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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한 터보 엔진 카 디자이너 구민철

그가 디자인에 참여한 `푸조207`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있다. 능력은 과정보다 성과로 인정받는 것이라고 말하는 선 굵은 이 남자, 일하는 품새가 궁금하다.

UpdatedOn February 20, 2006

 

 신차 디자인의 기밀 문제로 카 디자이너와의 인터뷰는 하늘에 별따기다. 구민철도 에디터와의 인터뷰를 성사시키느라 회사로부터 수십 번의 컨펌을 받아야 했다. 가뜩이나 바쁜 스케줄 속에서 굳이 그가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 적극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이미 유럽에서 일하고 있는 선배로서, ‘두드리면 열릴 것이다’라는 간단한 진리를 모르고 있는 후배들이 안타까워서다. 그가 말했듯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9할이 자신감이었다. IMF의 혹한 속에서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를 무시할 수 있었던 것, ‘Merci’ 한 단어밖에 모르면서 당당히 프랑스 회사의 문을 두드린 것은 자신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그가 푸조에서 배운 것 중 하나는 자동차에 푹 빠져 사는 방법. 휴일이면 스피드를 즐기기도 하고, 마음에 드는 차를 구입해 신나게 즐기고, 개조한 다음 되파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는 이제 프랑스 사람이 다 됐다. 식당에서 밥이 늦게 나와도 느긋하게 와인 한 잔 하며 기다릴 수 있고, 좁은 골목골목에 숨어 있는 맛있는 스시집도 꿰고 있다. 파리 중심가 샹젤리제에 위치한 푸조 아브뉴 전시장에서 그를 만났다. 피곤해 보여 물었더니, 어젯밤 야근을 했단다.

 

프랑스에도 야근 문화가 있나?

이들은 하루 7시간, 주 5일 근무를 철저히 지킨다. 하지만 할 일이 남았을 때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는 건 당연하다. 야근을 하면 제시간에 일을 못 끝냈다는 인상을 받을까 봐 일부러 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나의 경우 야근이 잦은 것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눈치 안 보고 한다. 어쨌든 능력은 성과로 인정받는 거니까.

어떻게 푸조에 입사하게 됐는지.

대학교 1학년 때 조선일보와 현대자동차가 주최한 자동차 디자인 공모전에 입상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해외 연수 기회와 현대자동차 취업을 보장받았다. 졸업을 앞뒀을 때는 한창 IMF 때문에 취업이 힘든 상황이었지만, 과감히 입사를 거절했다. 그후 유럽의 자동차 회사에 CV를 보냈고, 푸조로부터 인터뷰를 하자는 편지를 받았다. 대학 시절 만든 카 디자인 작품을 보낸 결과였다. 그리고 1주일간의 긴 면접 끝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순수 국내파가 유럽 회사에 입사한 것으로 화제가 됐는데, 어떻게 생각하는지.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도 세계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때 배운 것이 지금 푸조에서 일하는 데 전혀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유학파나 교포만이 외국 회사에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편견이라고 본다. 언어는 노력만 하면 충분히 넘을 수 있는 산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감과,      그 자신감을 가지고 부딪쳐보는 추진력이다. 외국에 일하고 싶은 회사가 있으면서 왜 시도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유럽 회사에서 일할 때 가장 힘든 점은 무엇인가?

언어다.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할 수 있는 불어라곤 ‘Merci’밖에 없었다. 회사의 지원으로 곧바로 불어 개인 교습을 받았지만, 릴레이 프레젠테이션이 주요 업무인 디자인실에서 기본적인 업무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특히 거의 영어를 하지 못하는 프랑스 사람과 교류한다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하다가도 수십 번씩 전자 사전을 뒤져야 했으니까. 물론 아직도 불어를 한국어처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전히 배우고 있는 상황이고, 여전히 프레젠테이션엔 사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처음을 생각하면, 많이 나아진 건 확실하다.

디자인실에 근무하는 디자이너가 10명 정도라고 들었는데 그 인원으로 디자인이 가능한가?

우리나라 자동차 회사에는 솔직히, 쓸데없이 너무 많은 사람이 ‘디자이너’란 이름을 달고 일하고 있다. 또 수직적인 기업 문화가 디자인실에도 있어, 능력이 있어도 경력이 짧으면 큰 프로젝트를 맡기 힘들며 오랫동안 선배 디자이너의 어시스트를 해야 한다. 푸조의 경우 자동차 내외관을 담당하는 디자이너가 10명이 조금 넘는데, 서로 엄청난 경쟁 관계면서 협력 관계기도 하다. 일단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이 디자이너들이 각각 안을 내서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거기서 좋은 반응을 얻는 안이 2~3가지 결정되면 그 안을 낸 사람이 팀장이 되고 팀을 구성한다. 그래서 오늘 들어온 신입이 팀장이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2~3가지 프로젝트의 팀장이 되기도 한다.

현재 새로 팀장을 맡아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는지?

미안하지만 그건 회사 기밀이라 말할 수 없다. 신입 때도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맡아 팀장을 했다. 솔직히 신나는 일인 것과 동시에 굉장한 부담이었다. ‘푸조 207’ 모델의 뒷모습에 내 디자인이 채택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낸 디자인이 채택된 것은 사실이지만, 팀원과 함께 진행하는 과정에서 여러 팀원의 아이디어가 함께 들어갔으므로 딱 내 작품이라고 말하긴 힘든 것 같다. 원래 카 디자인이 한 명의 디자이너로 이뤄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디자인에 대한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는지?

이 세상 모든 것이라고 말하면 너무 포괄적이겠지. 하지만 사실이다. 내 주위의 풍경·사람·장소 등 모든 것에서 영감을 받는다. 또 푸조는 푸조사 제품 이외에도 경쟁사의 여러 차를 수시로 시승할 수 있게 지원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자동차를 타보면서 각 차의 장점과 단점을 배우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홀홀 단신 타국에 있는데, 외롭진 않은가?

그간 너무 바빠 외로울 틈이 없었다. 특히 첫 두 해는 정신없이 보낸 것 같다. 지금은 친한 동료도 있고 친구도 여럿 사귀었다. 주말이면 하키도 하고, 유럽 여러 나라로 여행을 가기도 한다. 하지만 부모님과 여자친구가 보고 싶은 건 사실이다. 가끔 외로운 생각이 들면 얼른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정착하고 싶어진다. 누구나 그렇듯 여자친구도 선뜻 외국에서 살 생각을 하는 게 아직 어려운가 보다.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하면 꼭 승낙을 받아 함께 살고 싶다.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없는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해달라.

아직 한국으로 돌아갈 계획은 없다. 푸조에서도 여전히 배울 점이 남아 있고 유럽에서 다니고 싶은 회사도 아직 많으니까. 일단 유럽에 입성했으니 더 배우고 안목도 넓히고 싶다. 그러다 때가 되면 한국에 돌아가 멋진 국산차를 만드는 날이 오지 않을까.

넥센 타이어 모델을 했는데.

너무 포즈를 잘 취해서 프로 모델인 줄 알았다고 감독님이 말씀하셨다(웃음). 내가 푸조에 입사하면서, 불어도 못하는 순수 국내파라는 이유로 많은 후배에게 희망을 준 것 같다. 과정이 까다로운데도 인터뷰를 하는 것, 광고를 찍는 것이 많은 후배에게 그들이 정석이라고 생각한 길 말고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두드려보면 문은 열리게 돼 있다. 문제는 얼마만큼의 자신감으로 얼마나 세게 두드리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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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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