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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미식 #5 미식 영화

미식을 이해하는 데에도, 음식이 먹고 싶어지는 데에도 도움이 될 해외의 미식 영화 8편.

UpdatedOn May 30, 2023

1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

2017, 쥘 디메스트르 감독

내가 일했던 파리의 컨설팅 펌에서는 미팅과 접대를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했다. 연 매출 단위가 달린 중요한 클라이언트를 모셔야 할 때면 모두 알랭 뒤카스의 르 뫼리스를 언급했다. 중요한 자리에서는 늘 알랭 뒤카스의 이름이 최종 후보에 있었다. 매년 업계의 지형도와 유행이 변해도 알랭 뒤카스의 입지는 언제나 굳건했다. 살아 있는 셰프 중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미쉐린의 별을 받은 사람답게.

<알랭 뒤카스: 위대한 여정>은 알랭 뒤카스가 베르사유 궁전에 입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다. 이 영화를 보면 한 자리에 머무르지 않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다큐멘터리 속 알랭 뒤카스는 끝없는 호기심으로 계속 전진하는 거장이다. 그는 모든 도시와 문화권의 풍미와 맛을 접한 뒤 하나뿐인 자신의 맛을 꺼내놓는다. 다큐멘터리는 그 위대함을 복기한다.

2 엘리제궁의 요리사

2015, 크리스티앙 뱅상 감독

15년 동안 대통령 직무를 수행하며 맛본 온갖 진미도 매일 먹기에는 물렸을까. <엘리제궁의 요리사>는 1988년부터 1990년까지 프랑수아 미테랑의 개인 요리사였던 다니엘레 될푀의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영화다. 영화 속 요리사 라보리는 제국의 대통령에게 소박한 프랑스 음식을 건넨다. 신선한 흰살생선을 넣고 뽀얗게 끓여낸 탕이 떠오르는 샤렁트 지방의 수프부터 버터 바른 빵 위에 턱턱 얹어 먹는 블랙 트러플까지.

미테랑은 탁월한 변호사에서 정치인이 되고, 장관을 거쳐 대통령에 올랐다. 그런데도 형형색색 화려하고 기교 넘치는 음식 대신 진솔한 한 끼가 그리운 건 국적과 지위를 불문하는 모양이다. 이 영화를 보면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음식은 영혼의 허기와 공허함까지 채워주는 무엇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프랑스에 살 때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지나는 바캉스 기간마다 할머니가 차려주신 음식을 먹고 또 옷이 안 맞게 될 거라고 말하던 친구들의 설렘 섞인 표정도 떠오른다.

3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2017, 세드릭 클라피시 감독

부르고뉴 뫼르소가 배경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주저없이 영화를 골랐다. 10년 만에 재회한 삼 남매가 최고의 부르고뉴 와인을 만든다는 이야기다. 줄거리가 이런 만큼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잔잔한 부르고뉴 포도밭의 풍경이 영화 전반에 담겨 있다. 세드릭 클라피시 감독 특유의 잔잔한 서사 속에서, 미각이 예민한 데다 어릴 때부터 훈련을 받은 삼 남매가 표현하는 와인에 대한 대사가 주는 여운이 길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설렜다. 배경으로 나오는 음식과 섬세한 부르고뉴 와인이 만나면 얼마나 황홀한 맛의 팔레트를 펼쳐낼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피아니시모처럼 속삭이는 것 같고, 춤사위처럼 아득했던 몇몇 부르고뉴 와인의 기억이 스쳐갔다. 영화를 보다 보면 시간과 기다림, 때를 아는 것, 그때를 놓치지 않는 판단력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교훈도 되짚게 된다. 파리에서 무작정 기차를 타고 본에 갔을 때처럼 휙 어딘가로 떠나고 싶을 때마다 다시 찾게 되는 영화.

4 아메리칸 셰프

2015, 존 패브로 감독

스타 셰프가 SNS에서의 실수로 몰락했다가 푸드 트럭을 통해 재기한다는 내용의 미국 영화다. <아이언맨>을 감독한 존 패브로 작품답게 영화의 서사가 빠른 도중 캐릭터는 모두 생생하게 표현된다. 검증된 메뉴에만 집착하는 레스토랑 오너, 새로운 맛에 도전하는 셰프, 모진 말을 잘도 하는 음식 평론가 모두 어디엔가 있을 것 같다. 트위터의 파급력으로 순식간에 상황이 걷잡을 수 없어지는 모습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기시감이 들기도 한다.

영화는 푸드 트럭이라는 장치를 집어넣으며 로드 무비가 된다. 마이애미와 텍사스라는 지역적 특성을 반영한 푸드 트럭 메뉴를 보면 나도 저 푸드 트럭 앞에 줄을 서서 맛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영화 속 셰프는 자본주의 사회의 필요악인 수익 압박에서 해방되고, 그 과정을 따르는 동안 외식 산업의 민낯을, 한 그릇 음식의 저 너머를 보게 된다. 로드 무비의 형식에 녹아든 아들과 아버지 사이의 교감도 감동적이다.

5 바베트의 만찬

1996, 가브리엘 악셀 감독

영화의 배경은 19세기 덴마크다. 목사의 딸인 필리파와 마티나 자매는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금욕적인 삶을 산다. 그러던 어느 날 바베트라는 여자가 이 마을까지 찾아와 둘의 하인이 되겠다고 한 뒤, 목사의 탄생 1백 주년에 직접 프랑스의 만찬을 차리게 되는 이야기다. 바베트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가장 귀하고 특별한 식재료로 호사스러운 음식을 베푸는 만찬을 준비한다. 생애 단 한 번뿐일 이 만찬이 주는 감각적 황홀함이 대단하다.

음식은 그저 배를 채우고, 삶을 유지하게 해주는 연료에 그치지 않는다. 영혼의 충만함, 기쁨과 황홀함을 주고 맺히고 쌓인 것을 해소시켜주며,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매개체가 되어준다. 영화 속에서 만찬을 준비하는 바베트의 마음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그 속에 모든 경험과 감정이 다 스쳐갔을 거란 짐작을 해본다. 젊고 아름다운 시절의 추억, 다 피워보지 못한 예술적 재능, 쓰라린 첫사랑의 기억.

6 음식남녀

1995, 리안 감독

중식에 특별한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갓 성인이 되었을 때 우연히 만났던 <음식남녀>를 주기적으로 다시 본다. 이만큼 음식 만드는 ‘소리’를 섬세하게 담아낸 영화가 또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커다란 중식 칼이 거침없이 도마를 치는 소리, 생선 비늘이 턱턱 잘려나가는 소리, 기름 속에서 피치카토처럼 재료가 익는 소리, 두부가 슬근슬근 잘려나가는 소리 필름 시절에 만들어진 이 영화 속에 담긴 소리만으로도 대만의 풍성한 음식 문화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대만의 이색적인 매력이 영화에 있다. 1945년 이후 중국 본토 각지의 인구가 한꺼번에 대만으로 이주하며 본토 곳곳의 음식이 유입됐다.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 지배로 다채로움과 세련미가 더해졌다. 그 모두가 영화에 담겼다. 리안 감독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과 서사에 숨겨진 반전은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보아도 전혀 낡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어떤 영화들은 오히려 시간의 세례를 받아 더 깊어지고, 새롭게 해석되기도 한다. 이 영화도 그렇다.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다.

7 알카라스의 여름

2022년, 카를라 시몬 감독

스페인의 젊은 여성 감독 카를라 시몬의 최신작. 위기에 처한 복숭아 농장을 운영하는 가족의 이야기다.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지만 층위가 다양하다. 풍작이라는 이유로 제값에 복숭아를 팔지 못하고, 땅 주인은 수익성을 높이려 복숭아 과수원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려 한다. 부모는 젊은 세대가 고생스러운 농장 일을 하길 바라지 않고, 자식은 공부보다 농사에 재능을 보여 부모의 말을 듣지 않는다.

카를라 시몬은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으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영화에서도 그 재능이 드러난다. 감독이 엄선한 비전문 배우들은 마치 다큐멘터리 속 인물처럼 어디에선가 있을 법한 누군가가 되어 더없이 자연스러운 연기를 한다. 영화의 지리적 배경 카탈루냐는 스페인 안에서도 분리 독립을 외치는 지역이다. 이곳의 자세한 사정을 몰라도 뿌리째 뽑혀 나가는 복숭아 나무들을 보면 왠지 모르게 울컥해질 것이다.

8 남극의 쉐프

2009년, 오키타 슈이치 감독

이름처럼 남극탐험대에서 요리를 하는 니시무라와 주변 사람들을 그린 영화. 다큐멘터리와 독립영화의 느낌이 나는데, 실제로 남극에 다녀온 니시무라 준의 수필을 원작 삼아 만들었기 때문이다. 다른 걸 떠나 이 영화는 재미있다. 남극은 영하 50℃ 아래라 끓는점이 낮고, 요리하는 거 자체가 도전이다. 상상만 할 뿐, 다수의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는 극한의 환경인 남극에서 펼쳐지는 코미디가 한 그릇의 음식처럼 온기를 전해준다.

남극의 셰프 니시무라는 결국 다 해낸다. 회로 먹어야 가장 맛있는 대형 닭새우를 대원의 요청 따라 튀겨 주고, 남극에서 어떻게든 통고기를 굽고, 프랑스 정찬을 선보이고, 얼음을 파내 온더록스 잔을 채워 준다. 이 모습을 보면 삶에 대한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세상 끝 같은 남극에서도 어떻게든 대원에게 음식을 주는 니시무라처럼 살아간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걸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프랑스에 오래 살았다. 음악과 법을 공부하고 클래식 음악과 영화에 대한 원고를 쓴다. 먹는 것도 무척 좋아한다. 이 리스트는 프랑스에 오래 살았던 필자의 경험이 반영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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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Words 김나희 칼럼니스트

2023년 0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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