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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버팀목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준 건 무엇인가.

UpdatedOn July 08,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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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국수, 감자전, 리슬링 와인

‘기묘한 날씨는 기묘한 행동을 불러온다.’ 매기 오파렐의 소설 <불볕더위에 대처하는 법>에 나오는 문장이다. 기묘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열대야가 찾아오면 나는 유난을 떤다. 달궈진 프라이팬에 올린 달걀이 된 듯한 느낌 때문이다(점점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생각하면 순진한 환상만은 아니다).

우선, 저녁은 뜨거운 밥 대신 무조건 차가운 면식이다. 제일 많이 먹는 건 요리법이 간단한 열무국수. 소금 넣은 끓는 물에 소면을 풀고, 그사이 열무김치를 듬성듬성 썰고, 익은 소면을 흐르는 물로 씻은 다음 열무김치를 얹으면 그만이다. 초고추장, 설탕, 식초, 깨를 입맛대로 추가해도 좋다. 열대야가 지속되는 7월에 맛있는 열무국수를 먹으려면 6월에 덜 익은 열무김치를 미리 사서 익혀두는 것을 추천한다. 조금 색다른 열무국수를 먹기 위해선 미리 준비할 게 한 가지 더 있다. 적환무를 화분에 심는 것. 적환무는 20일이면 다 자란다. 물김치를 담가도 되고, 잎과 줄기를 무쳐 국수에 비벼 먹어도 좋다.

면식의 가장 큰 단점은 허기가 금세 찾아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감자전을 곁들인다. 감자를 깎고, 갈고, 물기를 제거하고, 소금 쳐서 구우면 끝. 귀찮으면 수분 제거는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여기에 차가운 리슬링 와인을 곁들이면 근사함이 추가된다. 리슬링 와인의 사과와 시트러스 향이 가을바람처럼 몸과 마음을 적셔준다. 너무 많이 마시면 안 된다.

몸에 열이 더 올라 다음 날 아침, 이글거리는 태양을 향해 물대포를 쏘고 싶은 억하심정으로 눈뜨게 된다. 포만감이 들면 밖으로 나가 달빛과 시원함이 스며 있는 인왕산 숲길을 30분 정도 걷는다. 열대야가 심한 날 밤 산책은 주변 이웃과 동지애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모두 불판 위에서 동등하게 끓고 있구나! 2021년 서울의 첫 열대야는 7월 13일에 시작됐다. 2020년보다 23일이나 이른 시점이었다. 여름을 두려움 없이 사랑했던 날들이 점점 아득해지는 우울한 시절이다. 이렇게라도 버틸 수밖에 없다.
WORDS 김기창(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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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열대야를 감히 이길 도리는 없다. 더위를 이기려고 해봤자 더 더울 뿐. 그저 견디면 또 지나가는 것이 계절의 순리라면 오히려 이열치열, 보기만 해도 땀띠가 돋는 <나의 해방일지>를 시청하겠다. 한여름 땡볕 아래 출근부터 헉헉대는 염씨 삼 남매와 땀에 전 티셔츠를 걸친 구씨를 보느라, 이 드라마에서 해방의 우선순위는 어쩌면 더위가 아닐까 싶다. 염씨들과 구씨를 꼬셔 ‘더위 해방클럽’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다.

6회까지만 보고 아껴둔 이 드라마는 여전히 여름이 한창인데, 인터넷에 떠도는 짤방을 보면 염씨들과 구씨가 겨울 코트를 입고 있어 화들짝 놀라게 된다. 드라마에서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여름도 결국 제풀에 꺾일 수밖에 없구나. 염씨들과 구씨도 그 징한 여름을 견디고 견뎌 지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시원한 바람이 스민다.
WORDS 박지수(<보스토크> 매거진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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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당고, 천년의 사랑 앱

이번 여름 열대야는 일찍 왔다. 5월 30일 초여름, 하늘에서 떨어진 운명적인 사랑을 만들며 열대야를 버텼다. <천년의 사랑: 운명의 사랑파인더>, 간장에 버무린 당고. 이 비현실적인 조합은 곧 있을 서울시립미술관 퍼포먼스로 인해 이루어졌다.
퍼포먼스 계획은 이렇다. 사랑을 꿈꾸며 잠 못 이루는 젊은 싱글 남녀를 위해 선착순 60명을 선정해 시대를 초월한 ‘조선시대 데이팅 앱’을 당고와 함께 제공한다.

선정된 참가자들은 앱이 제안하는 사랑 관심사 중 4개를 선택해 떡 위에 얹어 호감 상대에게 전달하면 된다. 관심사별로 재료도 다양하게 준비할 계획이다. <천년의 사랑: 운명의 사랑파인더>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만남에 가족 공리적 가치를 담아 모든 세대의 축복을 염원한다. 천년을 버틸 사랑이라면, 어떠한 조건과 한계도 초월해야 마땅하다. 조건과 한계 없는 이 계획을 구상하느라 뜨거운 더위를 버틴 나처럼.
WORDS 오주영(미디어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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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은 막걸리, 바질 오일

안국역에서 서촌까지 가는 거리 길목에 새로 생긴 작은 쇼룸에서 시음해본 후 홀린 듯 여러 병 구매한 ‘담은 생막걸리.’ 막걸리는 왠지 파전이나 도토리묵과 음미해야 할 것 같지만, 이 막걸리는 되려 디저트나 샐러드와 잘 어울린다. 잔에 따른 음료만 마시면 도무지 막걸리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부드러운 텍스처와 우유 같은 향미 덕분. 토마토에 바질 오일을 뿌린 간단한 음식과 페어링하면 조화를 이룬다.

막걸리가 생기자, 갑자기 요리에 푹 빠진 남편이 며칠 전부터 바질 오일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바질을 으깨어 면포에 걸러 올리브 오일과 섞으면 된다. 저렴한 가격의 올리브 오일도 순식간에 고급 오일로 변모한다. 막걸리에 바질 오일 뿌린 샐러드 조합 외에, 특히 자주 찾는 조합은 아이스크림과 바질 오일. 아이스크림 단맛을 바질 오일 풍미가 잡아줘 지루하지 않다. 우리는 거리에서 발견한 생막걸리를 마시며, 바질을 으깨며 올해 열대야를 버티고 있다.
WORDS 김영지(오브제 편집숍 로파 서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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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Photography 박원태

2022년 0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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