시리즈 중 하나다. 쇼 콘셉트는 교포 슈퍼스타들이 진행하는 인기 팟캐스트. 캐릭터 콘셉트는 한국과 영어를 섞어 쓰는 교포 슈퍼스타. 그래서 <피식쇼>는 영어로 방송한다. 이런 세계관으로 구성된 쇼이므로 출연자는 교포, 한국계 미국인, 혹은 영어가 능숙한 사람들이다. 한국 코미디언이 한국계 외국인 교포를 연기하는 토크쇼 같은 거라 정리하면 되겠다.

사람에 따라 이게 뭐냐 싶을 수도 있으나 중요한 건 이게 얼마나 성과가 나오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2022년 10월부터 지금까지 19개의 콘텐츠를 송출했다. 시즌 1에 무려 BTS의 RM이 출연하며 확실히 인기 유튜브 시리즈가 되었다. 처음에는 웃기기 위한 설정이었던 진행자들의 콩글리시(라기엔 사실 상당히 훌륭한 영어지만)가 오히려 해외 진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여러모로 새옹지마적인 면이 있는 쇼다.

오늘날 크리에이터들은 가슴속에 새옹지마라는 말을 새기고 살아야 한다. 어떤 게 터져서 ‘밈’으로 공유되어 창작자로서의 삶이 바뀔지 모르고, 그 희망 말고는 기댈 곳 없이 사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창작자들은 점점 친절해진다. 피식대학의 세 남자도 그랬다. 이들은 쇼 녹화 직전에 크리에이터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취재진을 배려해주었다. 먼저 인사를 건네고 우리와 이야기를 나눴다. 혹시 우리가 매체니까 그러는 것이라 생각하기엔 그들은 그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 똑같이 친절하고 친근했다. 나는 그게 이들의 성정이라 생각하지만, 만약 취재진 앞에서 한 연기라면 그건 더 대단한 일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모두 공중파 코미디언 출신이다. 셋 중 나이가 가장 많은 이용주(1986년생)는 2016년 SBS 16기 공채 개그맨이다. 정재형(1988년생)은 2014년 KBS 29기, 김민수(1991년생)는 이용주와 SBS 개그맨 동기다. 모두 공채 코미디언이라는 기존 코미디 시스템에서 출발해 지금의 독자적인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독자적인 시스템은 한 번에 만들어지지 않고, <피식쇼> 역시 여러 가지 시도를 거쳐 지금의 <피식쇼>가 되었다.

<피식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 시대의 쇼라 부를 만한 요소가 있다. 만들어지고 커나가는 배경이 스타트업에서 말하는 ‘트라이얼 앤 에러’를 반복하는 과정이다. <피식쇼>가 만들어진 계기는 유튜브 팬페스트의 일회성 이벤트 ‘더 토크’였다. 여기서 지금의 <피식쇼> 멤버들은 세계적인 코미디언의 모습을 연기했다. 그때도 영어로, 지금과 같은 콘셉트로. 그 콘셉트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그 캐릭터들이 진행하는 팟캐스트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만반의 준비 끝에 상품을 내보내기보다는, 계속 던져보다가 반응이 나오면 판을 키우는 스타트업의 문법과 비슷한 발상이다.

옆에서 지켜봐도 피식대학 콘텐츠의 핵심은 개방성과 유연성 같았다. 취재 시작 시간은 오전 11시. 쇼 촬영 예정 시간은 낮 12시. 이때까지도 대본은 완성되지 않았다. 이들은 촬영 1시간 전에 진행하는 회의에서까지 대본을 새로 만들고 고쳤다. 준비가 부족한 게 아니라 마지막까지 준비하는 것이다. “여기서 ‘니주’가 들어가고” “여기서 ‘난방비 6억’ 이야기가 나오고”처럼 웃음의 지뢰 역할을 하는 요소에 대한 회의가 끝없이 오갔다. “(녹화) 직전에 나온 아이디어가 좋을 때가 있더라고요.” 회의 장면을 지켜보고 있으니 김민수가 건넨 말이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그 자리에 있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아이디어 회의에 참여한다는 점이었다. 체계가 확립된 코미디 쇼는 대본을 쓰는 작가가 있고 그를 토대로 연기하는 코미디언이 있다. <피식쇼>에는 이른바 메인 작가가 없다. 출연자를 포함해 모두가 작가다. 피식대학이 속한 메타코미디의 담당 매니저도 아이디어를 보태고 해당 콘텐츠를 진행하는 PD도 아이디어를 더한다. 물론 아무나 대본에 낄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 쇼는 이런 것이다’라는 콘셉트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몇 명 되고, 그 모두가 가장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일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는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 녹화가 시작될 시간이었다. 이용주가 손뼉으로 슬레이트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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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식쇼>를 촬영하기 전. 카메라나 스튜디오 세팅이 간소한 편이다.

<피식쇼>를 촬영하기 전. 카메라나 스튜디오 세팅이 간소한 편이다.

  • <피식쇼>를 촬영하기 전. 카메라나 스튜디오 세팅이 간소한 편이다.<피식쇼>를 촬영하기 전. 카메라나 스튜디오 세팅이 간소한 편이다.
  • 촬영장 옆 대기실에서 시작 직전까지 회의를 하는 피식대학 멤버와 스태프들. 이 회의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어서 아직 평상복이다.촬영장 옆 대기실에서 시작 직전까지 회의를 하는 피식대학 멤버와 스태프들. 이 회의가 끝나고 옷을 갈아입어서 아직 평상복이다.
  • 촬영 시작 직전의 모습.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도 계속 출연진과 이야기를 나눈다.촬영 시작 직전의 모습.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도 계속 출연진과 이야기를 나눈다.
  • 쇼가 시작되기 직전 자신의 자리에 앉아 쇼를 점검하는 이용주. 전반적으로 촬영장 분위기가 친근했다.쇼가 시작되기 직전 자신의 자리에 앉아 쇼를 점검하는 이용주. 전반적으로 촬영장 분위기가 친근했다.
  • 촬영 전에 긴장을 풀고 있는 김민수. 스태프와 아티스트가 다들 편안한 사이인지 자유롭게 스튜디오를 오갔다.촬영 전에 긴장을 풀고 있는 김민수. 스태프와 아티스트가 다들 편안한 사이인지 자유롭게 스튜디오를 오갔다.
  • 촬영 전에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재형.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창작자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촬영 전에 스태프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재형. 좋은 일이 일어나고 있는 창작자 특유의 기운이 있었다.
  • 대본 프롬프터는 시작 직전까지 업데이트된다. 피식대학의 요청에 따라 내용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프롬프터는 설정일 뿐, 실제 현장에서의 재미는 출연진이 이 설정을 얼마나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대본 프롬프터는 시작 직전까지 업데이트된다. 피식대학의 요청에 따라 내용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프롬프터는 설정일 뿐, 실제 현장에서의 재미는 출연진이 이 설정을 얼마나 살리느냐에 달려 있다.

이들은 적절한 시기에 성공해
자신감과 남들을 향한 매너를 모두 유지할 수 있었다.

12:30 ‘더 쇼’

<피식쇼> 무대에는 큰 장치가 없다. 테이블과 의자가 있고 뒤에 <피식쇼>의 메인 타이틀을 띄운 벽이 있다. 가운데에 이용주가, 왼쪽에 정재형과 김민수가 앉는다. 오른쪽은 게스트의 자리다. 카메라는 한 사람에 한 대씩에 더해 전체 화면을 잡는 카메라 한 대. 쇼라 치면 그렇게 카메라가 많은 편은 아니다. <피식쇼>의 녹화 장면을 실제로 구경한 결과 대본은 있었으나 라이브 공연에 가까웠다. 녹화가 시작되자 이용주가 우렁차게 발성하며 쇼를 시작했다. “디스 이즈 더 피식쇼!”

오늘 취재의 약속 중 하나가 게스트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오늘의 게스트는 ‘나왔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피식쇼>는 흐름상 게스트가 나오기 전에 주역 셋이 잠깐 대화를 하다 게스트가 나오면서 쇼가 시작된다. 이날도 게스트가 진행자들의 멘트 후 멋지게 걸어나왔다. 이들 역시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유명인. <피식쇼>가 유명해지면서 게스트가 공개될 때마다 비슷한 반응이 있다. ‘그 사람까지 나온다고?’ 이날의 게스트도 그런 사람이었고, 앞으로 나올 사람들도 그렇다. 아주 유명한 사람들이 준비되어 있다.

녹화가 시작되었을 때도 이들의 준비성을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게스트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고 상상해 맞춤 준비를 해두었다. 코미디는 콘텐츠 특성상 출연자에게 장난을 치게 된다. 그때 출연자가 어떻게 반응하느냐, 그 반응에 또 진행자가 어떻게 반응해서 웃음을 끌어내느냐, 그게 코미디 쇼의 묘미다. 매번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려면 만드는 사람들이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피식쇼> 사람들도 그 준비와 결과물을 보여주었다. 이들은 게스트를 열심히 파악한 후 준비된 코멘트를 던지기 시작했다. 웃음 지뢰나 혹은 웃음 폭탄처럼. 그중에는 적중하는 것도 있고 적중하지 않는 것도 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건 그들이 그 모든 상황에 대비된 듯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 결과 <피식쇼>는 촬영 현장에서 최대치의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A라는 농담을 걸었을 때 게스트가 잘 받아치면 농담의 정도를 더욱 올린다. 어떤 게스트는 한국어를 모르거나 <피식쇼>의 성격을 몰라서 리액션이 수줍을 수도 있다. <피식쇼> 사람들은 그 역시 웃음 소재로 쓸 준비가 되어 있다. 구박한다 해도 정말 구박하는 게 아니라 ‘구박하는 장면’을 만든다는 느낌이 든다. 실제로 이날의 게스트 둘은 <피식쇼>에서 상당히 즐거워했다. <피식쇼>가 바랐을 열정적인 리액션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럼 이들은 “오케이, 오케이”라고 하면서 바로 넘어갔다. 웃길 수 있는 소재를 여전히 많이 준비해뒀다는 것처럼.

<피식쇼>는 일주일 중 3일 정도는 회의만 한다고 했다. 콘텐츠 제작 과정에서 프리 프로덕션에 상당한 공을 들인다. 프리 프로덕션 회의를 하는 동안에는 온갖 자료와 농담의 흐름이 오간다. 게스트의 정보, 주요 농담 포인트, 그날 진행할 농담 아이템의 종류와 그 아이템들을 늘어놓을 순서까지. 그 결과가 게스트들이 편안해하는 모습이었다. 게스트 한 명은 <피식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다른 한 명은 이 쇼를 처음 본다고 했다. 그러나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쇼를 즐겼다.

모두가 쇼를 즐길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촬영 시간이 짧아서다. 이날 <아레나> 팀이 구경한 <피식쇼>의 녹화 시간은 1시간 30분 남짓. 다른 촬영 때도 1시간에서 2시간을 넘기지 않는다고 했다. 그 결과 모두가 최대한의 에너지를 쏟으면서 효율적으로 촬영할 수 있었다. 이날 녹화 역시 쉬는 시간 없이 한 번에 촬영이 끝났다. 이 정도면 게스트 입장에서도 부담이 줄어든다. 스튜디오에서 한 번 촬영하고, 대기실에서 인서트 영상을 잠깐 촬영하면 요즘 한국에서 가장 각광받는 유튜브 토크쇼에 나갈 수 있다. RM이든 박재범이든 2월에 출연한 윤도현이든, 나오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이번에도 촬영은 한 번도 쉬지 않고 끝났다. 말 그대로 원테이크. 쇼가 끝나고 진행자들과 게스트는 살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피식대학의 사무실 벽. 이들이 만들어낸 부캐의 역사가 사진으로 붙어 있다.

피식대학의 사무실 벽. 이들이 만들어낸 부캐의 역사가 사진으로 붙어 있다.

피식대학의 사무실 벽. 이들이 만들어낸 부캐의 역사가 사진으로 붙어 있다.

1 피식대학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요소들. 실제로 피식대학의 머그컵을 쓰고 있었다. 
2 카메라와 촬영 장비에도 피식대학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3 정재형은 피식대학의 스타디움 점퍼를 입고 다녔다.
4 피식대학의 깃발. 자신의 세계관이 저렇게 깃발로 만들어지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1 피식대학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요소들. 실제로 피식대학의 머그컵을 쓰고 있었다. 2 카메라와 촬영 장비에도 피식대학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3 정재형은 피식대학의 스타디움 점퍼를 입고 다녔다. 4 피식대학의 깃발. 자신의 세계관이 저렇게 깃발로 만들어지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1 피식대학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요소들. 실제로 피식대학의 머그컵을 쓰고 있었다. 2 카메라와 촬영 장비에도 피식대학의 스티커가 붙어 있다. 3 정재형은 피식대학의 스타디움 점퍼를 입고 다녔다. 4 피식대학의 깃발. 자신의 세계관이 저렇게 깃발로 만들어지면 기분이 좋을 것 같다.

여의도 코미디 시절은 갔지만
피식대학 멤버들은 여전히 그 근처에 살고 있다.

14:30 쇼가 끝나고 난 뒤

쇼가 끝나고 게스트가 떠난 뒤 피식대학 멤버들은 <아레나>를 위한 촬영을 했다. 게스트가 떠나고 촬영팀이 장비를 정리하는 중에도 <피식쇼> 코미디언들은 계속 친절했다. 살다 보면 친절은, 특히 유명인의 친절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님을 알게 된다. 그 면에서 <피식쇼> 코미디언들의 친절은 따로 떼어내어 언급할 가치가 있다.

<피식쇼> 코미디언들의 친절과 배려는 이들의 긴 활동 기간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다. <피식쇼>는 히트 콘텐츠지만 아직 이들이 유재석 같은 스타는 아니다. 2월 6일 릴리즈된 YB(윤도현밴드)와의 <피식쇼>에서 이들은 서로의 인스타그램 팔로워 수로 이야기를 나눴다. 윤도현은 8.9만. 이용주는 3.4만. 김민수는 3.8만. 정재형은 1.8만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들을 아주 좋아하고 모든 <피식쇼>를 다 챙겨 봤으며 콘텐츠의 이정표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도 생각해서 이들을 섭외했다. 그러나 <피식쇼>에 열광하는 입장에서도 이들이 아직 누구나 아는 톱스타가 아닌 건 사실이다. 동시에 이들은 성공하기 시작한 사람이다. 서머싯 몸은 어딘가에서 너무 빠른 성공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고 너무 늦은 성공은 자신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고 했다. 이들은 적절한 시기에 성공해 자신감과 남들을 향한 매너를 모두 유지할 수 있었다.

녹화가 끝나고 우리는 피식대학 사무실로 함께 갔다. 촬영 스튜디오 근처의 건물에 사무실이 있었다. 사무실 역시 소품과 빈백 소파가 있는 콘텐츠 스튜디오 같은 느낌이었다. 이들과의 이야기는 현실적이면서도 냉철한 기획자 겸 퍼포머와의 인터뷰 같았다. 이들은 여기서는 웃긴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일반 도로에서 보통 차를 모는 레이스 드라이버처럼.

이용주는 처음에는 힘든 상황에 뭐라도 해보려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코미디언으로 성공하는 길은 정해져 있다. 공채 코미디언. 공채 코미디언이 된 뒤에는 엄격한 도제식 교육이 따라온다. 이용주는 동기와 비교했을 때 데뷔가 늦은 편(다섯 살 어린 김민수와 동기)이라 이 문화를 이해할 수 없었다. 공중파라 소재는 한정되었고, 각종 규칙은 많았으며, 녹화 방식도 피로도가 높았다. <개그콘서트>나 <웃찾사> 같은 개그 프로그램들이 폐지되면서 코미디언은 새로 살길을 찾아야 했다. 이용주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작했다. 그때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던 유병재가 자극이 되었다면서.

<피식쇼> 멤버들은 스탠드업 코미디에서 시작해 유튜브에서 활짝 피었다. 유튜브에서 일부 코미디언들이 전성기를 맞았다. 유행어나 콩트, 슬랩스틱 등 기존 코미디 프로그램의 문법을 벗어났다. 피식대학이 유명해진 소재 역시 다양한 패러디 콘텐츠였다. <피식쇼>도 질 높은 패러디를 위해 미국 팟캐스트와 재미 교포라는 특정 레퍼런스를 충실히 모사했다. 이들이 진행해 인기를 끌었던 B대면 데이트나 05학번이즈백, 05학번이즈히어 모두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자세히 취재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코미디다. 기존 코미디 문법으로 보면 좀 더 정극이나 시트콤에 가까울 수도 있다. 뭐라 표현하든 기존의 TV 코미디와 다른 건 분명하다. 뭔가 다르다는 것도 이들의 성공 요인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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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길고 크게 보면 이건 한국이 일본의 문법을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국이 사회 전반을 이루는 요소에서 일본을 크게 참조했다는 건 비밀이 아니다. 방송에도 일본의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나미다(눈물, 눈물 나는 코드라는 뜻), 니주(이중, 복선을 깐다는 뜻), 오도시(터뜨리다) 등 일본의 영향이 아직 강하게 남아 있다. <무한도전>이 일본풍 슬랩스틱 예능을 노골적으로 모사한 것도 유명하다.

한국은 21세기로 넘어오며 일본 레퍼런스보다 더 다양한 레퍼런스를 받아들이는 중이다. 특히 도드라지는 게 미국 레퍼런스다. 한국과의 관계 때문이기도, 지금 가장 앞선 곳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흥미롭게도 <피식쇼> 역시 미국인과의 교류 끝에 지금의 모습을 만들 수 있었다. 이용주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준비하던 중 교포 코미디언 대니 초를 만났고, 그때 코미디를 새로 배웠다고 했다. “예전에 하던 건 말하자면 ‘끼’로 하는 것에 가까웠어요. (대니 초를 만나고) 완전히 새로 배웠죠. 웃음의 구조를 짜는 방법을요.” 그 결과 지금의 <피식쇼>는 ‘니주 깐다’는 일본 용어와 함께 미국식 코미디의 구조를 차용하는 하이브리드 코미디 콘텐츠가 되었다.

<피식쇼>가 받은 영감의 원천은 유튜브 세상에 남아 있다. <피식쇼>의 모체가 된 ‘더 토크’ 영상에서 백인 리포터가 <피식쇼> 멤버들에게 롤 모델을 묻는다. 월드 스타이니 멤버들은 대단한 이름을 말한다. 김연아, 손흥민, 이순신, 세종대왕, 스티븐 제라드, 그 사이에서 이용주가 흐르듯 한마디 보탠다. “대니 초.” 그 영상 가장 위에 고정된 영어 답글이 있다. “아냐 친구들. 너희들이 내 롤모델이야(No Guys. You are my role models).” 이 답글을 단 사람이 대니 초다. 교포 스탠드업 코미디언이다. <피식쇼>는 이렇게 넓은 세상의 코미디 구조를 익힌 덕에 넓은 세상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다.

취재를 하면서 이것저것 묻자 이번 취재를 실무적으로 연결해준 메타코미디 김성구 매니저는 약간 걱정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들의 코미디가 너무 계산된 것처럼 보이기를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홍상수 영화 속에도 치밀한 계산이 있고 요즘의 콘텐츠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립해야 한다. 어떤 면을 철저히 계산해야 다른 면에서 크리에이터들이 뛰어놀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현대 축구의 기본이 압박 속에서의 공간 창출이듯, 현대 콘텐츠 산업도 다양한 제한 속에서 개성과 재미를 보여줄 기회를 창출하는 게임이다. 그게 요즘 유튜브 코미디언들이 잘하는 일이고, 피식대학은 그 선두에 있다.

인터뷰가 끝날 때쯤 스스로 예상하는 <피식쇼>의 수명을 물었다. 인터넷의 히트 밈이 2개월을 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말이 있다. 작년 이맘때 유행한 밈을 떠올리면 공감이 갈 것이다. 이들도 질문에 진지하게 답했다. <피식쇼> 캐릭터들이 스핀오프로 나갈 수 있어야 캐릭터의 수명이 더 길어질 거라고 김민수가 말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취재가 끝나고 사진가와 헤어지는 길에 홍대 거리를 잠깐 걸었다. 홍대는 지난 십수 년간 서울에서 가장 많이 변한 번화가 중 하나다. 홍대를 넘어 세상이 변했다. 코미디는 여의도 방송국과 공채 코미디언들의 것이었으나 이제 코미디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여의도를 떠났다. 방송은 상암에, 코미디언들은 자신들의 유튜브 채널 속에 있다.

전통적으로 희극인들은 여의도와 가까운 영등포나 홍대 쪽에 많이 살았다고 한다. 여의도 코미디 월드에 가기 편해서다. 여의도 코미디 시절은 갔지만 피식대학 멤버들은 여전히 그 근처에 살고 있다. 다만 이들은 이제 여의도 대신 홍대로 출근한다. 일주일에 3일 회의해 홍대에서 녹화를 하고 편집한 쇼가 전 세계로 퍼진다. 처음에는 전 세계로 퍼진다는 말이 농담이었지만 RM이나 갓세븐의 뱀뱀이 나온 뒤 이 말은 현실이 되었다. 앞으로도 더 많은 쇼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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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신동훈

2023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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