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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게들의 대접 방식은 기괴하다. 푸대접으로 느껴질 만큼 손님을 대한다. 예약은 인스타그램 ‘DM(다이렉트 메시지)’으로만 받는다. 예약 양식을 지켜야 한다며 까다로운 태도를 보인다. 그런데도 장사가 잘된다. 불친절한 태도로 고객의 심리를 조종하는 요즘 가게들의 마케팅 방식을 짚어본다.

UpdatedOn February 18, 2022


현재 사는 곳은 삼각지와 신용산의 중간 지점. 남루한 가게와 화려한 고층 빌딩이 뒤섞인 우리 동네는 하루가 멀다 하고 변화 중이다. 최근 들어 가장 눈에 띈 변화는 갑작스럽게 출현한 와인 바들이다. 한 구획에 와인 바가 최소 세 곳이 생겼다. 내추럴 와인만 취급하는 곳도 있고, 피노 누아 같은 레드 와인과 칠링한 화이트 와인을 다루는 곳도 있다. 그만큼 다양하다. 동네 주민이라면 방문해주는 게 인지상정. 퇴근 시각 오후 6시에 맞춰 삼삼오오 모여 집 앞 내추럴 와인 바로 향했다. 자신 있게 문을 열었고 동시에 퇴장당했다. 이미 예약이 꽉 찼고 언제 자리가 생길지 모른단다. 당혹스럽다. 아쉬운 마음에 찾은 맞은편 가게. 마찬가지였다. 문을 연 지 불과 일주일밖에 안 된 곳들이었다. 이쯤 되니 도전 의식이 솟구쳤다. 재도전했다. 예약하면 갈 수 있겠지. 포털사이트에 전화번호를 검색했지만 등록조차 안 돼 있었다. 인스타그램 다이렉트 메시지로만 예약 가능하다는 문구만 쓰여 있을 뿐이었다. 오후 3시에 보낸 메시지는 오후 8시까지 답장을 받지도 못했다. 알파남에게 차였을 때의 기분과 비슷했다.

알파남을 떠올려보자. 일단 백옥 같은 피부에 잘생겼다. 키는 180cm를 훌쩍 넘으며 겁도, 두려움도 없다. 주관도 뚜렷하다. 그래서 노력하지 않아도 여자들의 구애 메시지를 지겹도록 받는다. 하지만 남는 시간에 원하는 사람에게만 답장하는 여유가 있다. 여유로운 자세가 불친절한 태도로 비치지만 그 여유 뒤엔 아찔한 매력이 숨어 있을 것 같아 자꾸 궁금해진다. 그래서 넘어올 때까지 구애 작전을 펼치게 된다. 이런 인기남과 와인 바는 닮았다. 대부분의 와인 바는 깔끔하고 모던하다. 아무튼 들어가보고 싶게 만드는 비주얼이다. 그런데 진입장벽이 아주 높다. 예약하지 않으면 못 간다. 예약 방식도 어렵다. 전화번호를 등록해놓지 않는 여유를 보이는 것도 알파남과 닮았다. 그렇지만 와인 바 유리창 너머로 와인 냉장고에 구비된 수많은 와인들을 보고 있자니 경험하고 싶은 욕구를 뿌리치기 힘들다. 비단 와인 바만 알파남에 해당되지 않는다. 요즘 생긴 F&B 가게들은 죄다 알파남처럼 범접하기 힘들다. F&B 업계는 소비자에게 필요 이상으로 엄격한 기준을 요구한다. 몇 가지 사항이 있다. 먼저, 예약 수단은 오직 SNS다. 가게 인스타그램 계정 프로필에는 ‘예약은 DM 주세요’라는 문장만 써놓는다. 심지어 예약 양식을 고집하는 가게도 있다 . ‘이름, 인원수, 시간대, 연락처’ 등이다. 내 연락처를 수집해가는 것도 불쾌한데 양식을 지키지 않으면 자격 박탈이다. 하나라도 잘못 쓰면 ‘양식을 지키지 않아 예약을 접수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는다. 이러한 갑질 아닌 갑질에서 1차 화가 치민다.

또한 예약 시간 10분 안에 도착해야 한다. 이효리의 ‘10 Minutes’도 아니고 무슨. 헐레벌떡 뛰어왔음에도 11분에 도착한다면 가차 없다. 지각도 자격 박탈 사유다. 휴무 일자를 공지하는 방식은 또 어떻고. 요즘 가게들은 휴무를 알리는 방식도 까다롭다. 인스타그램 게시글로 휴무를 공지한다. 게시글로 공지하면 오히려 감지덕지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로 공지하는 가게도 봤다. 인스타그램 스토리는 특성상 24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 물론, 스토리를 적절한 타이밍에 업로드한다면 볼 수 있지만, 발견 못 하는 사람은 직접 행차했음에도 발걸음을 돌리는 쓴맛을 보게 된다. 뒷목 잡게 만드는 부분이 또 있다. 바로 예약금이다. 기사에 따르면 한 소비자는 가게에 예약금을 걸었지만 예약 양식을 맞춰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자동 취소된 경험이 있다고 했다. 예약금도 돌려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는 아주 특이한 경우에 해당된다. 손님의 노쇼가 두려워 내세운 정책인 건 알겠다만, 피치 못할 사정으로 인한 노쇼를 이해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 정도면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위 아닌가? 가게 입구에 종이로 붙여놓는 휴무 공지는 고리타분한 방식이 돼버렸다. SNS를 하지 않고, 빠른 정보 습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먹지도 못한다. 이 정도면 손님이 아니라 가게 사장님이 왕이다. 내 돈 내고 내가 사 먹겠다는 게 통하지 않는 세상이 왔다. 그럼에도 가게 앞 웨이팅 줄은 줄지 않는다. 우리 집 앞 와인 바 네 곳만 봐도 그렇다.

지난달 끈질긴 DM을 보낸 끝에 예약에 성공했다. 와인 보틀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사진 수십 장으로 인스타그램 피드를 장식했다. 인스타그래머라면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와인 건배 영상’도 업로드했다. 주류에 속한 기분이 들었다. 나도 트렌드를 경험했으니까. 힙한 감성을 느껴봤으니까. 왠지 모를 뿌듯함에 이전에 가졌던 부정적인 인식이 눈 녹듯 사라졌다. 누리지 못할 거라 생각했던 걸 경험했다는 우월감이 느껴졌다. 나만 못 갈 거란 생각에 느꼈던 소외감도 사라졌다. 모순적이게도 갈 곳 잃고 길가를 서성이는 사람들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사람들은 분명 이 같은 우월감에 중독되어 높은 진입장벽을 뚫고서라도 기꺼이 찾아오는 것이다. 알파남을 내 것으로 만들었을 때와 같은 짜릿함을 맛 보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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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정소진

2022년 0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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