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FASHION MORE+

에디 슬리먼의 꿈

에디 슬리먼은 하고 싶은 것을 한다. 셀린느의 수장은 돌연 자신의 카메라를 둘러메고 미국 말리부로 향했다. 사진 속 주인공은 밥 딜런이다.

UpdatedOn March 28, 2023

/upload/arena/article/202303/thumb/53323-511377-sample.jpg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자칫 헷갈릴 수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영역이다. 대개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사이 교집합이 클수록, 남들보다 빠르게 성공할 가능성은 커진다. 두 살 때 처음 골프채를 잡고 20대 초반 메이저 우승을 차지한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가 대표적이다. 반면 잘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이 중복되지 않을 때 방황의 시기를 보낼 수도 있다. 돌연 야구 배트를 잡고 마이너리그에 들어갔다 돌아와 NBA 파이널 우승 총합 6회를 달성한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그렇다. 물론 열정과 재능의 벤다이어그램 속 밸런스를 잘 맞춰 두 가지 모두를 근사하게 해내는 사람도 있다.

셀린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에디 슬리먼은 오늘날 럭셔리 패션계에서 성공한 인물 중 하나다. 하지만 에디 슬리먼이 처음부터 패션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던 것 같지는 않다. 한 인터뷰에서 에디 슬리먼은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일 중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사진”이라고 말했다. 1968년 파리에서 태어난 에디 슬리먼은 11세 때 처음 사진을 찍었다. 처음 구입한 카메라는 13번째 생일, 파리의 한 빈티지 숍에서 발견한 니콘 FM. 당시 에디 슬리먼은 자신이 찍었던 사진들의 유일한 주제는 ‘지루함’이라고 고백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 에디 슬리먼은 버려진 집과 부러진 나뭇가지 따위를 뷰파인더에 담았다.

세계 최고의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서도 에디 슬리먼은 여전히 사진을 찍는다. 그간 찍어온 사진을 모아둔 아카이빙 사이트 ‘에디 슬리먼 다이어리’도 운영 중이다. 에디 슬리먼의 오랜 팬이라면 한번쯤 들어가 봤을 것이다. BTS의 뷔는 ‘에디 슬리먼 다이어리’를 오마주해 ‘베디 슬리먼 다이어리’라는 제목으로 자신이 촬영한 흑백사진을 트위터에서 공개하기도 했다.

‘에디 슬리먼 다이어리’에 올라온 사진 옆에는 날짜가 적혀 있다. 그중 가장 오래된 날짜는 2006년 7월 9일. 그 왼편 흑백사진 속에는 소매를 걷은 사람의 팔목이 담겨 있고, 그 위에는 두 줄의 문구가 타투로 자리 잡고 있다.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 / And miles to go before I sleep(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미국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추어 서서’의 마지막 구절이다.

/upload/arena/article/202303/thumb/53323-511376-sample.jpg

사회적으로 성공했을 때 따라오는 부수적인 장점 중 하나는 다른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을 만날 기회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수십 년 전 거리의 지루함을 찍었던 그는 이제 세계적 거장을 카메라에 담는다. 에디 슬리먼의 ‘Portrait Of’ 시리즈 최신작에 등장한 인물은 놀랍게도 밥 딜런이다. 밥 딜런은 누구인가. 가수로서는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밥 딜런에 대해 미합중국 제44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브루스 스프링스틴부터 U2까지 모든 가수가 밥 딜런에게 빚을 지고 있다. 미국 음악사에서 밥 딜런만큼 거대한 거인은 없다.”

2022년 12월, 에디 슬리먼은 밥 딜런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직접 캘리포니아 말리부로 향했다. 평소 밥 딜런은 화보는커녕, 콘서트 무대를 제외하면 카메라 앞에 잘 서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밥 딜런을 에디 슬리먼은 용케도 카메라 앞에 세웠다. 올해로 만 81세가 된 거장은 자신의 몸채만 한 깁슨 할로우바디 일렉기타를 품고 있다. 나무로 지어진 어두운 방, 빛이 들어오는 방향으로 기타의 헤드를 들어 올린 밥 딜런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진다. 다른 사진 속 밥 딜런은 선글라스를 쓴 채 어쿠스틱기타를 연주하고 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2023년 밥 딜런에게 가죽 재킷을 입히고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몇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에디 슬리먼이 촬영한 밥 딜런의 사진은 분명 가치 있다. 2023년의 에디 슬리먼은 17년 전 자신의 사진 속 문구처럼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을 제대로 걸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할까? 자그마한 뷰파인더를 통해 밥 딜런을 바라보면서 에디 슬리먼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원고를 다듬던 중, 유튜브 뮤직에서 ‘밥 딜런 대표곡 메들리’로 검색해 틀어둔 노래에서 이런 가사가 나왔다. ‘친구여, 그 대답은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다네 / 그 답은 불어오는 바람 속에 있다네(The answer, my friend, is blowin’ in the wind / The answer is blowin’ in the wind).’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주현욱
Cooperation 셀린느 코리아

2023년 04월호

MOST POPULAR

  • 1
    손석구 되기
  • 2
    PERFUME BUBBLE
  • 3
    La Vacanza
  • 4
    Running Book
  • 5
    작고 소중한 쁘띠 와인 4

RELATED STORIES

  • FASHION

    My Endless Blue

    무수한 층의 색으로 일렁이는 파랑의 파란.

  • FASHION

    Slow down

    혼란한 빗소리에 뒤엉킨 우중충한 쾌락.

  • FASHION

    브루넬로 쿠치넬리 행사에 참석한 배우 안보현

    이태리 피렌체에서 성대하게 펼쳐진 브랜드의 디너 행사에 한국을 대표로 배우 안보현이 참석했다.

  • FASHION

    OLDIES BUT GOLDIES

    향수 어린 물건을 간직한 세대를 관통하는 골드 주얼리.

  • FASHION

    MISTY BLUE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고요한 블루.

MORE FROM ARENA

  • LIFE

    풀이 있는 곳에 갔다. 그저 ‘풀’이라는 느낌만으로 행복해져서.

  • LIFE

    샬럿&제임스 매독 '자유의 밴'

    낡은 밴을 구해 캠퍼 밴으로 개조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캠퍼 밴을 타고, 세계를 돌아다니며 살아간다. 여행이 아니다. 삶의 방식이며,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깨달음이다. 어디든 갈 수 있고, 어디서나 경이로움을 느끼는 움직이는 집. 밴 라이프를 실천 중인 7팀이 말하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다.

  • LIFE

    지구를 정복한 콘텐츠 - WATCHA

    <오징어 게임>이 지구를 정복했다. 좋은 콘텐츠가 좋은 플랫폼을 만난 결과다. 콘텐츠의 힘 그리고 넷플릭스의 힘이다. OTT는 가장 영향력 있는 콘텐츠 플랫폼이 됐다. 디즈니+,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웨이브, 왓챠 등 경쟁력 있는 OTT들의 미래 전략을 살펴본다.

  • LIFE

    BOTTOM TO THE STAR

    BTS의 빌보드 장기 집권 소식은 이제 놀랍지도 않다. 오히려 당연한 사실로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팝 본고장인 미국 시장에서, 그것도 63년간 탄탄하게 이어져온 빌보드 차트의 시스템을 허문 아시안 케이팝 스타 BTS의 퍼포먼스를 의심하는 축도 존재한다. 인기의 본질을 단순히 팬덤의 든든한 지원만으로 한정하기도 하며, 오히려 미국 시장에서 타 팝스타에 비해 활동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은 간과한다. 하지만 결과보다는 과정에, 바닥부터 별의 자리로 오르기까지 요구된 긴 시간과 노력에 집중한다면, BTS의 성공이 얼마나 정당한 것인지 비로소 알게 될 것이다.

  • LIFE

    재발견 말고 또 발견, 유희열

    JTBC <싱어게인>은 보석 같은 무명 가수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심사위원석 한가운데 자리를 차지한 유희열이 유독 돋보였다. 그는 어떤 안목을 가졌길래, 어떻게 선택하길래 보석들을 캐내는 걸까 하고. 감각적이고 지적인 사람인 건 워낙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싱어게인>을 보면서 진작 재발견된 유희열을 또 발견하게 됐다. 그가 궁금해졌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