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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한식 생활

조금 다른 한식을 생각하게 하는 가게 4곳.

UpdatedOn March 0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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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묘미

장진모 셰프는 생각했다. 꼭 한국에서 먹어야 하는 요리란 무엇일까. “한남동의 앤드 다이닝을 접고 3년 정도 쉬었어요. 실컷 먹으러 다녔죠. 그러다 일본에서 굉장히 비싼 식당에 갔어요. 1백 년쯤 된 가이세키였죠.” 식사는 물론 훌륭했다. 그런데 메인 순서가 되자 밥이 나왔다. 국도 없이, 3가지의 쓰케(절임)와 함께.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코스 요리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메인에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곳의 밥은 질감이 독특하고 훌륭했어요.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은 결국 밥에 있다’고 외치는 것 같았죠. 그때부터 밥에 관심이 생겼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줄곧 밥만 지었죠.” 묘미에서 장진모는 한국의 과거 음식을 현대화한다. 9가지로 구성된 코스를 선보이는데 그 시작이 쌀밥이다. 쌀의 도정도, 수분율, 향, 쌀을 씻는 방법, 밥 짓는 불의 세기, 끓는 시점, 뜸을 들이는 방법과 손님에게 내는 시간까지, 모든 부분에서 최적의 값을 찾아 지은 솥밥. 그것도 딱 한 술. 쌀밥의 뚜렷한 목표점을 제시하려는 거다. 지금은 백진주와 메리퀸 품종을 섞어서 쓴다. 쌀밥 메뉴의 이름은 라이스 비포 유 잇(Rice before you eat). 9가지 코스 안에서 ‘식전밥’이라는 독특한 자리를 점한다. 이어지는 코스 역시 현대 한식의 둘레를 조목조목 뒤집는다. “쌀밥의 뜸이 덜 든 것 같다는 반응도 있어요. 제 생각은 달라요. 한국에서 먹는 밥은 대개 오버쿠킹됐다고 보거든요. 모두 밥을 먹고 살지만, 우리가 먹는 밥이 과연 쌀을 물에 넣어 조리하는 ‘밥’이라는 요리의 정점일까요? 관습적인 맛에 길들어 쌀과 물의 가능성을 극대화한 밥을 어색해하는 건 아닐까요?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한식만이 한식일까요?”

주소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53길 20
문의 02-515-8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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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미아전

지중해 연안의 식당처럼 산뜻한 활기가 넘치는 이곳은 전집이다. 메뉴에는 육전, 새우전, 어전, 김치전, 배추전을 비롯해 11가지 전 이름이 빼곡하다. 미아전은 이 모든 전들을 타파스처럼 낸다. “브랜드 컨설턴트로 오래 일했어요. 와인과 한식을 좋아했고 매일 밤 사무실로 사람들을 불러 모아 놀았죠. 그럴 때면 전을 자주 부쳤어요. 여럿이 어울릴 때 핑거 푸드만 한 게 없잖아요. 전은 우리의 핑거 푸드였죠.” 미아전을 만든 두 대표는 전집이자 와인 바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쥐고 곧장 바르셀로나로 떠났다. 하루 종일 맛깔스러운 냄새가 피어오르는 보케리아 마켓과 도시 곳곳의 타파스 식당들을 수없이 드나들었다. 그 이국적인 도시에서 얻은 감각을 훌훌 풀어 미아전을 완성했다. 각지게 썬 두부를 사용한 두부전이나 감자전 등은 익숙한 맛과 모양으로 부친다. 한편 커다란 새우 한 마리를 튀기듯 구워 꽂아 내는 새우전, 쫄깃한 동태 살 대신 빵 같은 식감의 제주산 달고기를 부치고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어전, 모차렐라 치즈로 속을 채운 고추전과 같이 남다른 전도 판다. 술 메뉴의 주연은 내추럴 와인이다. “전에 꼭 막걸리나 소주만 마실 필요는 없잖아요. 게다가 한식과 내추럴 와인의 궁합은 꽤 훌륭하거든요.” 모든 요리 메뉴에는 내추럴 와인 숍 위키드와이프의 오너이자 와인 전문가인 이영지 대표의 컨설팅을 바탕으로 레드, 화이트 내추럴 와인 리스트를 꼼꼼히 적어뒀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언주로164길 34-1
인스타그램 @miajeon_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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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사계

낮이면 공업사를 드나드는 사람과 곳곳에서 짓고 부수고 옮기는 소리로 북적이는 성수동의 한 골목에 사계가 있다. “밤이 되면 다른 얼굴이 돼요. 완전히 고요해져요. 2호선 전철이 덜컹거리며 지나는 소리도 들리고요. 이 자리가 완벽히 좋았습니다.” 파르라니 하얀 백자와 정체 모를 짚단, 나무 속살처럼 엷은 색의 한스 베그너 체어 CH24, 흙 묻은 작은 바위가 사계절처럼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서 있다. 사계 곳곳에는 도자기에 푹 빠진 구자훈 대표가 몇 해 전부터 모아온 컬렉션이 다양하게 숨어 있다. 사계는 공간 디자인 일을 한 구자훈, 일본 극단 ‘사계’에서 20대를 보낸 배우 유승국이 기본기 탄탄하고 다양한 시도에 거리낌없는 젊은 요리사들과 함께 이끈다. 메뉴는 계절에 따라 흐른다. 이 땅에서 자란 제철 재료의 신선함 그 자체가 사계의 맛을 정의한다. “옛 문헌을 참고해 지방의 향토 음식과 전통에서 영감을 받은 음식들을 다룹니다. 전통주나 내추럴 와인에 곁들일 만한 요리에 중점을 두고요. 각 지방의 향토 음식을 배우기 위해 직접 찾아가 인터뷰를 하기도 해요. 식재료가 나고 자란 과정, 지방의 특산물이 된 이유를 직접 묻고 듣고 기억하기 위해서죠. 그다음 우리 식대로 변주합니다.” 제주 음식인 우럭 콩조림을 접하고 만든 통영 우럭 튀김 콩조림은 신선한 우럭 한 마리를 그대로 튀겨 소금을 슬쩍 뿌린 뒤 달큼한 콩조림과 함께 낸다. 고창의 민물 장어는 짚불 구이를 하고, 한우 육회는 일본식 다다키처럼 겉면만 살짝 익힌다. 복잡한 조리 단계를 거치는 메뉴는 없다. 냉동실도 대체로 비어 있다. 신선한 식재료를 쓰되 조리 과정은 최소화하는 것이 사계의 법칙이다.

주소 서울시 성동구 연무장13길 19
인스타그램 @seasons_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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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제일

처음 김주환 대표가 구상한 것은 하나의 장면이었다. 고기를 굽겠다는 것. 제일에는 그 단출한 장면이, 하얀 종이 위에 새카만 점 하나를 찍은 듯 강렬하게 펼쳐진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건 휑뎅그렁하게 빈 공간과 2개의 검은 화로만이 놓인 오픈 키친과 스무 명쯤 앉을 수 있는 기다란 셰어 테이블뿐. 김주환 대표는 매일 밤 2개의 화로 앞에 서서 고기와 고등어를 굽는다. 왼쪽 화로에서는 경남 함양군 마천면 천왕봉로산 흑돼지를, 오른쪽 화로에서는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항에서 난 고등어를 굽는다. 흑돼지는 삼겹살, 목살, 등심 등 부위를 날마다 달리 낸다. “고등어는 아주 천천히 굽습니다. 고등어 하나 굽는 데 40분 쯤 들여요.” 약방의 관원처럼 천천히 부채질하며 고등어를 굽는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손님은 무대 위 다음 장면이 궁금해 침을 삼키는 관객의 심정이 된다. 공들여 구운 요리를 그릇에 담아 낼 때는 한참을 덜어낸 모양새다. 곁들일 수 있는 채소 한 가지와 장 한 가지만을 접시에 담는다. 담백한 맛을 좋아하는 그의 입맛대로 슴슴하고 간결하다. 2개의 구이 메뉴 이외에는 두세 달에 한 번씩 바뀌는 탕, 면, 전, 밥 메뉴와 샐러드, 명란젓구이, 항정살 유자 차돌 등 작은 요리를 준비한다. “면 메뉴는 소면입니다. 양념한 돌미나리, 문어를 넣고 청귤청을 베이스로 써요.” 그러나 제일의 소면은 비비거나 섞지 않는다. 면 위에, 함께 낸 돌미나리와 문어 등을 한 점씩 올려 곁들여 먹는다. “섞어버리면 각각의 맛이 다 묻히거든요. 제일에서만큼은 최대한 비비거나 섞지 않는 메뉴를 만들고 있어요. 재료의 맛을 알알이 느낄 수 있게요.” 지도 앱에 주소를 입력하고 찾아가면 ‘제일’이라 쓰인 공장 간판 같은 것을 발견할 거다. 다른 ‘제일’은 없는지 주변을 살피지 말 것. 그곳이 맞으니까.

주소 서울시 성동구 왕십리로10길 9-9
인스타그램 @je___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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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정지안
ASSISTANT 박지은

2019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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