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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바꾼 전시

때로는 미술이 우리의 시각을 바꾼다. 공공미술관의 한국 작가 전시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을 고백한다. 기대하지 않았지만 분명한 흔적을 남긴 전시들이다. 공공미술관은 늘 열려 있다.

UpdatedOn August 30,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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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김형대

뜻하지 않게 만난 감동의 여운이 유독 길게 남기도 한다. 2016년 봄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새 전시에 맞춰 기자간담회가 열린다는 연락을 받았다. 낯선 작가의 이름과 그의 이름을 딴 전시 제목까지 사뭇 심심하게 느껴졌다. 갈까 말까 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했는데 결정적으로 마음을 동하게 한 것은 딱 하나, 장소가 과천이라는 사실이었다. 오가는 길이 번거롭긴 해도 사무실에서 벗어나 콧바람 쐬고 그맘때 만개한 벚꽃이나 보자 싶어 결국 미술관에 갔다.

셔틀버스에서 내린 즉시 창문 하나 없는 미술관 사무동으로 안내받았다. 사무실에서 원고나 쓸걸 잠깐 후회했던 것 같다. 전시의 주인공인 김형대 화백은 1936년생으로 이미 여든을 넘긴 노장 예술가였다. 작은 체구에 정정한 작가가 느릿해도 당당한 걸음으로 간담회장에 들어서는데 어쩐지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담당 학예사는 김형대 화백이 1961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추상 양식으로 최초 수상한 작가이며, 기성 화단을 ‘벽’으로 상정하고 그에 맞서 ‘창조를 현시할 수 있는 자유’를 부르짖던 당대의 전위적인 예술가 동인이었다고 소개했다. 제도권 예술의 가장 확실하고 안전한 등용문으로 여겨지던 ‘국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했으면서, 동시에 일찌감치 아방가르드를 실천했다는 예술가가 어떤 인물인지 본격적으로 궁금해졌다. 생의 황혼기를 맞아 ‘국립’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여는 소회를 전하는 작가의 얼굴엔 떨림과 자부심, 뿌듯함이 서려 있었고, 지난 세월을 곱씹으며 그는 자신이 “불사조처럼 살아남았다”고 말했다. 송구한 표현이지만, 조금 귀여우시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불사조의 날갯짓이 남긴 진가를 마주하기 전까지 말이다. 1960년대 한국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세련된 색채와 섬세한 기법이 가히 놀랄 만했다. 특히, 김 화백이 고향인 영등포에서 만날 보던 샛강 이미지에서 착안했다는 ‘생성’ 연작은 샛강이 어디인지도 모르는 나조차 굽이치는 물살에 휘감기는 듯 생생했다. 1990년대부터 이어진 ‘후광’ 연작 역시 화면에서 은은하게 스며 나오는 빛의 효과를 표현한 탁월한 작품이었다.

작품이 심미적으로 취향과 부합한 면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이 전시가 특별하게 기억되는 이유는 전시장을 압도한 김형대 화백의 생기 덕분이었다. 연대기순으로 망라한 작품 한 점 한 점을 지칠 줄 모르고 설명하던 그를 보며 관성처럼 쓰던 ‘화업(畵業)’이라는 단어의 주인을 찾았구나 싶었다. 문자 그대로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일을 의미한대도, 앞으로는 그 일에 오래도록 헌신한 작가에게만 아껴 쓰고 싶은 말이 되었다. 그리고 작품이 그러한 태도를 오롯이 드러냄으로써 발산하는 희열이나 뭉클함 등을 감동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날 내가 과천에서 느낀 것은 더도 덜도 아닌 감동이었다. 물론 ‘한국 고유의 미’ ‘전통 목판화’ ‘기하학적이고 유기적인 추상 세계’ 같은 해설이 거들긴 했지만, 아무 배경 지식 없이 봐도 김형대 화백의 작품에는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었다. 도저히 감춰지지 않는 성실의 무게뿐 아니라 열정의 불꽃을 꺼트린 적 없는 순수함에서 비롯된 산뜻함이 포개진 듯했다. 결국 예술은 인간이 하는 일이라는 사실, 한 사람이 집념으로 예술을 추구하여 다다르는 아름다움이 어떤 모습인지 눈앞에서 펼쳐졌다. 이 전시 이후로 예술가들과 만나 대화를 나눠도 ‘영감의 원천’류를 궁금해하기보다는 그 사람이 가진 에너지가 어떠한지, 추구하는 바를 밀고 나가는 힘의 정도를 감지하는 일에 더 신경이 곤두선다. 비록 예술가는 아니어도 나 또한 일에 진력이 나거나 막연한 불안에 시달리는 날이면 가끔 노장의 기세를 떠올리곤 한다.

그때 그 전시의 제목은 <김형대 회고전>이다. 오늘날 2016년 4월의 벚꽃이 어떠했는지 도무지 기억나는 바가 없지만, <김형대 회고전>의 잔상만큼은 놀랍도록 선명하다.
WORDS 이가진(미술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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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지금이야 ‘썸’이라는 단어가 대체하지만, 대학 시절 설레고 마음이 간지러운 기분이 드는 여인을 만날 때면 나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시청역 2번 출구로 나와 덕수궁 돌담을 따라 함께 걸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라도 좋았다. “돌담길 걸으면 헤어지는 거 아녜요?”라고 상대가 말한다면 더할 나위 없었다. ‘우리는 아직 연인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 길을 걸어도 괜찮아요.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산책이죠’라는 대답 대신 씨익 웃고 말았다. 그렇게 전시를 보고, 조곤조곤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술관을 나서면 정동길을 따라 이화여고를 지나 새문안 언덕길을 올랐다. 좁고 가파른 언덕 끝자락에는 적산가옥 안에 화덕을 갖춘 이탤리언 레스토랑 아지오가 있었다. 나무 바닥이 삐걱이는 겨울이면 등유 난로로 찬 공기를 데워주던 곳. 스무 살의 나는 2층 창가에 앉아 우쭐대며 이루지 않은 미래에 대해 떠들었다. 상대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잘 알지도 못하면서.

2013년 여름, 서른이 넘은 나는 매미 소리가 시끄러워 서울시립미술관 안으로 불쑥 들어갔다. 그때 미술관에서는 한국 미술의 세대를 아우르는 주제로 삼색전을 진행했다. 마지막 ‘그린’ 전은 전후 한국 미술에 중요한 업적을 남긴 원로 작가를 초대하는 기획이었는데, 그 첫 번째가 바로 1세대 전위예술가 김구림 화백이었다.

소설가의 꿈을 접고 잡지 기자가 된 지 얼마 안 된 시기. 모든 게 불만족스러워 삐뚤어진 나는 작가의 이름과, 홍상수 영화에서 따온 전시 제목을 보고 젊은 작가의 난해한 작품들로 가득할 거라 지레짐작했다. 커다란 얼음을 싼 빨간 보자기, 망가진 삽과 빗자루, 8mm 필름에 담긴 발가벗은 여인, 작은 마리아상을 손에 든 볼 빨간 부처상 전시를 휙 둘러보고 나서며 외쳤다. “예술 참 쉽게 하네!”

사실은 아니었다. 미대를 중퇴하고 독학한 김구림 화백은 1960년대부터 해프닝, 설치미술, 보디페인팅, 실험영화 등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시대를 너무 앞서간 탓일까. 영화인도 아닌 그가 만든 실험영화 <24분의 일초의 의미>로 인해 ‘김구림이 영화계를 망친다!’는 말은 예사, 심지어 폭행까지 당했다. 그렇게 빛을 보지 못한 이 영화가 세상에 처음 공개된 것이, 바로 그날의 전시였다.

미술관 밖은 무더웠고, 나는 갈증을 느꼈다. 이대로 아지오에 갈까 발걸음을 옮기려다 멈춰 섰다. ‘그냥 다음에 가지 뭐’ 하고 뒤로 미루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영화 시나리오를 쓰게 될 줄을, 서울시립미술관이 과거에는 이혼하기 위해 찾던 서울가정법원이었음을, 좋아했던 이탤리언 레스토랑 아지오는 내가 한국에 없던 2009년에 이미 문을 닫았음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WORDS 최종인(시나리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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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색이 나를 깨우네

2016년의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연애도 했다. 데이트에도 성실했다. 데이트 코스에도 루틴이 있었다. 오늘 영화관을 갔으면 다음에는 미술관에 가는 식. 솔직히 영화관을 선호했는데, 주차가 편해서다. 다른 이유는 없다. 팝콘도 좋아하고, 팝콘 세트의 장난감도 모았지만 하여간 나는 기운이 넘쳤다. 생활도 안정됐고, 농담도 꽤 세련되어졌다. 근데 공허했다.

먹고살 만하면 뱃속에는 고독이 들어찬다. 나는 뭔가 더 대단한 걸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지 못했다. 위대한 작품을 쓸 자신이 있는데 첫 문장도 못 썼다. 생각해도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체력이 너무 불타올라 뇌까지 녹아버린 듯했다. 성장기 이후로 이만큼 건강해본 적이 없으니 데이트에 체력을 아낌없이 썼다. 많이 걷고, 많이 웃었다. 우리는 정원을 걸으며 사진이나 찍을 요량으로 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에 갔다. 전시는 유영국의 <절대와 자유>였다.

미술을 좋아하진 않았다. 난해한 걸 보고 있으면 모르겠다. 내가 왜 이걸 봐야 하는지. 그림 보는 게 무슨 즐거움인지. 그림은 불친절하다. 현대미술이라는 게 대부분 그렇더라.

이해하지 못하는 것과는 거리를 둔다. 그건 기질이다. 모르는 사람과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살았다. 아는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정치관을 드러내도 거리를 뒀다. 남의 정치관을 이해하고 싶지 않으니까. 남을 이해해야 해? 아니 꼭 그럴 필요는 없더라.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면 되는 걸 굳이 마음을 써? 머리를 굴려? 그러니까 이해하지 않는 편이 덜 소모적이다. 미술관의 그림들이 그렇다. 벽에 걸린 채 조명을 받으며 ‘나를 봐’라고 하지만 봐서 뭐하나. 봐도 모르는 걸. 유영국의 그림에는 원과 삼각형이 많다. 삼각형은 산이고 원은 해다. 꼭 그렇진 않지만 깊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음, 여기 물감으로 그린 산과 해가 있군. 다음 작품. 음, 여기에는 초록색 물감으로 그린 산과 하늘이 있군. 그렇게 빨리 전시장을 통과해 정원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런데 붉은색 그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작품명 ‘원(円)’ 이라는 그림이다. 타오르는 노을 같았다. 그런데 노을은 바닥이 어두운데, 이거는 붉다. 불꽃인가? 그럼 동그라미는 뭐지? 태양인가? 태양이 너무 붉은데? 그림을 뚫어져라 봤다. 붉은 부분을 오래 봤다. 그때 뭔가를 느꼈다. 말로 표현할 수는 없다. 내 안에서 뭔가가 울렸다. 심장은 아니고, 벨도 아니고, 뭔지 모를 무언가다. 그림이 내 멱살을 잡고 끌어들였다. 그때 나는 색에 매료됐다. 내 안에서 불길이 솟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미술을 대하는 내 태도는 조금 변했다. 유영국의 <절대와 자유>는 절대적인 경험이었고, 감상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해줬다. 말장난 같지만 달라진 건 사실이다. 그 이후로 미술이 지루하지 않았다. 작품을 진짜 이해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의도는커녕 도슨트 투어도 피한다. 정말 알고 싶지 않다. 정보는 미술을 경험하는 데 방해만 된다. 나는 그저 작품만 본다. 작품이 내게 손짓할 때까지, 나를 잡아당기길 기다리며 응시한다. 작품이 내 기운을 흡수하기를 바라며.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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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2022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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