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충분해요, 정석씨

조정석이 사랑받는 이유는 뭘까? 미남이어서? 말을 잘해서? 최근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조정석은 이익준 역에 스며든 게 아닌 이익준이 조정석화된 수준이라 평가받는다. 감칠맛 나는 그의 연기는 모든 역할을 ‘조정석화’한다. 사람들은 그에게 열광한다. 조정석이 연기하면 다 조정석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는 걱정은 의미 없다. 같은 조정석이지만 제각기 미세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정석의 매력을 분석해봤다.

UpdatedOn August 05, 2021


조정석이 좋다. 안 잘생겼기 때문이다. 참고로 나는 남자다. 암튼 저 말은 약간 내가 욕 들어먹기 좋은 표현인데, 만약 조정석이 잘생겼어도 지금처럼 인기가 많았을까? 안 어울리는 예를 하나 들자면, 애인에게 나는 종종 묻는다. “나 정도면 잘생긴 거야?” 애인은 “응”이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십 번 물었지만 한 번도 “응”이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렇게 말한다. “귀여워. 나 귀여운 남자 좋아해.” 이게 조정석이 인기 있는 비결이다. 귀엽다.

물론 정우성도 인기가 많고 당연히 차은우도 인기가 많다. 음, 조정석보다 더…인지는 모르겠지만 뭐, 인기는 많다. 하지만 조정석에겐 특별한 매력이 있단 말이지. 그게 뭘까? 조정석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닌 것 같다. 문장이 복잡해졌다. 예를 들어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이익준은 그냥 조정석 같다. 이익준이 조정석을 연기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까. 연기를 너무 잘해서, 연기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그렇게 느끼게 된다기보다, 음, 그건가…? 천의무봉의 솜씨라 바느질한 티가 안 나는 뭐 그런 거?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자. “야, 너도 영어 할 수 있어”라고 말한 게 조정석이 아니라 이익준이라고 한다면, 이상할까? 이익준이 ‘야너두’ 광고를 찍었다고 해도 믿을 것 같지 않아? 그러니까 이건 연기가 아니라 삶 같은, 정석이가 익준이고 익준이가 정석인 거, 아닐까? 연기의 기능에 대한 게 아니라, 바람이나 물처럼 흘러가는 것. 조정석은 바람 같고 물 같다고 적으면 쓸데없이 철학적이지만 그렇게 가뿐하고 경쾌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20~30대는 희망을 얻었다. 뜬금없이 무슨 희망? 그것은 굉장한 설득력을 지녔다. 위에서 언급한 한마디. 야, 너도 영어 할 수 있어! 나는 그 설득력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약간의 공백 뒤에, 따뜻하고 친근한 인상으로 건넨 한마디에 나는 39년간 꿈도 꿔보지 못한 새로운 언어에 대한 희망을 키웠다. 정말 나도 할 수 있을까? 다시 뜬금없게도 그 한마디에서 사람들이 느낀 건 단순하게, 아 그래? 나도 영어 할 수 있다고? 개이득, 정도의 희망이 아니었다(고 나는 주장한다). 영어든 수학이든, 취업이든, 연애든, 결혼이든, 성공이든 부귀와 영화든, 소박한 것이든 거창한 것이든, 너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응원하는 꽤 울림 큰 언어였다. 지친 저녁 별 생각 없이 TV를 켰는데 귀여운 정석 오빠 형 동생이 나와서 할 수 있다고 말해준 것이다. 20~30대만이 아니라 40대인 나도 가능성을 선물받은 것 같았다. 내 친구 정석이한테. 친구? 정석아, 우리 동갑인데 친구라고 해도 되겠니? 그러니까 조정석은 직업은 배우이나 연기를 하는 것은 아니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즐거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거 같다. 지금 전 국민이 다 속고 있는 거야. 조정석은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고! 핵심은 ‘따뜻하고 즐거운’일 거 같다. 조정석은 얼굴 찌푸리게 하는 법이 없다. 일단 남자 연예인이 문제 일으키기 쉬운 것 중 하나가 여자와 관련된 건데, 결혼, 했다. 잘 산다. 배우자는 실력을 인정받는 뮤지션이다. 평판, 좋다. 남편은 남편대로 부인은 부인대로 존중받는 직업인의 삶을 살고 있다. 구설수, 없다. 그리고 조정석은 대체로 따뜻하고 즐거운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 보니 조정석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칼럼니스트로서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하지만, 저 위에서부터 쭉 적고 있는 바와 같이, 조정석은 정말로 좋은 사람이어서 좋은 사람처럼 보이는 역할을 연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정말로 좋은 사람인지 어떻게 아냐고? 모르지. 그런데 우리 다 그렇게 느끼고 있잖아. ‘고맙게도’라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지만, 고맙게도 그는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다.

나는 조정석이 연기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관심이 없다. 연기를 잘하지만 호감이 느껴지지 않는 배우가 많으니까, 역설적으로 연기는 그저 기능의 하나일 뿐이라고, 이 글에서만은 우기고 싶달까. 누군가를 좋아할 이유로 충분하지는 않다고. 흔히 조정석 같은 배우에 대해 동네에 한 명 있을 것 같은 적당히 귀엽게 생긴 편안하고 착한 오빠 혹은 형 같다고 표현한다. 그런데 동네에 그런 오빠 있어? 없다. 현실에 있을 거 같은데 은근 없는 캐릭터. 딱 이 지점이 매력적이다.

한 가지 문제가, 정말 문제 아닌 문제가 있다. 질린다. (자, 팬분들 화부터 내지 말고 끝까지 읽으세요!) 캐릭터가 제한적이라고 해야 하나? 드라마 <질투의 화신>에서도 <오 나의 귀신님>에서도 모두 다른 역할을 맡았는데 모두 다 조정석 같다. 뭘 하든 조정석이 조정석 하는 느낌. 갑자기 악역을 맡거나 음, 마블에 캐스팅되면 안 질리려나? 그래도 질릴 거 같다. 나는 조정석이 연기하는 악당에게서 조정석류의 인간적 고뇌를 느낄 것 같고, 화려한 마블 캐릭터 속에서, 아 이건 너무 뜬구름 잡는 예인 거 같으니 없던 걸로. 아무튼 무엇을 연기하든 조정석은 조정석이겠지? 그리고 방금 말했듯 동네에 있을 법한 청년이니 질리는 게 당연하다. 보통은 그렇다. 그런데 이런 글은 대체로 끝이 훈훈해야 해서 하는 말이 아니고, 거듭, 동네에 이런 오빠는 없다. 평범하고 귀엽고 깔끔하게 생겼는데 착하고 매너 좋고 재밌고 푼수 같으면서도 세련된 오빠가 어딨어? 있을 것 같은데 없는 거. 그래서 안 질린다. 질릴 거 같은데 안 질린다. 뭔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미세한 변별력 같은 것. 미세해서 글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하나 둘 셋 하는 순간 숨을 내쉬었다면 진부했을 텐데, 하나 두울 하는 순간 숨을 내쉬어서 심장이 쿵 내려앉는, 뭐 이런 작은 차이. 사람의 마음을 만지는 조정석의 리듬이랄까. 비유가 아니라, 그것은 마약 같아서 남녀노소 중독될 수밖에 없다고 적으면 진부할까? 뭐 어쩔 수 없지. 그러니 나는 여기 한마디 더 적어둔다. 조정석 님, 부탁드립니다. 이미지 변신하지 마세요. 악역 하지 마세요. 계속 따뜻하고 즐거운 역할 해주세요. 모두 닮은 조정석도 모두 다른 조정석이에요. 그리고 동네에 정말 당신 같은 이웃이 있다면, 아, 말도 안 돼, 절대 질릴 리가 없지!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이우성(시인,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에이전시 미남컴퍼니 대표)

2021년 08월호

MOST POPULAR

  • 1
    래퍼 넉살이 보드게임을 추천한다면?
  • 2
    시계 애호가로 소문난 그들의 손목 위
  • 3
    2025 F/W FASHION WEEK
  • 4
    자유와 용기 그리고 할리데이비슨 컬렉션스
  • 5
    어쩌면 전설이 될 시계

RELATED STORIES

  • LIFE

    올해, 단 하나의 테크 아이템과 함께 한다면

    국내 테크 유튜버 6인에게 묻는 올해의 ‘최애템’.

  • LIFE

    밀라노의 쇼핑 오아시스, 피덴자 빌리지

    쇼핑을 넘어 예술과 미식까지.

  • LIFE

    작업 시간 1시간은 줄여주는 AI

    효율적인 월요일을 위하여!

  • LIFE

    공간의 ‘힙’ 지수를 올리는 러그 5

    작지만 강렬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 LIFE

    Bold Bottles

    진열장이 달라 보인다. 병 자체가 장식물로 남을 주류 4종.

MORE FROM ARENA

  • FASHION

    한낮의 대화

    열 번째 파리 패션위크, 세 번의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마친 시스템 글로벌 컬렉션 ‘시스템 스튜디오’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김희수와의 인터뷰.

  • LIFE

    오빠 차란 무엇인가?

  • LIFE

    끝나지 않은 냉삼시대

    '냉삼' 춘추전국시대에 도전장을 내민 신상 맛집 4

  • FASHION

    패션 테크 아이템, 파슬 ‘하이브리드 워치’

  • LIFE

    가슴이냐 물이냐

    여자는 A컵이지만, 내게 신세계를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그 여자는 이런 말을 덧붙였다. “자신은 물이 많다고.” 물도 자부심이 될 수 있을까?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