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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의 가치

‘메타버스’ 유행을 타고 가상공간 서비스가 늘어났다.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 방문하는 사람, 유행이라 하니 들어가본 사람, 적응 안 된다며 빠져나온 사람들…. 많은 사람이 가상공간으로 간다. 사람이 모이는 곳엔 광고가 걸리고, 돈이 돈다. 돈 들인 국내 가상공간들을 탐방했다.

UpdatedOn March 1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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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공간 직접 써보니

가상공간에서 브랜드 마케팅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주요 가상공간 플랫폼의 브랜드 쇼룸, 브랜드 이벤트 공간, 대선 캠프 등을 들여다보고 효용성을 따졌다.

게더타운


게더타운은 2D RPG 게임을 표방하는 화상회의 플랫폼이다. 16비트 그래픽을 사용한다. 그렇다. 1990년대 RPG 게임을 재현한 가상공간이다. 다른 가상공간처럼 아바타를 움직여 메뉴를 선택하고, 사용자와 대화한다. 고전게임 양식은 메모리를 덜 소모하고, 가볍고 접속도 편리하다. 또 중장년 임직원들의 추억을 자극하는 감성적 면모도 있고. 하지만 이것들은 눈요기고, 실제 강점을 꼽자면 화상회의다. 사용자들이 화상회의를 시작하면 화면 상단에 스크린이 생긴다. 게더타운은 업무용 화상회의 툴에 위트를 더했다고 보면 되겠다.

폴리버스 캠프
가상공간에 차려진 진짜 대선 캠프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는 가상공간에 대선 캠프를 차렸다. 플랫폼은 게더타운이고, 캠프 이름은 ‘폴리버스 캠프’다. 과학 대통령을 강조해온 그답다. 폴리버스 캠프에는 국민광장, 민원센터, 프레스센터, 국민방송국, 생각발전소 등의 공간이 있다. 공간에 들어가면 공약이나 정책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폴리버스 캠프에선 기자간담회나 정책 발표가 라이브로 진행되는데, 라이브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광장에 모인다. 채팅창이 활성화되며, 사용자들이 응원과 의견을 제시한다. 그제야 가상공간에 생기가 돈다. 폴리버스 캠프의 첫 이벤트는 청년공약 발표 기자간담회였다.

쓸 만해? 득보다 실이 커
홍보자료 열람이 번거롭다. 중요한 정책이나 정보는 쉽고 빠르게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폴리버스에서 자료를 열람하려면, 내 아바타를 방향키로 이동시켜 해당 공간에 입장해야 가능하다. 웹사이트에서 ‘클릭’ 한 번에 열람하던 것에 비하면 꽤나 번거롭다. 그래도 가상공간 중 게더타운을 선택한 것은 과학 대통령 이미지를 조성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선택이었다.

로블록스


로블록스는 메타버스를 설명할 때 가장 먼저 언급되는 온라인 게임 플랫폼이다. 성공적인 메타버스이자 선도적 미래 기술이라고 설명하는 사람 중에 로블록스 사용자가 있기는 한 것인지 의문이다. 로블록스는 게임이라고 부르기에는 초라하다. 스티브 잡스가 처음 아이폰을 개발했을 10여 년 전에 출시했다면, 그래도 다운받지 않았을 수준 낮은 그래픽이다. 사용 방법은 다른 가상공간 서비스처럼 자신의 아바타를 만들고, 원하는 방에 입장해 해당 방의 게임을 즐기는 것이다. 사용자가 직접 게임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할 만한 게임을 개발하려면 수준 높은 기술력이 요구된다. 아무나 축구를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손흥민처럼 할 수는 없다. 로블록스에는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즐길 만한 귀여운 게임들이 있다.

나이키 랜드
홍보용 가상공간은 이렇게 만들어야

나이키는 로블록스와 파트너십을 맺고, 로블록스에 ‘나이키 랜드’를 열었다. 다른 브랜드 공간과 다른 점은 완성도다. 로블록스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미국 나이키 월드 캠퍼스를 기반으로 디자인했다. 나이키 빌딩, 운동장, 체육관으로 구성되며, 아바타에 에어 포스 1이나 블레이저 등 나이키 제품을 착용시킬 수 있다. 재미는 미니게임에 있다. 게임을 하며 공간을 탐험하고, 이스터 에그를 찾으면 블루리본과 금메달을 얻는다. 블루리본은 건축 자재 구입에 사용하고, 금메달은 상품 잠금 해제에 쓰인다. 상품이 쓸 만하고, 공간도 잘 만들었고, 게임도 재밌는 편이다.

쓸 만해? 너무 넓어 탐색하다 지쳐
아쉬운 점은 나이키 랜드가 너무 넓다는 것이다. 사용자는 게임 공간을 돌아다니다 지친다. 액션이나 전투, 건설 등 즉각적인 피드백이 제공되는 게임이 아니다. 이스터 에그를 찾아다녀야 하는 건데, 현실은 <레디 플레이어 원>이 아니다. 사용자는 몰아붙이면, 떠난다. 세상에는 이보다 재밌는 것이 많다.

현대 모빌리티 어드벤처
볼거리와 즐길거리, 매력 부족


로블록스에는 브랜드 마케팅 공간도 많다. ‘현대 모빌리티 어드벤처’는 현대자동차가 만든 가상공간이다. 퓨처 모빌리티 시티, 페스티벌 광장, 에코 포레스트로 구성된다. 추후에는 레이싱 파크나 스마트 테크 캠퍼스도 공개될 예정이다. 사용자는 현대차가 만든 공간들을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 있다. 몰입감 넘치는 비디오나 흥미로운 사건, 자극적인 콘텐츠가 있는 것은 아니다. 3D 캐릭터로 그린 전시 부스라고 이해하면 된다. 사용자들이 즐길 만한 것들도 있다. ‘현대 모빌리티 어드벤처’ 내에서 차량을 획득하고, 운전할 수 있다. 아바타가 걷는 것보단 차 타고 이동하는 게 덜 답답하다.

쓸 만해? 사용자 나이가 너무 어려
브랜드 마케팅 공간이다. 사용자들은 재미를 느끼고자 이곳을 방문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사용자들이 미취학 아동이거나 초등학생들이기에 그들이 고객이 되려면 한 20년은 지나야 한다. 다만, 현대자동차가 다양한 방식으로 고객과 소통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알리는 목적이었다면 충분히 달성한 것 같다.

이프랜드


이프랜드는 SK텔레콤이 개발한 가상공간이다. 제페토를 염두에 두고 개발한 흔적이 역력하다. 아바타를 만드는 과정과 방법, 랜드(방)를 선택해 이동하는 것, 랜드에서 나누는 대화, 조작 방법, 포즈 취하고 셀카 찍기, 공간의 형태 같은 것도 제페토와 비슷하다. 하지만 2%씩 뭔가 아쉽다. 아바타는 날렵하게 움직이지만 점프 기능이 없어 답답하다. 아바타를 꾸밀 아이템도 부족하다. 있을 건 다 있다. 사용자들과 채팅이나 음성으로 대화가 가능하고, 서비스 속도도 쾌적하다. 다채로운 강연도 많다. 기업 내 모임과 미팅에 최적화됐다는 홍보 문구가 있는데, 이건 사내 분위기에 따라 호오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오큘러스퀘스트2와 PC 버전도 출시할 예정이다.

임인년 호랑이 그림전(展)
불편함을 체험하다


이프랜드는 자체적으로 제시하는 이벤트가 많다. ‘임인년 호랑이 그림전(展)’은 설날을 맞아 2월 한 달간 열린 그림전이다. 2030세대 작가 42명이 호랑이를 주제로 그린 50개의 작품이 전시된다. 실제 갤러리처럼 꾸몄다. 그림들은 가상공간의 벽에 붙어 있다. 그래서 보기 어렵다. 내 아바타를 이동시켜가며 그림을 봐야 하고, 그림 가까이 접근하면 아바타가 시야를 가린다. 여러 모로 그림 보기 어렵다. 그림만 온전히 감상하기 위한 이벤트가 아닌 그림 보는 행위를 가상공간에서 경험하는 이벤트라고 봐야겠다.

쓸 만해? 가상 연애 해볼까
가상공간 플랫폼을 누가 사용할까? 여러 랜드를 돌아다녀봤지만 채팅창이 분주한 경우는 없었다. 대신 음성으로 소통한다. 주 사용자는 어린이가 많다. 사용자들은 너 몇 살이냐는 말을 가장 많이 하는데…. 열 살이면 대장 되는 곳인지라, 그들의 대화에 참여하기란 쉽지 않았다. 성인 남녀들을 위한 방도 수시로 열리는데, 느끼함과 설렘, 미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방을 만드는 건 쉽다. 메인 화면에는 참여 가능한 방목록이 열거되는데, 카테고리가 나뉘지 않아 양이 많아 보인다. 어느 방이든 들어가기 쉽고, 방에선 음성 대화를 나눈다. ‘세이클럽’의 진화를 보는 것 같다. 또 다른 장점은 랜드가 넓지 않다는 것. 쓸데없이 아바타를 이동시켜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제페토


제페토는 아시아 최대 메타버스 플랫폼이라 불린다. 현재 유행하는 가상공간의 형식을 정립했다. 10대가 주 사용자이고, 사용자들은 감성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한다. 아바타를 세련된 스타일로 꾸미고, 자신의 공간을 치장하는 데 열중한다. 아바타들은 멋지고 아름답다. 제페토에선 특별히 할 건 없다. 게임이 있지만 허울뿐이다. 다른 공간을 탐방할 수도 있지만, 잠시 구경할 뿐이다. 제페토의 핵심은 비슷한 또래가 모인 방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나 심심해’ ‘오늘 날씨가 좋아’ 같은 대화들이 대화창을 채운다. 아바타는 셀피를 찍고, 좌우로 움직이고, 포즈를 취하고, 의미 없는 행동만 반복한다. 방에 모이는 것은 내 감성을 담은 아바타를 또래 사용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함이다. 이전 세대 십대는 도토리 충전에 ‘현금’ 썼고, 지금 십대는 제페토 아이템을 구입한다. 형식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그래서 제페토에서 인기 있는 곳은 소년소녀들이 친목 다지는 방이었다. 그곳의 아바타들은 정체되어 있다. 사용자들은 채팅창에 문자 쓰느라 바빠 아바타를 방치한다. 수행할 퀘스트가 없고, 볼거리도 없으며, 이동할 필요도 없는 곳이 제페토의 진짜 월드다. 사용자들의 행동과 대화를 토대로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제페토 사용자들은 친구 사귀길 원하고, 가상 연예도 기대한다는 것이다. 아바타로 연예한다는 게 우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바타로도 연예를 못 하는 사용자도 많을 거다. 브랜드가 흥미로운 마케팅 공간을 마련해도 그건 부차적 공간일 뿐이다. 사용자는 가상 쇼룸을 구경하기 위해 제페토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다. 외로움이 지겨운 사람들이 모인다.

삼성 마이하우스
평범한 공간


마이하우스에선 집을 꾸민다. 삼성전자 제품과 다양한 인테리어 아이템으로 가상 집을 꾸미는 게임이다. 취향대로 집을 꾸미면서 삼성전자 제품과 브랜드 가치를 체험하는 게 마이하우스의 목적이다. 내 공간을 꾸미는 것은 아바타를 꾸미는 것처럼 제페토의 기본 기능 중 하나다. 마이하우스에 있는 제품들을 내 계정 공간에 옮길 수 없다면, 큰 재미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저 삼성전자의 쇼룸을 구경하는 것 외에 특별할 것이 없다. 그래서 삼성전자는 게임을 수행하면 한정판 아이템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개시했다. 보상 없는 게임은 게임이 아니다. 가상세계에서의 브랜드 홍보 또한 보상이 중요하다.

쓸 만해? 큰 매력은 없어
아이템을 얻으려면 이벤트를 기다려야 한다. 개인이 만든 비슷비슷한 월드와 두드러진 차별점은 보이지 않는다. 비슷한 공간에 삼성전자 제품이 세팅된 게 다른 점이다. 자신의 월드에 새로운 아이템을 채우고자 하는 사용자들을 제외하면 매력적이지 않다.

CGV
실제 공간 완벽 재현


자사의 홍보 채널에 사용자를 오래 붙잡아두고 싶다면, 적당한 난이도의 퀘스트와 퀘스트를 수행할 만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퀘스트와 보상은 제페토의 공식 브랜드 월드 중 CGV가 가장 잘 한다. 제페토 CGV 월드에는 매표소, 매점, 파코니 포토존, 로비, 좌석, 상영관이 재현됐다. 사용자는 CGV 서비스들을 모두 체험하는 퀘스트를 수행하면 점프 수트 등 CGV 아이템을 얻는다. 친구를 초대해야 완료할 수 있는 퀘스트는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게 만든다.

쓸 만해? 가상 팝콘이나 먹어라
가상공간이 아쉬운 것은 퀘스트를 수행해 얻는 보상이 가상공간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서 사용할 수 없다. 팝콘 구입 혜택 쿠폰이라도 주면 안 되나. 메타버스가 영향력을 가지려면 가상과 실제가 연결되어야 하지 않을까. 현실에서 수억원 규모의 이벤트는 가상공간에선 매우 저렴하게 혹은 거의 공짜로 펼칠 수 있다. 아낀 김에 더 아끼는 걸까. 가상공간에 설치된 브랜드 홍보관은 마케팅 예산을 안 쓰겠다는 의지가 확고해 보인다.

프리블록스


3차원 가상공간이 유행이다. 우후죽순 가상공간이 등장하는 가운데 인터넷 개인방송 서비스인 ‘아프리카TV’도 가상공간 플랫폼 ‘프리블록스’를 출시했다. 인기 게임인 로블록스와 이름만 비슷하다. 형식은 제페토와 비슷하다. 아바타를 꾸미고, 아바타를 꾸미기 위한 아이템을 구매하는 방식이다. 마이버스라는 사용자 계정에서 집도 사고, 자동차도 살 수 있다. 공간을 꾸미는 것도 재미 요소다. 플레이버스라는 공간에선 게임도 한다. 프리블록스는 아프리카TV BJ들과 접점을 이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보인다. BJ와 팬이 아바타로 만나 함께 게임하고, 서로의 공간을 방문하고, 또 이것을 소재 삼아 방송도 할 수 있겠다. 다른 서비스와의 차이점은 NFT 거래를 지원해 경제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를 아이템화하여 다른 사용자에게 판매할 수 있다.

쓸 만해? BJ와 시청자는 예측 불가능
아바타와 공간 꾸미기, 소소한 게임들은 이미 다른 서비스에서 사용되는 것들이라 차별점으로 보기 어렵다. 게임이라는 것도 특별할 것 없다. 아직 베타버전이라 사용자가 적다. 정식 버전이 출시되면 BJ들이 프리블록스를 어떻게 콘텐츠로 활용할지 예상하기 어렵다. 의도대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수익창출을 위해 무엇을 사고팔지도 의문이다. 평범한 아이템이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TV는 언제나 예측 불가했다.

가상공간 직접 만들어보니

가상공간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한 미디어 아티스트가 가상공간의 미래를 말한다. 다소 어둡다.

이 시대의 가상공간: 메타버스
COVID-19의 장기화로 어느 때보다 VR Chat, 로블록스, Neos, 등 가상 채팅과 회의 게임 제작 플랫폼으로 일컬어지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여러 분야에 걸쳐 활발히 도입되고 있다. 이러한 메타버스 플랫폼들은 현실 세계를 확장하고, 더 나아가 현실을 대체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조금 더 실질적인 목적은 아마도 “이용자의 시간을 자신의 플랫폼에 묶어두는 것(수익을 창출할 수 있으니)”일 것이다. 그렇다면 유저들은 어떨까? 이러한 플랫폼들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몰입하여 공간을 점유하는 이들은 게임 용어로 흔히 대변되는 ‘고인물’들이다. 고인물들은 메타버스라는 공간의 VR 채팅방에서 현실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노래방, 놀이터, 포커방 등 여러 게임을 만들어 플레이한다. 이들은 3D 구현 공간을 구동하기 위해 고가의 하드웨어도 마다치 않는다. 너무 극단적인 사례를 예시로 들었다 생각하는가? 익명의 관계 속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이제 ‘고인물’들만의 특성은 아니게 될 것이다. 이미 재택과 비대면 수업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사회 전반의 관계 형성을 새롭게 변형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가상환경조정기 1 오주영, 2017-2020

가상환경조정기 1 오주영, 2017-2020

가상환경조정기 1 오주영, 2017-2020

Section of the Rotunda, Leicester Square by Robert Barker (1737-1806)

Section of the Rotunda, Leicester Square by Robert Barker (1737-1806)

Section of the Rotunda, Leicester Square by Robert Barker (1737-1806)

가상공간의 모순성
컴퓨팅의 기하급수적 발전과 기술의 ‘편향적 진화’에 힘입어 이제 우리는 과거 사람들이 매우 애를 써서 겨우 누리던 몰입적 환경을 손가락 하나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로마 사람처럼 포도덩굴 가지와 분수대가 펼쳐진 프레스코 벽화가 없어도 RPG게임 속에서 엘프의 정원을 누릴 수 있으며, 18세기 사람처럼 3층 높이로 건설되었던 거대한 파노라마 회화를 통해 전쟁의 격렬한 현장을 보지 않아도 스트리밍을 통해 3분 요약된 영상만으로도 승리의 감격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앞에 나열한 예시가 모두 이상하지는 않은가? 몰입적 환경에는 시대를 불문하고 모두에게 공통되는 한 가지 모순이 있다. 그것을 현실에서 보기에는 너무나 어렵다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현실에 직접 다가가기보단 소비하며 자신의 시간을 플랫폼에 맡긴다. 그 안전하고 안락한 공간은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시선에서만 가능하다. 나는 우리의 환상을 몰입적이고 극적으로 만드는 최신의 기술들이 표면적으로 숨기고 있는 모순을 작업의 주요 소재로 삼아왔다. <가상환경조정기 1, 2>도 그중 하나다.

가상환경조정기: 가상공간의 희망과 절망
<가상환경조정기> 시리즈는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사용자가 바라보는 시점을 변형해 그 한계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먼저 <가상환경조정기 1>는 스마트폰 앱과 거치대로 구성된 작품으로, 작품은 360도로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모아두고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VR 시뮬레이션 앱이다. 그러나 이 앱은 제작된 지지대로 인해 스마트폰 내에서 다른 각도로 화면을 보는 것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가상환경조정기를 통해 화면을 보는 사람들은 매우 불편한 자세로 VR 화면을 보려 노력한 끝에, 고정된 하나의 장면만을 보게 된다. 그 장면에는 에러 메시지만이 고정적으로 띄어 있다. 돌아온 탕아 소설의 글귀로, 아래와 같다.
“당신이 더 바랄 것 없는 완전한 절망 속에서 비로소 절망하길 바랍니다.”
<가상환경조정기 2>는 360도 공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구글어스 뷰의 수십 장의 각각 다른 시점의 사진을 모아 만들어졌다. 공간은 위치와 기울기에 따라 급속하게 풍경이 변화하며 이는 디지털 멀미를 유발한다. 이러한 영상과 대비되게 관객은 안락한 텐트에서 좋은 향을 맡으며 감상의 자리에 초대된다. 이러한 몰입을 위해 조성된 환경과 기술의 불협화음을 아이러니하게 드러내고자 했다. 사람의 두 눈은 자신의 앞과 흐릿하게 양옆을 지각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진화해왔다. 작품에서는 이러한 한계를 반영한 VR 공간을 제안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인지적 능력은 기술적 편이와는 다르게 작동함을 보여준다. 현실을 완전히 대체하려는 야망을 가진 기술이 정말로 등장할 수 있을까? 우리의 물리적 조건이 이러한데 하물며 우리의 마음을 어떻게 현실로 인식하게 한다는 말일까?
Words 오주영(미디어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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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게티이미지뱅크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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