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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 은진, 민희가 춤을 춘다. 손끝이 날렵하게 서고 허리가 동그랗게 말린다. 우리는 몸과 시간이 만든 직선과 곡선을 이야기했다.

UpdatedOn March 10,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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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롱 슬리브리스 드레스는 올세인츠, 뷔스티에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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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 | 소나무

소나무는 2014년 데뷔했다. 햇수로 이제 3년이 되었다. 걸 그룹에게 3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사계절이 세 번 흐른 것’으로 계산되지 않는다. 때문에 아직까지 대중에게 이름이 낯선 소나무는 종종 ‘중고 신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별명이야 어쨌건 소나무는 그 시간을 착실하게 보냈다. 3년을 가득 채운 데는 멤버 나현의 활약이 컸다. 어벤져스에 아이언맨이 있다면, 소나무에는 나현이 있다. 지난 3년간 가수와 연기자의 이름표를 동시에 달고 분주하게 활동했다.

촬영장에서 처음 나현을 보고 놀랐다. 생각보다 체구가 작았다. 무대 위 나현은 분명 거인이었다. 다른 멤버보다 훨씬 큰 동작으로 무대를 돌았고, 제자리에서 폴짝 뛸 땐 물결 모양 머리카락이 번개 모양으로 요동쳤다. 동작도 야무지고 노래할 때 음정이 흔들리는 일도 거의 없었다. 뭐든 똑순이처럼 잘해낼 것 같은 느낌. “어릴 때부터 제 할 일은 알아서 잘해나갔던 것 같아요.

누군가 저한테 ‘너 왜 그랬어’라고 말하면 이틀 동안 그것에 대해서만 생각해요. 그렇게 최대한 실수를 안 하려고 노력해요.” 나현이 자신에 대해 세우는 잣대는 남들의 것보다 더 엄격해 보였다. 그 엄격함은 무엇일까? 무엇에서 비롯된 것일까? 아주 어릴 때부터 나현은 발레를 배웠다고 했다. “무용을 하면서 억세진 것 같아요. 선생님이 무서우셨거든요. 체중계에 올라갔을 때 몸무게가 조금이라도 늘었으면 손바닥으로 제 허벅지를 때리셨어요. 사실 둘 다 아프잖아요.”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꺼내면서부터 마치 모닥불을 피워놓고 대화하는 것처럼 분위기가 편해졌다. 나현은 서울공연예술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예쁘고 잘생긴 아이가 많이 모인 곳에서 나현은, 사람들의 말을 옮기자면 ‘4대 천왕’ 중 한 명이었다. 그러니까 전교에서 가장 예쁜 아이. 언제나 주목과 주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 그건 어떤 기분일까? “저는 그런 게 싫진 않았어요. 솔직히 저도 사람이니까 좋았던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땐 마냥 즐거웠어요. 예고이다 보니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친구도 주변에 많았고요.”

나현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3년이 지났다. 소나무로 데뷔한 해가 2014년이니 걸 그룹 경력 또한 3년 차다. “작년까지만 해도 방송국에 가는 것이 즐거웠어요. 그런데 마음가짐이 조금씩 달라져요. 지금은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커요. 이번에는 차트에 진입했을까, 사람들은 어떤 리뷰를 남겼을까, 고민해요.” 그렇다면 나현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변화한 자신의 모습을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 아주 먼 미래를 말이다. “바를 차려보고 싶어요. 제가 생각한 게 있거든요? 점심에는 식사를 내고 밤에는 바로 확 바꾸는 거예요. 혹시 만화 <원피스> 아세요? 해적을 콘셉트로 꾸밀 거예요. 이태원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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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보디수트는 YCH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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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 | 다이아

다이아는 때로 수식으로 불린다. <프로듀스 101>의 정채연이 있는 그룹. 다이아가 처음 무대에 선 것은 2015년이지만 대중에게는 작년부터 기억되었다. 수식이 말해주듯 멤버 정채연이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등장해 이름을 알렸고 그룹은 두 번째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다이아에는 정채연 이전에 은진이 있었다. 은진은 데뷔 곡 ‘Do It Amazing’ 무대에서 줄곧 중앙에 서서 노래했다. 이른바 ‘센터’가 걸 그룹에게 어떤 의미인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 만한 사람들은 모두 안다.

추운 날 은진을 만났다. 셔터 소리가 잦아지면서 찬 공기에 굳어 있던 은진의 몸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나는 게 느껴졌다. 무용은 언제부터 시작했느냐는 질문에 은진이 말한다. “예고에 들어가고 싶어서 전남에 있는 예고를 샅샅이 찾아 봤어요. 그렇게 전남예술고등학교에 들어갔어요. 학교가 딱 무안이랑 목포 사이에 있어요.” 말투에 사투리가 조금씩 섞인다. 귀엽다. 은진은 전라남도 보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서울과 보성의 햇빛은 색도 감촉도 많이 다를 텐데, 가끔 보성의 햇빛이 그리울 때가 있지 않을까?

“자주 보성에 내려가요. 그런데 서울에서 보성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어요.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면 광주에서 한 번 갈아타야 해요.” 은진은 지난 설도 보성에서 보냈다. “할머니와 떡국을 만들어 먹었어요.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저를 키워주셨거든요.”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땐 말을 멈추고 테이블의 나뭇결무늬를 한참 들여다보곤 했다. 아직 굳은살이 되지 못한 어떤 감정이 어딘가에 남아 있는 듯해 보였다.

“혼자가 편해요. 걷는 걸 좋아하거든요. 연습생 때는 지금보다 더 자주 걸었어요. 선정릉에서 출발해 가로수길을 거쳐 한강까지 걸어요. 한강에서 딱히 뭘 하는 건 아닌데….” 어쩌면 은진은 텔레비전에 비치는 모습 그대로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꾸밈이라든가 가식이 날렵하게 제거된 사람. 다만 다이아에서 용수철처럼 폴짝폴짝 뛰며 춤추는 모습이 아닌, 얼마 전 유닛으로 결성한 그룹 루비에서 조용하게 말하듯 랩을 하는 모습이 은진에 더 가깝다. 루비에서 은진은 홀로 굽 낮은 로퍼에 긴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선다.

“저도 그때의 제 모습이 가장 좋아요. 평소 귀여운 의상을 입는 것도 좋은데 섹시하면서 걸 크러시가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오히려 저를 더 잘 보여줄 수 있어요.” 누구라도 은진과 대화해보면 눈치 채겠지만, 은진은 상대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런 그녀의 입에서 별안간 ‘섹시’라는 단어가 굴러 나오다니. “혼자 조용한 곳에서 가사를 쓰곤 해요. 아직 제 이야기 중 어떤 것을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수줍음과 섹시 사이의 간극. 추운 날 찍은 은진의 사진을 보며 앞으로 은진이 그 사이를 걸으며 이야기를 써내려가지 않을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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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보디수트는 YCH, 검은색 쇼츠와 드레스는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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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 | 스텔라

민희는 2012년 발매된 스텔라의 두 번째 디지털 싱글 ‘UFO’부터 그룹에 합류했다. ‘UFO’라고 하면 사람들은 당황한다. 무슨 노래였더라? 첫 번째 미니 앨범의 수록곡 ‘마리오네트’를 말하면 그때야 아는 척을 한다. “아, 마리오네트.” 마리오네트의 안무는 당시 어느 걸 그룹의 안무보다 훨씬 도발적이었다. 멤버 네 명이 몸에 꼭 달라붙는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가운데 민희는 유독 눈에 띄었다. 어딘가 느릿한 몸동작은 확실히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만했다.

소설가 이상우가 쓴 단편 <888>에는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너는 혼자 춤을 춘다.’ 민희의 춤을 보며 생각했다. 민희는 자신의 움직임을 온전히 이해하며, 계산하며 춤추는 것일까? 동물적이라는 말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민희의 움직임에는 어딘가 동물적인 지점이 많다. 박자를 남들보다 조금 느리게 탄다거나 분명히 움직이고 있는데 고요해 보인다거나.

수많은 담금질로 단련된 움직임이라기보다 차라리 머리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동작에 가까워 보였다. 그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무용을 공부했고, 게다가 실력도 아주 뛰어난 인재였다는 말을 들었을 땐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릴 때 이것저것 많이 배웠는데 끈기 있게 즐기며 한 것은 무용이 유일했어요.” 그렇게 민희는 국립국악중학교, 국립국악고등학교, 한양대학교 무용학과를 졸업했다.

무용을 좋아했지만 더 좋아하며 할 수 있는 가수라는 꿈이 생겼고 그렇게 2012년 데뷔했다. 그런 민희에게 2014년 3월 17일 혜천대학교는 어떤 의미일까? “하하. 그 직캠이요? 처음에는 관심 있게 보지 않았어요. 왜 이렇게 조회 수가 높은 걸까, 정도로만 생각했어요. 지금은 4백50만 명이 그 동영상을 봤더라고요. EXID의 하니 씨 다음이래요.” 눈보다 하얀 의상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어 목선을 그대로 드러낸 채 춤을 추었던 당시의 모습은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런 시선은 어떻게 견디는 것일까. 이를테면 미쓰에이가 어느 노래에서 불렀듯 ‘내 겉모습만 보면서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 같은 것들.

“처음엔 부끄러웠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신감 있게 표현해보자고 결심했어요. 내가 부끄러워하면 그것을 보는 사람들도 부끄러워지는 거잖아요. 특히 군부대에 갈 때는 엄청 자신감 있게 하죠. 지금은 오히려 제가 호응을 더 유도해요.” 멋있었다. 아름다움을 구태여 감추지 않고 더욱 반짝이게 드러내는 민희의 방식이. 문득 민희가 좋아하는 남자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제가 워낙 수다스러워서 그런지 제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좋아요. 남자다운 남자라고 해야 하나. 순간 사랑에 확 빠지는 스타일이에요. 주변 사람과 연락도 끊고. 오로지 ‘직진’만 있어요.” 그런 연애 방식은 보통 시작이 그랬듯 화르르, 허무하게 끝나지 않을까? “저는 한 사람과 오래 만나요. 여태까지 그랬어요. 짧게 만날 바엔 시작을 안 해요. 여지를 주지도 않고.” 민희는 알까? 사실 민희는 자신이 추는 춤보다 훨씬 매력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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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GUEST EDITOR 전여울
PHOTOGRAPHY 레스
STYLIST 백영실
HAIR 김재화
MAKE-UP 서아름

2017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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