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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는 새로운 변곡점을 넘고 있다. 그 곡선을 그리고 있는 건 젊은 감독들이다. 지금의 영화감독들은 한국 영화를 보며 영화감독을 꿈꾼 세대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아레나>는 2023 에이어워즈를 통해 새로운 파동을 일으킨 4인의 한국 감독을 조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네 명의 감독을 두고 ‘라이징 영 디렉터’라고 칭했다. 이름 그대로 떠오르는 젊은 감독들이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엄태화, <마스크걸> 김용훈, <D.P.> 한준희, <잠> 유재선이 말하는 오늘의 한국 영화, 오늘의 한국 시리즈.

UpdatedOn November 22, 2023

디스토피아로 걸어들어간 남자

엄태화 감독은 좋은 영화란 잿빛 콘크리트 위에 뿌린 물감 같은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온화하지만 단단한 말씨의 소유자였고, 인터뷰 내내 차분하지만 망설이는 법이 없었다. 엄태화 감독이 말하는 <콘크리트 유토피아> 안팎의 세계.

Fashion Editor 최태경 Feature Editor 주현욱 Photography 신선혜 Hair&Make-up 이은혜 Set Stylist 이규미 Assistant 박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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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1847 MC 칼리버, 18K 핑크 골드 케이스, 브라운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3bar 방수 기능의 42mm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18K 핑크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제품.

가죽 셔츠·팬츠 모두 토즈, 슬리브리스 톱 에디터 소장품.

엄태화 감독은 2004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쓰리, 몬스터> 연출부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이후 <친절한 금자씨> 연출부로 일하며 박찬욱 감독 아래에서 연출을 배웠다. 2013년 첫 장편영화 <잉투기>를 연출했고, 2016년 첫 상업 영화 <가려진 시간>으로 제54회 대종상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2023년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개봉, 제96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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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츠 무브먼트, 18K 옐로 골드 케이스, 태양광선 모티브 새틴 브러시드 블루 다이얼, 블루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3bar 방수 기능의 라지 모델 산토스 뒤몽 워치, 18K 화이트 골드, 핑크 골드, 옐로 골드의 트리니티 링 모두 까르띠에 제품.

블레이저 코스, 카디건 에트로, 슬리브리스 톱 에디터 소장품.

영화감독으로서 직업 만족도는 어떤 편입니까?
저는 높은 편이에요.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상황이 흔치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취미 활동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는 거죠. ‘덕질’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만족도는 정말 높은 편입니다.

광고디자인학을 전공하셨죠. 영화를 해야겠다 생각하셨을 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로 CF 현장에 나가다 영화 미술팀 현장에도 가게 됐어요. <몽정기>라는 영화 현장이었는데요. 정말 옛날 영화죠.(웃음) 미술팀으로 일하면서 ‘글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이 되게 매력적이구나’라고 느꼈고, 영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완성본을 처음 보셨을 때의 감상이 궁금합니다.
믹싱이 다 된 사운드 파일이 DI(색보정)실로 넘어오면, 그걸 색보정이 다 된 화면과 붙여서 저희끼리 상영하거든요. 그때 완성본을 처음 봤는데 사실 감상보다 검수에 가까웠죠.(웃음) 소리가 안 들리거나 화면이 어두운 장면은 없나 문제 찾는 데만 집중해서 봤어요.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죠. 유독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습니까?
4인 가족이 영화를 보러 왔다가 서로 의견이 갈려서 분열됐다는 리뷰를 본 적이 있어요. 각자 다른 인물한테 감정이입해서. 영화를 만들 때도 그렇게 봐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저마다의 입장에서 영화를 보고 토론하길 바랐어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우리가 공존할 수 있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살아야 될까?’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 질문에 정답까지는 아니더라도 고민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한 식구의 에피소드지만 제가 원한 방식으로 영화를 봐주신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감독 엄태화가 아닌 인간 엄태화는 작품 속 누구의 편을 들었나요? 저는 명화(박보영)를 정말 많이 원망했습니다.
저는 그 의견에 동의하지는 못해요.(웃음) 명화 때문에 남편 민성(박서준)이 죽었다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엄밀히 따지자면 민성의 선택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거든요. 심지어 ‘명화 때문에 황궁 아파트가 망했다’라는 리뷰도 봤는데 그것도 맞지 않아요. 황궁 아파트는 외부인들이 다시 들어오면서 무너졌는데, 명화는 애초에 외부인들을 쫓아내지 말자고 했던 사람이니까요. 명화에 대해 팩트가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정정하고 싶었고, 그녀에게 손을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민성과 영탁의 가치관이 모두 틀렸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도 아닙니다. 생존과 인간 존엄, 두 가치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두 중요하니까요. 두 가치의 충돌을 관객들이 그리고 저 스스로가 거울 보듯 자신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제게도 ‘당장 그 상황에 처하면 어떻게 할래?’ 하고 물어보면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답도 없는 문제 가지고 왜 그러냐’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사는 것만으로 조금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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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1847 MC 칼리버, 18K 핑크 골드 케이스, 브라운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3bar 방수 기능의 42mm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18K 핑크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제품.

가죽 셔츠·팬츠·부츠 모두 토즈, 슬리브리스 톱 에디터 소장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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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스틸 케이스, 세미-매트 네이비 블루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3bar 방수 기능의 라지 모델 탱크 아메리칸 워치, 18K 화이트 골드 스몰 모델 LOVE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제품.

흰색 재킷·팬츠 모두 디올 맨, 크루넥 니트 톱 보스, 부츠 토즈 제품.

촬영 현장에서 스크린을 볼 때부터 ‘아, 나왔다!’ 싶은 명장면도 있으실 것 같아요.
모세범(이병헌)이 진짜 김영탁(박종환)을 죽이고 “내 돈 내놔” 절규하는 장면이 생각나요. 현장의 모든 스태프가 그 장면을 보면서 모니터에 빠져들었어요. 당사자인 이병헌 배우님도 모니터를 보시면서 “이거는 내 얼굴이지만 나도 처음 보는 얼굴이다”라는 얘기를 해줬어요.

많은 분들이 그렇듯 저도 이병헌 배우의 ‘아파트’ 노래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감독님이 가장 아끼는 장면 하나만 소개 부탁드립니다.
영화 후반부에 민성(박서준)이 황도 캔으로 사람을 내리찍어 죽이고 나와서 저 멀리 영탁과 아파트 주민이 외부인과 싸우는 모습을 보고 합류해야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요. 그러고는 문득 자기 아내를 보고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겠다 결심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박서준 배우가 그 연기를 정말 잘했다고 생각해요. 볼 때마다 울컥하기도 하고요. 아까 말씀하신 ‘아, 나왔다!’ 확신했던 장면이기도 합니다.

연출가 입장에서 좋은 배우는 어떤 배우입니까?
자신의 연기를 불안해하고 의심하는 배우.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연출자를 괴롭히는 배우. 그런 배우가 결국은 계속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감독이 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나아가서 캐릭터를 더 입체적으로 만들거든요. 배우분들이 저를 괴롭히는 건 언제든 환영입니다.

<콘크리트 유토피아> 오디션을 3천 명 가까이 보셨다고 들었습니다. 배우 오디션을 볼 때 어떤 것을 집중하십니까?
제가 기술적으로 연기를 배운 사람은 아니라서 명확히 말씀드리기 되게 어려운데요. 똑같은 대사를 해도 뭐랄까. 살아 있는, 진짜 같이 하는 분들이 계세요. 설명이 안 되지만 이상하게 공기를 바꾸는 듯한 연기가 있거든요. 그런 분들을 찾을 때 희열을 느끼죠.

이번 작품에 애드리브로 들어간 장면이 있나요?
김영탁(이병헌)이 자기 이름을 쓰는 장면이 있어요. 원래 그 장면은 촬영 끝나고 저희끼리 쓰려고 했어요. 손만 나오는 클로즈업 장면이니까요. 그런데 이병헌 선배님이 ‘그거 그냥 내가 쓰고 갈게요’ 하시더니 저한테 ‘ㅁ부터 쓰면 어때요?’ 하시더라고요. 그 장면 하나로 이 사람이 김영탁이 아니라 사실 모세범이라는 복선을 넣을 수 있으니까요.

배우 인터뷰를 하다 보면 감독에게 질문을 많이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번 작업 기간 동안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습니까?
이것도 이병헌 배우님의 얘기인데요. 사실 각본상 김영탁은 처음부터 살짝 빌런의 냄새를 풍기는 캐릭터였어요. 이 사람이 독재자의 모습이 되었을 때도 관객이 보는 변화의 낙차가 지금보다는 적었죠. 이병헌 배우께서 그 격차를 더 벌려보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을 주셨어요. 좀 더 어리숙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떠밀려서 리더가 되는 느낌을 강조하는 식으로요. 연기의 디테일을 조금씩 바꿨고 결과적으로 더 드라마틱한 인물이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시나리오에서 바뀐 것은 없네요.
맞아요. 대신 장면 하나를 추가했어요. 재난 회상 장면 이후 영탁이 혼자서 폐허를 바라보다가 아파트를 뒤돌아보고 뭔가 생각하는 장면이 있어요. ‘이때 김영탁이 결심을 하는구나’ 눈치챌 수 있는 장면은 필요할 것 같았거든요.

늘 그랬듯 이번 영화에도 엄태구 배우가 출연했는데, 친동생에게 출연을 부탁할 때는 그냥 전화로 하십니까?
회사 통해서 합니다.(웃음) 물론 “시나리오 다 썼어. 한번 봐줘. 이 역할 너 어때?” 하고 먼저 물어보죠. 괜찮다고 하면 다른 배우분들 섭외하듯 회사를 통해서 제안합니다.

민망한 질문입니다만 출연료는 어떻게 하나요?
이번에는 출연료가 조금 있었어요. 엄태구 배우가 그 돈으로 커피차 하자고 해서 그렇게 했죠. 정말 우정 출연이었어요.

감독님께서는 본인의 페르소나로 엄태구 배우를 꼽으셨죠. 감독으로서 바라본 엄태구는 어떤 배우입니까?
성실함이 가장 큰 무기인 배우죠. 때로는 본인을 너무 몰아세우는 거 아닌가 걱정될 정도로 연습을 반복하는 스타일이에요. 동시에 동물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있으신가요?
저는 종교가 있거든요. 교회를 다니는데 촬영할 때나 멘털을 붙잡기 힘들 때 제가 좋아하는 목사님의 20분짜리 설교를 봅니다. 새벽 6시에 영상이 올라오는데 그때 맞춰 보진 않고요.(웃음) 하루 시간이 나거나 필요할 때 그 영상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그 시간이 저한테 중요하죠.

 

“두 가치의 충돌을 관객들이 그리고 저 스스로가 거울 보듯
자신의 선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어보고 싶었습니다.”

 

좋은 영화는 어떤 영화라고 생각하십니까?
어떤 면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다룬 주제와도 같은데요. 영화 내내 ‘흑과 백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마지막 장면을 보면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여러 색깔의 빛이 들어오잖아요. 그런 점에서 좋은 영화는 잿빛 콘크리트 위에 색깔을 더하는 물감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정말 멋진 말이네요. 이런 답변은 평소에 미리 준비하시나요?
사실 ‘시체스 영화제’에서 한 고등학생 친구가 비슷한 질문을 했어요.(웃음) 그때 생각난 답이에요. 비슷한 질문을 또 주셔서 그대로 답변드렸습니다.

지금 감독님 나이가 박찬욱 감독님이 <올드보이>를 만드신 나이라고 들었어요.
지금의 박찬욱 감독님 나이 됐을 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하십니까? 틀에 갇혀 있지 않은 감독. 항상 틀을 벗어나고 깨보려는 영화를 찍은 사람. 박찬욱 감독님이 그런 분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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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스틸 케이스, 스틸 브레이슬릿, 3bar 방수 기능의 라지 모델 탱크 프랑세즈 워치·18K 화이트 골드, 총 0.22캐럿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가 세팅된 LOVE 링 모두 까르띠에 제품.

카디건 코스, 데님 팬츠 에트로, 셔츠·타이 모두 에디터 소장품.

엄태화 감독의 인생 영화 5

<터미네이터> & <터미네이터 2:오리지널>, 제임스 캐머런, 1984& 1991
어린 시절 우연히 케이블 채널에서 본 불 속의 뼈다귀 로봇을 잊을 수 없다. <터미네이터>가 보여준 아포칼립스의 정서가 여전히 내 무의식 속에 남았던 것 같다.
<은아: 명견 실버>, 요시히로 타카하시, 1986
영화는 아니지만 인생 작품을 고를 때 빼놓을 수 없는 애니메이션.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보면서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놀았다. 지금까지도 즐겨 찾아 보는 작품.
<나를 찾아줘>, 데이비드 핀처, 2014
보는 내내 영화가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작품. 모든 면에서 빈틈없이 완벽하다고 느꼈다.
<올드보이>, 박찬욱, 2003
멈추지 않고 내달리는 에너지에 압도되는 영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찍고 싶나?’라고 묻는다면 끓어오르는 감정을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터져버릴 듯한 <올드보이> 같은 영화를 찍고 싶다고 답하겠다.
<파고>, 조엘 코엔 & 에단 코엔, 1996
시나리오를 쓰다가 잘 안 풀릴 때 틀어놓는 작품.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더라도 <파고>가 지닌 정서는 내 머릿속의 뇌관을 건드리는 느낌이다.


꼭 필요한 만큼의 피

영화감독 김용훈은 글로벌 히트작을 만든 감독치고는 경력이 짧다. 넷플릭스 글로벌 비영어권 순위 1위를 기록한 <마스크걸>은 그의 두 번째 작품이다. 김용훈은 피가 폭포처럼 흐르는 대히트작을 만든 감독치고는 내내 너무 친절하고 침착했다. 그 비결을 물었다.

Fashion Editor 최태경 Feature Editor 박찬용 Photography 신선혜 Hair 오지혜 Make-up 이은혜 Set Stylist 이규미 Assistant 박소은, 김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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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파 쿼츠 무브먼트, 스틸 케이스, 18K 핑크 골드 베젤, 블랙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3bar 방수 기능의 라지 모델 산토스 뒤몽 워치·18K 핑크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링 모두 가격미정 까르띠에 제품.

재킷·팬츠 모두 비욘드 클로젯, 베스트 아미, 티셔츠 에디터 소장품.

김용훈은 마흔 가까운 나이인 2020년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그전에는 영화 스태프로 참여하다 CJ ENM 영화부문의 기획팀, 투자팀, 제작팀에서 회사원 생활을 했다. 35세 되던 해 가족에게 “2년만 시간을 달라”는 말로 회사를 그만두고 데뷔한 작품이 2020년작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이다. 이 작품으로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 후 작업한 2023년작 <마스크걸>이 넷플릭스 글로벌 3위, 비영어권 1위를 기록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이하 <지푸라기>에서도 <마스크걸>에서도 자극적인 장면이 일종의 장치처럼 나옵니다. 그런 장면을 배치하는 것 역시 감독의 전략적 의도입니까?
맞아요. 사실 저는 피를 별로 안 좋아해요. 무서워해요. 그런데 이야기 흐름상 꼭 필요한 부분에 그 장면이 있어요.

말하자면 ‘필요한 피’가 있군요.
그렇죠. 살인이 서사에 빠질 수 없고 그다음 진행이 될 수 없다면 그 장면이 꼭 필요하겠죠. 그 장면을 찍을 때 불편할 정도로 리얼하게 표현하는 방식이 있을 테고, 조금 더 미학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있을 텐데 저는 지금까지는 후자를 해왔어요. 의도적으로 ‘다음엔 더 세게 자극적으로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지는 않아요. 이야기에 어쩔 수 없이 그런 장면이 들어간다면 관객이 이 장면을 다르게 볼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긴 하죠.

피가 튀는 무서운 장면을 찍을 때의 현장 분위기는 어떻습니까?
그런 장면에서 저희가 가장 신경 쓰는 건 피예요. 배우의 연기도 그렇지만 피가 잘 튀냐도 중요합니다. 피가 특수효과잖아요. 피가 나도록 찌르는 장면에서 특수효과팀들이 (피 주머니를) 누르면 피가 팍팍 나오는데, 그 피가 제대로 얼굴과 카메라에 보여야 해요. 색도 농도도 진짜 같은 느낌이 나야 하죠.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으면 그 피 분장을 다 지우고 옷도 갈아입어야 해요. 여분 옷이 한 세 벌 정도만 있으면 테이크를 많이 못 가니까, 항상 그 부분이 긴장될 수밖에 없죠. 배우들은 연기에 집중하고 감독은 배우의 연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기지만, 특수효과팀이 제일 긴장하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피가 잘못 튀면 다시 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니 거기에 예민하죠.

그럼 피 튀는 장면은 1회 촬영으로 끝내는 게 가장 좋겠습니다.
피만 잘 튀면(웃음), 피만 잘 튀고 연기에 문제가 없으면 좋죠. 그런데 촬영하다 보면 변수가 있죠. <마스크걸> 찍을 때는 안재홍 배우가 칼로 찌르는 장면에서 포커스가 나가기도 했어요. 송곳으로 찌르는 장면에서는 피가 카메라 렌즈에 튀기도 했고요. 그 느낌이 좋아서 그냥 간 거예요. 거기서 너무 가짜 같은 느낌이 난다면 공사를 해야 하죠. 저는 배우 연기가 가장 중요해서, 배우 연기가 좋으면 피가 잘못 튀어도 CG로 커버하든 뭔가를 좀 더 해서 연기를 우선 살립니다.

감독 일은 순간순간 계속 판단하는 것이네요.
여기서 갈지 끊을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서 한 번 더 해보자고 할지. 만약 지금 인터뷰가 영화 장면이라면 위치를 정해야 하죠. 노트북도 정해야죠. 검정색으로 할까. 음료는 차로 할까 커피로 할까, 그걸 계속 물어보죠. 의상도 결정해야 하고, 에디터님 역할의 배우는 저에게 말투를 물어보죠. 제가 생각한 대로 가는 경우도 있지만 스태프들이 좋은 아이디어를 주면 같이 상의하면서 맞춰가죠. 그래서 조율하고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감독한테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예요. 그 면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회사 생활이 도움이 됐어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감독한테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예요.
그 면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회사 생활이 도움이 됐어요.”

 

저희 편집장님 석사 전공이 영화예요. 이번 인터뷰를 준비하며 석사 공부하실 때 감독하고 싶지 않았냐고 여쭤봤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는 석사과정 가자마자 포기했다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감독은 타고난 재능이 필요한 일 같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고요.(웃음) 재능이란 만들어가는 것 같아요. 전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 만드는 걸 좋아하는 마음을 계속 간직하는 게 재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들을 옆에서 보면, 그분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노력해요. 그게 그분들의 재능이라는 생각이 들죠. 물론 타고난 사람이 있죠. 같은 노력을 해도 빨리 성장하는 사람은 재능이 더 뛰어나고 서서히 성장하는 사람은 재능이 좀 덜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아예 씨가 다른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감독의 피를 타고났다’ 이런 생각을 하지는 않습니다.

<마스크걸> 감독으로서 성공 비결을 어떻게 자평하세요?
성공의 기준은 각자 다르겠지만 콘텐츠 업계에 계신 분들께서 “자극을 받을 정도로 치열하게 공들인 느낌이 든다”라고 해주실 때 제일 기분이 좋았어요.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요. 원작의 힘도 있었고 영상화에서 나오는 재미도 있겠지만, 배우들도 연기에 공을 참 많이 들였고, 스태프들에게도 힘든 작품이었어요. 안재홍 배우는 ‘은퇴각’ 이야기까지 나왔고, 엄혜란·고현정 배우도 모두 ‘저 정도까지 한다고?’ 싶었던 점이 더 좋은 반응을 이끌었던 것 아닐까 싶어요. 분장과 미술, 공간과 의상 스태프 등의 노력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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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파 쿼츠 무브먼트, 스틸 케이스, 네이비 블루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스틸 아르디옹 버클, 3bar 방수 기능의 라지 모델 산토스 뒤몽 워치, 18K 화이트 골드 스몰 모델 LOVE 브레이슬릿 모두 까르띠에 제품.

나일론 재킷·티셔츠·팬츠 모두 발렌티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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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츠 무브먼트, 18K 옐로 골드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 3bar 방수 기능의 미디엄 모델 탱크 프랑세즈 워치 까르띠에 제품.

셔츠 디올 맨, 팬츠·타이 모두 보테가 베네타, 스웨터·슈즈 모두 자크뮈스 제품. 나일론

저도 제 나름의 작은 팀과 촬영 현장에 나갑니다. 취재를 하면 현장에서는 좋았는데 돌아와서 보면 재미가 덜한 게 있습니다. 반대 경우도 있고요. 감독님도 현장에서 볼 때의 느낌과 포스트 프로덕션할 때 느낌이 다른 장면이 있나요?
많았죠. 고현정 배우가 7화에서 탈출할 때 화장실에서 나누는 대화가 있어요. 현장에서는 저 말투와 톤이 맞을까 고민했어요. 현장에서 ‘이 정도도 괜찮겠다’ 싶어 그냥 넘어가고 후반 작업에서 다른 톤으로 해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후반 작업 때 보고 ‘이게 맞네’ 싶었어요. 고현정 선배님의 해석이 훨씬 더 좋았어요. 디테일한 부분은 현장에서 못 보고 여러 번 봐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죠. 특히 고현정 선배님 연기는 여러 번 봤어요. 이걸 왜 이렇게 해석했는지 현장에서 완벽하게 확인하지 못했던 것들을 나중에 후반에서 찾은 적도 많아요.

반대로, 현장에서는 좋았는데 덜어낸 장면도 있나요?
첫 번째 모미 역할을 했던 한별 배우가 최다니엘 배우를 모텔에 끌고 가서 눕혀놓고 뽀뽀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 장면을 롱테이크로 촬영했어요. 당시 현장에서는 섬세한 감정, 모미가 설레는 감정을 쭉 보여주고 싶어서 자르지 않고 롱테이크로 찍었는데 막상 편집할 때 보니 너무 긴 거예요. 좀 위험하다는 생각도 들고 불편하기도 하고. 그래서 최종본에서는 그 장면을 뺐어요. 빠진 장면이 거의 없는데 그게 빠졌어요.

저는 <마스크걸>과 <지푸라기>를 모두 인간 욕망에 대한 이야기라 봤습니다. 감독님은 그 욕망이 폭력적으로 발현되는 것에 관심이 있나요?
폭력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한다라기보다 욕망이 가장 강렬하게 표현되는 이야기를,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보는 걸 즐거워해요. 그게 인간의 진짜 민낯 같기도 하고요. 미래 사회가 되더라도 로봇이 가장 이해하기 힘든 게 인간의 욕망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욕망일 것 같거든요. 그 부분에서 (욕망이) 제일 탐구하고 싶고 제가 가장 흥미를 느끼는 부분이에요.

까르띠에처럼 멋진 귀금속 역시 인간 욕망의 대상 중 하나입니다. 언젠가는 시계나 보석이 중심 소품으로 등장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있으세요?
제가 <언컷 젬스>라는 넷플릭스 영화를 되게 재미있게 보고 좋아했어요. 그 영화 주인공이 보석상이거든요. 귀금속 역시 인간의 욕망과 결부된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제가 다룰 이야기가 될 수 있겠죠.

<지푸라기>는 상영 시간이 1백8분이었고 <마스크걸>은 7부작이었어요. 이 시간은 어떻게 만들어내나요? 시간을 먼저 정하나요, 아니면 필요한 장면의 합이 영화의 시간이 됩니까?
시나리오 쓸 때 대략적인 시간 계산을 하고 들어가긴 해요. 업계에서 장편 시나리오라고 하면 보통 68~75페이지, 그 형식대로 썼을 때 1백20분 정도의 분량이 돼요. 그 이상이면 길고, 그보다 짧으면 짧기 때문에 시나리오를 쓸 때 그 정도의 러닝타임은 계산하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이제 OTT 등을 해보니 틀에 갇히지 않아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욕망이 가장 강렬하게 표현되는 이야기를,
인간의 욕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을 보는 걸 즐거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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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1847 MC 칼리버, 18K 핑크 골드 케이스, 브라운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3bar 방수 기능의 42mm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 18K 화이트 골드, 핑크 골드, 옐로 골드의 라지 모델 트리니티 링 모두 까르띠에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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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정된 시간에 맞추지 않아도 되나요?
예전 드라마의 에피소드는 50분에서 1시간으로 딱 정해져 있었죠. 광고 시간 붙고, 방송국의 러닝타임 안에 시나리오 작가와 연출자가 따라야 했어요. 그런데 요즘 OTT를 보면 에피소드 3은 30분이고 에피소드 4는 50분 하는 식이에요.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는 틀이 되었죠. ‘내가 모든 에피소드를 50분으로 만들어야지’, 이런 생각보다는 ‘어느 이야기에서, 어느 타이밍에서 회차를 넘길까’ 이게 더 중요해졌어요.

자유도가 생겼네요.
많이 생겼죠, OTT 안에서는. 방송국에서는 여전히 그런 게 물리적으로 힘들긴 한데 (OTT와의 작업은) 저는 되게 만족스러웠어요. 창작의 자율성을 되게 많이 줬고, 시간 제약도 제가 7부작을 하든 8부작을 하든 상관없었고요.

보통 홀수로 떨어지는 7부작을 잘 안 한다면서요.
요즘에는 그런 게 아예 사라진 것 같아요. “짝수로 해주세요”라기보다는 가장 적합한 걸 하죠. <오징어 게임>은 9부작이었고 <마스크걸>은 7부작이었으니 짝수로 가야 성공한다는 법칙은 사실은 없는 거라서요.

짝수는 월화드라마, 수목드라마, 주말 드라마 시대 방송국이 만들어낸 회차의 문법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런 걸 강요한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어요. 더 자율성이 생긴 대신 ‘사람들이 빠르게 콘텐츠를 소비하다 보니 10부작 이상은 부담스러워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 미만 회차를 하자’고 권유한다고는 들었어요.

개인적 성향이나 연출 방향상 ‘이런 영화는 안 할 것 같다’ 싶은 영화도 있으세요?
저는 물같이 살고 싶은 사람이라 하나로 고정돼 있기보다는 계속 변하고 싶어요.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만 이야기하면 알콩달콩한 로맨스물은 안 할 것 같아요. 그런 건 제가 보는 것도 힘들고 그런 노래를 듣는 것도 힘들어요. 그런 세포가 없어진 것 같아요. 오히려 <나는 솔로>에서 욕망을 드러낼 때 더 재미있고, 알콩달콩한 사람 이야기를 볼 때는 견디기 힘들어지는 게 좀 있어요.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언젠가 어느 순간에 ‘알콩달콩한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저는 미혼이라 아직 모르겠습니다만, 흔히 아기가 생기면 삶이 완전히 달라진다고도 합니다. 감독님의 영화를 재미있게 보는 한편, 감독님의 영화는 아이들이 볼 수 없기도 하고요. 언젠가 아이와 즐길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으세요?
일단 제 애가 저보다 더 시니컬해요.(웃음) 지금 중학교 1학년인데 아마 나중에 (내가 만드는) 이런 걸 더 좋아할 것 같아요. 지금 걔는 판타지물, 초능력 같은 걸 좋아하더라고요. 언젠가 그런 것도 할 수 있겠죠.

다음 작품에 대해 공개 가능한 만큼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시리즈물 준비하고 있어요. 인간의 욕망이 분출하는 군상극입니다.

거기도 피 튀는 장면이 있을까요?
아직은 표현의 수위까지는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런 이야기라면 피는 못 나올 것 같은데요.(웃음)
(진지하게) 모르겠어요. 어떻게 해야 될지 .


시작하고 마감하는 남자

한준희 감독은 출근지가 없어도 매일 직장인처럼 일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그는 실행에 앞서 철저히 준비하지만, 그럼에도 ‘이것보다 더 나은 게 분명히 있다’고 믿는 부류다. 한준희 감독이 <D.P.> 시즌 2로 해내고 싶었던 것들에 대해.

Fashion Editor 이상 Feature Editor 주현욱 Photography 신선혜 Hair 오지혜 Make-up 이은혜 Set Stylist 이규미 Assistant 박소은, 김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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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1847 MC 칼리버, 18K 핑크 골드 케이스, 브라운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3bar 방수의 42mm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18K 화이트 골드, 핑크 골드, 옐로 골드의 라지 모델 트리니티 링 모두 까르띠에 제품.

가죽 재킷 올세인츠, 검은색 티셔츠 발렌티노, 검은색 팬츠 리바이스, 첼시 부츠 토즈, 볼캡 보스 제품.

한준희 감독의 첫 장편영화는 2015년작 <차이나타운>. 데뷔작부터 큰 호평을 받은 한준희 감독은 이듬해 백상예술대상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2019년에는 영화 <뺑반>을 공개했고, 2년 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23년 공개된 <D.P. 2>는 공개 3일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TOP10 TV 부문(비영어) 순위권에 올랐다. 현재는 <약한영웅 Class 1>의 다음 시즌을 준비 중이다.

<D.P.>는 원작을 처음 볼 때부터 영화보다 시리즈에 어울린다 생각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중 무엇에 더 어울릴지는 어떻게 판단하십니까?
직관인 것 같아요. <D.P.> 원작은 르포 형식이지만 다양한 사연을 지닌 탈영병들 이야기잖아요. 2시간 동안 특정 인물과 사건을 쫓아가는 것보다 한 명 한 명 여러 인물을 만나는 형식이 더 어울리겠다 생각했어요. 물론 인물 하나를 오롯이 쫓아가는 방식에 어울리는 원작도 많죠. 영화도 옴니버스 구조로 다채롭게 할 수 있고요.

개인적으로 영화 보실 때 극장과 모니터 비율은 어떤 편인가요?
저는 여전히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게 좋아요. 스크린으로 보는 방식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는 아닙니다. 다만 저도 영화와 시리즈를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만드는 분들이 해당 포맷에 맞춰 의도하신 바가 있을 텐데 그 의도를 잘 보고 싶은 마음인 거죠.

직업이 되면 자기 분야의 작품을 덜 찾는 분들도 더러 계시더라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영화를 많이 보시는군요.
여기 모인 감독님들 모두 그러시겠지만 저도 영화를 워낙 좋아해요. 데뷔 전에는 영화제에서도 일했었고, 지금도 영화제 가서 하루에 3~4편씩 작품 보고 있으면 그냥 좋아요. 어렸을 때 극장에서 <쥬라기 공원> 보고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 있잖아요. 여전히 그런 감흥을 찾는 느낌이에요. 저도 누군가한테 그런 감흥을 주는 작품을 만들고 싶고요. 다만 그런 감흥을 무조건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OTT 시리즈가 됐건, 유튜브에 올라온 짧은 쇼츠가 됐든지 간에 ‘우와!’ 하는 순간이 있죠. 아주 드물지만 그런 순간을 만나고 싶어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열심히 보는 편입니다.

시즌 2를 촬영하면서 배우들에게 요구하신 게 있습니까?
시리즈를 진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 디렉션을 덜 하게 돼요. 저보다 배우들이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하고 있거든요. 이미 6편의 에피소드를 찍는 동안 정해인 배우가 안준호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 테니까 저는 ‘이런 상황이에요’ 설명만 하죠. 시즌 2에는 1에 등장한 황장수가 아주 잠깐 나오잖아요.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신승호 배우 역시 어떤 연기를 해야 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시즌 1과 비교하면 시즌 2를 촬영할 때 현장에서 기술적이 난이도는 조금 더 수월했나요?
더 어려웠어요. 배우와 스태프가 모두 같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시즌 1과 조금은 다른 방향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점에서 각자 부담과 책임이 늘었죠. 지금은 <약한영웅>의 다음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데 마찬가지예요. ‘시즌 1보다 더 좋아야 돼’보다 ‘우리가 시즌 2를 왜 해야 되지?’에 대한 답변을 찾아 고민하죠. 최소한 방식은 같더라도 좀 더 나아진 가치를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어려워요.

<D.P.>는 원래 시즌 1까지만 예정되어 있었죠. 촬영 때도 시즌 2를 찍을 수 있겠구나 예상하셨습니까?
그렇지는 않아요. 다만 하고 싶다 생각한 순간은 있죠. 시즌 1 촬영 쫑파티 때였어요. 작품이 공개되기도 전이죠. 정해인 배우가 “<D.P.>를 찍으면서 힘들었지만 너무 좋았고 자기는 이 자리에 있는 스태프를 모두 다시 만났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 한마디가 저희 모두는 감동이었죠. 정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최소한 방식은 같더라도 좀 더 나아진 가치를
보여드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어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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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주파 쿼츠 무브먼트, 스틸 케이스, 네이비 블루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스틸 아르디옹 버클, 3bar 방수, 라지 모델의 산토스 뒤몽 워치·총 0.22캐럿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 세팅의 18K 화이트 골드 소재 LOVE 링 모두 까르띠에 제품.

싱글브레스트 재킷 로로피아나, 화이트 티셔츠 골든구스, 데님 팬츠 리바이스 제품.

인사치레처럼 하는 말이 아닌 진심으로 들렸기 때문이겠네요.
일은 결과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하잖아요. 그 사실을 촬영하는 동안 많이 잊고 지낸 것 같은데 정해인 배우가 상기시켜줬죠. 실제로 현장에서 작품과 자신의 역할을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렇다면 기회가 주어진다면 하자’ 생각했고 다행히 그런 기회가 주어졌어요.

개인적으로 <D.P.> 시즌 2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꼽으신다면요?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다시 등장한 황장수를 보는 안준호의 얼굴이 제일 중요했어요. ‘황장수 또한 이렇게 잘 살고 있어.’ 그걸 볼 때 화가 나면서도 원망할 수만은 없는, 그때의 안준호를 연기한 정해인 배우의 얼굴을 가장 좋아합니다. 사실 <D.P.> 시즌 2의 모든 장면은 찍을 때 어려웠어요. 시즌 1에서 보여준 이야기를 책임져야 된다 생각했거든요. 저희가 군대에 대한 이야기를 했잖아요. 관객께서 시의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시즌 2에서는 조금이나마 그 시의성을 책임지는 이야기여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D.P.> 시즌 2를 만들면서 이것만큼은 달성해보자 하셨던 게 있나요?
시즌 2 캐릭터 대부분이 되게 모호해요. 가해자인데 피해자이고, 피해자인데 가해자이기도 하죠. 저희가 <D.P.> 시리즈를 통틀어서 가장 다루고 싶었던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였어요. 그런 점에서 사병 간의 문제가 단순히 특정 개인의 잘못으로 비치지 않기를 바랐어요. 국가가 군대라는 조직을 만들었고, 관리 감독해야 하는 입장에서 책임지지 못하거나 책임지지 않는 순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와중에 몸부림치는 개개인이 있어 이 조직은 한 발자국 나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이를테면 황장수가 시즌 1에서 정말 지독한 선임으로 나오지만, 관객이 그걸 황장수 개인의 잘못만으로 보지 않았으면 하셨던 거네요.
그렇죠. 뻔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황장수 개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있어’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일부 실사작은 원작을 지나치게 존중해서 오히려 완성도가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D.P.> 시리즈에는 원작 작가께서 극본 작업에 참여하셨는데, 각색하는 과정에서 스토리나 설정을 바꾸는 것에 대한 난처함은 없으셨나요?
서로 간의 존중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작 작가님들도 연출자가 얼마나 이 작품을 좋아하는지, 얼마나 이해하는지를 보실 테니까요. 그게 되면 ‘이 이야기를 이 매체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보여주고 싶구나’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아요. 연출자 역시 원작을 진심으로 좋아할 때 매체 특성에 맞춰서 소개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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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1847 MC 칼리버, 스틸 케이스, 18K 옐로 골드 베젤, 10bar 방수, 라지 모델의 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 까르띠에 제품.

셔츠 발렌티노, 블랙 타이 발렌티노 가라바니, 가죽 팬츠 올세인츠 제품.

10년 전에 비하면 웹툰 원작의 작품들이 정말 많아졌어요. 이유가 있을까요?
좀 더 설득하기 용이한 거 같긴 합니다. 접근성이 좋고 시각화 되어 있으니 ‘이런 방식으로 영상화하겠구나’ 예상하기 쉽죠. 이미 많은 대중에게 증명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피드백이 있나요?
<D.P.> 보신 분들은 자신이 군대에서 겪은 경험을 많이 말씀들 하시잖아요. 그중에서도 ‘지금 군대는 그렇지 않아요’라는 이야기가 기억나요. 배경이 된 2014~15년에 그런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군대를 가보진 않았지만 분명 그때보다 좋아졌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달라진 상황 속에서도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혹은 다시 되돌아갈 무언가를 끊임없이 관찰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D.P.>는 픽션이지만 논픽션이기도 하죠. 그런 점에서 얼마나 적나라하게 표현해야 할까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요.
묘사에 대한 건 항상 고민이죠. 가혹 행위를 묘사하기 위해서 <D.P.>를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D.P.>는 장르적인 재미가 필요한 작품이지만, 말씀하셨듯 논픽션 같은 지점도 분명 필요하기에 보시는 분들이 동의할 수 있는지, 개연성에 있어 필요한 장면인지 염두했습니다.

<D.P.>를 편집하면서 마지막까지 ‘이건 빼야 되나?’ 하셨던 장면은 없었나요?
모든 장면이 고민이긴 했지만, 너무 적나라해서 빼야겠다고 생각한 건 없었어요. 오히려 개연성이나 결말에 대해서 고민했죠. 이를테면 <D.P.> 시즌 2 장성민 에피소드에서 그의 죽음을 묘사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많이 생각했어요. 장성민이 주검으로 발견되는 장면을 두고 ‘정확히 보여주지 않고서도 충분히 느껴질 수도 있나?’ 고심했습니다. 그걸 묘사할 때와 아닐 때는 완전 다른 이야기가 돼버리니까요.

감독님은 <D.P.> 시리즈의 장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시즌 1은 오피스물에 가깝죠. 헌병대라는 오피스 안에서 범구, 지섭, 준호, 호열이라는 인물이 각자 맡은 일을 해내는 이야기니까요. 시즌 2까지 통틀어서는 안준호의 성장담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안준호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좋은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분명 좋은 사람이 되려고 애썼고, 애쓰는 가운데서 무언가 성취한 것이 있겠죠.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모두가 예스를 할 때, 홀로 노를 하는 안준호 같은 사람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그가 뭔가를 이뤄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럼에도 노력했고, 그런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세상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안준호가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분명하죠.

지금도 그렇지만 앞으로 새 작품이 나오면 ‘한준희 작품’으로 소개되겠죠. 그런 점에서 느끼는 부담감이나 책임감은 없습니까?
저는 부끄럽지 않을 만큼 열심히 일하는 게 중요해요. 어제 <서울의 봄> 시사회에 다녀왔어요. 연출하신 김성수 감독님이 예순이 넘으셨거든요. 그런데도 이 영화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거대한 거예요. 저희 연배는 할리우드나 홍콩 영화보다 한국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고 생각해요. 봉준호·박찬욱·김성수·류승완· 최동훈 감독님처럼 여전히 에너지를 주시는 감독님들을 보면서 부족한 것을 채워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 편 한 편 누가 불러줄 때까지 영화를 찍고 싶어요.

면구스러운 질문입니다만 촬영과 홍보 기간이 끝나면 영화감독님은 평소에 뭘 할까 궁금하더라고요.
저는 주로 스타벅스에 가서 시나리오를 씁니다.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가는 편입니까?
시간보다는 마감일을 정해놓고 가요. 저희는 직장에 다니지 않잖아요. 늘 ‘내가 직장 다니시는 분들만큼 일하고 있나?’ 생각합니다. 글을 쓰지 않는 날이면 ‘그럼 나는 오늘 뭘 했지?’ ‘일에 도움이 됐다고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했나?’ 돌아보죠. 영화감독도 결국 직업이잖아요. 그러면 열심히 해야죠.

 

“각본 쓸 때도, 촬영할 때도, 편집할 때도 ‘더 좋은 게 있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이 좋은 연출자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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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츠 무브먼트, 18K 옐로 골드 케이스 및 브레이슬릿, 3bar 방수의 미디엄 모델 탱크 프랑세즈 워치·18K 핑크 골드 저스트 앵 끌루 링 모두 까르띠에 제품.

더블브레스트 재킷 디올 맨, 터틀넥 톱 메종 마르지엘라, 블랙 팬츠 자크뮈스, 첼시 부츠 토즈 제품.

확실히 직장인 마인드가 있네요.
저는 직장 다니시는 분들 정말 존경해요. 저희 아버지도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일하러 가셨고요. 현장에 나가면 밥차 아주머니도 일하시고, 발전차 기사님도 일하시잖아요. 저도 똑같아요. 영화, 예술 같은 수식은 남들이 붙여주는 거죠. 저는 그냥 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저는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을 거장이 아닌 장인으로서 좋아해요. 저 역시 숙련되고 성실한 노동자가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럼 당연히 영화도 좋아질 거고요. A4 용지에 한 줄을 쓰더라도 매일 일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연출자는 어떤 연출자라고 생각하십니까?
각본 쓸 때도, 촬영할 때도, 편집할 때도 ‘더 좋은 게 있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이 좋은 연출자라고 생각합니다.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수행하는 것도 굉장히 좋은 방식이지만, 그럼에도 제가 아직 찾지 못한 좋은 게 분명히 더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알지 못하는 배우의 어떤 얼굴이 있을 거야’ 하고요.

앞으로 20년쯤 뒤에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영화 찍는 사람이라면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저는 아직도 현장에 가는 게 너무 힘들고 두렵거든요.(웃음) 그럼에도 영화 만드는 게 재미있어요. 계속하고 싶습니다.

한준희 감독의 인생 영화 5

<파이트 클럽>, 데이비드 핀처, 1999
고등학교 때 처음 본 영화. 모든 면에서 충격적이었다. 스토리, 영상미, 연기까지 모두. 영화를 이렇게도 찍을 수 있구나 처음 생각하게 한 작품이다.
<대부 1>,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1972
<대부> 트릴로지를 모두 좋아하지만 그중에서도 1이 압도적으로 좋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감독이 영화를 찍는 과정을 기록한 <대부>의 프로덕션 노트를 본다.
<코메디의 왕>, 마틴 스코세이지, 1983
사실 <코메디의 왕>은 조금 이상한 영화다. 관객이 기대하는 지점 정반대에서 감독의 의지를 강력하게 실현할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뛰어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작품.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마스터피스. 가만 보면 <살인의 추억>은 되게 이상한 시나리오다. 범인이 잡히지 않는 스릴러니까. 시나리오 작법서에 ‘이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한 것을 되게 많이 한 영화임에도 끊임없이 재미있는 작품이다.
<타짜>, 최동훈, 2006
지금껏 나온 한국 영화 중 가장 완벽한 캐릭터의 양상블을 이룬다. 흉내 내고 싶어도 흉내 낼 수 없는 대본이라고 생각한다.


해결하고 부딪치는 남자

영화에서 말했듯 유재선 감독은 ‘둘이 함께라면 극복하지 못할 문제는 없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둘’을 완성하는 건 무엇일까? 유재선 감독이 첫 장편영화 <잠>을 만들며 함께하고 극복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

Fashion Editor 이다솔 Feature Editor 주현욱 Photography 신선혜 Hair 오지혜 Make-up 이은혜 Set Sylist 이규미 Assistant 박소은, 김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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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1847 MC 칼리버, 18K 핑크 골드 케이스, 다크 그레이 태양광선 모티브 브러시드 다이얼, 그레이 앨리게이터 가죽 스트랩, 3bar 방수 기능의 40mm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 까르띠에 제품.

데님 셔츠·데님 팬츠 모두 유돈초이, 검은색 로퍼 발렌티노 가라바니 제품.

유재선 감독은 대학 시절 경제학을 전공했다. 영화에 관심이 없던 그는 교양과목으로 문예창작 수업을 들으며 영화에 관심을 품게 됐다. 처음 연출부로 일한 건 2013년작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봉준호 감독의 2017년작 <옥자> 연출부에서 2년 넘게 일하며 영화 제작을 배웠다. <잠>은 유재선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제76회 칸영화제에서 처음으로 상영됐다.

군 입대 후에 영화감독이 되어야겠다 결심하셨다고 들었어요. 영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건 언제쯤이었나요?
10대 때는 블록버스터 영화 상영하면 1년에 서너 번 극장 가는 정도였어요. 대학에서는 학점 이수용으로 필수 교양과목이었던 ‘단편소설 창작’이라는 문예창작 수업을 들었거든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 것인가?’가 주제였는데, 교수님께서 과제로 영화도 많이 보게 하셨어요. 그 영화들이 너무 좋았던 거죠. 교수님께 과제 더 달라고 해서 아마 같은 반 친구들은 저를 안 좋아했을 거예요.(웃음)

영화를 따로 전공하지 않았는데 그로 인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학교에 영화과는 없었지만 비공식 영화 제작 동아리가 있었어요. 대부분 실력은 정말 형편없었죠. 그래도 의지는 있어서 저희들끼리 주먹구구식으로 단편영화를 만들었어요. 동아리 부원은 대부분 영화 만들기를 취미로 했고, 저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만 취미 이상의 열정으로 임했어요. 거기서도 ‘유재선 얘는 영화감독 될 사람이다’라고 일종의 낙인이 찍혔고,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됐죠.

동아리 이름이 궁금해지네요.
몽상가들이었어요, 영화 제목과 같은.

봉준호 감독님으로 치면 시네필 동아리 ‘노란문’ 같은 곳이었겠네요.
맞아요. 몽상가들에 차별점이 있었다면 영화 감상보다는 영화 제작에 올인한 동아리였다는 거예요. 희한하게 시네필은 별로 없었고, 영화 직접 만들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영화를 만들고 학기마다 저희끼리 영화제를 하고. 그런 문화를 누린 동아리였어요.

<옥자>를 만들 때도 봉준호 감독님은 이미 세계적인 감독이셨죠. 당시 <옥자> 연출팀에 들어가기 위한 별도의 테스트가 있었나요?
다른 영화는 모르겠지만 <옥자>는 있었어요. <옥자>는 외국어 영화잖아요. 절반은 한국어, 절반은 영어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영화 제작에 대한 경험이 약간 있으면서도 영어 실력을 겸비한 사람을 찾았던 모양이에요. 당시 프로젝트에 지원한 분들 중 업계에서 날고 긴다 하는 조감독님도 계셨고, 영어만 전문적으로 하시는 분들도 계셨어요. 저는 양쪽에 어중간하게 걸쳐 있었는데 그래서 뽑힌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웃음)

당시 면접은 누가 보셨나요?
일단 서류 전형이었고, 1차 면접에서 봉준호 감독님이랑 조감독님을 뵀어요. 2차 면접은 영어 실력을 보는 자리였습니다.

당시 봉준호 감독님께 받은 질문 중 기억나는 게 있으세요?
제가 잠깐 일했던 <은밀하게 위대하게> 현장 어땠냐고 물어보셨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어보셨어요. 데이비드 핀처, 쿠엔틴 타란티노, 웨스 앤더슨 등 제가 좋아하는 감독님을 줄줄이 말씀드렸는데, 데이비드 핀처 감독 영화 중에 뭘 좋아하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그때 <소셜 네트워크>를 좋아한다고 말씀드렸더니 되게 좋아하셨어요. 다행이다 생각했습니다.(웃음) 동아리에서 단편영화를 만들 때 어떤 과정이 가장 즐거웠는지도 여쭤보셨어요.

마지막 질문에는 뭐라고 답하셨나요?
편집이었어요. 물론 촬영장에서도 즐겁게 일하지만, 제 성격이 내향적인 편이라 사람들이 많은 환경이 완전히 편하지는 않아요. 남과 소통하는 것도 살짝 어렵게 느껴지거든요. 모든 재료, 즉 촬영본을 가지고 혼자 골방에서 ‘이제 이걸로 뭘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조립하듯 편집하는 과정이 즐겁다고 답변드렸어요. 그랬더니 “재밌네”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감독이 아닌 각본가나 편집 기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을 수도 있을 텐데.
제가 영화과를 나오지 않아서 영화업계의 직군이 세분화됐다는 것도 몰랐어요. 군대에서 그랬듯 그냥 영화 좋아하면 감독이 되거나 배우가 되거나. 그렇게 단편적으로밖에 알지 못해서 다른 가능성은 애초부터 선택지에 없었습니다.

 

“거기서도 ‘유재선 얘는 영화감독 될 사람이다’라고
일종의 낙인이 찍혔고, ‘영화인’으로서의 정체성이 강화됐죠.”

 

<잠>의 각본을 써야겠다 생각하신 계기나 사연이 있습니까?
보통 연출팀 스태프들은 프로젝트와 프로젝트 사이에 시나리오를 써요. 그것 외에 입봉할 수 있는 길이 달리 없으니까요. <옥자>가 끝나고 같이 연출팀에 있던 형이랑 시나리오 스터디를 했어요. 그 형의 지론은 ‘영화 시나리오는 결국 아이템이다. 어떻게 쓰는지는 나중 일이고 아이템이 관객을 사로잡아야 관객들이 영화를 본다’였어요. 당시에는 공감하진 않았지만, 결론적으로는 엄청난 덕을 봤죠.(웃음) 그때 저희끼리 했던 게 있어요. 하루에 1개의 아이템을 구상해서 대충 기승전결을 갖춘 이야기를 만들어 오는 거예요. 그럼 월·화·수·목·금 하나씩 일주일에 5개의 아이템이 나올 거고, 토요일에 서로 평가하는 거였죠. 그때 구상한 아이템 중 하나가 몽유병 호러였어요. 사실 당시에는 그 이야기에 큰 관심이 없었어요. 그 형만 ‘이거 재밌다, 한번 해봐라’ 했죠.

정작 본인은 영화가 될 만큼 재미있는 소재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거네요.
몽유병이라는 소재가 영화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는 시간의 흐름인데, 몽유병은 시간이 계속 단절되잖아요. 낮에는 아무 일도 없다가 밤에 괴팍하고 위험한 일이 일어난다. 이 반복에서는 흐름을 찾을 수 없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도 <잠>의 시나리오가 나왔죠. 저는 다른 각본이 마음에 들었는데, 같이 스터디하던 형이 ‘그건 형편없다. 그건 망한다’ 하면서 몽유병 각본을 계속 칭찬해줬거든요.(웃음) 등 떠밀리듯 각본을 쥐고 계속 주무르다 보니까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녹아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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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스틸 케이스, 스틸 브레이슬릿, 3bar 방수 기능의 라지 모델 탱크 프랑세즈 워치·18K 화이트 골드 소재의 저스트 앵 끌루 링 모두 까르띠에 제품.

감색 셔츠 비욘드 클로젯, 티셔츠 벨루티, 팬츠 아미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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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1847 MC 칼리버, 스틸 케이스, 블랙 그레인 앨리게이터 가죽 브레이슬릿, 3bar 방수 기능의 40mm 발롱 블루 드 까르띠에 워치·18K 화이트 골드에 총 0.12캐럿의 브릴리언트 컷 다이아몬드를 세팅한 저스트 앵 끌루 네크리스 모두 까르띠에 제품.

싱글브레스트 재킷·그레이 팬츠 모두 아미, 레이스업 로퍼 자크뮈스 제품.

그게 무엇이었나요?
썼을 당시에는 몰랐던 점인데요. 그때 제게 가장 중요한 화두는 결혼이었어요. 지금의 아내와 결혼을 염두에 두고 연애 중이었는데 막연한 걱정이 있었죠. ‘올바른 결혼 생활이란 무엇인가?’ 고민을 많이 하던 차에 아내가 해준 이야기가 시나리오에 많이 녹아들었고 어느 순간 막혔던 부분이 풀리면서 한 호흡에 써 내려갔던 기억이 나네요. 그전에는 순전히 호러적인 요소만 가득했거든요.

부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건 나중에 들어가는 설정이었네요.
맞습니다. 각본을 완성했을 때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랑은 상관없는, 재미있는 장르물이 나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시나리오를 보더니 ”무슨 우리 자서전을 썼냐”고 하더라고요. 그제야 우리 이야기가 많이 녹아 있구나 깨달았어요.

저는 <잠>을 보면서 가족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감독님께서는 <잠>의 장르를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저는 호러와 드라마 그 중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희 마케팅팀이 고생을 많이 했을 거예요.(웃음) 아내는 호러 영화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사랑 영화로 느껴졌다고 하더라고요.

영화에는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는 가훈이 자주 등장하죠. 감독님 가정에도 가훈이 있습니까?
가훈까지는 없습니다.(웃음) 사실 ‘둘이 함께라면 극복 못 할 문제는 없다’는 아내의 결혼에 대한 신념이에요. <잠> 시나리오를 쓸 때 저는 일자리도 없었고, 막연한 꿈만 꾸고 있어서 이게 맞는 길일까 싶었거든요. 그럴 때마다 아내가 수진처럼 ‘네가 최고야’ ‘이거 하기만 하면 다 이겨’ 하면서 응원해줬어요. 경제적인 부분도 둘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문제이고 해결할 수 있다는 말도 해줬고요. 그런 말들이 무의식적으로 영화에 반영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비밀 전제로 여쭙습니다. 현수의 마지막 장면은 연기인가요, 진짜인가요?
마케팅팀을 비롯해서 봉준호 감독님이 저한테 당부하셨던 몇 안 되는 피드백이 있어요. ‘결말에 대한 너의 해석은 절대로 함구하고 있어라’라고.(웃음) 이 결말은 영화가 줄 수 있는 큰 즐거움 중 하나인데 너의 해석으로 그 문을 닫을 필요는 없다고 하셨어요. 영화는 결국 관객의 소유이기 때문에 각자의 해석을 믿으시는 게 더 재미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평소 좋아하신다는 이동진 평론가께서는 <잠>을 보고 이런 한 줄 평을 남기셨죠. ‘믿고 싶은 것과 믿게 하고 싶은 것이 맞닿은 신기루에서 몽글거린다.’ 감독님께서 셀프 한 줄 평을 하신다면요?
‘어떤 문제든 둘이서 함께 맞는다. 그것이 맞든 틀리든.’ 둘이 함께여도 극복하지 못할 문제가 있을 수 있죠. 그 문제를 함께하는 게 중요해요. 사실 현수는 그러지 않잖아요. 부부에게 당면한 문제일지언정 혼자서라도 해결을 하겠다는 입장이니까요. ‘부부는 틀리더라도 같이 틀려야 된다’는, 어떻게 보면 앞뒤가 안 맞고 기괴하지만 나름 낭만적인 메시지가 <잠>에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데뷔 영화를 촬영할 때 금기시되는 두 가지가 ‘아기와 동물을 캐스팅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불문율을 깨고자 했던 건 오만함 때문은 아니었어요.(웃음) 데뷔하는 감독들은 예산의 자유가 굉장히 적잖아요. 그만큼 촬영 일수도 적고요. 최대한 변수가 없어야 해요. 강아지와 아기는 아무리 철저히 준비한다 한들 100% 완벽할 수 없어요. 이야기상 꼭 필요했기 때문에 선택했어요. 다행히 두 배우분 모두 훌륭하게 연기해주셨습니다.

강아지와 아기도 오디션을 보나요?
강아지 배우를 전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일종의 에이전시가 있어요. 훈련도 잘되어 있고요. 반면 아기 배우를 찾는 게 굉장히 어려워요. 촬영 당시가 코로나 시국이어서 더욱 모시기 힘들었는데 운 좋게 훌륭한 배우를 소개받았습니다.

감독님께 하루 중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요?
아침 9시와 저녁 9시입니다. 아내가 미국에 살고 있거든요. 서로 하루를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이때뿐이라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시간입니다.

두 시간대 중 더 중요한 시간이 있습니까?
저한테는 오전 9시가 더 중요하죠. 제 이야기를 하는 것보다 아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가 더 궁금하기도 하고, 그때의 에너지로 저도 하루를 힘차게 보낼 수 있으니까요.

감독님께도 일종의 좌우명이 있습니까?
‘준비는 빈틈없이, 촬영은 자유롭게.’ 저는 촬영 준비 단계에서 모든 경우의 수를 예측하고 준비하려고 해요. 여기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준비한 게 있으니까 이걸 꼭 해야 된다’라는 마음가짐인데요. 촬영을 하다 보니 현장에서 나오는 즉흥성과 변수도 아우를 줄 알아야 되더라고요. 준비는 빈틈없이 하되 촬영은 자유롭게 해야 재미있는 영화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문제든 둘이서 함께 맞는다. 그것이 맞든 틀리든.’
둘이 함께여도 극복하지 못할 문제가 있을 수 있죠.”

 

좋은 영화감독은 어떤 감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좋은 영화감독의 형태는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해요. <잠>으로 처음 연출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이라는 직업은 자신의 비전을 밀어붙이기 위해서 최고의 실력자들에게 도움을 얻는다. 그런 점에서 좋은 감독은 주변에 누가 있느냐로 판가름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좋은 스태프와 함께할 수 있으려면 현장에서 보여주는 성품도 실력이 될 수 있겠네요.
업계에 이런 말이 있더라고요. 배우와 스태프에는 두 가지 부류가 있다. 하나는 계속 연료를 주입해서 아이디어와 열정을 갖게 해야 하는 부류, 다른 하나는 아이디어와 열정이 너무 많아서 반대로 물을 부어서 식혀줘야 하는 부류. <잠> 스태프는 전부 후자였어요. 다들 작품에 애정을 갖고 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셔서 저는 선택만 하면 됐거든요. 굉장한 행운이죠.

마지막 질문입니다.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습니까?
영화관 푯값이 아깝지 않은 감독. ‘유재선 감독 영화면 어련히 재밌겠지’ 생각하게 된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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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매틱 와인딩 메캐니컬 무브먼트, 1847 MC 칼리버, 스틸 케이스, 그러데이션 블루 다이얼, 스틸 브레이슬릿, 10bar 방수 기능의 라지 모델산토스 드 까르띠에 워치 까르띠에 제품.

스웨터 자크뮈스, 팬츠 돌체앤가바나 제품.

유재선 감독의 인생 영화 5

<옥자>, 봉준호, 2017
관객이 아닌 내 인생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면 <옥자>를 꼽지 않을 수 없다. <옥자> 연출팀으로 보낸 2년 반 동안 영화 만들기에 대한 모든 것을 배웠다. 지금 영화감독으로서 필요한 지식은 그때 다 얻은 게 아닐까 생각한다.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데이비드 O. 러셀, 2012
누군가 ‘어떤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 싶나?’라고 물으면 언제나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같은 영화를 만들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답한다. 주인공들의 불행한 나날을 그리지만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다. 이불 한 겹을 덮어주는 듯한 영화. 그런 점에서 <잠>을 만들 때 큰 영감을 준 작품이다.
<잠>, 유재선, 2023
감독으로서 데뷔할 수 있게 해준 영화. 앞으로도 나보다 <잠>이 인생 영화인 사람은 없을 것 같다.
<킬러들의 도시>, 마틴 맥도나, 2008
영화를 진지하게 볼 때 처음 영화 제작을 해봐야겠다고 느꼈던 때가 있다. <킬러들의 도시>를 본 순간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생각했다.
<살인의 추억>, 봉준호, 2003
군대 가기 직전 이 영화를 처음 봤다. 남들보다 굉장히 늦게 본 편인데 살면서 본 영화 중에 가장 재미있는 영화였다. 무게감이 느껴지면서도 오락적으로 훌륭한 영화. 이런 유형의 영화도 가능하구나 생각하게 해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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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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