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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불화, 공부의 슬픔

나이로 어른인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행복할까?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은 왜,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UpdatedOn October 15, 2014

요즘 읽는 책에 대해 말하자면 우선 의사인 최현석 박사가 쓴 <인간의 모든 동기>가 있다. 인간의 행동을 유발하는 것은 동기다.
동기는 내적 동기와 외적 동기가 있는데, 대한민국 학생이 학교를 졸업하고 더 이상 공부를 하지 않는 이유는 외적 동기에 의해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외적 동기는 결과, 사회적인 요구 등을 의미한다. 내적 동기는 자발적인 관심, 사랑 같은 것이다. <인간의 모든 동기>를 읽으면서 알았다. <유엔미래보고서 2040>도 읽고 있다. 앞으로 5년 안에 무인 자동차가 상용화될 것이다. 현재 G2는 미국과 중국인데 머지않아 미국이 빠지고 인도와 중국이 G2 국가가 된다. 미국의 영향력은 이미 그렇듯, 약해진다. 그런데 인도 역시 초강대국의 지위를 상실하게 되는데 그 이유는 기후 변화 때문이다. 인도는 사람이 살기 어려운 자연 환경으로 변한다.
<유엔미래보고서 2040>을 보면서 알았다.

EBS에서 방송된 국제다큐영화제 출품작 <자연의 건축가 유진 추이>도 봤다. 건축가 유진 추이는 상자 형태의 건축을 거부하고, 예를 들면 아파트 같은 것, 자연의 형태의 연장인 낯선 물체를 디자인한다. 건축을 완전하게 자연의 일부로 인식하는 것이다.
더불어 존재하는 것, 즉 공존보다 상위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기이한 시도는 설계도 안에만 있다. 유진의 모험에 투자하는 건축주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할 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위대한 건축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몇몇 후원자(6명이라고 한다) 덕분이었다. 둘의 차이는 이 한 가지 사실 뿐이다. 안타깝다. 내가 돈이 많으면….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도 공부일까? 공부라고 하기엔 재미있는데. 재미있으면 공부가 아닌 것 같은데. 하지만 다른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지난 5월부터 작심하고 공부하고 있다. 1년간, 밥벌이와 상관없이 지금 당장 알고 싶은 것을 공부하는 것이 내 목표다. 시키는 사람이 없으니까 아마 내적 동기에 의한 것 같다. 이걸 왜 하지? 하는 의문은 가져본 적이 없고, 그냥 즐겁다. 즐거워서 하나? 그렇겠지. 책을 읽고 다큐멘터리를 보며, 비로소 나는 탐구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이며, 다른 존재, 다르게 생각하는 것, 다른 세계란 무엇인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내 의식은 확장되고 있다. 자부심을 느낀다.

한국 사람의 독서량은 스스로를 가치 하락시킬 만큼 빈약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이른바 먹고 살 만하고 고등교육이 정착한 나라 가운데 우리나라만큼 책을 안 읽는 나라는 없다. 하지만 현대인은 어느 시대보다 월등하게 많은 활자를 읽는다. 당연히 대한민국 국민도 마찬가지다. 스마트폰 보급률만 보면 전 세계에서 한국 사람들이 하루 평균 가장 많은 활자를 읽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읽는 뉴스다. 책은 읽지 않지만 뉴스는 읽는다.

인간은 의심할 바 없이 상상하는 동물인데, 상상은 인간을 움직이는 근육과도 같다. 인간이어서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에 상상해야만 한다. 근육이 퇴화하면 육체가 죽듯, 상상하는 능력이 퇴화하면 뇌가 죽는다. 추상적인 표현이 아니다. 늙으면 언젠가 죽는다. 육체가 죽고 뇌가 죽기 때문이다. 이것은 순리인데, 인터넷이 발달한 이후 순리의 속도가 빨라졌고, 그래서 더 이상 순리가 아닌 상태가 돼 버렸다. 평균 수명은 늘어나겠지만 인간의 정신은 그보다 먼저 죽을 것이다.

우리는 눈 뜨고 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인터넷 뉴스 속에서 보낸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것은 현대인이 직면한 가장 구체적인 슬픔이다. 국가를 막론하고 뉴스는 비루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편집된 ‘팩트’를 전달할 뿐 다른 무엇도 없다. 뉴스의 생명은 속도인데 세상의 진실이 순간에 파악될 만큼 선명한 게 아니다. 이 흐릿함에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뉴스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이들의 의식은 성숙하지 못하다. 인간은 별로 완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필요 이상으로 뉴스를 많이 읽는다. 심지어 대한민국 뉴스는 진영의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대 싱크홀이 출몰한 것도 좌와 우, 정치적 논리로 해석된다. 뉴스 읽을 때 우리의 뇌는 겨우 왼쪽과 오른쪽을 판단하는 일만 한다. 뉴스는 상상을 막는다. 상상은 뇌의 호흡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상상할 자유를 박탈당했다.
뉴스에서 빠져 나와야 한다.

고대 폴리네시아인은 지구 표면의 5분의 1, 남쪽 바다에 보석처럼 흩뿌려져 있는 섬들을 나침반도 없이 항해했다. 훗날 서구 열강은 자신들이 미개하다고 무시한 부족의 먼 조상이 과거에 그렇게 위대한 일을 해냈다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개한 것은 자신들이었다. 고대 폴리네시아인들은 눈을 감고 머릿속에 지도를 그렸다. 별의 위치, 물결의 세기와 움직임, 바람의 방향이 그들의 길잡이였다. 그들은 상상했으며, 덕분에 살아서 육지를 밟았다. 탐험가이자 인류학자인 웨이드 데이비스가 쓴 책 <웨이 파인더>에는 이 위대한 항해의 과정이 기술돼 있다. 상상에 의지하지 않으면 이 책을 읽어낼 수 없다. 더불어 오직 상상하는 사람만이 고대 항해가가 되어 바다를 탐험할 수 있다. 탐험은 즐거운 것이다. 공부는 탐험이며, 공부는 낯선 세계를 상상하도록 돕는다.
우리가 이 사실을 모르는 게 아니다.

2012년 2월 <40대, 다시 한 번 공부에 미쳐라>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삼성전자에서 직장 생활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썼다. 꽤 팔렸다. 공부를 실용의 도구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선 기존의 공부 방법을 기술한 책과 차이가 없지만, ‘40대’와 ‘공부’라는 단어의 조합은 신선했다. 공부는 학생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어릴 땐 공부가 하기 싫어서 어른이 되고 싶었으니까.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란 별명을 가진 교수법 전문가 켄 베인 박사가 쓴 <최고의 공부>(2013년 3월 25일 출간)는 성공을 위한 공부와 행복을 위한 공부가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한다. 도시 건축 전문가이며 국회의원이었던 김진애 박사가 쓴 <왜 공부하는가>(2013년 10월 21일 출간)는 왜 스스로 공부해야 하는지, 얼마나 뜨겁게 자신의 인생에 질문해야 하는지, 무엇이 자신을 움직이는지 저자의 삶에 빗대어 대답한다.

그리고 올해, 공부에 관한 의미 있는 책이 연이어 번역, 출간됐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브리태니커 편집장인 모티머 애들러는 <평생공부 가이드>에서 개인의 성장 발달을 전 생애를 통해 지속한다는 ‘평생공부’의 개념, 인간으로서 이룰 수 있는 교양의 경지에 닿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본의 베스트셀러 작가 도몬 후유지의 책 <공부하는 힘 살아가는 힘>은 이제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에서 앞으로 살아가며 해야 할 공부의 주제를 뽑아내라고 조언한다. 비로소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곧 공부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놀랍다. 일본의 교육 심리학자 사이토 다카시가 쓴 <내가 공부하는 이유>는 나이를 불문하고 누구나 공부를 통해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적은 양이라도 꾸준히 공부할 것을 주문하는데, 그 이유는 공부가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공부에 관한 책이 빈번하게 출간된다는 것은 공부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는 증거다. 과거엔 공부법에 관한 책들이 출간되었다. 최근엔 공부에 대해 폭넓게 접근하는 책이 출간되고 있다. 공부에 대한 인식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놀랍게도 지금, 공부가 인기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연이 호응을 얻고, 독자들의 독서 모임도 활발하다. 직장을 다니면서 공부할 수 있는 ‘학점은행제’도 정비되었다. 매체의 기사도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30대 여성이야말로 공부가 필요할 때’ ‘스무 살의 공부와 서른 살의 공부는 달라야 한다’ ‘인생 후반, 책 공부가 아닌 세상을 공부할 때’ ‘직장인 62.2%, 직장 다니며 공부하는 샐러던트’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예다.

그런데 마냥 기뻐할 일은 아니다. 공부에 대한 지금의 인기는 자아를 확장하는 진보한 의식의 결과라기보다는 혼란한 세상을 견뎌내기 위한 자구책의 성격이 짙다. 정년이 빨라졌고, 경쟁은 심화되었다. 누구나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이분법이 옳지 않다고 배웠다. 아집은 버려야 할 것이며, 관용과 협력은 인간의 미덕이라고 배웠다. 그러나 지금, 그것들은 불가능한 도덕이다. 인간이기 때문에 배운 것들이, 그러한 믿음이 무너졌다. 배가 가라앉아 수백 명의 아이들이 죽을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이 있었을까? 도심의 지반이 뚫리는 일이 현실에서 생길 수 있다고 예측한 사람은? 도대체 실용적인 인문학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지? 인문학은 본질을 찾고 세계를 이해하는 것인데. 그리고 거론할 필요조자 없는 정치의 일들. 이것이 시대의 논리다. 나는 이런 상황이 너무 슬프고 괴롭다.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을까? 번잡한 것들을 잊으려고? 어쩌면 그럴 수도 있다.

현대인은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글로벌 인재’가 되어야만 할 것 같은 시대를 산다. 이것이 옳은가? 이것이 공부의 목적이 되는 것도 옳은가? 도대체 왜 모두가 글로벌 인재 따위가 되어야 하는 걸까? 행복은 오직 자신의 마음 안에만 있는데. ‘공부는 그 자체로 성스러운 의무다’라는 프랑스의 수도사 앙토냉 세르티양주의 오래된 말에 더 수긍이 가는 것이 이상한가? 앎은 곧 환희이며, 환희는 행복과 동의어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물음들이 있다. 인간은 그것을 탐구할 때 행복을 느낀다. 우리 자신이 온전히 우리로서 살아가는 방법은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근대 국가가 형성되기 이전, 선비들은 배움이 일생을 통해 이루어야 할 숙업이라고 생각했다. 불과 1백 년 사이에 우리는 무엇인가 잃었다. 공부는 낯선 세계에 데려다준다. 하물며 우리 자신의 중심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동시에, 돈이나 애인처럼 남의 것이 아닌 존재는 공부뿐이지 않은가? 우리는 가장 듬직한 친구를 등지고 있다.

Editor: 이우성
Illustration: 이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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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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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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