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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물 시계 고르기

시계 담당 에디터가 예물을 고르려는 남자들에게.

UpdatedOn October 0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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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의미를 부여할 때
물건에 의미가 담긴다.

 

이른바 시계 담당 에디터가 된 뒤 종종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몇 번 비슷한 일을 겪고 나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들은 모두 같은 걸 물었다. 예물 시계에 대해서. 나는 그때도 지금도 결혼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그때나 지금이나 시계 담당이라는 이유로 내가 반한(어쩌면 그것보다 덜) 아는 분야에 대한 조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몇 번 예물 시계 상담 경험을 겪고 문의에 조금 익숙해졌다. 이제는 비슷한 질문을 받으면 되묻는다. 깨달은 게 있어서다. 순서는 이렇다. 미리 봐둔 시계가 있는가? 있으면 무조건 그 시계를 추천한다. 결혼을 앞둔 신랑이 원하는 건 그 시계에 대한 긍정이지 충언이 아니다. 첫 번째 질문에 ‘아니’라고 답한다면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간다. 평생 고가 시계를 몇 개 살 것 같은가. 한 개인가 두 개인가 여러 개인가. 몇 개인지에 따라 대답이 조금씩 달라진다. 지면을 빌려 여러분께 닿을 수 있도록 공통 조언을 드리고자 한다.

첫째. 예물 시계 안 사도 된다. 소비를 소개하는 잡지의 시계 담당 에디터가 무슨 말이냐 싶겠지만, 이게 나의 직언이다. 결혼할 때 고가 시계를 사서 영원한 사랑을 입증한다는 건 유례도 역사도 찾을 수 없는 현대 한국풍 무근본 전통이다. 스위스의 시계박람회에서 유럽인 담당자에게 “당신 나라는 결혼할 때 페어 워치를 차는 풍습이 있다면서요?”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니까 이건 유럽의 전통도 아니다. 고가 시계 보유 유무와 결혼의 정통성 및 완성도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시계를 마련하지 못해 속상한 예비 부부가 계신다면 여러분의 사랑이 그 어떤 고급 시계보다 귀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러나 예물 시계를 갖고 싶은 젊은 남자에게 이런 추상적이고 입바른 말은 통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역시 질문이다. 예물 시계가 평생 하나의 고가 시계가 될 것 같으신가? 세속적으로 ‘돈 좀 썼다’ 할 만큼의 예산을 확보하셨는가? 약간의 수고를 감당할 수 있으신가? 셋 다 그렇다면 롤렉스를 구입하시라. 평생 하나의 고가 시계라면 롤렉스만 한 게 없다. 다만 원하는 롤렉스를 구하려면 대기나 전당포 구매 등의 수고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수고를 감당하기 싫으신가? 오메가를 사시라. 오메가에는 살 만한+살 수 있는 재고가 늘 있다. 오메가도 훌륭하다. 같은 가격의 오메가와 롤렉스가 있다면 언제나 오메가의 사양이 조금이라도 더 높다. 오메가의 단점을 굳이 말하자면 하나뿐이다. 롤렉스가 아니라는 것. 그러니 평생 고가 시계를 하나만 가질 거라면 다른 매장 기웃거리며 시간 낭비 마시고 롤렉스나 오메가 사시라.

고가 시계를 앞으로도 사실 건가? 시계를 좋아하시는가? 이런 분과 함께라면 차라도 한 잔 놓고 여러 가지 즐거운 세속적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런저런 수다 중에 드릴 말씀을 요약한다면 고가 시계 시장의 다양성에 일조해주셨으면 한다. 예물 시계로 롤렉스나 오메가를 사는 건 치킨으로 BHC나 교촌만 시키는 것과 같은 선택이다. 안전하고 재미없다. 안목 있는 분께서 형편도 좋아 모처럼 기념비적 고급 시계를 산다면 조금 덜 알려진 고급 시계도 좋지 않을까. 쇼파드, 제니스, 글라슈테 오리지날처럼. 낮은 인지도만큼 재판매 시세도 낮지만 어차피 예물 시계는 이혼하지 않는 이상 계속 갖고 가는 시계 아닌가.

권하고 싶지 않은 시계도 있다. 유행하는 시계. 남이 권하는 시계. 그게 뭐든, 판단 근거가 자신이 아닌 시계. 고가/고급 시계는 남의 판단을 믿고 사기엔 너무 비싸고 재판매가 어려운 물건이다. 게다가 결혼이라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벤트 중 하나 아닌가. 이런 행사에서라도 자기 의견이 있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는 결혼을 안 해본 입장에서 하는 철없는 이야기인 것도 안다. 막상 결혼할 때쯤이 되면 자잘한 의사결정이 너무 많아서 예물 시계쯤이야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으로 고를지도 모른다. 그 역시 삶의 추억이겠고.

삶은 죽을 때까지 의미 부여다. 예물 시계는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대표적인 경우다. 물건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이 의미를 부여할 때 물건에 의미가 담긴다. 사람의 의지가 없다면 아무리 값비싼 물건도 아무것도 아니고, 반대로 의지가 담긴 물건은 뭐든 그게 자신의 보물이다. 당사자만 좋다면 예물 시계는 당신이 찬 바로 그것이 최고의 시계다. 마지막 소식. 오늘날 출시되는 거의 모든 손목시계는 거의 평생 찰 수 있다. 어떤 시계를 골라도 평생의 결혼 기념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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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박찬용

2023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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