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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인의 반지하 생활기

서울에서 반지하가 사라진다. 사라지는 것들을 기억하기 위해 이야기를 남긴다. 반지하에 살았던 또는 살고 있는 사람의 반지하 생활기다.

UpdatedOn October 1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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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삶은 현재 진행 중


Words 배명은(소설가)

우리 가족이 이 집에 이사 온 것은 내가 열 살 때였다. 말 그대로 단칸방을 전전하다 얻은 내 집. 아니, 부모님 집. 반지하지만 어쨌든 부모님께 뿌듯함과 큰 희망을 주는 곳이었다.

방 세 개와 거실, 화장실, 작은 평수였으나 있을 건 다 있었다. 특히 내 방이 있다는 사실이 나는 너무 좋았다. 늘 복닥복닥 넷이서 방 하나에 누워 잠을 청하던 일이 이사와 동시에 없어져 시원섭섭했지만, 내 방의 존재는 그 감정을 금방 잊게 했다.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며칠 후 집들이가 있었다. 태풍 시기와 겹친 날이라 아침부터 비와 바람이 상당했다. 나와 언니는 집집마다 이사 떡을 돌렸다. 현관 앞에 준비한 고사상엔 막 지은 시루떡과 돼지머리가 올라갔다. 친척들과 함께 돼지 입에 파란 지폐를 물리고 그 앞에서 절을 하던 부모님은 풍요와 행운을 빌었다. 비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을 보던 큰이모가 좋은 날에 비가 오면 행복하게 오래 산다고 했다.

그러나 그날은 그렇지 못했다. 몇 시간 뒤, 폭우에 하수도 물이 역류했던 것이다. 화장실에서 물이 솟아나 집 안은 삽시간에 물바다가 되었다. 모두 힘을 합쳐 물을 퍼서 버렸는데 한껏 차려입고 왔을 옷들이 홀딱 젖어버렸다. 큰이모는 이 역시 좋은 징조라며 가족 모두가 흥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몇 년 동안 태풍이 올 때마다 화장실에서 물이 솟아나면 이모의 말씀이 떠올랐다. 과연 정말 그럴까?

역류는 아버지가 빌라 주민과 대대적인 하수도 공사를 하면서 끝이 났다.
여름이면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슬었고, 반지하라 집 안 가득 햇살이 들어차지 않아 쿰쿰한 냄새가 났고, 창문을 열면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안을 들여다봐서 활짝 열 수가 없었다.

창문 하니까 생각나는 일들이 있다. 반지하의 창문은 어린 키에 높지 않았기에 나는 심부름을 갈 때마다 일부러 현관문 대신 창문으로 오갔다. 모험심과 무언가를 정복한다는 느낌에 한창 신이 났었다. 엄마한테 호되게 혼이 나서야 그만뒀는데, 종종 열쇠가 없으면 창문으로 들어올 수는 있었다. 그러나 언니가 그 창문으로 가출을 했고 도둑이 들 염려도 있어 방범창을 설치한 이후로는 창문으로 오가는 일이 사라졌다.

30년을 이곳에서 살면서 새것이었던 건물도 낡아갔다. 현관문 틀은 뒤틀려 제대로 닫히지도 않았고 몇 년 전엔 아귀가 제대로 틀어져 문이 열리지 않아 아주 오랜만에 고정되지 않은 방범창을 뚫고 출근한 일도 있었다.

반지하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끝도 없다. 아버지가 안방에서 잠든 어린 나를 안아 눕히던 내 방, 일요일 저녁마다 가족이 모여 술 한잔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도란도란 얘기하던 거실, 이제는 책이 켜켜이 자리한 언니 방. 온 곳에 30년 치의 추억이 자리한다.

이제 부모님은 귀촌하셨지만, 여전히 나는 이곳에 남아 있다. 아이에서 중년이 되기까지, 오래된 이 반지하 집은 부모님의 희망에서 나의 편안한 안식처로 함께하고 있다. 큰이모의 말씀이 맞았다. 가족 모두가 행복하게 오래 살며 흥할 거란 말, 과연 그렇다.

02 | 고양이 인간의 집


Editor 조진혁

연신내 골목 깊은 곳에 캣맘이 살았다. 나는 캣맘을 좋아했고, 퇴근 후 연신내에 갔다. 골목길에는 주차할 자리가 없어 시장가 대로변에 차를 세워야 했다. 그녀의 집에 가는 건 작은 모험이었는데, 먼저 좌판을 정리하는 상인들의 무신경한 움직임과 유모차를 밀며 시장 통로를 이동하는 노인들을 피해 살금살금 이동해야 했다. 시장을 빠져나가면 시멘트 계단을 내려갔다. 깨진 보도블록으로 이뤄진 골목에는 노란 가로등이 켜져 눈이 축복처럼 내릴 것 같았다. 거기에는 담배 피우는 아이들이 있거나, 소변 보는 취객이 있었다. 냄새로 기억되는 길이다. 양옥과 연립 사이로 솟은 길 끝에 그녀가 살았다. 손잡이도 계단도 없어 눈이 얼기 전에 가야 하는, 차 한 대 겨우 지날 좁고 가파른 언덕을 조심히 올랐다. 불편은 위험으로 이어진다. 집 안 소리가 집 밖으로 새어나오는 이상한 빌라들을 지나면 더 높은 지대 깊은 지하에 캣맘의 자취방이 있었다.

그녀는 고양이를 여럿 키웠다. 서너 마리였던 것 같은데, 헤어질 때는 더 많았던 것도 같고.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고양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라 도망가거나 숨었고, 입구에서부터 고양이 대소변 냄새가 코를 찔렀다. 퀴퀴하고 눅눅하기도 한, 아무리 씻고 닦아도 벗겨지지 않을 땀이 몸을 덮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창을 닫고 살았다. 환기라도 하려고 들면 고양이들이 도망간다며 창을 못 열게 했다. 아니면 고양이가 나가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 열었다. 그런데 고양이는 액체로 만들어져 아무리 좁은 곳도 통과한다. 한 번은 열대야를 못 참고 창문을 열었다가 고양이 한 마리가 탈출해 새벽에 골목을 돌아다닌 적이 있다. 고양이는 달아나지도 못한 채 창문 밖에 웅크리고 있었다. 창문을 열진 못하지만 하늘은 볼 수 있었다. 창문 바로 앞에서 고개를 들면 담벼락과 건물 사이로 푸른 하늘이 보였다. 우리가 볼 수 있는 하늘은 그게 전부였다.

그녀의 자취방은 환기할 수 없다는 점을 제외하면 훌륭했다. 안방과 작은방, 거실과 주방이 구분된 곳으로, 혼자 살기에는 넉넉한 규모였다. 이사 들어갈 때는 집 안을 채울 가구를 산다는 건 꿈만 같았다. 우리가 가진 건 몇 푼의 현금뿐이라 침대도 없는 바닥에서 섹스를 했고, 곰돌이 푸 스티커가 붙은 욕실에서 샤워를 했다. 섹스를 하면서 창밖으로 누가 보는 건 아닌지, 침대보다 커튼을 먼저 사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결국 커튼을 먼저 설치하긴 했다. 그리고 그녀는 고양이를 좋아했다. 집 앞에서 새끼 고양이를 구출했고, 병원에서 주사를 맞히고, 먹이를 주고, 용품을 사면서 고양이를 키웠다. 그녀는 더 많은 고양이를 구출했다. 고양이가 늘수록 집은 복잡해졌다. 작은 방은 옷의 무덤이 되었고. 거실은 고양이들의 화장실로, 주방은 녹슨 식기들이 쌓인 고물상으로, 안방은 수감실로 변했다. 그녀의 집에선 까치발로 걸었다. 바닥에 앉아 식사라도 하려면 쓰레기들을 한쪽으로 미뤄야 했다.

우리가 헤어질 당시 그녀는 아침저녁으로 자동차 밑에 고양이 사료를 놓고 다녔다. 길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였고, 애달프게 우는 새끼 고양이는 집으로 데려왔다. 고양이 사진을 찍고, 그녀의 집에 내가 있을 자리는 없었다. 고양이에 밀려 차였다는 얘기 같은데, 맞다. 그녀는 나보다 길고양이들을 택했다. 그건 그녀가 반쯤 고양이화되었기 때문이다. 속을 알 수 없는 고양이 같은 그녀와는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었다. 그녀가 고양이와 사랑에 빠진 것, 캣맘이 된 이유도 알 수 없고, 알아도 말할 권리는 내게 없다. 다만 서울 후미진 골목 제각기 모습이 다르지만 모두 고양이가 산다는 것. 그리고 반지하에서 이따금씩 고양이를 닮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03 | 무간지옥으로부터의 수기


Words 박수민(시나리오 작가)

반지하, 옥탑, 고시원을 합쳐 ‘지옥고’라는데, 자취 시작부터 짊어진 세간이 많았던 탓에 고시원 대신 무허가 건물과 일명 ‘관(같이 작은)방’으로 채운 나의 주거 역사는 ‘무간지옥’이라 칭하면 그럴듯하다. 불교 8대 지옥 중 최악인 이곳은 간극 없이 계속되는 영원한 고통을 뜻하며, 지하에 위치한다. <기생충>이 개봉한 해, 극장을 나오자마자 킁킁대며 옷깃 냄새를 맡았던 나는 영화 일을 하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물었다. 왜 이런 영화를 우리가 아니라 봉준호가 1백50억이나 들여 찍어야 했을까? 우리가 실제로 처해 있지만 모른 척하는 현실이 칸과 오스카를 석권한 근사한 픽션이 되도록 내버려두다니 말이다. 폭우가 들이치면 정말 물에 잠길지 모를 집에 살면서, 세트장을 만들어 찍은 침수 장면의 사실성에 머릴 한 대 맞은 것 같았을 뿐. 무간지옥의 처지를 잠시 가난한 나의 탓으로만 여겼다. 어디까지나 성공을 위한 과정, 나중에 내 청춘도 이토록 가난했노라 추억하며 인증할 업적으로 생각했으므로. 영화가 묘사한 가난, 그리고 계급의 선을 긋는 냄새를 반지하에 사는 내 삶에 대한 모욕으로 느끼진 않았다.

20대의 자취에서 일시적 상황일 줄 알았던 가난은 30대의 자립으로 향하며 분명한 계급으로 굳어져갔다. 새로 이사할 집을 구하러 다닐 때마다 내 신분은 증명하기 애매한 작가가 아니라 명백한 도시 빈민, 주거 난민이었다. 창전동 관방 ‘벙커’에선 방문을 열면 비와 눈을 맞고 바깥 화장실을 다니며 고향에서도 못 본 쥐돌이와 종종 마주쳤다. 성산동 옥탑 ‘헤드쿼터’의 여름은 끔찍하게 더웠고 루프톱에서 고기 굽기란 바선생들에게도 파티였다. 발전소 담벼락에 붙은 합정 슬럼의 무허가 건물 ‘음양사’는 속 빈 시멘트 블록으로 DIY한 집인 탓에 겨울마다 벽을 뚫고 들어오는 한기를 피해 침대 위로 A형 텐트를 쳐야 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강원도 철책의 혹한기를 우습게 겪었다. 비명을 지르며 뛰쳐나와 도착한 곳이 망원동 반지하. 솔직히 반지하는 내가 서울에서 살아본 주거 환경 중 가장 가성비가 뛰어난 형태였다. 반지하가 선사한 투룸의 공간은 서재 겸 작업실과 부엌과 침실을 분리했다. 거실엔 식탁을 놓고도 공간이 남았다. 겨울에 따뜻한 반지하는 아늑했고 이곳엔 따로 자조적인 이름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떳떳하게 다세대주택 101호에 사는 마포구민이니까.

그러나 이렇게 코지(cozy)한 반지하에서 대책 없이 많은 책만 쌓은 나는 결국 우울증을 얻었다. 왜냐고? 중개인이 말하길 창으로 햇볕이 잘 들어오고 지층치고는 습하지 않다 하더라도, 반지하에서 당신은 스스로 커튼을 치고 모든 문을 닫고 친밀한 어둠 속에서 안전하게 고립된 채 인터넷으로만 바깥세상을 내다보며 침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소리치며 문을 두드리는 옆집 독거노인으로부터 자신을 정부가 감시하고 있는데, 그 임무 수행자가 바로 당신이라는 통보를 듣는 것이다.

 

올여름 서울에 들이닥친 폭우에 안타까운 죽음이 있었고, 높으신 분들이 몸소 쭈그려 앉아 한번 내려다보더니 반지하를 없애겠다고 한다. 이때 비로소 이곳에 사는 것에 대한 모욕감을 느꼈다. 반지하의 존재가 문제가 아니다. 돌이킬 시기를 놓쳐 더워진 이 지구의 미래에 고층 외에는 결국 다 물에 잠길 텐데, 다음엔 1층을 없앨 건가? 일본은 부동산 중개인이 집과 관련한 이력부터 제공하는 게 법적 의무다. 침수 피해 방지는 임대인이 임차인을 받기 위해선 당연히 먼저 해야 할 일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여기 사는 사람의 잘못이다. 여기 살도록 하면서 아무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아무 대책도 없이 생존의 문제를 전가하는 것이 진짜 문제임을 알아도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왜냐면 당신도 언젠가 성공해서 건물주가 되고야 말 것이고, 당신이 힘들게 고생해서 산 집과 땅의 가격은 결코 떨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물론 앞으로도, 직접 빗물막이 덮개를 열어 맨손으로 하수도 배수관의 오물을 걷어내거나 쇠창살을 뜯어 물속에 갇힌 사람을 구해내는 일은 정책과 공무가 아니라 지나가던 이웃의 선행에 달렸다. 즉, 문명화된 도시에 살고 있음에도 비가 많이 내린 날마다 익사하지 않은 건 순전히 행운이란 소리다. 나는 ‘각자도생’이란 야만에 지쳤다.


그래서 드디어, 나는 정든 반지하를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행운과는 더욱 더 멀어지고 있어 이제 나는 불운의 가능성을 최대한 피해야 한다. 여기서 아무리 오래 버텨도 떠난 연인은 영영 돌아오지 않을 테니, 이제 내 주소를 바꿔도 괜찮을 거다. 지하 골방에서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 같은 글을 써내던 시절은 확실히 지났다. 나는 이 지하에 대한 글은 하나도 남기지 않은 채, 그냥 이런 탄식만 짧은 지면에 내뱉고 무간지옥에서 도망치고 싶다. 지금 반지하에 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온 마음으로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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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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