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칼럼의 남자 주연은 대개 두 부류다. 잘하거나, 많이 하거나. 잘 못하거나 적게 하는 남자들은 조연 혹은 엑스트라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다. 섹스 칼럼은 섹스의 최신 인사이트나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그러니 인터뷰 목적지는 대개 경험 많은 남자들이었다. 하지만 주변엔 섹스 많이 하는 남자보다, 못하거나 포기한 남자들이 더 많다. 물론 태어날 때부터 섹스를 싫어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다. 잠깐 섹스가 싫어진 남자들, 섹스에 ‘현타’가 온 남자들, 안 하기로 마음먹은 남자들, 그냥 ‘혼자’ 하는 게 편하다고 생각한 남자들이 있을 뿐이다.
“성욕이야 많죠. 그런데 이젠 혼자 하는 게 편합니다.” 26세 대학생 최수용은 나와 ‘블친(블로그 친구)’이다. 최수용은 최근 블로그에 ‘진정한 사랑을 원한다는 여자’라는 제목의 글을 포스팅했다. 적당한 로맨스 영화 속 한 장면을 캡처해 올린 게시물의 요지는 이랬다. ‘사랑에 대한 진지한 고찰은 모르겠지만 저 미장센은 맘에 들고, 아무튼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고 징징거리는 여자’. 최수용은 여자에 대해 회의적이다. 그는 과학고 출신으로, 삼수와 군복무 끝에 이제야 대학교를 다닌다. 그러니까 그는 여자를 안 지 얼마 안 됐다. 성욕이 많으십니까? “하루에 세 번 합니다.” 섹스를? “아뇨. 혼자.” 최수용의 달관한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 들려왔다. 최수용은 1년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처져 있지 않았다.
최수용은 내 작문 수업의 수강생이었다. 그는 같은 반 수강생 여자들의 전화번호와 인스타그램을 물어보고 같은 방향의 지하철을 탔다. 진행자로서는 퍽 난감했다. 그렇다고 최수용에게 그만하라고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반의 수강생들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최수용은 다음 달에도 계속 작문 수업을 수강했다. 그런 최수용이 1년 만에 다른 사람처럼 전화를 받았다. “노력 대비 효율이 너무 낮습니다. 그래서 혼자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안 그랬잖아요. “그땐 그래도 생각이 건강했죠. 이 여자한테 까이면 저 여자한테 번호 물어보면 된다는 식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귀찮아졌어요. 지쳤습니다.”
가장 최근에 섹스한 때가 언제입니까? “달력을 좀 봐야 합니다.” (한 30초 정도 기다렸다.) “한 달 정도 됐습니다.” 그래도 비교적 최근이네요? “에브리타임(대학생 익명 커뮤니티)에서 만난 여자였습니다. 술 먹을 여자를 구한다는 제 게시물에 개인 쪽지가 날아왔습니다. 저는 당연히 좋았죠. 학교 앞 술집에서 만났습니다.” 섹스하고 싶어서 만난 겁니까? “만나기 전엔 그랬습니다. 익명으로 쪽지를 먼저 보낸 여자. 정상은 아니죠. 얼굴도 모르는 남자에게 술 먹자고 하는 여자. 외로울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얼굴 보고 나선 술만 먹고 헤어져도 아쉽지 않을 거 같았습니다.” 왜죠? “몸매와 얼굴이 제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성욕이 강한 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강합니다. 하지만 취향도 강합니다. 취향 아닌 여자랑 섹스하면 ‘현타’만 옵니다. 즐겁지도 않고.”
그래서 술만 먹고 헤어졌습니까? “제 방에 가서 한잔 더 하자고 했습니다. 2차로.” 현타 온다면서요? “그래도 던져볼 수는 있잖아요.” 그렇긴 하죠. “여자는 좋다고 했습니다. ‘이게 되네?’ 싶었죠. 실제로 섹스까지 했습니다.” 어떠셨습니까? “현타가 너무 오는 겁니다. 저는 그날 이후로 섹스에 더욱 회의적인 남자가 됐습니다. 맘에 안 드는 여자와 섹스한 사실은 제 자아를 성욕이 집어삼킨 느낌이었어요. 그 느낌이 저를 너무 별로인 남자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성욕이 많다는 건 최수용 씨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사랑의 3단계를 아십니까? ‘에로스’는 본능적 사랑이고 첫 단계, ‘필리아’는 정신적 사랑으로 두 번째 단계, 그리고 ‘아가페’ 신적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에 가깝죠. 제게 부모의 사랑 같은 건 당연히 없고, 에로스가 9 정도, 필리아가 1 정도 있는 것 같아요. 정신적 사랑은 저한테 의미가 없습니다.” 이 얘기를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저는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아야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여자들은 나를 안 좋아하죠.” 그래서 혼자 하는 게 편한 겁니까? “편한 거지, 마냥 좋은 건 아닙니다.”
“주 1회면 많이 하는 거 아닌가요?” 프리랜서 컬러리스트 권형주 씨가 의아하다는 말투로 말했다. 올해 서른이 된 그는 섹스 칼럼 인터뷰는 처음이라고 했다. “제가 무슨 얘기를 하면 되나요?” 권형주는 인터뷰의 주제가 섹스라는 사실을 들어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옛말에 그런 말 있잖아요. 나이 들면 머리 커진다고. 그게 무슨 말이냐면, 거기보다 머리가 커진다는 것입니다. 거기를 쓰는 일보다 머리 쓰는 일이 더 많아진다는 뜻이죠.” 권형주는 옛날 말을 잘 알았다. 그럼 스무 살엔 지금보다 성욕이 많았습니까? “스태미나라는 말 아십니까? 아, 이것도 너무 옛날 말인가. 하여튼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격투기를 했습니다. 몸으로 써야 하는 에너지가 많은 편이었죠. 성욕도 자연스럽게 많아졌어요. 원나잇을 하진 않았지만, 여자친구가 있을 때는 기회만 되면 했습니다.”
“저는 섹스를 많이 하고, 잘해야 섹슈얼한 남성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성격이 외향적인 편입니까? “저는 완전 ‘I’입니다. 극내향인. 그런데 성욕은 성격과는 다른 문제 같습니다. 저는 배출해야 하는 에너지가 많아서 욕구가 많은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20대에 비해선 적게 하는 편이죠? “아무래도 그렇죠. 제 주변에서는 주 1회만 해도 많다고 합니다. 친구들끼리 모이면 대화 주제가 거의 ‘탈모’와 ‘발기부전’이에요. 잘 안 서고, 머리도 잘 안 나는 남자들의 고민. 그러다 보니 제가 아침에 잘 서는 것만으로도 술자리에선 나름 부러움을 삽니다.”
권형주는 내게 푸념 같은 조언을 했다. “침착맨의 말처럼 결혼은 섹스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현실적인 게 훨씬 크죠.” 혹시 직업이 섹스에 영향을 미칩니까? “직업 자체가 섹스에 영향을 주진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밤낮의 경계가 없는 직업이고, 혼자서 미적인 걸 다루다 보니 감정적인 요소가 많아지죠. 혼자서 일하다 보면 욕구가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고.” 그럴 때는 어떻게 해결하십니까? “이틀에 한 번, 혼자.” 권형주는 현실적인 남자였다. 당장의 섹스보다 결혼하고, 월세를 내는 게 더 급했다. 섹스는 뒷전이 된 거다. 욕구는 혼자 풀면 되고.
“저는 스물다섯부터 여자를 틴더로만 만났습니다. 하지만 원나잇은 한 번도 못 해봤어요.” 31세 백정우는 진지했다.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그는 최근 연애를 시작했고, 그의 말투와 취향은 모두 단호했다. 그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최근 본 책과 영화 리뷰가 종종 올라왔다. 그게 내게는 ‘아무하고 섹스 안 할 것 같은 남자’로 느껴졌다. 틴더에서 만나는데 원나잇을 어떻게 안 합니까? “틴더는 다 섹스만 하니까. 반대로 나는 섹스를 안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인스타그램이나 틴더나 얼굴 보고 좋아하는 매커니즘은 똑같잖아요. 전 연애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나잇을 하면 안 되죠. 저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나잇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까? “굳이 세울 필요를 못 느꼈습니다.” 나는 ‘세울 필요’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저는 겁이 많습니다. 상대가 안정적이지 않으면 잘 안 섭니다.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기까지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죠. 실제로 저는 사귀는 사람과만 섹스합니다.” 백정우는 성욕이 없는 게 아니었지만, 그보다 겁이 훨씬 많았다. ‘이 여자와 자고 나서 생길 수 있는 만에 하나의 일’이나 ‘여자가 사귀자고 하면 난 뭐라고 해야 하나?’ 같은 걱정이 더 컸던 것이다. “저는 섹스를 많이 하고, 잘해야 섹슈얼한 남성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어떤 남자가 되어야 할까요? “이제는 ‘나만의’ 매력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오히려 섹스를 참는 남자가 더 섹시합니다. 그런 남자로 어필하는 게 저한테는 더 맞습니다.” 백정우는 노련하게 자신의 자리를 꿰찼다. 틴더에서 만난 남자가 섹스를 안 하면 진짜 ‘사랑’ 같다.
“요즘은 뭐든 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식 둘은 고사하고, 썸을 타는 것조차 힘들어요. 저는 ‘삽입’에 대한 부담감이 큽니다.” 삽입에 대한 부담감이 뭡니까? “세상에는 삽입 후에 생기는 불상사가 많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냥 하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건장한 남자로서 섹스에 대한 판타지는 없습니까? “그런 건 없습니다. 상대가 만족해야 저도 만족합니다.” 상대의 흥분이 나의 판타지다? “맞습니다. 그래서 여자들에게 자주 ‘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좋으려면 여자들을 기쁘게 만들어야 하니까. 그렇다고 아무 여자나 기쁘게 만들고 싶진 않습니다.”
백정우가 너무 까다롭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기로 했다. “저는 상대방이 아무리 예뻐도 방금 만난 사람이라면,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이 잘 들지 않습니다.” 술을 먹어도요? “술 먹고 섹스하면 속만 아프고 잘 서지도 않습니다. 그 시간에 게임이나 하는 게 낫습니다.” 백정우는 낭만적이면서 효율적이기도 했다. “어렸을 땐 출루율만 높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젠 장타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제는 홈런만 치고 싶은 겁니까? “맞습니다. 진짜 내가 기쁘게 해주고 싶은 여자만 제대로 기쁘게 해주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볼넷이나 사구로 출루할 때는 없습니까? “최근에 오래 알고 지낸 여자와 실수로 잔 적이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저를 무척 따뜻하게 맞아주더라고요. 여자는 기꺼이 제 방까지 왔고요. 아, 서질 않더군요. 그때 알았습니다. ‘이제는 진심을 못 숨기는 나이가 됐구나.’ 마음 없는 여자 앞에선 이제 몸이 거짓말을 하지 못합니다.” 백정우는 내가 아는 남자 중에 제일 말을 잘했다. “말은 번지르르하게 할 수 있어도, 아래는 ‘그 상태’가 아니니까. 나는 그런 순간이 싫어요. 해명하기도 싫고.” 처음부터 안 한 남자는 없다. 안 하게 ‘된’ 남자만 있을 뿐이다. 거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섹스가 비참하게 느껴지거나, 섹스보다 현실의 무게가 더 크게 다가오거나,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서지 않는 남자 등등. 그들의 ‘비섹스 라이프’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지만, 한 가지 사실은 명확했다. 여전히 그들 모두 섹스를 완전히 포기하진 않았다.
* 기사에 등장한 모든 인물의 이름과 직업은 가상으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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