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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의 남자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열두 번째 장편영화 <오펜하이머>가 마침내 국내 개봉한다. 감독은 관객에게 경고한다. “이 영화는 호러 영화이며, 당신을 감정적으로 파괴할 수 있다.” 동시에 그는 자신이 만든 어떤 작품보다도 인물 간의 사랑이 강한 영화라고 말한다. 배우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오펜하이머>의 세 배우 킬리언 머피,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맷 데이먼은 저마다 경험한 크리스토퍼 놀란과 ‘맨해튼 프로젝트’ 3인방에 대해 입을 열었다. 크리스토퍼 놀란은 누구인가? 오펜하이머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맨해튼 프로젝트’는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나? <아레나>가 한국 단독으로 전하는 세 배우의 <오펜하이머> 제작기.

UpdatedOn July 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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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킬리언 머피, ‘J. 로버트 오펜하이머’ 역

<오펜하이머>는 화려한 출연진으로 일찍부터 큰 기대를 모았습니다. 개인적인 감회도 남달랐을 것 같아요.
한 작품에서 대단한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 놀란 감독이 현대적이면서도 가장 위대한 배우들을 한자리에 모았어요. 모두가 크리스토퍼 놀란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 한다는 뜻이죠. 배우들이 출연을 결심한 건 그의 각본과 영화, 뛰어난 연출 때문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맷 데이먼, 케네스 브래너, 에밀리 블런트, 게리 올드만과 연기하고 있더군요. 짜릿했습니다. ‘아무래도 연기력을 좀 더 끌어올려야겠군’ 생각했어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에게 전화로 캐스팅 제안을 받았다고 들었습니다.
놀란 감독과 만난 지도 벌써 20년이 지났어요. 당시 저는 <메멘토> <인썸니아>로 이미 그의 팬이 되었습니다. 저 스스로 연기할 수 없다고 여긴 ‘배트맨’ 역을 두고 그를 처음 만났죠. 그 만남은 저를 ‘스케어크로우’ 역으로 이끌었고요. <다크 나이트> 트릴로지 이후 저는 크리스토퍼 놀란의 요구라면 배역의 크기에 상관없이 어떤 역할이라도 출연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가 전화를 걸어 오펜하이머 역을 맡아달라고 할 줄은 몰랐죠. 그 전화를 끊고서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나는 정말 운이 좋구나’ 생각했던 게 기억나네요.

놀란 감독의 작품에 주연을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죠. 완성본을 봤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놀란 감독의 촬영장에는 영상 재생기나 모니터가 없어요. 필름 카메라로 찍기 때문입니다. 모니터링을 못 해요. 제가 본 첫 번째 <오펜하이머> 영상은 예고편이었습니다. 완성본을 처음 보고 완전히 압도됐습니다. 영화를 촬영하는 것과 관람하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거리감이 있죠. 사실 저는 영화 속 제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많은 배우들이 그렇듯이요. 그럼에도 강렬했습니다. 절대 놓쳐선 안 될 영화적 몰입감을 선사하거든요. 감독님은 “3D 안경 없이 즐기는 3D 영화”라고 하더군요. IMAX 영화관에서는 더욱 그럴 거라면서요. 그 말이 딱 맞아요. 다음에는 관객과 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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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펜하이머의 도덕적 여정을 그려내는 것은
마치 빗방울 사이로 춤을 추는 것 같았어요.”

 

놀란 감독의 모든 영화가 그렇듯 <오펜하이머>도 꼭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영화군요.
개인적으로 영화는 어두운 방에서 낯선 사람들과 함께 볼 때 가장 재미있어요. 방해되는 게 없잖아요. 초인종이 울릴 일도 차를 끓일 일도 없으니 집중할 수 있어요. 그러려고 티켓을 사는 거죠. 영화관에는 어딘가 로맨틱한 면이 있습니다. 앞으로도 영화관은 늘 그런 공간일 겁니다.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지금도 엇갈립니다. 그가 지닌 지성과 도덕적 고뇌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오펜하이머는 단순한 인물이 아닙니다. 그 복잡성을 좇아야 했어요. 극 중 등장하는 모든 인물이 그래요. 그들은 평범한 인간과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움직였어요. 그 때문에 개인적 삶과 도덕적 삶에 도전이 따랐고요. 오펜하이머가 ‘맨해튼 프로젝트’ 당시 도덕적으로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핵 정책과 관련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 그의 입장이 변화하고 진화함에 따라 다른 이들과 어떤 갈등을 빚게 됐는지. 오펜하이머의 도덕적 여정을 그려내는 것은 마치 빗방울 사이로 춤을 추는 것 같았어요. 가장 까다로운 부분 중 하나였습니다.

이번 역할을 준비하는 동안 오펜하이머 평전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를 읽으셨다고 들었어요. 관련 강의도 찾아보고요.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성대모사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연기해야 할 오펜하이머는 역사적 자료에도 있고 크리스토퍼 놀란의 대본에도 있었어요. 그 사이를 오가며 표현과 해석을 완성하고자 했습니다. 아주 긴 과정이었어요.

물리학자 킵 손의 자문도 받으셨죠. 난해한 과학 이론과 철학을 이해해야 한다는 부담은 없었나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펜하이머처럼 인간 존재, 세계의 구조, 우주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해 생각할 수 없습니다. 양자역학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고요. 제가 6개월 만에 오펜하이머와 양자역학의 모든 걸 이해하려는 것 자체가 무리였을 수 있죠. 막연하게나마 그 개념을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성에 대해 탐구했고요.

<오펜하이머>가 특별한 영화라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펜하이머>의 특별한 점은 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으로 사는 것의 의미, 인간으로서 져야 할 책임, 인간이 가진 힘을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영화예요. 여기서 ‘인간이 가진 힘’이란 놀랍고도 파괴적인 무기죠. 우리는 삶에서 벗어나는 동시에 삶을 배우기 위해 영화를 봐요. <오펜하이머>는 정말 재미있는 영화지만 진실에 관한 영화기도 합니다.

놀란 감독과의 인연은 <배트맨 비긴즈>로 시작됐죠. <다크나이트> <인셉션> <덩케르크>에서도 호흡을 맞췄고요. 수년간 곁에서 지켜본 놀란 감독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까?
크리스토퍼 놀란은 이상적인 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해요. 직접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고 제작까지 맡아요. 영상과 연기 연출이 탁월합니다. 이 재능을 모두 겸비한 감독은 매우 드뭅니다. 그가 변화한 점은 분명 있어요. 일단 본인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더 자신감이 생긴 것 같아요. 영화 만드는 일 역시 그렇고요.
저는 놀란 감독이 진심으로 관객을 믿는다는 점을 좋아합니다. 그는 관객이 영화를 이해할 만큼 충분히 똑똑하다고 믿어요. 결코 무시하지 않습니다. 가르치려 들거나 교훈적이지도 않고요. 놀란은 관객들에게 과제를 건넵니다. 그 과제를 풀고 나면 엄청난 걸 얻게 되죠. 저 역시 배우로서 배운 점이 많아요. 감독님과 함께하면서 연기자로서의 제 인생이 바뀌었죠.

<오펜하이머>는 핵폭탄을 개발한 물리학자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놀란 감독은 이 영화가 보편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고 했습니다. 어떤 뜻이었을까요?
<오펜하이머>는 누구나 공유할 수 있는 주제를 담고 있어요. 스릴러, 러브 스토리, 약간의 공포적인 요소가 있죠. 그 요소가 울림을 만들고요. 배경이 된 1945년의 사건을 잘 모르는 분들이 보더라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숨 막히는 긴장감이 펼쳐져요.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핵무기의 위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위협은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세상을 바꿨기에 벌어진 일이에요. 세상을 영원히 바꿔버렸죠.

크리스토퍼 놀란은 <오펜하이머>를 통해 무엇을 이루고자 했을까요?
<오펜하이머>는 거대한 이야기를 다루지만 매우 인간적인 방식으로 전달합니다. 사람들에게 ‘이 일에서 배워야 할 것은 이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아요. 분명한 사실은 이 영화가 지금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새롭게 인지하고 성찰할 수 있게 한다는 점입니다. 영화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생각을 자극하고 사고하는 방법을 돕는 거예요. 놀란은 늘 흥미롭고 도발적인 방식으로 그 일을 해낸다고 생각합니다.

 

“놀란은 관객들에게 과제를 건넵니다.
그 과제를 풀고 나면 엄청난 걸 얻게 되죠.”

 


2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루이스 스트로스’ 역

관객으로서 바라본 <오펜하이머>는 어떤 영화였나요?
사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부터 느꼈습니다. “이대로만 만들어진다면 대박이다.” 그렇게 완성된 영화를 봤는데 시작한 지 30초 만에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역시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오펜하이머>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재미있는 영화예요. 알프레드 히치콕과 스탠리 큐브릭의 요소가 모두 담겨 있죠. 여러분의 심리와 감정, 그 모든 것에 파동을 일으킬 겁니다.

이번 작품에서 삭발도 감행하셨죠.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헤어라인을 뒤로 밀었을 때 재미있는 건, 그 모습이 아버지를 떠올리게 했다는 점입니다. 아내에게 훗날의 제 모습을 미리 보여줄 수 있었죠. 무엇보다 캐릭터와 확실히 어울렸어요. 한동안 야구 모자를 자주 쓰고 다니긴 했지만요.

<오펜하이머>는 영화 역사상 최초로 흑백 IMAX 카메라로 촬영해 더욱 화제입니다. CG 없이 구현한 핵폭발 실험 장면도 기대를 모으고요.
IMAX는 그저 놀라워요. 이런 IMAX 영화는 처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놀란 감독이 IMAX의 새 경지를 열었고 우린 새로운 경험을 누리게 될 겁니다. 실제로 영화관에서 ‘트리니티 실험’ 장소를 보거나 초근접으로 촬영한 ‘오펜하이머’ 킬리언 머피를 보고 있으면 마치 역사의 한복판에 들어간 느낌이에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는 첫 작업이죠. 모든 배우가 꿈꾸는 역할이었을 텐데 그 과정은 어땠나요?
<오펜하이머>는 엄청난 규모의 작품입니다. 동시에 매우 미시적으로 접근한 영화라는 인상도 받았어요. 배우들의 책임감도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했죠. 놀란 감독은 주로 자존심 부리지 않는 배우를 캐스팅합니다. 단, 맡은 배역을 해낼 수 있는 자기존중감을 지닌 배우를 캐스팅하죠. 마치 연극하던 시절로 되돌아간 기분이었어요. 배우로서의 직감, 희망, 꿈을 처음 품었던 시절을 되새길 수 있었어요.

극 중 오펜하이머와 아인슈타인이 만나는 장면도 중요하게 언급되고 있습니다.
킬리언 머피와 톰 콘티가 만나는 순간은 ‘영화의 심장’이라고 할 만큼 중요한 장면이에요. 놀란 감독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죠. ‘드디어 이 장면을 찍는구나’ 싶었습니다. 그의 비전이 담긴 장면이거든요. <인셉션>의 마지막, 팽이가 계속 돌던 순간 같은 장면이에요. 다만 이번 장면은 역사적 실화고 지구에서 살아가는 우리 인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저 역시 정말 중요한 장면임을 체감했고 그 순간을 기억에 남기려 노력했습니다. ‘어린 시절 꿈꿨던 멋진 영화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그 영화에 몸담고 있구나’ 깨달았어요.

루이스 스트로스는 미국 원자력위원회 의장이자 수소폭탄 개발을 추진한 사람 중 핵심 인사입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 바라본 루이스 스트로스는 어떤 인물인가요?
가장 먼저 그의 사진을 관찰했습니다. 그 안에서 캐릭터를 찾으려고 노력했어요. 교감하는 느낌, 그러니까 찰리 채플린을 연기할 때 같은 느낌을 받았죠. 참고할 자료가 엄청났습니다. 참고 자료가 많을수록 연기할 때 따라야 할 것도 많아져요. 하지만 ‘루이스 스트로스’는 제 나름대로 해석할 여지가 많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이 남자를 사랑하고 공감하게 됐죠. 그는 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 때문에 무력함을 경험했습니다. 그가 대표하는 건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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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스와 오펜하이머의 관계는 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나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태평양 상황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미군의 어뢰는 제대로 된 거리나 수심에서 폭발하지 못했어요. 스트로스는 근접 도화선이 도움이 될 것을 알았습니다. 모든 관료적인 수단을 동원했고 전쟁을 단축하는 데 기여했어요. 하지만 루이스 스트로스가 전쟁을 단축하는 데 기여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나요? 아닙니다. 이후 스트로스는 러시아가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오펜하이머가 반대한 수소폭탄 실험을 옹호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근접 도화선의 혁신이 생명을 구한 것처럼 수소폭탄 실험이 생명을 구하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의 동기는 ‘내가 이겨야 한다’ 또는 ‘네가 져야 한다’같이 단순하지 않아요. 그렇기에 ‘하지만 그의 말도 맞잖아’라고 할 수 있는 동기도 항상 존재합니다.

세계적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춘 것 역시 특별하게 느껴졌을 듯합니다.
며칠 전에 조시 하트넷과 문자를 주고받았어요. 조시는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연기를 했는지 모르는 것 같아요. 맷 데이먼, 에밀리 블런트, 플로렌스 퓨, 스콧 그라임스가 출연했고요. 라미 말렉의 연기는 정말 믿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제가 있었죠. 친한 동료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했어요. 우리는 매일 더 나은 연기를 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배우들 사이에는 마치 연극 연습할 때의 분위기가 있었어요. ‘우리는 배우고, 연기가 우리의 직업이다’ 하는 분위기.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를 ‘아이언맨’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MCU의 블록버스터 영화를 촬영할 때와는 또 다른 감정으로 임했을 것 같아요. 환경도 달랐을 테고요.
팬데믹이 발생하기 전까지 일 때문에 너무 바빴어요. 1년 정도는 가족과 다른 관심사에 집중하면서 숨을 고르기로 했죠.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크리스토퍼 놀란 작품이었고 그에게 매우 중요한 작업이었습니다. 출연진 역시 대규모였죠. 때마침 전 세계에서 이 영화를 중요한 은유로 받아들일 일들이 줄줄이 발생했어요. 출연하기로 한 건 저로서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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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들 사이에는 마치 연극 연습할 때의 분위기가 있었어요.
‘우리는 배우고, 연기가 우리의 직업이다’ 하는 분위기.
최고의 경험이었습니다.”

 


3 맷 데이먼, ‘레슬리 그로브스’ 장군 역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역사의 한 단락을 다뤘다는 점에서 맷 데이먼 개인에게 의미하는 바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저는 ‘맨해튼 프로젝트’의 결과물과 함께 자랐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과거로 돌아가서 이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들 앞에 놓인 끔찍한 결정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그 이면에는 정치, 야망, 도덕성 같은 인간적인 문제도 얽혀 있었죠.

그런 고민 끝에 어떤 결과에 도달했나요?
누구도 해본 적 없는 일을 해낼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펜하이머>의 과학자들이 그렇죠. 그들의 생각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어요. 그들에게는 인간 본연의 호기심과 매혹, 첨단을 향해 나아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에게선 이상주의 혹은 순진함도 발견할 수 있었고요.
오펜하이머는 진심으로 ‘맨해튼 프로젝트’의 성공이 모든 전쟁의 종식을 의미한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만든 ‘다모클레스의 칼’ 아래서 평생을 살아왔어요.
그럼에도 오펜하이머라는 사람에 대해 충분히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펜하이머>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며 중요한 이야기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레슬리 그로브스’ 캐릭터를 구체화하기 위해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로브스는 자존심이 매우 강한 사람입니다. 누구에게도 호감을 얻지 못하죠. 하지만 오펜하이머는 그를 좋아했고 둘 사이에는 어느 정도 이해와 교감이 있었습니다. 그로브스는 오펜하이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의심하지 않았어요. 별다른 반성도 없었죠. ‘내가 하겠다고 했으니 해냈다’라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그런 확신과 집중력을 지닌 사람이 다른 차원의 천재에게 둘러싸인 상황을 연기하는 것은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마찰과 긴장은 물론이고 분열과 융합도 많이 일어나요. 촬영장 상황과도 비슷하죠. 덕분에 배우들도 캐릭터가 겪는 일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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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란은 팬뿐 아니라 배우에게도 특별한 감독일 듯합니다.
놀란 감독은 디테일의 장인이죠. 스탠리 큐브릭 감독처럼요. 어떤 디테일도 사소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미 아는 것도 많지만 조사도 엄청나게 합니다. 수많은 인물관계를 전부 인지하고 있어요. <오펜하이머>의 토대가 된 원작 책이 정말 두껍거든요. 심지어 글자도 빽빽해요. 저는 그 책을 볼 때 독서용 안경이 필요했습니다. 놀란 감독은 완벽하게 조사한 자료를 영화 한 편에 모두 채워 넣었어요. 열 번을 보더라도 매번 새로운 걸 발견하게 되는 영화입니다. 놀란 감독은 디테일에 관해서는 집요하지만 연기에서만큼은 배우를 자유롭게 둡니다. 배우들의 아이디어를 환영하는 연출가예요.

말씀하신 대로 놀란 감독은 아주 치밀하면서도 사실에 기반한 연출 스타일로 유명합니다. 그간 많은 연출가를 경험해보셨을 텐데 놀란 감독은 어땠나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감독용 모니터’가 나오기 이전 시대의 감독 같아요.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께서 30년 전 제게 해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이 이런 가르침을 줬대요. ‘촬영장에서는 카메라 옆에 앉아라. 그리고 맨눈으로 장면을 보고 인간의 행동을 이해해라.’ 카메라 감독은 촬영장에서 유일하게 카메라 렌즈로 상황을 바라보는 사람이죠. 그에게 자신이 본 것과 그가 본 것이 같은지 확인하라고 했대요.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면 그것으로 된 거라고요. 모니터가 생기기 전까지는 그렇게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모니터링을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 배우도 관객과 같은 심정으로 <오펜하이머>를 봤겠군요. 감상 후기가 궁금합니다.
훌륭하고 압도적입니다. 이 작품의 각본을 처음 읽었을 때처럼요. 영화로 보니까 더 강렬했죠. 온몸을 휘감는 느낌이었어요. 제게는 생소한 스타일이었지만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영화인 덕분에 몰입도가 정말 높아요. 굉장히 주관적인 경험을 선사합니다. 압도적인 영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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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주현욱

2023년 0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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