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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남아

<끝없는 사랑>에서 정경호는 한 여자만을 바라본다. 흔히 말하는 순애보다. 정경호는 배역마다 자신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정경호가 품은 순애보의 대상은 연기다. 욕심과 현실 사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바라본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순애보.

UpdatedOn October 13, 2014

줄무늬 재킷은 오디너리 피플, 흰색 셔츠는 장광효 카루소, 검은색 베스트는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바쁘다 들었다. 실제로 보니 빈말이 아니었다. 척 봐도 퀭해 보였다. 비는 시간을, 아니 없는 시간을 딱 하루 비워달라고 조른 게 미안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정경호는 꾸벅 인사하고 먼저 손 내민다. 스치듯 악수하지 않고 존재를 인식시킬 정도로 다부지게. 악수에서 잘해보자는 의사가 확실히 전달된다. 잘하기로 한다. 육체는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고 했나. 정경호는 누구보다 빨리 의상을 갈아입었다. 또한 누구보다 빨리 할당된 사진 분량을 소화했다. 포토그래퍼가 그 속도에 끌려갈 정도로. 많이 고를 것도 없다.
쉴 새 없이 터지는 플래시 속에서 A컷이 속속 등장한다. 그리고 정경호의 한마디. “좋은데요?” 자신이 하고자 한 일이라면 말끔하게 처리하는 남자, 정경호다.

드라마 일정이 빡빡해서 겨우 시간 냈다고 들었다.
아무래도 드라마는 여러 사람과 엮여 있으니까. 선생님들과 함께하기에 더 빼기가 힘들다. 일단 맞춰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긴 드라마는 매 회 계속 나오니까 아무래도.

40부작 정도 되는 드라마를 꽤 많이 했더라.
<그대 웃어요> <자명고>, 이번 드라마도 그렇고. <어여쁜 당신>이라고 일일 드라마도 있었다. 드라마가 길수록 부담이 더 크긴 하다. 더구나 주인공이면, 물론 나 혼자만 끌고 가는 건 아니지만, 긴 호흡으로 작품을 시청자와 함께 끌고 가야 한다. 힘든 면도 있지만 재밌는 경우가 더 많았다. 이번 작품은 정음 씨와 수영이 형, 이렇게 셋이 많이 얘기하며 진행해서 부담이 조금 덜 된다.

몇 번 경험해봐서 노련해진 건가?
40부작 정도로 극이 길면 사실 이야기를 반복해서 할 수밖에 없다. 시간을 끌기도 하고 한두 회는 건너뛰고 갈 수도 있다.
편안한 신들이 있어야 시청자도 편해질 수 있다. 그럴 때 지루하지 않게 잘하려고 노력한다. 그런 면에서 긴 드라마에 출연하는 것 자체가 공부다. 길기 때문에 생기는 단점이라면 한 6개월은 개인적인 삶은 사라진다는 점? 그래도 극 후반부 가면 다시 자기 삶을 찾기는 한다.

6개월간 생기는 고정 수입은 장점일 테고.
뭐 일단은 선입금이 되면 연기할 맛도 난다, 하하.

긴 드라마에 자주 출연하는 건 그만큼 배우로서 믿음을 준 걸까?
그건 잘 모르겠다. 이번에 <끝없는 사랑>을 선택할 때 길고 짧은 게 영향을 미쳤다기보다 일단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촬영하기 전에 10회까지 대본이 나왔는데 너무 재밌었다. 일단은 재밌어야 하는 것 같다. 길이보다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어떤 사람과 같이 하는지가 작품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소다.

이번에는 뭐가 또 좋았나?
차인표˙정웅인˙심혜진 선배님 모두 언젠가는 같이 연기해보고 싶은 분들이었다. 그리고 젊은 배우들도 좋아하는 수영이 형이나 정음 씨가 있어 재밌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시대극인 점이 매력적이었다. 처음 해보는 것이기도 했고. 그 시대를 안 살아봤으니까 더 그런 생각이 드나 보다. 국내적으로 혼란스럽던 1980~1990년대 이야기인데,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더라. 없던 이야기와 인물을 함부로 표현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내 경우에는 연기하기 편했다. 약간 과장하고 억지스러워도 그때는 이랬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하하.

흰색 재킷·흰색 팬츠·흰색 셔츠 모두 김서룡 옴므 제품.

그동안 필모그래피를 보면 남자가 맡고 싶어 할 만한 배역이 많더라. 순애보, 조직의 보스, 도망자 등등.
군대에 다녀오면서 해보지 않은 것들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2년간의 공백이 있었고, 해보지 않은 걸 해볼 나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젊은 나이에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했다.
뭘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다양한 역할을 해보려고 했다. 그래서 더 그렇게 보였을 수 있다. 다 알겠지만 군대라는 게 세니까. 나오면 정신 차리고 모든 걸 감사하게 된다. 하여튼 정신은 바짝 차리고 온 것 같다, 하하.

그런 마음으로 임한 작품 중에 뭐가 가장 기억에 남나?
<롤러코스터>에 출연했을 때가 가장 좋았다. 제대하고 연기가 너무 그립고 하고 싶은 때에, 정말 친한 사람들과 함께 마음대로 표현할 수 있었다. 마음대로 미친 놈처럼 놀라고 하니 목마름이 해소됐다. <롤러코스터>의 마준기 역할을 하고 나니, <무정도시>에서 또 다른 역할도 할 수 있게 된 거다. 그 이후에 또 뭐가 있을까 하다 보니 <맨홀>의 캐릭터가 보인 거고. 그러고 나니 드라마에서 한광철이란 인물까지 연기할 수 있게 된 거다.



착착 원하는 배역이 찾아왔다.
아, 그렇지는 않다. 매니저와 얼마나 싸우는데….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쉽지는 않았다. 더 하고 싶은 게 있을 때가 있잖나. 내가 원하는 게 있지만 상황 때문에 못할 때. 모두 계속 변화를 주고 싶은 내 욕심 때문이긴 하다. 그래도 운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주연으로 작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건 복 받은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친구들과 비교했을 때, 물론 그 안에서 고민과 스트레스가 있지만, 감사하다.

정경호라는 배우를 떠올리면 특정한 캐릭터가 그려지지 않는다. 배우로서 장점이다.
그런가? 아직 많이 부족해서 모든 역할을 할 때 정경호가 나오는 것 같다. 어떤 역할을 할 때 그 역할에 빙의되는 건 아직 난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정경호가 극에서 갖고 놀아야 하기 때문에, 작전을 짜고 표현하는 건 나이기 때문에 나를 벗어날 수는 없다. 그래서 또 다른 나를 찾기보다는 내 나이 때에 잘할 수 있는 게 뭔지 생각하면서 연기한다.

외모적으로 콤플렉스는 없나?
그런 건 없었는데 요즘 어깨가 점점 좁아지는 것 같아서, 하하. 살이 빠졌다. 드라마 끝나면 많이 먹고 운동 좀 해야겠다.

다부지게 몸을 키워서 액션도 하면 되겠다. 그런 역은 안 맡아봤다.
그쪽은 별로 생각이 없다. 단지 어깨가 작아져 기성복이 다 크다. 모니터를 하다 보니 단점이 될 수 있겠더라. 어느 순간, 광철이가 약해 보이더라.

캐릭터가 없어 장점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대중의 뇌리에 딱 박힌 모습이 없다는 뜻도 있다.
그런 부분은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긴 호흡의 드라마를 하면, 반복된 대사와 반복된 장면을 누구나 손쉽게 TV에서 보게 된다. 연기력을 떠나 표현할 수 있는 한계가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드라마는 공백을 좀 두든지 확실히 개성 강한 캐릭터를 해야 식상해지지 않는다. 일상이 되어버리면 안 된다. 실제로 하루 대본 읽고 외워서 발표하는 식으로 되어버리는 수가 있다. 그런 것들을 경계하는 건 항상 개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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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검은색 오버사이즈 코트는 장광효카루소, 체크무늬 팬츠는 김서룡 옴므, 검은색 슈즈는 캠퍼, 가방은 링우, 검은색 터틀넥 니트와 흰색 양말은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오른쪽) 검은색 벨벳 턱시도는 구찌, 검은색 슈즈는 캠퍼, 검은색 모자·검은색 커머번드·흰색 양말 모두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학창 시절부터 지금 이런 모습을 생각해왔나?
1백 퍼센트 만족한다. 중·고등학교 때 친구들이 지금의 날 별로 신기해하지 않는다. 어릴 때부터 ‘난 이거 꼭 할 거다’ 했다. 친구들 데리고 계속 재미없는 영화라도 보러 다니는 모습이 일상적이었으니까. 연기 학원을 다니면서 중대 연극학과에 들어가고 싶어 하던 모습을 돌이켜보면, 잘됐고 아직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복이 많다. 물론 이 일을 못하게 될 경우도 올지 모르겠지만.

요즘 더 젊은 모델 출신 배우들이 강세를 보인다. 대중의 시선을 신경 쓰는 입장에서 어떤가?
채널이 다양해져서 어쨌든 기회가 많은 건 사실이다. 더 많은 대본이 있지만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부분도 늘었다. 오는 대로 하다 보면 실수할 수도 있다. 모든 작품이 잘될 거라고 확신하고 시작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을 잘 선택해야 한다. 잘된다고 할 때 흥행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내 나이 때 부귀영화를 누려봐야 얼마나 누리겠나.
그냥 좋은 작품에서 좋은 사람들과 연기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정경호를 생각할 때 어떤 배우로 불렸으면 하나?
당연히 연기 잘하는 배우!

너무 광범위하다. 좁혀서 저 사람이 고른 작품은 재밌어, 라든가.
쟤 나오면 재밌어라는 소리는 당연히 듣고 싶은 말이다. 특별하게 그런 건 없다. 그런데 쟤 나오면 재밌어 하는 말이 가장 좋은 거 아닌가? 하하. 하지만 많은 배우가 하고 싶은 작품만 하지 못한다. 몇몇 선배님은 하고 싶은 것만 할 테지만, 나머지는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 그 안에서 어떻게 해나가느냐가 더 중요하다. 지금 내 나이, 내 위치에 배우를 하겠다는 사람의 몫이다.

긴 촬영 기간을 지나 이번 작품이 끝나면 제일 먼저 뭘 하고 싶나?
아직 생각하지 못했다. 끝나려면 10월 말인데… 하하. 지금은 매주 잘해나가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일정이 많으면 연애는 언제 하나?
연애는 뭐… 김연아 선수도 하는데, 하하. 시간 없어서 연애 못한다는 건, 김연아 선수가 다 깼기 때문에 바빠서 연애 못한다는 건 핑계다. 묶여 있는 시간이 많긴 하지만, 그 점은 일단 참아야지.

그 와중에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에서 홍보대사를 했다.
겨우 일정 빼서 다녀왔다. 원래 더 많이 참여하려 했는데 개막식만 가서 미안했다. 원래 관심도 있었고, 아는 영화사 대표님이 하는 거라서 흔쾌히 한다고 했다.

연기 외적인 사회 활동에도 관심이 좀 있나?
유기견 관련 단체 몇 군데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지금은 그 정도다. 그래도 연기 외적인 부분에서 활동하는 시간이 배우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배우라는 직업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잖나. 스트레스나 마음속에 남은 나쁜 감정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풀어야 한다. 병이 된다. 정말 좋지 않은 결과로 나올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런 경우도 많았고.
배우에게 그 점은 중요하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가지고 있는 것들을 다 담아두면 좋지 않다. 자신이 무엇을 했을 때 그 감정이 탁 풀린다는 걸 아는 것도 장점이다. 내겐 그런 활동이 좋은 영향을 미친다. 옛 어르신들이 좋은 일을 하면 할수록, 나누면 나눌수록 좋아진다고 하지 않나. 예전부터 개인적으로 봉사활동 하고 성금 내고 도와주는 몇 단체가 있었다.
예전에는 남모르게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조용히 할 필요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내가 그런 일을 한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았을 때, 오 그런 일도 있어? 하고 관심을 갖게끔 하는 것 자체가 더 좋지 않을까 싶어서다. 앞으로 좀 더 적극적으로 할 생각이다.

그것 말고 스트레스 푸는 법이라면?
지금도 스트레스 받으면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신다. 그러면 풀린다, 하하. 고등학교 때 친구들도 만나고, 사회 나와 이 일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도 만난다. 그렇다고 만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더 늘리고 싶은 생각도 없다. 차라리 지금 내 주변 사람에게 더 잘하고 싶다.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최진영
HAIR: 유다
MAKE-UP: 오현미
ASSISTANT: 박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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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김태선
Stylist 최진영
Hair 유다
Make-up 오현미
Assistant 박예은

2015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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