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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라온, 흙과 불로 빚은 도자기

세라미스트 하정호는 흙과 불과 시간으로 도자기를 굽는다. 그가 세라믹 브랜드 ‘델라온’을 통해 하정호는 무엇을 말하고 싶을까? 흙을 만질 때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하정호 대표와 나눈 이야기.

UpdatedOn July 12, 2024

델라온이라는 이름에 담긴 사연과 뜻이 궁금합니다.
기존에는 오브제 위주로 작업을 진행했어요. 브랜드를 론칭을 준비하면서 실용성 있는 식기작업을 시작했죠. 공예품은 만드는 사람보다 사용하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자리잡았습니다. 델라온은 제가 만든 공예품을 사용하실 분들에게 긍정적인 가치와 의미를 전달하고 싶어 떠올린 이름이에요. 델라온의 ‘델’은 오래된 방언으로 ‘밥그릇’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라온’은 순우리말로 ‘즐거움’, ‘행복함’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고요. ‘음식을 담는 그릇이 주는 행복함’ 이라는 의미로 두 단어를 합쳐 만들었습니다.

국내외 다른 세라믹 브랜드와 비교했을 때, 델라온만이 지닌 디자인 혹은 완성도의 특별함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델라온의 주 재료는 ‘흙’입니다. 흙이 가진 고유한 텍스처와 컬러를 디자인의 핵심 요소로 설정했어요. 흙과 유약 속에 포함된 여러 성분들을 분석했습니다. 잘 빚어진 흙은 1250℃의 가마 속에서 구워지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효과와 물성적인 변화를 연구하고 탐구했습니다. 그렇게 쌓은 데이터로 저희만의 식기를 만들어냅니다. 자체 연구 개발한 전문적인 데이터, 젊고 숙련된 작가님들의 수공예 기술력,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컬러와 질감, 그리고 절제된 디자인. 이것이 델라온만의 특별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흙을 준비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한 재료는 어떻게 준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좋은 식재료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듯, 공예 작업에서도 좋은 재료와 도구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델라온 작품들은 각 공정 별로 전문 기술을 가진 작가님들이 분업하여 작업합니다. 때문에 여러 작업 방식에 고루 어울리는 흙을 만드는 것이 중요했어요. 바다 모래, 카올린, 벤토나이트, 종이, 나뭇가지 등을 갈아서 넣어보기도 했고, 산에서 맘에 드는 색깔의 흙을 캐서 넣어보기도 했어요. 일본이나 미국 등 해외에서 수입된 흙과 우리나라의 흙을 섞어 배합해 보기도 했죠. 많은 시행착오들 끝에 지금 사용하고 있는 흙의 레시피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델라온 제품 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전체 과정의 시간은 얼마나 걸리는지 궁금합니다.
흙 반죽을 시작으로 성형 – 정형 – 건조 – 초벌가마(800℃) – 시유 – 재벌가마(1250℃) 이후 마지막 후작업까지는 보통 15~20일 정도 소요됩니다. 흙이라는 재료가 워낙 온도, 습도에 예민한 편이라 건조도가 매우 중요해요. 작업공정 중간중간 갈라지고 깨지는 경우가 많아 3주 정도의 시간을 인내하고 만들어내도 20-30% 정도는 재활용되거나 버려지게 됩니다.

델라온은 실제로 자연에서 볼 수 있는 색상들로 작품에 적용하고 있죠. 해당 색상들을 구현하는 것 역시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각 컬러는 어떻게 완성되고, 도자기에는 어떻게 입히는지 궁금합니다.
색깔은 한번 구워낸 도자기에 유약을 통해 입힙니다. 유약은 돌가루와 물이 섞여있는 걸쭉한 액체입니다. 초벌가마에서 구워져 나온 도자기를 유약에 담가 ‘시유’ 작업을 거치면 유약 속 돌가루들이 도자기 표면에 안착됩니다. 하루 정도 건조 후 재벌가마에서 1250℃의 고온으로 구워내면 유리와 같은 질감으로 코팅되죠. 이때 사용하는 유약들은 제가 원하는 색감을 낼 때까지 수많은 테스트를 통해 개발한 레시피의 결과물입니다. 자연 속 색감을 주로 구현하고자 하는데, 델라온의 첫 번째 시리즈에 사용된 유약들은 돌, 나무, 하늘, 바다, 눈에서 영감받았습니다.

델라온의 모든 수공예품은 ‘와비사비’, 즉 불완전하면서도 단순한 것들의 아름다움을 지향한다고 설명하셨어요. 델라온의 지향점을 ‘와비사비’로 삼은 계기가 궁금합니다.
델라온을 준비하면서 우리의 메시지는 무엇을 지향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자연의 아름다움, 거기서 얻는 심신의 평화가 그 종착지였죠. 저희의 방향성을 잘 표현해 주는 가치가 바로 와비사비라고 생각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평소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상태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인위적으로 꾸며냈거나 과하게 치장한 모습에서는 여백이 느껴지지 않아요. 여백이 없으면 상상력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지고 흥미도 잃게 되고요. 저는 작업을 할 때 채우는 것보다 덜어내는 데 더 신경을 씁니다. 처음 디자인한 형태와 컬러에서 하나씩 덜어내고 비워내죠. 더욱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고자 합니다.

도자기를 만드는 과장에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도자기가 제가 머릿속으로 수없이 상상했던 형태와 색감 그대로 가마에서 구워져 처음 나왔을 때가 가장 기쁩니다. 높은 온도의 가마 속에서 많은 변수를 헤치고 살아남아줘서 고맙다고 혼잣말을 할 때도 있어요. 서둘러 후작업을 마치고 집에 가져가서 직접 사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 작품들을 보고 저의 가까운 지인들과 가족들이 칭찬을 해줄 때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고 느낍니다.

반대로 가장 힘들거나 어려운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마찬가지로 가마문을 여는 순간입니다. 가장 떨리면서도 설렘이 느껴지는 순간인데요. 가마에서 도자기들이 잘못 구워져 나올 때면 절망스럽기까지 해요. 실패할 때마다 ‘이것도 공부다, 수업료를 낸 거다’ 스스로 위안하지만, 그간 들였던 정성과 시간을 생각하면서 늘 마음이 힘들어요. 일주일에 3-4번 가마를 열고 도자기를 마주하는 순간이 가장 떨리고 어렵네요.

좋은 도자기는 어떤 도자기라고 생각하십니까?
저에게 좋은 도자기는 사용하는 사람과 만드는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가 되어주는 물건입니다. 건네 받는 사람도, 건네 주는 사람도 행복을 나눠줄 수 있는, 정성이 담긴 물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도예가의 기준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예가는 흙으로 물건을 만들어내는 직업입니다. 기술적으로도 감각적으로도 오랜 시간 동안 실력을 쌓아야 하죠. 결국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도자기에 잘 담아내는 것이 중요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델라온의 공예품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 도자기는 장소와 상황에 구애 받지 않고 사용됐으면 해요. 음식을 담아 식사를 하고, 꽃을 꽂아 감상을 할 때 그 공간 안에서 행복하다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일상생활에 자연스럽게 녹아 들어 편하고 즐겁게 사용할 수 있는 경험의 매개체가 되길 바랍니다.

델라온은 사람들에게 어떤 브랜드로 받아들여졌으면 하나요?
수공예품이 갖고 있는 가치와 매력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는 젊은 브랜드로 남고 싶습니다.

앞으로 10년 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으십니까?
작업실에서 팀원들과 함께 ‘흙작업’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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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주현욱
Photography 김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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