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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소나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형이상학적 가면극.

UpdatedOn August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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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산드로 미켈레의 세계관을 완벽하게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그의 상상은 일반적인 수준을 넘어서 훨씬 고차원적인 영역까지 뻗어 있다. 그래서 매번 구찌의 새 컬렉션은 디자인, 소재, 실루엣에 대한 단순한 설명보다는 미켈레의 세계관,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복잡다단한 이론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시작된다. 매 시즌 그가 어떤 매개체를 통해 스토리를 풀어낼지가 관건인데, 궁극적인 결론은 한 가지로 압축된다. 그의 세계관 안에서 자아는 대체로 관습적인 규율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스스로 창조하는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 이번 시즌엔 페르소나(Persona)를 통해 그 이야기를 시작한다.

배우의 얼굴을 가리면서, 관중에게 배역의 얼굴을 나타내는 가면을 뜻하는 라틴어인 페르소나는 사람(Person)이라는 단어의 어원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편견 안에서 가면은 본래의 얼굴을 가리는 은폐의 도구, 진실을 숨기는 용도로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고 한다면, 미켈레의 생각은 다르다. 스스로 원하는 존재가 될 수 있는 수단이라는 것. 가면은 자신에 대해 드러내고 싶은 이미지와 반대로 감추고 싶은 이미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강력한 필터가 되어, 자신의 존재를 비추는 모습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거다. 언제나처럼 장황한 스토리를 시작으로, 2019 F/W 시즌,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연출한 초현실주의 가면극이 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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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번지르르한 방콕 도심의 고풍스러운 저택, 넓은 정원 한편의 온실로 초대되었다. 기이한 가면을 쓴 구찌의 마네킹들이 줄지어 늘어선 모습은 왠지 은밀해 보이기까지 하고. 남녀 컬렉션이 섞여 있었지만, 미켈레에게 성의 경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무엇보다 1940년대 풍의 클래식한 테일러링이 눈에 띄었다. 피크트 라펠이 넓게 펼쳐진 재킷에, 발목을 바짝 조인 조거 팬츠를. 마켓 백 소재 같기도 하고, 얇은 천막 같은 소재의 오버사이즈 반소매 셔츠는 두툼하게 타이를 맨 긴소매 셔츠와 레이어링하고, 통이 넓은 팬츠 혹은 스커트와 스트리트풍으로 뒤섞었다.

남자의 룩에 크로셰 레이스 장식 셔츠, 풍성한 레이스로 이뤄진 엘레강스한 블라우스 등등 지극히 여성스러운 소재들이 뒤엉켜 있었지만, 미켈레의 구찌 안에선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무엇보다 기괴한 액세서리들이 시선을 압도했다. 그들의 가면이나 두툼한 초커엔 한 뼘 길이만 한 스파이크가 공격적으로 뻗어 있기도 하고, 진짜 귀 모양 장신구로 실제 귀를 완벽히 덮어 새로운 귀가 되거나, 재킷 라펠 양쪽에 브로치로 활용해 제3의 귀처럼 장식하기도 했다.

그러다 온실을 나서니 갑자기 현실이었다. 공기가 확연히 달랐다. 투명한 유리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현실과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고차원적 세계가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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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최태경

2019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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