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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누가 살아남을까?

전 세계에 전염병이 퍼지고, 시위가 발생해도 공은 굴러간다. 안 열릴 것만 같았던 챔피언스리그가 시작된다. 32강 조 추첨은 마무리됐고, 죽음의 조가 두 개나 나왔다. 그중 가장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H조에는 황희찬의 소속팀 RB 라이프치히가 속해 있어 국내 팬들의 관심이 쏠린다. 또 다른 죽음의 구렁텅이인 D조도 흥미로운 대진이다. H조와 D조에서 살아남을 팀은 누구인가.

UpdatedOn October 22, 2020


2020/21 UEFA 챔피언스리그는 코로나19 2차 확산 속에서도 엔진 기어를 한 단계 위로 올려 조별 리그 대진을 확정했다. 조별 리그 96경기를 볼 시간과 체력이 부족한 현대인을 위해 D조와 H조를 쏙 골라 추천한다.

D조에는 리버풀(강하다), 아약스(잘한다), 아탈란타(골맛집) 그리고 덴마크의 FC 미틸란드가 들어갔다. 미틸란드에 미리 심심한 위로를 전하며 나머지 세 팀의 경쟁을 즐기자. 최고 관심사는 아탈란타다. 잔 피에로 가스페리니 감독 아래서 아탈란타는 ‘미친 득점력’을 뽐낸다. 지난 시즌 세리에A에서 가장 많은 98골을 기록했다. 두 자릿수 득점자를 다섯 명이나 배출했다. 올 시즌 세리에A 개막 3연승인데 4골, 4골, 5골의 괴력을 발휘 중이다. 중앙을 아예 비운 채 측면에서 수적 우위를 지켜 상대 수비를 허무는 공격 전술이 직선적이며 파괴적이다. 지난 시즌 최다 득점자인 조십 일리치치가 우울증에서 회복 중인데, 팀 주장 파푸 고메스가 리그 3경기 4골로 대리 폭발하고 있다.

리버풀에게 챔피언스리그는 앞마당처럼 편하다. 국내에서 부진하다가도 유럽으로 나오면 갑자기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전통을 계승한다. 여름 이적 시장에서 실패했다고 해도 유럽 스포츠 베팅업체들은 바이에른 뮌헨, 맨체스터 시티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우승 확률을 내걸었다. 팀 스타일상 아탈란타의 두 차례 맞대결이 이번 시즌 조별 리그의 하이라이트다. 양쪽 모두 전력이 측면에 집중된다. 중앙 자원의 지원 여부가 승부를 가를 것으로 기대된다. 리버풀의 숙제는 집중력 유지다. 디펜딩 챔피언으로 나섰던 지난 시즌 대회에서 리버풀은 허무하게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30년 만에 프리미어리그 우승했다는 기쁨도 불과 몇 주 뒤에 열린 애스턴 빌라전 2-7 대패로 망가졌다.

아약스가 쌍웅의 틈을 노린다. 현재 에릭 텐 하그 감독은 유럽에서 가장 촉망받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2년 전, 어린 선수들을 중심으로 유로파리그 준우승과 챔피언스리그 4강 업적을 남겼다. 그라운드 전 영역에서 일대일 압박을 전개해 상대의 리듬을 끊는다. 후방 빌드업에서는 철저히 정해진 포지셔닝으로 삼각형 포진을 여러 개 만들어 기계적으로 전진한다. 클럽 운영 정책상 선수단 변화가 잦을 수밖에 없다는 단점을 텐 하그 감독은 시스템의 완성으로 메운다. 그런데도 올 시즌은 전력 누수가 너무 커서 걱정이다. 프랭키 더용과 마티스 더리흐트, 카스퍼 돌베리는 물론 도니 판더비크, 하킴 지예흐까지 팀을 떠났다.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스트라이커 자원이 부족해진 탓에 텐 하그 감독은 4-3-3, 4-4-2 포메이션에서 4-2-3-1 전환을 시도 중이다.

이번 조 추첨에서 가장 흥미로운 결과는 H조다. 전력 차이가 크지 않아 ‘죽음의 조’가 성사된 점 외에도 자본주의와 권력을 공유하는 네 팀이 한자리에 모였다. 파리 생제르맹(PSG)의 주인은 알다시피 카타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는 스포츠 마케팅의 정점에 선 클럽이며 RB 라이프치히는 에너지 드링크 레드불이 소유한 기업 구단이다. 터키 챔피언인 이스탄불 바삭세히르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홍보를 위한 클럽에 가깝다. 막강한 권력과 자금력을 앞세워 성공을 쟁취하는 기득권 클럽들이 H조에 모인 것이다.

지난 시즌 PSG는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지만 챔피언스리그 울렁증을 깼다는 소득이 있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유럽 축구 시장 불황은 PSG에 호재로 작용한다. 경쟁자들의 지갑이 쪼그라들어 네이마르, 킬리앙 음바페, 율리안 드락슬러 등이 잔류를 선택했다. 임대생 마우로 이카르디를 완전 영입했고, 다닐루 페헤이라, 알레산드로 플로렌치, 하피냐, 모이스 킨 등 준척들을 손에 넣었다. 리그앙 개막 2연패로 주춤했지만 이내 4연승을 기록하며 토마스 투헬 감독을 둘러싼 역린 의혹도 씻었다. PSG의 장점은 공격진의 압도적 개인 역량이다. 앙헬 디마리아까지 가세하는 공격력은 일대일 싸움으로 상대 수비진을 깨트린다. 그라운드 밖에서 문제만 제어하면 PSG는 이번 시즌도 최소 8강권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지난 시즌 맨유는 긍정적 마무리를 보였다. 그리고 시작된 새 시즌 개막전 패배, 3라운드 토트넘전 1-6 패배로 뜻밖의 위기에 빠졌다. 오프시즌 내내 공들였던 제이든 산초의 영입이 불발되어 상실감도 크다. 벌써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의 이름이 거론될 정도로 혼란스럽다. 하지만 이런 부진은 일시적일 가능성이 크다. 기본 바탕이 탄탄한 덕분이다. 브루누 페르난데스와 폴 포그바를 보유했고, 도니 판더비크, 에딘손 카바니를 데려왔다. 유스 출신 마커스 래시퍼드와 메이슨 그린우드도 잠재력을 선보인다. 이 정도 스쿼드라면 챔피언스리그 무대에서도 공격력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단, 센터백 포지션에 불안감이 있다. 해리 맥과이어, 에릭 바이, 빅터 린델로프가 현재 부진을 떨치지 못하면 PSG의 개인기와 RB 라이프치히의 전방 압박에 고전할 공산이 크다.

라이프치히는 계속 발전 중이다.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티모 베르너 없이 거둔 4강 실적이 증거다. 베르너의 대체자는 자매 클럽에서 데려온 황희찬과 크리스털 팰리스에서 2천만 유로를 주고 영입한 알렉산더 소를로스다. 일취월장 중인 다요 우파메카노를 지켜 수비력도 유지한다. 국내 팬들에겐 당연히 황희찬이 최고의 볼거리다. 레드불 산하에서 조련된 덕분에 황희찬은 율리안 나겔스만 감독의 전술 적응에도 어려움이 없다. 득점뿐 아니라 도움 능력까지 검증된 터라 포스트-베르너 체제에서 기대가 크다. 나겔스만 감독은 백3 전술을 바탕으로 과하다 싶을 정도로 높은 플레이 라인을 유지한다. 후방 빌드업을 확실히 전개하지 못하는 팀은 RB 라이프치히를 상대로 자기 진영에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

터키 챔피언 이스탄불 바삭세히르는 챔피언스리그 신입생이다. 1990년 창단해 2014년 현재 이름으로 개칭했다. 지난 시즌 이스탄불 빅3 클럽 체제를 깨트리며 첫 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논란의 인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과 깊은 연관이 있어 터키 축구 민심에서는 ‘공공의 적’으로 인식된다. 프리미어리그 팬들은 오랜만에 뎀바 바와 마틴 스크르텔의 플레이를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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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WORDS 홍재민(축구 칼럼니스트)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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