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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구 나왔으니까 재미있겠네

이태구는 관객들이 이렇게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이 인터뷰도 재미있다. 이태구가 나왔으니까.

UpdatedOn March 01,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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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운드넥 니트 수아레, 팬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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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브이넥 니트·화이트 이너 톱 모두 페라가모 제품.

꼭 배우분들 만날 때면 최근 본 영화나 드라마를 여쭤봐요. 아직 연초이지만 올해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나요?
사실 가장 최근 본 게 제 작품이라서.(웃음) 지난주에 <끝내주는 해결사>가 처음 방영됐거든요. 감사하게도 본방이 끝나자마자 재방송을 해서 연달아 두 번 봤어요. 1회차에는 저도 시청자 입장에서 봤고, 2회차에는 제 연기를 찬찬히 되짚어가면서 봤어요.

시청자 입장에서 본 감상은 어땠어요?
너무 재밌던데요.(웃음) 제가 나온 작품이라 당연히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겠지만 정말 재미있었어요.

저는 요즘 집에서 볼 작품 고르는 게 그렇게 어렵더라고요. 흔히 말하는 ‘넷플릭스 증후군’은 없나요?
저도 있죠. 저는 작품을 각 잡고 보는 편이거든요. 킬링 타임용보다 조금 더 진지한 영화들이 있잖아요. ‘연출자가 담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생각하면서 보는 걸 좋아합니다. 그만큼 고르기도 어려워요. 영화는 이왕이면 극장에서 보려고 해요. 집에서 볼 때는 꼭 스마트폰 방해 금지 모드를 해놓고요. 10초 넘기기나 빠르게 감상하기도 안 해요. 그렇게 보면 작품을 온전히 본 게 아닌 듯해서요.

막연하지만 내가 앞으로 출연하고 싶은 작품이나 역할도 있을 것 같아요.
장르를 떠나서 작품이 시작할 때와 끝날 때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는 인물이면 좋겠어요. 그 모습이 성장일 수도 있고 퇴보일 수도 있죠. 다만 그 변화의 폭이 클수록 인물이 더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그런 인물이 대부분 주인공이긴 하지만요.(웃음)

그런 점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캐릭터가 있나요?
제가 대학교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했거든요. 1학년 때 선배들한테 공통으로 받던 질문이 있어요. ‘너 무슨 작품 보고 영화과 지원했어?’였는데 저는 늘 답변이 같았어요. 이누도 잇신 감독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거기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 츠네오가 딱 그래요.

츠네오의 어떤 점이 좋았나요?
제가 바라본 츠네오는 영화가 끝날 때쯤 처음보다 분명 성장했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이 츠네오에게는 가혹하게 느껴졌을 수 있지만 바뀐 건 분명하죠. 영화를 보신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영화 마지막에 츠네오가 난간을 붙잡고 우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고등학생 때 이 영화를 처음 봤는데 당시에는 그게 어떤 감정인지 몰랐어요. 그런데도 막연히 ‘이거 멋있다’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 생각했고 영화과에 지원했어요.

최근 <끝내주는 해결사>가 방영을 시작했죠. 극중에서 데이터 보안 전문가 ‘권대기’ 역을 맡았는데, 본인이 생각하는 권대기는 어떤 캐릭터인가요?
후회 없이 살고자 하는 사람 같아요. 극 중에서 권대기가 큰 사건을 겪어요. 그 사건을 계기로 ‘내가 행복해지는 것’에 오롯이 집중하게 되거든요. 다른 나라도 그렇겠지만 ‘이 나이에는 이걸 해야 된다’ 하는 사회적인 시선과 압박이 있잖아요. 권대기는 거기서 자유로워지고 자신이 행복하게 사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기를 하면서 ‘권대기가 이런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 하는 점도 있었을 것 같아요.
미워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저부터 처음 대본을 볼 때 ‘이럴 수 있나?’ 하는 면도 있었거든요. 어찌 됐든 제가 애정을 갖고 표현해야 하는 인물이니까 미워 보일 수 있는 행동도 당위성을 갖길 바랐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아닌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면서 인물에 공감할 수 있길 바랐어요.

<끝내주는 해결사>는 ‘이혼 전문 해결사’들의 이야기죠. 연기하면서 내내 결혼과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제가 아직 결혼은 안 했지만, 결혼도 결국 인간관계의 한 형태잖아요. 작품을 준비하면서 여러 이유로 유지되고 있는 불편한 관계에 대해서 생각해봤어요. 물론 인생을 살다 보면 행복보다 중요한 것이 있죠. 다만 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때로는 용기를 내도 되겠구나 생각했어요. 내가 주체가 돼서 나의 행복을 이끌어가는 게 중요하니까요.

앞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스카이 캐슬> <동백꽃 필 무렵>에 출연하셨죠. 흥행 드라마만 골라서 출연할 수 있었던 나름의 비법이 있나요?
그런 말 있잖아요. 머슴을 해도 대감집에서 하라고.(웃음) 말씀하신 세 작품에서 제 역할이 크지는 않았거든요. 그만큼 잘될 줄 알고 오디션을 보러 갔던 것도 아니고요. 결과적으로 작품이 잘되다 보니 ‘내가 하는 것마다 되게 잘되네?’ 했고, ‘나는 될 놈인가?’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이렇게 잘 버티면서 꾸준히 일하다 보면 언젠가 더 큰 역할을 맡을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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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스튜디오 니콜슨 by 비이커, 리넨 팬츠 브루넬로 쿠치넬리, 페이즐리 패턴 실크 스카프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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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코트·민소매 톱·팬츠 모두 페라가모 제품.

배우마다 다르겠습니다만, 본인만의 오디션 잘 보는 비법이 있나요?
저 오디션 잘 못 보는 것 같아요.(웃음) 긴장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다만 ‘이것만큼은 꼭 해야지’ 하는 게 있는데요. 대사를 ‘내 언어’로 말하려고 해요. 극본 속 캐릭터를 과하게 표현하려다 보면 되려 후회가 남더라고요. 당락 여부를 떠나서 ‘오늘은 그래도 내 방식으로 대사를 말한 것 같아’ 생각이 들 수 있도록 신경 쓰는 편입니다.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배우가 되려면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좋은 사람은 나보다 우리를 생각하는 사람. 그런 점에서 좋은 배우는 자기 욕심보다 작품에 잘 녹아들 수 있도록 연기하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배우 일을 하다 보면 여러모로 어려움이 생길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결하세요?
동료 배우들한테 많이 물어봐요. 이번 작품 준비하면서는 같은 회사 안보현 배우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보현이가 큰 역할을 많이 맡았으니까, 현장에서 필요한 태도나 마인드에 대해서 물어봤죠.

기억에 남는 답변이 있었나요?
보현이는 현장에 가면 스태프 이름을 다 외운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이번에 그렇게 해봤어요. 한 명 한 명 이름을 외우니까 금방 촬영 현장이 ‘내 현장’이 되더라고요. 처음 촬영 현장에 도착해서 수많은 조명과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려고 하면 문득 발가벗겨진 기분이 들 때가 있거든요. 스태프들과 심적으로 가까워지면 훨씬 편한 마음으로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배우로서 직업 만족도는 어떤 편이세요?
힘들 때는 일이 없을 때죠. 다른 동료들과 비교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일이 없을 때면 스스로 초라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장점은 아무래도 일반 직장인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점. 사실 단점과 맞물리는 점이긴 한데요. 일정 기간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부어서 촬영하고 나면, 다음 작품까지는 여행을 떠나거나 편하게 일상을 보낼 수 있잖아요. 물론 그 시간을 편하게 쓰려면 경제적인 부분이 해결되어야겠죠. 결국 배우도 먹고살기 위해서 하는 일이니까요.

말씀하셨듯 일이 없어서 불안하거나 힘들 때는 어떻게 하세요?
식물 기릅니다.(웃음) 워낙 식물 기르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운동을 꾸준히 하죠. 몸이 건강해야 정신도 바로 잡을 수 있으니까요. 다른 하나는 조금 유치한 방법일 수도 있는데요. 국내 작품 아닌 해외 작품을 봐요.

콕 짚어 해외 작품을 보는 이유가 있나요?
국내 작품을 보면 아는 얼굴들이 나오잖아요. 그러다 보니 ‘나만 집에서 또 이러고 있네’ 하는 자괴감이 들 때가 있어요. 그래서 외국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습니다. 이번 작품 끝나고는 천명관의 <고래> 읽고 있어요. <고령화 가족>을 재밌게 읽어서 천명관 작가님 작품은 꾸준히 챙겨 봐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믿고 보는 배우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관객분들께서 ‘이태구 나왔으니까 재미있겠네’ 하실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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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라이프 더블브레스트 재킷·스트라이프 트라우저 모두 에트로, 로퍼 페라가모, 블랙 티셔츠 스타일리스트 소장품.

이태구의 인생 책 5


<노르웨이의 숲>, 무라카미 하루키
감상이 희미해져갈 때마다 한 번씩 꺼내 읽는 책. 책을 펼칠 때마다 제 나이가 바뀌어 있잖아요. 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과 관계가 보이더라고요. 그 차이에서 저 자신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가늠할 수 있어서 좋아요.

<슬램덩크>, 이노우에 다케히코
<슬램덩크>는 볼 때마다 눈물 흘리는 구간이 있어요. 강백호가 채치수에게 “고릴라!” 하면서 패스를 하는데 알고 보니 상대편인 고민구였던 거죠. 그 일로 강백호가 펑펑 우는데 채치수가 “울지 마라” 하거든요. 그 장면에서 매번 저도 웁니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군대에서 처음 읽었어요. 단순히 연애에 관한 이야기보다, 특정 시대상을 녹여서 더욱 여운이 깊었던 작품이에요. 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제가 기본적으로 연애 소설을 좋아하는 것 같긴 하네요.(웃음)

<연애시대>, 노자와 히사시
한 커플이 갈등을 겪고 해결하는 과정을 그린 책이에요. 물론 그 과정 속에는 오해와 이해가 있죠. 마지막 장을 읽을 때 제 안에서 무언가 탁 트이는 느낌이 들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같은 제목의 드라마도 좋지만, 저는 세밀한 묘사 때문에 책을 조금 더 좋아해요.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감수성이 부족한 것 같다 생각이 들던 시기에 주변 추천을 받아 읽은 책이에요. 읽는 내내 ‘이 사람은 정말 꾸밈없이 솔직하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저 역시 꾸밈없이 솔직한 연기를 하고 싶거든요. 때로는 화려한 수식 없이 솔직하게 말하는 게 무엇보다 아름다울수 있구나 느끼게 해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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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Photography 김영민
Stylist 김성덕
Hair & Make-up 이소연

2024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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