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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키워드가 내 인생을 규정한다?

트렌드 코리아는 매년 트렌드 키워드를 규정한다. 2022년 트렌드 키워드도 이미 발표됐다. 갖기 어려운 아이템을 얻어 과시와 차별화를 주려는 ‘득템력,’ 날것의 자연과 시골의 매력을 즐기면서도 도시 생활에 편안함을 부여하는 시골향 라이프스타일을 지칭하는 ‘러스틱라이프,’ X세대가 소비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상을 말하는 ‘엑스틴 이즈 백’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트렌드 키워드가 사회와 세대의 성격을 규정짓고 개인의 생활을 침해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나? 획일적인 삶을 살게 되진 않을까. 동일한 세대 간의 다름을 인정해주지 않는 걸까.

UpdatedOn December 10, 2021


당연한 소리지만 세상에 1백 명이 있으면 1백 명 다 다른 삶을 산다. 물론 그 안에는 공통분모도 있을 것이고, 그 공통분모가 사회에서 중요한 지점일 때도 있다. 개인을 묶을 수 있는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하지만, 그중 사람들이 가장 쉽게 쓰면서도 당사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이 바로 세대다. 그래서 해마다 발표되는 트렌드 키워드에서도 세대는 빠지지 않는다. ‘TIGER OR CAT’이라는 10대 트렌드 키워드는 어쩐지 임인년에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 아닐까 싶은데, 이 안에도 X세대와 같은 키워드가 어김없이 들어가 있다. 물론 스스로를 X세대, 밀레니얼 세대, Z세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태어난 해로 묶어내는 사회적 분류 중 하나일 뿐이지 개인의 정체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여전히 세대론이 득실하고 세대 갈등도 크지만, 세대라는 것이 과연 의미 있을까에 관한 의문도 많다.

나는 <고함20>이라는 곳에 글을 쓰면서 세대론에 관해 당사자로서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세상 사람들은 정작 실제 청년에 해당하는 이들은 배제한 채 청년 운운하고, 밀레니얼 운운하며 당사자를 빼놓고 당사자 이야기를 끊임없이 했다. 그러더니 청년에 해당하는 나이의 기준을 바꾸지 않나, 청년들을 위한다며 정책을 펼치고 공약을 세우면서 그들의 이야기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어떤 정치적 입장에 있든 간에 서로 답답한 이유 중 하나는 결국 자신들의 이야기를 세상이 듣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적 스탠스를 놓고 봤을 때 왼쪽에 있는 이들이나 오른쪽에 있는 이들 모두 젊은 세대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대론에 관한 불신과 분노는 더욱 커진다.

사실 세대라는 키워드는 개인을 구성하는 정체성 중 중요한 지표는 아니다. 물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이들끼리 공유할 수 있는 문화와 추억이 존재하긴 하나, ‘나는 밀레니얼이야’라고 사고하며 그에 맞게 행동하고 자신을 구성해나가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심지어 불가변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자신이 직접 구성할 수 있는 정체성이 아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경우가 더욱 많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연구에 따르면, 나이가 많을수록 세대 정체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Y세대로 분류되는 이들 중에는 자신의 생물적 세대 분류 대신 다른 세대를 자신의 정체성으로 택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더욱이 국내 연구를 보아도 청년 세대 담론은 사회적 담론을 단순하게 세대로 묶어버리고 실제 당사자들을 타자화할 뿐 의미 있는 화두나 풀어야 할 과제의 구체적 담론을 사회에 던지지 못했다. 이러한 부분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작 당사자들은 자신을 밀레니얼로, 혹은 Z세대로 구분해달라고 하지 않는다. 다만 수많은 자료와 기사들, 기성세대가 MZ세대의 특징, MZ세대 마케팅 운운하며 특징을 묶는 것뿐이다. <90년생이 온다>고 하지만 1990년생이 실제로 사회를 좌우할 만큼 지위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가, 기성세대가 1990년대생에게 그만큼의 힘을 주기나 했는지 생각해보면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이 소비를 좌우한다고 하며 그들을 의식하는 듯하지만, 그런 식으로 특정 연령대의 정체성을 규정해버리곤 한다. 그렇게 분류되었을 때 과연 당사자는 동의할 것인가에 관한 설문이나 연구가 부재하는 이 현상 자체가 말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MZ세대뿐만 아니라 X세대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지만, 해외에서 X세대는 1960년대 중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태생을 묶는 편이며, 한국에서는 1974~1983년생을 묶는다. 아무리 어리게 잡아도 마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인데, 이렇게 끊임없이 세대를 묶고 그들의 특징을 논하다 보면 더 중요한 정체성과 사회적 분류가 자연스럽게 실종되고, 사람들은 타인을 더 쉽게 분류하곤 한다. 여러모로 불편한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세대론을 재미있고 가볍게, ‘맞아 우리 또래들은 그렇지’라며 공감하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세대라는 담론이 실제로는 마케팅 용어 수준에서 통용되고 그칠 뿐 유효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많은 기사와 자료, 논문이 MZ세대에 관해 파악하고 그 경과를 쏟아내는 만큼 무게 있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연구에 따르면 청년 담론을 확산시킨 것은 보수 언론이며, 이러한 세대론은 한국 사회 내 세대 관계나 실제 정체성이 지닌 성격을 극단적으로 과장해왔다. 아무리 당사자가 노래를 불러도 당사자가 타자화되고 시혜적 관점에 놓이는 것은 결국 MZ세대를 ‘대상’으로 ‘관찰’할 뿐, 실제 세대층이 사는 이야기를 듣거나 담아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와 같은 세대의 친구들만 봐도 다 다르다. 누구는 록 발라드에 향수가 있고, 누구는 한국 힙합에 향수가 있으며, 누구는 2000~2010년대 아이돌 그룹에 향수가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친구들이 비교적 세련된 환경에서 자라는 동안 나는 폭력적인 체벌과 제식훈련을 학창 시절에 경험해야 했다. 세대 하나가 개인의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없다. 세대를 둘러싼 키워드는 당연한 것이며,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이 다 다르고 교차하는 정체성이 수십 가지인 시대에 몇 가지 키워드로 개인을 묶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그걸로 트렌드를 예측하거나 마케팅, 유통 등 각자의 영역에서 참고할 수 있는 내용 정도로 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개인을 규정할 수는 없다. 나만 해도 2022 트렌드 키워드 10개 중 아예 해당되지 않는 것이 6개, 해당되는 것이 4개인데, 10개 밖에서 만들 수 있는 키워드가 적어도 26개는 될 것 같다. 1989년생 자비에 돌란이 칸 심사위원상을 받은 나이가 27세지만, 그 상을 준 심사위원장 조지 밀러는 1945년생이라니까. 젊음을 주목하는 건 좋은데, 정작 그 젊음을 주목하는 건 여전히 어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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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정소진
WORDS 박준우(대중문화 칼럼니스트)

2021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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