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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예능이라는 불안

고릿적 <러브하우스>부터 최근 <구해줘 홈즈>, 파일럿 예능 <돈벌래>에 이르기까지, 시대가 집을 보는 관점은 TV 예능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헌 집 줄게 새집 다오’에서 ‘세상에 이런 예쁜 집이’를 거쳐 ‘집 살 때 뒤통수 맞지 말자’ 나아가 ‘부동산 부자가 되어보자’까지, TV가 보여주는 구체적이고 선명해지는 욕망 속에서 시청자는 무엇을 채우고 있는 걸까? 대리만족? 투기의 지혜? 그렇다면 그 욕망이 소외시키고 있는 건 뭘까? 사다리가 사라진 서울의 장벽 앞에 망연자실한 세대의 일원이자, <아무튼, 예능>의 저자, 복길이 들여다봤다.

UpdatedOn December 04, 2020

 


나는 아직도 뭔가를 공개할 때면 “따라따라딴~” 하는 <러브하우스>의 집 공개 테마곡(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의 사운드트랙이다)을 흥얼거린다. 30대가 되니 주변엔 이제 저 노래를 부르면 모르는 사람이 반이고 알아도 “옛날 사람이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이 반이다. 같은 청년 그룹을 분열시키는 저주받은 멜로디여.

<러브하우스>는 늘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살아가는 의뢰인을 보여주었다. 마치 ‘이만큼 어렵고 저만큼 열심히 사는 사람에겐 근사한 집을 선물해줘도 괜찮겠죠?’라고 동의를 구하듯이. 나는 우리 집이 <러브하우스>에 등장하는 상상을 자주 했었다. 계단 뒤에 숨겨진 다락방, 슬라이딩 도어를 밀면 나오는 자투리 수납공간. 로봇이 변신하듯이 마술처럼 계속 나오는 공간들은 죄다 멋진 용도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사연을 보내본 적은 없었다. 내가 열심히 사는 효녀가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무리 멋지게 리모델링을 해준다 한들, 모르는 사람들이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보고 경악하며 “더러운 집, 위험천만한 집”이라 부르는 걸 견디지 못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공익 예능’으로 불리던 방송들이 대부분 그랬다. 어려운 사람을 돕고, 그들이 필요한 걸 충족시켜줬다. 거기에 ‘모두가 남을 돕는 세상이 되길 바란다’는 메시지까지 녹여냈다. 선한 의도, 확실한 생색에 정서적 공감까지 유도해낸 것이다. TV가 남의 삶, 가난과 어둠을 들춰내는 태도엔 브레이크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감동을 받았다. 자본주의의 명암을 혹독하게 겪으면서도 ‘이웃사촌 간의 정’에 쉽게 녹아내리고, 땀 흘려 노력한 만큼 차를 사고 집을 샀던 세대가 있었다. 모두가 중산층의 꿈을 꿀 수 있었고,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금을 모아 IMF 금융위기를 헤쳐 나가던 사람들을 상대로 했기에 가능했던 방송이었다.

<러브하우스>로부터 10년. 2008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 닥친 세계경제위기는 내 삶에 큰 영향을 주었다. IMF도 버텨낸 아버지의 사업이 무너진 것이다. 대비하지 못한 큰 절망은 극복할 힘도 남겨놓지 않는다. 싸게 샀던 땅이 크게 뛰었다며 좋아했던 아버지의 부동산은 훨씬 더 적은 값에 남의 것이 되었고, 탱크가 들이받아도 끄떡없을 거라던 펀드 수익률은 연일 고꾸라졌다.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나는 빠르게 ‘흙수저’ 계급임을 각성하고 수용해서 내 삶을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고용 불안의 장기화, 계급 사다리의 붕괴, 가속화되는 빈부 격차. IMF 직후부터 예상되던 내 미래의 우울은 전부 현실이 된 것이다.

<러브하우스>로부터 20년. 이제 인정(人情)이 중요하던 세대는 자취를 감췄고, 누구나 원하면 안정을 누릴 수 있다고 주장했던 세대는 증여를 준비한다. 그 아래엔 증여를 받을 수 없다면 평생 생계를 걱정하며 살아야 하는 내가 있다. 여섯 번의 이사를 하며 체득한 주거 불안정은 많은 것을 깨닫게 했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한다’던 숱한 공익 예능들이 시청자에게 ‘난 저들만큼은 가난하지 않다’는 안심을 유발했다는 사실도 그중 하나였다. 그러나 시혜적인 태도조차 사치인 시대가 되니 누구도 ‘공익’의 가치를 얘기하지 않는 현실을 보라. 20년이 지난 지금, ‘나 살기 바쁘다’는 정서를 공유하는 사회가 되자 사람들은 <러브하우스> 의뢰인의 집이 아무리 더럽고 위험천만했더라도 자가였을 거란 사실을 새삼 부러워하게 된 것이다. 미디어는 부동산에 대한 대중의 변화한 태도를 담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퀴즈를 맞히면 집 장만의 꿈을 이뤄준다던 <내 집 장만 토너먼트: 집드림>(2011)부터 <러브하우스>의 스토리텔링 포맷을 계승한 <렛미홈>(2016), <내 집이 나타났다>(2017), ‘새 집을 살 수 없다면 집을 고쳐 살자’는 취지의 인테리어 예능 <헌 집 줄게 새집 다오>(2014), <수컷의 방을 사수하라>(2015)까지. 넓게 보자면 방송이 끝나자마자 출연자의 집 위치와 평수, 시세 등을 정리한 게시물이 올라오는 <나 혼자 산다>, <전지적 참견 시점> 등의 관찰 예능도 그 연장이라 할 수 있다.

부동산을 다루는 예능은 늘 ‘솔루션’이라는 띠지를 두르고 있었다. <구해줘 홈즈>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2019년에 시작한 이 방송이 전과 다른 점이라면 ‘솔루션’이라는 취지를 활용해, 지금 부동산이 갖고 있는 본질적 문제에 좀 더 가까이 접근했다는 것이다. <구해줘 홈즈>는 ‘대신 발품을 팔아주는’ 공인중개 예능이다. 방송국에서 돈을 들여 새집을 마련해주지도 않고, 무리하게 사연을 끌어내 리모델링을 해주지도 않는다. 그들은 그저 의뢰인이 말한 조건에 맞게 리스트를 만들고, ‘집을 보는’ 과정을 의뢰인, 시청자와 함께 나눌 뿐이다. 집을 소유한다는 개념이 희박해지고,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이사를 다녀야 하는 한국 부동산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제작진은 터무니없는 가격, 주거의 기본조차 갖추지 않은 양심 없는 집에 좌절했던 사람들을 위로하며 <구해줘 홈즈>가 골라주는 합리적인 매물과 가격을 통해 집을 투자의 대상이 아닌 주거의 가치를 지닌 공공재로 바라봐주기를 의도한다. 그러나 많은 공익적 의도를 표방한 예능들이 그러했듯 방송은 기획 의도와 달리, 사회적 맥락으로 소비되며 부작용을 만든다. <구해줘 홈즈>가 주거 솔루션이라며 제공한 정보는 집이 속한 지역, 환경, 인프라, 개발 조건을 따지고, 그 기준에 따라 확연히 차이 나는 매물과 시세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집을 투자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속박시킨다. <구해줘 홈즈>가 초래한 부작용 자체를 콘텐츠로 삼은 방송도 생겼다. 올해 9월 파일럿 방영을 했던 <돈벌래>다. ‘부동산 현장 학습 토크쇼’를 자처한 프로그램은 “한국의 주된 재테크 수단인 부동산을 어떻게 고르고 지킬 수 있는지 정보를 공유하겠다”는 의도를 밝힌다. 용산구 후암동 일대를 찾은 그들은 정비창 지역을 개발 호재와 시세 차익이 기대되는 곳이라 ‘알짜 정보’를 주듯 말하고, 낙후된 주택촌을 비추며 재개발 기대로 뭉칫돈들이 잠자고 있다는 자막을 내보내고, 투기를 막기 위해 시행된 토지거래 허가제를 두고 ‘리스크’라는 표현을 쓰며 이유리에게 ‘부린이(부동산 어린이)’라는 별칭을 지어주고 그를 계도하는 태도를 보인다. <구해줘 홈즈>와 같은 솔루션 예능들이 공익 예능의 태도를 정리하고 새로이 자리 잡으려 하는 과도기에, <돈벌래>는 세속적인 욕망을 더욱 파고들어 ‘진짜 현실적인 솔루션을 보여주겠다’며 부동산 예능에 대한 씁쓸한 회의감을 남겼다. 부동산 정책 실패와 그로 인한 투기 광풍은 우리가 맞이한 현실이다. 그러나 부동산의 투기 과열과 낙후 지역 주민의 거주 불편 등을 아울러야 할 공영방송이 자꾸만 ‘부동산’을 향한 욕망에 솔직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집을 투자의 대상으로만 이야기하고, 이를 이용해 불로소득을 얻는 방법을 다루는 방송 콘텐츠는 자산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그리고 청년 세대의 주거 불안정, 무주택자, 쪽방촌 등 곳곳에 존재하는 주거 불평등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다. 어쩌면 부동산을 다루는 미디어는 20년 전, ‘공익’이라는 얼굴로 ‘가난한 네게 은혜를 베풀겠다’던 태도에서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단지 ‘가난을 대비하지 못한 너를 소외시키겠다’는 잔인한 멸시로 진화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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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예지
WORDS 복길(<아무튼, 예능> 저자)

2020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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