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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를 한마디로 말하면 밥. 두 마디로 말하면 더운 밥.

UpdatedOn March 02, 2012


<아레나>를 한마디로 말하면
밥.

두 마디로 말하면
더운 밥.
난 ‘더운 밥을 나눈다’는 문장이 좋다. 사람이 느껴져서다. 갓 지어 김이 솔솔 피어오르는 더운 밥을 나누는 이웃이 많을수록 육신에 힘이 난다. 내 밥줄이 되어버린 <아레나>는 이웃에게 권하는 밥이다. 어머니는 밥을 지을 때 늘 쌀이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아버지 생신엔 늘 정부미가 아닌 아끼바리 쌀로 지은 밥을 내셨다. 쌀알들은 통통한 몸에 물기와 윤기로 각자의 풍요를 뽐냈다. 그 모양에 군침이 돌고 정이 돌았다. 밥상머리에서 수저를 드는 우리에게 어머니는 그랬다. 물과 볕이 좋아서 윤이 나는 거라고. 그렇게 ‘윤나는 더운 밥’ 짓는 마음으로 <아레나>에 올릴 정보를 체에 거르고 수위를 맞추고 달콤한 맛이 돌도록 불을 지폈다. 달싹거리며 뚜껑을 여닫지 않고 진득하니 뜸을 들여 맛의 완성도를 높였다. 지난 6년간.      

<아레나>에서 당신은 무엇
역시 밥. 자주 씹히니까. 되새김질당하기도 한다.

<아레나>는 당신에게 무엇
고두밥. 난 천성적으로 진밥이 싫다. 일단 입 안에 떠 넣는 순간의 질척함이 재료 본연의 맛을 떨어트리고야 만다. 반대로 고두밥은 혀에 쌀알 그 자체가 닿는다. 먹기 편한 건 물론이고 거기다 씹을수록 고소한 뒷맛이 매력적이다. 통실하고 매끈한 게 보긴 또 얼마나 좋은가. 꼭 <아레나> 같다.  

<아레나>가 당신에게 준 것
세상의 모든 대상에는 역사가 있다는 교훈. 패셔너블한 잡지를 만들면서 외모 지상주의 콘텐츠에 지쳐갈 때였을 거다. 지치니까 고민이 많아졌고 그 김에 치열하게 고민했다. 정답은 콘텐츠에 담기는 대상들을 향한 엄청난 역사 의식에 있었다. 지금 내가 신은 로퍼만 해도 그렇다. 내가 잡지에 이 로퍼가 디자인이 참 좋더라, 너도 한번 신어봐 하고 기사를 썼다고 치자. 그건 그저 예쁜 신제품이니까 찍었다는 거다. 하지만 이젠 이 아이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와 그의 친척들까지 가문을 쭉 훑는다. 호구조사가 끝난 후 ‘역시 이놈 혈색이 그래서 좋았군’ 한다. 그건 인간과 사물을 대상화 하는 데 있어서 본질적 차이가 있다. 콘텐츠 하나하나에 인격을 부여하는 느낌이다.     

<아레나>가 당신에게서 앗아간 것
청순함과 날씬함. 사내 녀석들이 많아서 욕이 늘었고 사내 녀석을 낳아서 살이 엄청 늘었다.

<아레나>로부터 시작된 것
‘블랙칼라 워커(Black Collar Workers)’라는 단어. 런던에서 받아 든 용어 풀이집에 이렇게 써 있었다. ‘블랙칼라 워커란 화이트칼라의 상위 개념이다. 고루한 엘리트가 아니다. 엘리트지만 트렌드에 관심이 많은 족속이다. 즉 건축가, 아트 디렉터, 디자이너, 사진가, 에디터 등 자신의 직업적 위치가 확실한 전문가 군단이다.’ 그걸 읽고 생각했다. 남자치곤 소비력이 높은, 주체적 소비가 가능한 군단이로군. 그들이 내 맘에 들어왔고 난 맘껏 알리기 시작했다.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91-3번지로부터.

<아레나>에서 사라진 것
섹스 기사. 창간 때는 있었다. 질펀하고 후끈했던 섹스 체험기. 심지어 어떤 차 뒷좌석이 하기 편한가를 논하는 기사도 있었다. 2009년 이후 삭제했다. 그해부터 제호를 <아레나 옴므 플러스>로 바꿨다. 생물학적 본능에 쏟았던 분산된 힘을 패션과 문화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화두는 개개인의 사생활에 맡기기로 했다. 부끄럽구요, 우리도 잘 몰라요.      

<아레나> 계약하던 날이 기억나나 
2005년 8월이었나? 런던 코번트가든, 계약서 사인 후 영국판 편집장 댄 플라워와 샴페인을 마셨다. 그의 사무실에서 한 잔, 우르르 레스토랑으로 내려가 또 한 잔. 시간은 오후 3시경이었고 날은 맑았고 공기는 달달했다. 레스토랑 벽면이 흰색이어서 샴페인의 황금 기포가 낱알로 선명했다.    

<아레나> 표지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것
2006년 3월 창간호. 주드 로가 담배를 꼬나물고 꼬나본다. 어깨의 각도, 눈빛의 강도가 죽인다. 1980년대 <아레나> 표지 모델이었던 원로 배우를 주드 로가 오마주했다는 점도 끌렸다. <아레나>의 역사성을 함의하고 있지 않은가. 

왜, <아레나>였나?  
이 문장 때문이었다. 언젠가 영국판 <아레나> 편집장 글에서 읽은 거다. ‘이 책의 독자들은 각질 때문에 피부 마사지 숍을 다닐 수 있는 남자다. 동시에 술자리에서 정치 논쟁이 벌어지면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서라도 밤새 설전을 벌일 수 있는 남자다.’ 기막히게 멋진 남자다. 주관 있고 당당하다. 내가 이런 독자를 놓칠 수 있겠나.   

독자에게 한마디
더 열심히 읽고 봐달라. 형광펜과 포스트잇을 동원한 읽기, 두고 두고 읽기, 한 달 내내 읽기. 그걸 바란다. 카프카가 그랬다지, 지금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한 대 퍽하고 치지 않는다면 왜 읽고 있냐고. 

6주년 기념호에서 포스트잇을 동원해야 할 부분
이번 73번째 편집본은 다산과 풍요의 상징이다. 블록버스터다. 번 만큼 투자한다는 개념으로 편집했다. 일단 별책 행커치프 북의 ‘접는 법’에 포스트잇! 260페이지나 되는 컬렉션 별책은 일일이 포스트잇을 붙이기 힘드니 소장하라. 특별히 이번 컬렉션 북에는 브랜드별로 디자이너 약력을 모두 기입했다. 이거 나도 헷갈린 적 많다. 시즌별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바뀌기도 하고. 또 액세서리 트렌드도 추가했다. 독자들 의견을 101% 반영한 거다.         

그럼 6주년 기념호에서 형광펜을 동원해야 할 부분은
단연 ‘<아레나>, 시네마테크 10주년과 조우하다’라는 기사다. 장장 52페이지에 38명의 영화인 인터뷰가 실렸다. 마음에 밑줄 친 문장 몇 개 소개한다.
놀이터에 아무도 없을 때 시소나 미끄럼틀은 하나의 객체에 불과하지만, 내가 시소를 타면 그건 내 것이 된다. 마찬가지로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볼 때 그 영화는 내 것이 된다. -이준익 감독-

지금 관객이 보고 싶은 영화를 스스로 선택해 보는 것 같지만, 사실 자본 논리와 극장의 배급 논리에 따라 선별된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자본 논리에 반하는 자유로움, 그런 극장을 확실하게 만들어놔야만 다양성이란 걸 확보할 수 있다. -이해영 감독-

<나는 꼼수다>를 재미있게 청취했다면 시네마테크가 상영하는 작가주의 영화에 흥미를 가질 수도 있을 거다. -뮤지션 백현진-  


끝으로
“정말 짱이다, 너희들.”
<아레나> 에디터들에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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