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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F/W 파리, 밀라노, 런던 패션위크의 베스트 쇼 10.

UpdatedOn March 09, 2020

PARIS
BEST 4
3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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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라프 시몬스의 공상과학 영화

Raf Simons
라프 시몬스는 가까운 미래의 먼 우주로 초대했다. 솔라 유스 군단은 어깨가 각진 밀리터리풍 코트에 퍼로 된 머프를 받쳐 들거나 어깨에 꼭 맞는 숄을 더해 다소 경직된, 새로운 실루엣을 제시했다. 두텁게 몸을 덮는 코트와 발라클라바, 오버사이즈 체크무늬 등 쇼 전반을 채운 요소들은 라프 시몬스의 아카이브 중에서도 그가 아주 잘하는 것들로 채우고 재구성했다. 베스트 룩 하나만 고르기 어려울 만큼 눈길을 끄는 룩들이 연이어 등장했다. 게다가 쇼를 보는 내내 인상적이던 부츠와 로퍼가 사실 러닝화에 기반한 운동화라는 데서 또 한 번 감탄했다. 다가올 시즌 스니커즈 상승 주가가 불 보듯 뻔하다. EDITOR 이상

  • 2 뉴 베트멍

    Vetements
    보안 메시지가 흘러나왔다. “쇼를 보려면 카메라 플래시를 켜세요.” 사방에서 휴대폰 조명이 반짝이는 가운데 쇼가 시작됐다. 뎀나 바잘리아가 떠난 이후 첫 번째 컬렉션. 모델 라인업이 화려했다. 나오미 캠벨, 앤젤리나 졸리, 케이트 모스, 스눕독 그리고 마이크 타이슨. 알고 보면 모두 가짜. 마지막까지 타이슨은 진짜인 줄 알았지만. 데님, 트레이닝팬츠, 튀튀 스커트 가리지 않고 더한 가랑이까지 닿는 긴 부츠가 가장 쿨했다. 노곤한 비즈니스맨 같은 헐렁한 수트와 턱시도, 페이크 퍼 코트, 아니면 그냥 티셔츠 등등 콘셉트에 목매지 않은 베트멍 식의 멋진 옷이 급하게 지나갔다. 그들의 간결한 쇼노트가 모든 걸 설명한다. ‘지속가능한 쇼, 가짜 셀러브리티, 노 소셜 미디어(플래시 비추느라?), 스포트라이트를 비춘 옷, 금요일의 비즈니스 캐주얼 등등’ 그리고 마지막 해시태그는 #NEWVETEMENTS. 하나 덧붙이자면 #성공적. EDITOR 최태경

  • 3 빵빵한 와이 프로젝트

    Y/Project
    대형 풀장 안에 성인 남자의 허리를 훌쩍 넘는 높이로 유치찬란한 풍선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쇼장에 들어서면 일단 풍선 풀장으로 입장. 여기저기 터지는 소리가 난무했다. 삭막한 파리 패션위크 기간에 난데없이 동심이 난입한 현장. 모델들은 풀사이드를 걸었고, 관객은 풍선 틈에서 고개를 꺾어 쇼를 올려다봤다. 그래선지 언밸런스한 드레이핑은 더 불규칙하고, 풍성해 보였다. 가랑이 라인을 따라 아찔하게 파인 V컷 하이 웨이스트 팬츠는 쫀쫀한 보디수트에 매치하고, 헐렁한 블레이저를 툭 걸쳤다. 웨스턴 부츠, 날렵한 팬츠 위로 비틀린 테일러드 재킷, 풍성하게 엉킨 아우터가 두서없이 등장했다. 쇼 말미, 빵빵하게 부풀어 오른 캐나다 구스 협업 라인은 진짜 풍선 같았다. 물론 좋았다는 얘기. 지금까지 본 캐나다 구스의 협업 컬렉션 중 가장 흥미로웠으니까. EDITOR 최태경

4 르도빅 드 생 세르냉의 프런트 로

Ludovic De Saint Sernin
파리 컬렉션의 신예를 말할 때 늘 거론되는 르도빅 드 생 세르냉 쇼는 컬렉션의 마지막 날 열렸다. 발망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올리비에 루스테잉이 프런트 로에서 목격됐고, 릭 오웬스는 그의 오랜 동료이자 모델인 타이런 딜런과 함께 쇼를 찾아 소소하게 이목을 집중시켰다. 쇼장을 메운 화려한 셀럽은 없지만, 여유로운 긴장이 깔린 채 쇼는 시작됐다. 이전까지 르도빅 쇼가 격정적인 감정을 보여줬다면, 이번 시즌은 한결 침잠한 태도. 아슬아슬하게 몸을 감싼 거미줄 디자인의 스와로브스키 톱과 벨트, 얼굴을 반쯤 가린 마스크, 찢어진 하트 모양 심벌로 특유의 기묘한 정서를 표현했다. 한편으로는, 가죽부터 안개처럼 속이 비치는 실키한 소재까지 몸에 흐르듯 재단한 현대적인 테일러링을 보여주는 룩들도 눈에 띄었다. EDITOR 이상

MILAN
BEST 3

5 펜디의 가방 퍼레이드

Fendi
룩도 꽤 멋졌지만, 펜디의 2020 F/W 남성 컬렉션 하이라이트는 뭐니 뭐니 해도 가방이었다. 일단 제일 먼저 눈길을 끄는 건 브랜드의 상징인 노란색. 노란 가죽으로 만든 토트백과 바게트 백, 옷을 세 벌쯤 넣을 수 있을 만큼 큼지막한 가죽 쇼퍼 백, 파우치와 각진 하드 케이스 러기지, 주얼리 박스 형태의 백 참까지. 도드라지게 선명한 노란색은 누가 봐도, 멀리서 봐도 명백한 ‘펜디’였다. 미니 백의 유행을 증명하듯 앙증맞은 핸드백과 크로스백도 군데군데 눈에 띄었고, 니트 소재를 과감하게 사용한 피카부 백, 복슬복슬한 털로 마감한 가방 체인, 밑부분을 하드 사이드로 처리한 FF 로고 토트백이 펜디의 가방 컬렉션을 더 풍성하게 만들었다. 크기가 다른 두세 개의 백을 매치한 스타일링 역시 굉장히 새로워 보였다. EDITOR 윤웅희

3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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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프라다의 쇼장

Prada
이번 밀라노 컬렉션에서 기억에 남는 쇼장을 단 하나만 고르라면, 그 대답은 고민할 필요 없이 프라다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프라다는 렘 콜하스의 리서치 & 디자인 스튜디오 AMO와 함께 쇼장을 디자인했다. 두 개의 동일한 공간으로 분리된 스테이지, 각 공간의 중앙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조형물, 조르조 데 키리코(Giorgio de Chirico)를 연상시키는 감각적인 색채와 새빨간 빛이 새어나오는 회랑, 무대를 내려다보게 설계된 관객석 구조까지. 거대한 공간은 추상적으로 재구성한 광장처럼 보였고, 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우뚝한 존재감으로 관객을 압도했다. 모델들이 회랑을 런웨이 삼아 걸어나오자 곳곳에서 탄성이 새어나왔다. 부츠 안으로 넣은 바짓부리, 슬리브리스 셔츠 위에 겹쳐 입은 니트 베스트, 소재와 컬러를 기가 막히게 조합한 스타일링이 프라다의 동시대적인 미감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모든 모델이 쏟아져 나온 피날레. 각양각색의 색깔과 패턴, 다채로운 질감이 무대 위에 뒤섞이고, 과장된 실루엣의 재킷과 그래픽 패턴 니트가 공간과 한 몸처럼 어우러졌다. 퍼즐의 마지막 조각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EDITOR 윤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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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가장 마르니적인 퍼포먼스

Marni
파란 네온으로 불을 밝힌 터널을 통과하자 넓고 캄캄한 공간이 나타났다. 마르니 옷을 입은 수십 명의 모델이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고, 관객은 모델을 둘러싼 채로 쇼가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안개처럼 음악이 깔리고 스포트라이트가 켜지자 모델들은 아주 기이하게 움직였다. 바닷속 해조류처럼 몸을 움직이거나 느리게 흔들거렸고, 현대 무용수처럼 팔을 뻗거나 몸을 비트는 이들도 있었다. 모델보다는 댄서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것 같았다. 이들은 서서히 이동하고 이따금씩 걸으며 서로 마주 보았다. 그렇게 5분이 흘렀을까. 갑자기 조명이 밝아지고 음악이 커졌다. 모델들이 강렬한 비트에 맞춰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뜨겁게 달궈진 물체의 분자운동을 보는 것처럼 어지럽게. 관객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움직였다. 비대칭적으로 재단된 코트, 해진 듯한 니트와 빈티지한 질감의 가죽 재킷, 눈을 현란하게 하는 패턴과 색깔이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어디서 본 듯한 옷이라고는 없었다. 모든 룩이 신선하고 짜릿했다. 프란체스코 리소가 마르니를 완전히 자신의 색깔로 장악한 것이 확실해지는 순간이었다. EDITOR 윤웅희

LONDON
BEST 3
3 /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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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샌더 주의 저 세상 패션

Xander Zhou
샌더 주의 2020 F/W 컬렉션은 기이했다. 모델의 얼굴과 옷은 절반이 다른 톤으로 칠해졌고, 양쪽 눈엔 색이 다른 콘택트렌즈까지 착용했다. 쇼 중·후반에는 픽셀 그래픽이 또 한 번 충격을 줬다. 이것은 샌더 주가 추구하던 ‘젠더’ 이슈를 뛰어넘은, 우주를 초월한 테마처럼 보였다. 평소 같으면 고개를 갸우뚱했겠지만 이번엔 박수가 먼저 나왔다. 난해한 쇼는 대부분 구성이 엉성하다. 샌더 주는 디테일이 너무 탄탄했다. 콘셉트는 추상적이었으나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되는 옷을 만들었다. 로맨스와 드라마만 즐비했던 이번 런던 컬렉션에 잘 만든 SF 영화 한 편 보고 나온 느낌이었다. EDITOR 이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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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런던의 산 역사이자 미래, 헌츠맨 & 선스

Huntsman & Sons
런던 컬렉션은 신진 디자이너들을 적극적으로 인큐베이팅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다 보니 선수층이 얇다. 좋은 팀은 신구의 조합이 잘 이루어졌을 때 탄생하는 법. 몇몇 이름값 있는 신인 디자이너들마저 다른 도시로 무대를 옮겼다. 지금 런던 컬렉션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성이다. 젊고 재기 발랄한 것도 좋지만 런던의 정체성을 이어갈 브랜드를 찾는 것도 필요하다는 얘기. 런던의 맞춤 수트 거리로 유명한 새빌 로에서 열린 헌츠맨 & 선스의 작은 프레젠테이션이 어느 때보다 반가운 이유다. 영화 〈킹스맨〉의 본진으로도 유명한 이곳은 실제 운영 중인 맞춤 수트 매장. 원단의 직조 과정과 왕족의 의복을 제작했던 히스토리를 신제품과 함께 보여주는 행위 자체는 과거 회상에 불과했지만, 한 발짝 뒤에서 바라본 런던의 이러한 움직임은 분명 미래지향적이라 하겠다. EDITOR 이광훈

10 마틴 로즈의 ‘This is London’

Martine Rose
마틴 로즈 하면 떠오르는 키워드는 신예, 트렌드, 서브컬처, 독창성 정도였다. 시즌이 거듭되면서 마틴 로즈를 대변하던 키워드도 변했다. 농익는 중이랄까? 이번 컬렉션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것은 가장 ‘런던다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라는 것. 흡사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전성기를 보는 것 같았다. 캐주얼과 테일러링의 절묘한 교차, 고전적인 패턴, 과감한 아웃핏, 거기에 어디서도 본 적 없는 헤어스타일까지. 마치 ‘This is London’을 외치는 듯했다. 외진 곳에서 극소수의 프레스와 바이어만 불러 ‘숨은 동네 맛집 코스프레’ 컬렉션을 치르긴 했지만. 그게 또 거대 패션 하우스에서는 볼 수 없는 마틴 로즈만의 색깔이겠지. 런던의 진한 향수가 느껴지는 맛있는 컬렉션임엔 틀림없었다. EDITOR 이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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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이광훈, 최태경, 윤웅희, 이상
PHOTOGRAPHY 게티이미지코리아, 쇼비트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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