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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을 나서며

미술가의 발언이 그의 자유라면, 감상도 관객의 자유이길.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느끼고 싶은 대로 느낀 사람들이 쓰고 싶은 대로 쓴 전시 감상문이다.

UpdatedOn April 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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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1915,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혁명의 예술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카지미르 말레비치, 절대주의, 1915, <칸딘스키, 말레비치 & 러시아 아방가르드:혁명의 예술전>, 세종문화회관 미술관

대중의 취향에 따귀를


1. 빨간 문이 있는 하얀 방, N
흰 식탁보로 감싸인 6인용 식탁이 놓인 하얀 방. 말레비치의 ‘절대주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여인’과 칸딘스키의 ‘즉흥’ ‘즉흥 No.217, 회색 타원’ 작품이 사방에 걸려 있다. 잠시 후 빨간 문이 열리고 모델 같은 체형의 20대 남자 2명, 여자 2명이 차례로 들어와 의자에 앉는다.

여자1 (방 안을 둘러보며) 오! 전시장하고 비슷하게 잘 꾸몄놨네.
남자1 작품들 여기에 걸어놔도 괜찮은 거죠? NFT다 뭐다 말이 많던데….
남자2 사람 없는 것도 비슷하네요. 이 시국에 러시아 전시라고 다들 눈치를 봤나.
여자2 어이가 없어서. 스탈린한테 핍박받던 예술가가 대부분인데… 심지어 말레비치는 키이우 사람이라고.
여자1 키이우?
여자2 키예프, 우크라이나.
여자1 아아, 크흠(헛기침하며) 그나저나 방장님이 늦네?
남자2 방장이라니… 완전 아재 아니에요?
남자1 나이 들키지 않게 조심하죠. (사람들 웃음소리) 근데 칸딘스키 님은 왜 안 오셨지?
여자2 뭐야, 설마 지금 인트라넷 써서 못 오는 거 아냐? (사람들이 다시 웃는다.)
여자1 왜? 뭔데? 뭐가 웃겨?
남자2 (여자1을 무시하며) 다들 어땠어요? 저는 칸딘스키 작품이 적어서 아쉽던데.
남자1 그래도 말레비치의 ‘절대주의’를 직접 볼 수 있어서 좋았어. 회화의 기본적인 걸 거부하고 대상으로부터 완벽한 탈출을 시도한 점도. 그림이 그림 자체가 된다니! 그 문구가 참 잘 어울리는 거 같아. 대중의 취향에….
여자2 …따귀를 때려라!
여자1 그 정도야? 난 한샘 같은 가구점밖에 생각 안 나던데?

갑자기 고요해지는 방 안. 이때, 빨간 문을 열고 미모의 여성이 들어와 빈자리에 가 앉는다.

칸딘스키 죄송해요. 제가 좀 늦었네요.
남자2 무슨 일 있었어요?
칸딘스키 러시안잭 소비뇽 블랑을 한 병 사 오느라… 다들 음식은 준비하셨죠?
여자2 다이아몬드잭이랑 맞춘 거? 유치해.
여자1 그게 뭔데, 보드카야?

2. 작은 원룸, N
어둡고 지저분한 방 안. 컴퓨터 책상 앞에 얼룩진 트레이닝복을 입은 부스스한 머리의 사내가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모니터 옆에 놓인 러시안잭 와인병. 빈 병 안에는 말라비틀어진 장미꽃이 꽂혀 있다. 사내가 와인병 옆에 있는 소주병을 들어 잔에 소주를 따른다. 소주를 단숨에 마신 뒤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하는 사내.

3. 빨간 문이 있는 하얀 방, N
눈을 감고 맛을 음미하는 사람들. 모두가 만족한 미소를 띠고 있다. 칸딘스키가 먼저 눈을 뜬다.

칸딘스키 자,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Words 최종인(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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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퍼 엘리아슨(1967~), 우주 먼지입자, 2014, 스테인리스강, 반투명 거울 필터 유리, 강철줄, 전동기, 조사등, 직경 170cm, 테이트미술관 소장, T15131 2021 해외소장품걸작전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올라퍼 엘리아슨(1967~), 우주 먼지입자, 2014, 스테인리스강, 반투명 거울 필터 유리, 강철줄, 전동기, 조사등, 직경 170cm, 테이트미술관 소장, T15131 2021 해외소장품걸작전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오늘의 일기 (미세먼지 매우 나쁨)


<빛: 영국 테이트미술관 특별전>에 가려고 선크림을 바르다 런던에 살던 시절을 떠올리고 말았지. 알바 주급 1백 파운드를 받아 방값 내고 시내버스 정기권을 끊으면 감자 살 돈밖에 안 남았었지. 여가 생활은 참 사치스러운 단어였지. 감자는 아직도 지겹지. 그런데 런던엔 무료 미술관들이 넘쳐났고 그중에서 테이트 미술관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메뉴 같았지. 나처럼 피부 톤이 감자 때깔이 된 거지 새끼도 런던에서 빛나는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지.

그로부터 20년이 지났네. 빌어먹을 시간 왜 이렇게 신속하냐.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빛이라곤 보이지 않고 빚만 남부럽지 않을 정도인 감자 껍질 신세. 내 무명 작가 인생에도 과연 볕 들 날이 있을까. 로또 당첨에 가까운 확률 아닐까. 미안하다. 미안할 땐 미술관이지. 관람료 1만5천원은 비쌌지만 물 쓰듯이 썼지. <아레나>에서 원고료를 쏴줄 거니까.

이번 전시회에서 보는 순간 방귀가 나올 뻔한 작품은 바로 ‘우주 먼지입자’였지. 정수리에서 똥꼬까지 압도적인 전기 신호 같은 게 흐르며 부르르 떨리더라니까. 전화 온 줄 알았을 정도였지. 아앙, 누가 이런 멋진 작품을 만드셨나 봤더니, 올라퍼 엘리아슨이었지. 이 형은 구면이라 참 반가웠지. 20년 전 런던의 테이트모던에서 봤던 기획전 ‘날씨 프로젝트’에 거대한 인공 태양을 냅다 걸었던 바로 그 엉아였거든. 내 삶에도 과연 볕 들 날이 있을 것만 같다는 예언적 메시지를 빛빛 끼얹고 있다는 느낌까지 받고 마음이 부셔 선글라스를 낄 뻔했었지.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이 덴마크 형아의 작품은 그때의 인공 태양과는 달리 충만하고 화려한 느낌을 주진 않았지. 반대로 그저 쓸쓸하고 허망한 느낌을 주었지. ‘우주 먼지입자’라는 작품은 인간이 아무리 정교하고 아름답게 짠 구조물도 빛의 각도에 따라 먼지 입자처럼 제멋대로 어정쩡하게 흩날리는 모습이 된다는 걸 표현한 것만 같았지. 쓸쓸했지. 시간이 흘렀지. 이 형도 나이 먹었구나. 내 맘 알겠구나. 24시간 작품 앞에 있으래도 있을 것 같았지. 빛이 주제인 전시회에서 희망을 잃는 느낌이 아이러니해서 너무 좋았지. 볕 들 날은 없을 거야. 알면 오히려 맘이 후련해. 그러나 일하러 갈 시간이 되었지. 요즘 배달 뛰는데 점심 피크를 거르면 빚을 갚기 힘들지. 재미없는 생감자 같은 일상에 한 줄기 빛 같은 문화생활을 계속하고 싶어 발길이 떨어지지 않자 정강이를 스스로 걷어찼지. 아이고 정강이야, 하자 지나가던 교수가 ‘우와 지난주에 개강했는데 벌써 종강이야’ 하며 즐거워했지. 나는 그리 즐겁지는 않았지. 인터넷에 떠도는 말장난이니까. 인생이고 유머고 감자고 아무것도 아니겠지. 우주의 먼지처럼.
Words 박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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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resa Freitas, Subject Matter Art, and Artémios/CCOC - Sun-washed, 2021 ⓒ Teresa Freitas, Subject Matter Art, and Artémios/CCOC - Fantastic Stories, 2019 ⓒ Teresa Freitas, Subject Matter Art, and Artémios/CCOC - Afternoon of Delight III, 2019 <어느 봄날,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ALT.1 더현대서울현대백화점

ⓒ Teresa Freitas, Subject Matter Art, and Artémios/CCOC - Sun-washed, 2021
ⓒ Teresa Freitas, Subject Matter Art, and Artémios/CCOC - Fantastic Stories, 2019
ⓒ Teresa Freitas, Subject Matter Art, and Artémios/CCOC - Afternoon of Delight III, 2019
<어느 봄날, 테레사 프레이타스 사진전>, ALT.1 더현대서울현대백화점

내 얼굴이 거울이 된다


테레사 프레이타스의 작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그의 사진 때문이었다. 밀짚모자를 쓴, 사진 속 두 사람은 바다를 향해 서 있다. 이 사진의 어떤 면이 내 관심을 끌었을까. 두 사람의 거리감 때문인 듯했다. 그들이 붙어 있다면 어땠을까? 반대로 멀찍이 떨어져 있다면? 그들은 세 발자국 정도 떨어진 채 각자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너무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기에 아름다운 거리.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되 서운하지 않을 정도는 붙어 있는 이 거리는 내가 갈망하는 사람과의 거리다. 그렇게 서 있는 사람을 우리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진을 보면 그들의 정체가 궁금해지는데 전시회에서 그들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대신 나의 궁금증에 화답해주는 한 장의 사진을 만났다. 그림의 제목은 ‘환상적인 이야기’인데 제목에 걸맞게 상상력이 풍부한 사진이다. 보라색 옷을 입고 주황색 구두를 신은 사람이 풀밭에 드러누워 있다. 그는 원형 거울을 하늘을 향해 들고 있다. 거울이 그의 얼굴을 가리고 있으므로 그는 몸은 사람인데 얼굴은 하늘인 존재가 된다. 이 사진 앞에서 몇 분을 서성였다. 테레사 프레이타스 특유의 파스텔 톤 세상에 홀려서이기도 하지만, 사진 한 장이 수십 장의 소설을 품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내 얼굴이 둥근 거울이 된다면 어떨까. 사람을 만나면 내 얼굴은 사람 얼굴이 될 것이고, 강아지를 바라보면 강아지가 될 것이고 풀을 바라보면 나는 풀이 될 테니, 나 또한 사진 속 사람처럼 풀밭에 드러눕고 싶어질 테다. 내 얼굴이 하늘이 될 것이고, 친구들은 하늘이 된 내 얼굴을 보러 올 테니까.

사실 나는 그의 작품이 사진인지 그림인지조차 모른 채 전시회 티켓을 끊었다. 그리고 전시를 보는 동안에도 사진인지 그림인지 분간할 수 없었는데, 그 점이 프레이타스의 매력인 듯했다. 그의 초기 사진들은 고향인 리스본에서 촬영한 것들이다. 작품 ‘햇빛 샤워’는 리스본의 고요한 권태와 햇빛을 잘 담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빨래걸이, 그 옆에 적당히 떨어져 있는 분홍색 나무, 벽 앞에 서 있는 작은 화분들. 이 사진에서도 사물들은 말없이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포근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조금은 서글프다. ‘어쩜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내가 사는 곳과 너무 다른걸.’ 그런데 전시회 벽에 적힌 한 문장이 내게 위안을 주었다.

‘그녀는 조금은 뻔하고 현실적인 것을 찍은 다음, 그것을 색을 이용해 비현실적인 장면으로 만드는 게 자기 직업의 비밀이라고 말합니다.’

그의 작품이 멋진 이유는 그가 사는 동네가 아름다워서가 아닌 것이다. 단지, 그는 평범한 세상을 촬영하고 색을 덧칠한다. 그러니 내가 리스본에 간들 이 사진들처럼 아름다운 세상은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세상은 오직 그의 작품에만 있으니까. 그 사실이 위안이 되었다. 테레사 프레이타스가 사는 동네도 내가 사는 동네와 비슷하겠군! 그는 평범한 세상이 숨기고 있는 뒷면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이다.
Words 문보영(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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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 원근법 연구, 1995~2011(Study of Perspective), 2014 흑백 및 컬러 프린트, 가변설치, 25점의 에디션 +5AP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와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아이 웨이웨이, 원근법 연구, 1995~2011(Study of Perspective), 2014 흑백 및 컬러 프린트, 가변설치, 25점의 에디션 +5AP 아이 웨이웨이 스튜디오와 베를린 노이거리엠슈나이더 제공 <아이 웨이웨이: 인간미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오만 가지 욕을 씹다가


욕 잘하는 사람 부럽다. 상스럽게 혀를 굴려보고 싶은데, 안 된다. 화가 나면 씩씩거리기나 할 줄 알지 상대에게 이렇다 할 타격을 못 준다. 욕을 잘하고 싶어 학원에 등록했다.

양평동 2가에 위치한 종로욕쟁이 학원 초등부 수강비는 월 ‘씹만원’. 나처럼 혀가 덜 여문 친구들을 위한 교실이다. 커리큘럼은 발음 교정과 기초 음률 습득 위주. 처음 일주일은 아에이오우만 배운다. 돈 아깝다. 불만을 제기할 생각은 있었지만, 강사 목둘레를 보고 생각만 하기로 했다. 생각이 많으면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다. 이후에는 개, 시, 후 같은 단어를 복식호흡 발성으로 연습한다. 묵직한 울림에 중저음을 곁들이면 꽤나 그럴듯하다. 바보 멍청이 같은 욕은 타격감이 미미하지만 사운드는 제법 괜찮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위협적으로 들릴 만하다.

욕 구사를 위한 적절한 발성이 갖춰지면 중등부로 진급한다. 중등부에는 번뜩이는 창의력을 갖춘 육두 인재들이 많다. 처음에야 주눅 들지만 수업이 끝날 때쯤에는 탄성이 나온다. 학생들의 어휘력이 좋고, 단어 선택도 신선했다. 개와 양적완화, 눈알과 후진타오 등 기발한 조합도 눈에 띄었다. 고등부는 어떨까? 다소 침체된 분위기다. 학생들은 문제의 난이도가 높고, 각종 외래어와 복잡한 상황 제시가 많아 욕설 완성하기가 어렵다고 평가했다. ‘우동을 주문한 대머리가 타코야키를 받았을 때 취할 욕설을 구하시오’같이 상황에 맞는 공식을 암기해야 했다. 상대에게 정밀하고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선 수학적 사고력이 요구됐다. 아쉽게도 문과 출신인 나는 고등부 시험에는 탈락했다. 중학생 수준의 욕을 구사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중국의 현대미술가 아이 웨이웨이 개인전이 열렸다. 그는 한국 욕을 할 줄 모르지만, 한국인은 그의 욕을 이해했다. 전 세계 사람들이 그의 욕을 이해한다. 사진 연작 ‘원근법 연구, 1995~2011’(2014)에서 아이 웨이웨이는 도시 랜드마크를 향해 중지를 치켜들었다. 오랜 시간 프로젝트로 진행했다. 천안문을 향해 치켜들기도 했다. 그 욕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 중요한 건 자유다. 욕할 자유. 표현할 자유. 표현의 자유는 생명 본연의 속성이라고 아이 웨이웨이는 중지를 접고 말했다. 정치체제에 대한 행위일 뿐만 아니라 인권의 기본 가치라는 것. 아, 이렇게 손가락 하나만 펼치면 되는데. 나는 ‘씹만원’을 몇 달치나 냈던가. 오만 가지 욕을 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게.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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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Assistant 김나현

2022년 04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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