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포스트 오펜하이머

화제작 <오펜하이머>의 실제 주인공 J.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평생 업적을 이렇게 요약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 후회했던 걸까? 자신의 업적을 부정한 걸까? 그렇다면 포스트 오펜하이머 시대에 사는 오늘날의 우리는 오펜하이머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오펜하이머와 지금을 주제로 한국의 물리학자, 원자핵공학자, 과학기술사학자에게 질문을 건넸다.

UpdatedOn August 27, 2023

/upload/arena/article/202308/thumb/54339-520435-sample.jpg

1 최형섭 박사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번역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융합교양학부 교수

“맨해튼 프로젝트는 독일과의 경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존립을 넘어 2천 년 서구 문명의 존망이 걸린
상황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죠.”


원작을 번역하신 입장에서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가장 기대하는 관전 포인트는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CG 없이 원자폭탄 시험 장면을 어떻게 구현했을지 기대하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파란 눈동자가 항상 궁금했습니다. 오펜하이머 생전에는 컬러 사진이 대중화되지 않아서 흑백사진만 남아 있어요. 그의 매력 포인트인 눈동자를 컬러로 보고 싶었습니다. 킬리언 머피라는 배우가 오펜하이머 역에 선택된 이유 중 하나는 그의 파란 눈동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펜하이머는 국내외 대학 교과서에서 어떤 인물로 다뤄지고 있습니까?
오펜하이머는 양자역학이 등장한 초기에 블랙홀과 관련된 중요한 과학적 업적을 남긴 탁월한 과학자이자, 미국에 양자물리학을 소개한 인물입니다. 대중적으로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책임자로 알려졌고 이 때문에 ‘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별칭으로 불리곤 합니다. 냉전기에 과거 전력이 문제되어 과학자로서의 커리어를 이어가지 못했지만 여전히 20세기 과학사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교수님의 개인적인 평가도 궁금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어린 시절부터 시종일관 삶과 지식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견지한 인물이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에 따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해 노력했지요. 그 때문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결단코 양심에 어긋나는 말로 위기를 모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이전까지 물리학의 선진국은 미국이 아닌 유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오펜하이머의 과학자들이 더 빨리 원자폭탄을 개발할 수 있었던 핵심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두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는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물리학을 주도한 유럽 물리학자의 상당수가 유대인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히틀러는 양자역학은 ‘유대인의 과학’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전쟁이 시작되고 독일에서 유대인을 본격적으로 핍박하면서 많은 유대계 과학자가 가깝게는 영국으로, 멀리는 미국으로 망명했습니다. 따라서 맨해튼 프로젝트가 시작될 무렵 이미 많은 유럽 과학자가 미국으로 이주한 상황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원자폭탄을 만드는 과정이 상상할 수도 없는 규모의 산업 역량을 요구한다는 점입니다. 우라늄과 플루토늄이라는 핵연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공장에서 엄청난 양의 전기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의 주 전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산업 역량을 총동원해 핵연료를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미국에서 최초로 핵 실험에 성공한 가장 중요한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오펜하이머의 철학적 고민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맨해튼 프로젝트는 독일과의 경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존립을 넘어 2천 년 서구 문명의 존망이 걸린 상황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죠. 따라서 철학적 고민이 끼어들 틈이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프로젝트 성공 이후로는 새로운 과학의 힘으로 만든 대량살상무기를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지 고민이 생겼을 겁니다. 조금 다른 의미에서 서구 문명의 존망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 것이지요. 이것이 오펜하이머의 근본적인 딜레마였을 것입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하버드대 재학 시절 자작시를 학생 잡지에 기고할 만큼 필력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훌륭한 물리학자들에게 과학 외의 중요한 재능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과학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 학자라면 의문을 제기하는 능력이 없다면 정말로 뛰어난 업적을 남기기 어려울 것입니다. 주어진 지식의 틀 안에 머문다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낼 수 없겠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것은 자신의 전문 분야에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펜하이머의 조력자

· 엔리코 페르미 이탈리아 출생의 미국 물리학자. 세계 최초로 원자로를 만들었고, 1938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는 최초의 인공 우라늄 핵분열 연쇄반응을 이끌었다. 미국 에너지부에서는 에너지 개발 업적을 이룬 과학자에게 그의 이름을 딴 상을 수여한다. 오펜하이머는 1963년 엔리코 페르미 상을 받았다.
· 레오 실라르드 헝가리 출생의 미국 물리학자. 1933년 핵 연쇄반응을 발견하며 핵에너지 관련 기초 이론을 다졌다. 핵무기 개발을 촉구하기 위해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 작성을 주도했다. 하지만 원자폭탄 투하에는 반대했다.
· 닐스 보어 덴마크 태생의 이론물리학자. 1922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수소원자 모형’을 비롯한 그의 논문은 양자역학의 초석이 됐다. 그의 제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훗날 나치 독일의 핵폭탄 연구를 주도한다.
· 존 폰 노이만 헝가리 출생의 미국 물리학자.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었던 기폭장치, ‘폭축렌즈’를 개발한 인물이다. 오늘날까지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가한 수많은 과학자 중에서도 천재성은 최고로 손꼽힌다.
· 유진 위그너 헝가리 출생의 미국 국적 이론물리학자. 맨해튼 프로젝트에서는 원자로 설계팀을 이끌었다. 그가 정립한 ‘위그너 정리’는 훗날 물리학자들이 정교한 양자역학을 수립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1963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 한스 베테 독일 출생의 미국 물리학자. 인류 최초로 별이 빛나는 이유를 밝혀낸 과학자다. 항성의 에너지원에 관한 연구를 발표해 1967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원자폭탄의 에너지 생산량을 계산하는 베테-파인만 방정식을 만들었다.
· 리처드 파인만 미국 출생의 물리학자. 맨해튼 프로젝트의 이론물리 팀에서 베테와 함께 베테-파인만 방정식을 정립했다. 1965년 노벨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2 이정익 박사

카이스트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능력을 국가를 위해 사용한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로서의 본업에 충실하여 뛰어난 연구 성과를
냈지만, 연구자가 되는 대신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역량을 총동원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었죠.”


원자폭탄 개발은 1940년대 기술력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습니까?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일례로 우라늄 농축을 위해 가동하던 설비는 미국 전력 생산량의 3분의 1까지 사용했습니다. 농축에 필요한 ‘캘루트론(Calutron)’ 장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가 필요했는데, 구리는 전략 물자인 탓에 전쟁 중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은을 1만4천7백 톤이나 써야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나라가 이 정도로 막대한 자원을 써야 할 만큼의 작업이라면 더욱 불가능하게 느껴집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과학적 성과 중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성과는 무엇입니까?
물질을 이루는 기본 단위인 원자 및 원자핵의 구조를 연구할 수 있는 과학적 기초 실험 자료를 짧은 기간에 대량으로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기술적 성과로는 핵에너지의 연쇄반응을 통해서 대량으로 방출시킬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입니다. 원자폭탄 개발을 위해 다양한 종류의 원자로를 실험했는데, 그 자료는 후대에 원자력 발전소를 위한 원자로 설계에 중요하게 사용됐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에 앞서 반드시 필요한 이론을 정립한 과학자도 있습니까?
아인슈타인이 유명하지만,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과학자는 엔리코 페르미와 레오 실라르드라고 생각합니다. 엔리코 페르미와 레오 실라르드가 미국 시카고대 지하실에서 최초의 원자로를 만드는 실험을 성공하지 못했다면, 맨해튼 프로젝트는 시작할 수 없었습니다. 인간이 핵에너지와 핵입자를 다룰 수 있는 중요한 이론과 기술 대부분이 이 실험에서 나왔습니다.

과거 오펜하이머만큼, 오늘날 과학계에서 주목받는 물리학자는 누구입니까?
오늘날 오펜하이머와 같은 과학자는 라이너 바이스, 킵 손, 배리 배리시, 로널드 드레버가 아닐까 합니다. 이들은 2016년 아인슈타인이 예측했던 중력파를 측정한 LIGO 실험을 이끈 인물입니다. 오펜하이머는 과학자이지만 더 대단한 그의 능력은 팀을 이끈 리더십이라고 생각합니다.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인 과학자들을 통솔하여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핵폭탄의 기본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 필요한 여러 제반 사항을 책임진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맨해튼 프로젝트 이후 물리학의 중심지는 어느 나라와 대학을 중심으로 발전했습니까?
핵에너지를 사용하는 연구는 미국 중심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최근 미국이 기초과학에 필요한 거대 실험 장비 관련 투자를 줄이면서 유럽도 다시 충분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나 국제열핵융합실험로(ITER) 같은 거대 물리 프로젝트가 대부분 유럽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입자물리학이나 핵융합과 같은 연구에서 유럽의 위상이 다시 높아지고 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서도 그러했듯, 원자핵공학의 발전은 정부기관의 협조가 필수적입니다. 그 부분에서 한국의 장점과 한계는 무엇입니까?
한국의 가장 큰 장점은 원자력 발전소의 설계, 제조, 건설을 모두 국내에서 수행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현재 다 할 수 있는 나라는 중국 정도입니다. 러시아도 제어 관련 기기는 외국산을 써야 합니다. 한국은 실제 공학과 기술 측면에서 서방 어느 나라보다도 수준이 높습니다. 그러나 기초과학에 대한 투자나 새로운 원자로 개발에 대해 보수적입니다. 기술 개발에 대한 도전을 지속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죠. 투자 역시 단기성으로 끝나 수준 높은 기술력 유지나 전문가 양성 등에서 한계가 있습니다. 인허가도 매우 경직된 탓에 새로운 원자력 시스템 개발이 매우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핵공학은 호흡이 긴 분야입니다. 단기적인 성과를 낼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투자가 아닌,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를 통해 정치에 영향을 받지 않고 기술을 개발할 수 있는 풍토 조성이 필요합니다.

오늘날의 원자핵공학자 앞에 놓인 과학 난제는 무엇입니까?
‘원자로를 어떻게 하면 더 작고, 안전하고, 똑똑하게 만들 수 있을까?’입니다. 원자로의 소형화를 통해서 수요 지역 접근성을 높이고, 사고 대응 관점에서 피동안전 설비를 이용해 안전성을 증진하는 것이 중요하죠. 더불어 더 똑똑한 원자로를 개발, 자율 운전 등을 통해 인간의 실수에 의한 사고를 최대한 방지하면서 신뢰성과 경제성을 높일 수 있는 핵에너지 공급 방식을 구현하는 것입니다.

오펜하이머에 대한 견해는 지금까지도 엇갈립니다. 개인적으로 오펜하이머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능력을 국가를 위해 사용한 애국자라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로서의 본업에 충실하여 뛰어난 연구 성과를 냈지만, 연구자가 되는 대신 자신의 과학적 지식과 역량을 총동원해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었죠. 연구자로서는 큰 희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펜하이머는 핵무기를 만들고 윤리적 회의감을 느낍니다. 핵융합탄 개발에 반대하죠. 종국에는 공산주의자, 미국 안보에 위협이 되는 인물로 낙인 찍히며 불운한 말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조국을 사랑했기에 끝까지 미국을 떠나지 않았고 결국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그와 같은 노력이 있었기에 미국이 핵무기에 대한 높은 과학기술적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비윤리적인 사용을 제한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3 이승준 박사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적 호기심을
구체적인 과학 이론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세상은 오펜하이머를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오펜하이머의 후손’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과학자는 누가 있습니까?
오펜하이머는 이론물리학자였습니다. 그 외에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유명 이론물리학자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닐스 보어, 리처드 파인만, 엔리코 페르미, 한스 베테, 유진 위그너, 존 폰 노이만 등이 있죠. 오펜하이머의 학문적인 업적으로는 물리학적으로 중요한 양자 터널링에 대한 최초의 예측, 전자- 반전자에 대한 이론, 중성자별에 대한 이론, 그리고 블랙홀과 양자장론에 대한 중요한 기여 등이 있습니다. 분자의 파동함수 계산으로 유명한 보른-오펜하이머 근사도 주요 업적 중 하나고요. 그의 후손으로서 우리가 잘 아는 이론물리학자를 언급하자면 스티븐 호킹이나 스티븐 와인버그가 있습니다. 한국인 중에는 고 이휘소 박사님을 그 후손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과학자들은 어떠한 과학적 성과를 남겼습니까?
스티븐 호킹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양자역학을 적용해 블랙홀이 호킹 복사를 통해 경계면에서 열 복사선을 방출한다는 것을 예측했습니다. 스티븐 와인버그는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을 개발하여 현재까지 발견된 입자들의 상호작용과 근본적인 법칙을 개술했습니다. 이휘소 박사님은 맵시 쿼크가 발견되기 전에 질량을 이론적으로 계산하여 성공적으로 예측했습니다. 또한 와인버그와 함께 초기우주에 대한 우주론 연구를 통해 뉴트리노의 질량 및 우주 암흑물질의 상호작용에 대한 리-와인버그 한계값을 구하였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처럼 많은 과학자가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현재 가장 큰 공동 프로젝트는 스위스 제네바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대형강입자충돌기(LHC) 실험과 국제핵융합실험로 (ITER)를 들 수 있습니다. 이러한 대규모 프로젝트에서는 원활한 소통을 위한 민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자유로운 소통을 위해 다양한 창구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동 연구에서 이루어내는 성과를 공유할 수 있어야 하죠. 때문에 특정 그룹에 의한 독재가 일어나지 않고 프로젝트의 목적이 프로젝트의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공무원·정치인 중심이 아닌 연구자 중심으로 프로젝트가 진행되어야 합니다.

오펜하이머는 실험물리학보다 이론물리학에 강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분야는 어떻게 구분되며, 어떤 방식으로 상호작용합니까?
오펜하이머 이전 세대에는 실험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의 구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급격하게 물리학이 발전하면서, 시간과 에너지의 제한으로 한 사람이 두 가지를 동시에 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론물리학자는 실험물리학자가 발견했거나 앞으로 발견할 것이라고 예측되는 새로운 물리적인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법칙과 이론을 연구합니다. 반면 실험물리학자는 그러한 예측을 검증하거나, 혹은 그 너머 상상할 수 없는 미지의 새로운 물리현상을 실험적으로 탐구하죠. 아주 간혹 이론물리학자가 실험적인 데이터 없이 새로운 물리현상과 물리법칙을 예측하지만, 그 역시 일정 수준 실험물리학자가 발견한 실험·관측을 토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실험물리학자가 원래 알고 있는 이론(물리법칙)의 범주를 넘어서는 새로운 물리현상을 발견하고, 이론물리학자가 그 현상을 설명하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냅니다. 그럼 또다시 그 이론에서 나온 새로운 예측을 실험물리학자가 검증하는 방식으로 물리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과학자 중 과소평가된 인물이 있다면 누구입니까?
당시 젊은 물리학자 그룹의 리더는 로버트 윌슨(실험물리학)과 한스 베테(이론물리학)였습니다. 두 사람은 실질적인 연구 수행의 핵심 역할을 맡았지만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자폭탄 개발 이후 과학계에 생긴 불문율이 있습니까?
물리학계에 특별한 불문율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원자폭탄 개발에 참여한 많은 물리학자는 훗날 반핵·반전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앞서가는 과학과 기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인간의 정치적인 능력을 우려하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오늘날의 기술력을 동원한다면, 원자폭탄 혹은 수소폭탄의 몇 배나 더 위력적인 폭탄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수소폭탄을 만든 순간, 더 큰 위력을 생각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미 지구 같은 행성 수백 개를 멸망시킬 능력이 생긴 셈이니까요. 우주 정복에 나설 게 아니라면 말이죠. 이론적으로는 별(예를 들면 태양)이 작동하는 원리인 핵융합이 현재까지 알고 있는 가장 강력한 폭탄의 원리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말하면 안 되는 게 불문율일 수도 있겠네요.

현재 전 세계에서 물리학 및 원자핵공학 분야에서 가장 앞선 학교는 어디입니까?
원자핵공학은 이제 물리학 같은 순수과학이 아니라 공학에 속합니다. 물리학에 국한해서 말씀 드리자면 미국의 주요 대학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앞서 나가고 있습니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직접적인 후손이죠. 그 외에는 영국의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독일의 뮌헨공과대, 일본의 도쿄대, 중국의 몇몇 대학들, 스위스의 취리히공대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물리학의 천재이기도 했지만 인문학과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고 합니다. 종전 후 오펜하이머가 논의하고 주장했던 철학적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한 이론물리학자들은 대부분 인문학과 철학에도 조예가 깊었습니다. 오펜하이머를 비롯해 아인슈타인, 닐스 보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에르빈 슈뢰딩거, 막스 보른 등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과학자들이 그랬죠. 오펜하이머의 철학적 면모가 잘 알려진 것은 원자폭탄 투하 이후 평화주의, 인도 철학에 대한 심취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오펜하이머가 주장한 과학기술의 공동 소유 및 국제적 통제, 원자폭탄 이후 평화주의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지구온난화, 인류에 대한 인공지능의 위협 등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숙고하게 하죠.

막연한 질문입니다만 훌륭한 과학자의 조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적 호기심을 구체적인 과학 이론으로 이끌어낼 수 있는 끈기와 인내가 필요합니다. 심층적인 이해를 위해서는 끝없이 질문할 수 있어야 하고 동료와 소통할 수 있는 능력도 중요하죠. 오펜하이머와 같이 과학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깊이 통찰하고 책임감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교수님에게 오펜하이머는 어떤 인물입니까?
역사에 남을 뛰어난 물리학자입니다. 1950년대 초 매카시즘의 마녀사냥에 억울하게 휩쓸렸지만, 과학자로서 사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은, 역사에 남을 위대한 인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Illustration 최재훈

2023년 09월호

MOST POPULAR

  • 1
    이토록 모던한 전자담배
  • 2
    음악인이 추천한 홀리데이 뮤직
  • 3
    조금은 색다른 홀리데이 영화
  • 4
    우린 아직 현리를 모른다
  • 5
    세븐틴 조슈아를 캐럿들의 '카운슬러'로 임명합니다

RELATED STORIES

  • LIFE

    조금은 색다른 홀리데이 영화

    매해 연말연시가 되면 도시는 화려한 불빛을 휘감고, 길거리는 가족과 연인들로 붐빈다. 사람들이 찾는 영화도 홀리데이 분위기에 걸맞은 따뜻하고 감동적인 작품들이 대부분. 이럴 때일수록 조금은 남다른 영화를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10편의 작품을 준비했다. 장르도 나라도 시기도 제각각이니 하나쯤은 취향에 맞는 영화가 있을 것이고, 이미 본 작품도 이 시기에 감상하면 특별하게 느껴질 것이다

  • LIFE

    F&B 브랜드의 크리스마스 시즌 메뉴 4

    지금을 놓치면 내년이다.

  • LIFE

    건조한 겨울로부터 당신의 헤어를 케어해 줄 방법

    건조하고 찬바람이 부는 겨울철에도 건강하고 윤기 나는 헤어와 두피를 유지하기 위한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과 제품을 소개한다.

  • LIFE

    인생 최고의 홀리데이

    누구에게나 잊지 못할 홀리데이가 있다.

  • LIFE

    Radiant Innovation

    글로벌 출시 10주년을 맞이한 아이코스가 스티브 아오키와 만났다. 페스티벌의 에너지를 입은 아이코스 X 스티브 아오키 10주년 한정판 시리즈.

MORE FROM ARENA

  • FASHION

    Bloom

    만개를 앞둔 새파란 청춘.

  • LIFE

    이 달의 책들

    ‘누가 이런 책 좀 골라줬으면 좋겠다’ 싶은 책들을 찾아 왔다.

  • LIFE

    커피 말고 우유

    한 집 건너 한 집이 커피숍인 서울에서, 커피 말고 우유와 요구르트를 파는 가게를 찾았다. 매일 먹는 커피가 이제 질릴 때도 됐으니까.

  • LIFE

    여전히 용산으로

    여전히 용산구를 찾게 되는 이유는, 다채로움을 품은 4곳이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 LIFE

    명절 후, 느끼한 속을 달랠 매운 음식 맛집 4

    미치도록 맵지만 자꾸 생각나는 마성의 음식을 소개한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