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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시대의 명암

팬데믹이 몰고 온 뉴노멀 시대, OTT 플랫폼은 신속하게 대세로 자리 잡았다. OTT 콘텐츠는 선정성 및 폭력성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지상파 방송에서 볼 수 없던 주제나 소재, 아이템 등을 자유롭게 실험할 수 있는 장이 되었다. 반면 OTT에게 대중문화 산업의 총아 자리를 내준 영화 산업은 위기에 처했다.

UpdatedOn May 12,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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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상이나 대중문화의 중심에 이미 OTT 웹드라마가 깊숙이 자리 잡았다. OTT 작품의 성공은 한마디로 한국적인 서사와 문화, 정서 등이 전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급부상하는 성과였다. 자본주의의 모순과 빈부격차를 고발한 <오징어 게임>을 필두로 <D.P.>의 병영 부조리,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학교 폭력과 따돌림, <소년심판>의 촉법소년제도 등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이면이나 다양한 문제를 공론화했다. 더욱이 OTT의 다양성은 성소수자와 성적 취향까지 양지로 꺼낼 정도로 확장되었다. 넷플릭스 영화 <모럴센스>는 BDSM 성향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하면서 디엣 관계(‘돔과 섭’으로 불리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다룬다. 토종 OTT의 경우 저예산 BL물 <시맨틱 에러>(왓챠)가 인기를 누리면서 청춘 캠퍼스물을 넘어 새로운 한류 장르로 자리 잡을지 주목되고 있다(토종 OTT의 성장 가능성은 여성 관객을 타깃으로 한 시도에 달려 있다). OTT는 분명 지상파 방송에서 공개할 수 없는 소재나 19금 묘사 등을 통해 한계나 편견을 깨고 있다. 재미와 완성도뿐만 아니라 어떤 시도도 가능해졌다는 점에서 드라마의 지평을 넓혔다.

OTT 붐이 모두에게 청신호는 아니다. 코로나19와 함께 찾아온 OTT 플랫폼의 팽창은 오히려 영화 산업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보자. 1999년 2월 <쉬리>(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출현)와 더불어 한국 영화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이른바 영화 산업으로서의 면모를 갖췄다. 즉 시네마서비스, CJ 엔터테인먼트, 쇼박스 등 배급사들이 20여 년간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물론 이 성공을 견인한 것은 멀티플렉스였다. 1998년 멀티플렉스가 국내에 처음 생기고 나서 15년 만에 관람객 2억 명 시대를 열었다. 멀티플렉스는 영화 관람 환경의 혁신을 의미했다. 하지만 오늘날 OTT는 멀티플렉스가 필요 없는 시대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멀티플렉스는 티켓 가격을 계속 인상해 1만4천~1만5천원에 이르렀다. OTT 월 구독료보다 높아 가격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 특히 영화의 홀드백 시스템이 무너져, 관객 입장에서는 극장 상영작을 (빠르면) 한 달만 기다리면 OTT에서 볼 수 있으니 꼭 극장 관람을 고집할 필요도 없다.

OTT가 영화 관람 문화를 바꾸어놓은 상황에서 다시 2억 명 관객 시대로 회귀하는 것은 쉽지 않다(7년간의 2억 명 관객 시대는 끝났고, 2020년과 2021년은 겨우 6천만 명 정도가 극장을 찾았다). 멀티플렉스의 몰락은 시작에 불과하다. OTT의 한국 드라마와 달리, 한국 영화는 경쟁력이 약하다. 신선하지 않은 데다 이슈를 일으키지도 않고, 더 이상 모험을 하지 않는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해마다 한국 영화 베스트 10을 뽑을 수 없을 정도다. 봉준호 등 영화 작가 몇 명을 제외하고 나면 전반적으로 영화 수준이 낮아진 상태다. <오징어 게임> <파친코> 등 OTT에서 화제가 된 드라마보다 대부분의 한국 영화는 완성도가 높지 않다. 황동혁, 김지운 감독뿐만 아니라 상당수 감독들이 웹드라마로 옮겨 갔다. 감독 입장에서는 할리우드 진출이 OTT를 통해 훨씬 쉬워졌다. 내로라하는 영화감독과 경험 많은 영화 스태프들이 찍은 드라마가 무명 신인 감독이 연출한 영화보다 한 수 위인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관객 역시 흥미를 더하는 중층적인 플롯과 배우들의 세밀한 연기를 한층 더 즐길 수 있는 드라마를 주말에 한 번에 몰아 보는 것이, 극장에 가는 것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경험으로 자리 잡았다.

더욱이 제작비 상승으로 수익률이 떨어지고 영화 제작은 손익분기점의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쓸 만한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많지 않아서 리메이크 의존율이 높아지고 비슷한 이야기로 자기복제를 하는 것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상업영화의 제작비 부담이 너무 크다. 영화 제작의 거품은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 스타 배우들의 과도한 출연료와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으로 인한 영화 스태프의 인건비 상승이 곧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졌다. 5년 전에 60억~70억원에 찍던 영화가 지금은 1백억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제작비가 많이 든 국내 텐트폴 영화들은 극장에서 제작비를 회수하는 것이 어려워 여름 바캉스 시즌이 오기 전까지 개봉을 못하는 실정이다(올여름, 작년에 개봉을 못한 한국 텐트폴 영화들의 과당경쟁이 예상되고 있다).

영화계에는 누구나 알고 있는 공공연한 비밀이 있다. 먼저 CJ ENM 엔터테인먼트 같은 메이저 투자배급사가 영화에 대한 열정을 잃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투자배급사들이 드라마 제작을 겸하고 있지만, 사실 무게중심은 드라마로 기운 지 오래다. 영화 제작사들의 경우, 넷플릭스 포맷에 어울리는 6~8부작 시나리오를 찾는 데 혈안이 되었다. 제작사들 입장에서 OTT 드라마는 영화의 대안 혹은 극장 보릿고개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 입봉을 꿈꾸는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에게도 이미 OTT용 아이템은 생존을 위해 필수가 되었다. 꽤 능력 있는 영화 스태프들은 OTT 드라마로 전부 넘어가서 현장에 인력이 없다는 불만도 쏟아지고 있다. 설상가상이 맞다. 모든 관심사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OTT 플랫폼으로 넘어간 이상, 한국 영화의 전성기를 회복하는 것은 지난하다. 영화 산업의 하락기는 예견된 일이지만 팬데믹으로 인해 너무 일찍 가속화되었다. 추락해도 날개가 있어 한국 영화 산업의 연착륙이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그렇다고 OTT가 극장을 전부 대체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영악한 디즈니는 극장과 OTT(디즈니플러스)를 동시에 활용해 영화와 드라마로 MCU(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탄탄하게 구축하는 방식을 찾아냈다. 누구도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전략이지만 우리에게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특히 웨이브, 티빙, 왓챠 등 토종 OTT는 글로벌 OTT와의 경쟁이 어렵다는 점에서 영화인과 적극적으로 연계를 추구할 필요가 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오징어 게임>이나 <시맨틱 에러>의 극장판(번외편)을 만들지 않을 이유가 없다. 20년간 웰메이드 영화를 만들어온 영화 인력의 창의력과 열정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한다. 영화 인력이 영화와 드라마를 자유롭게 오가는 상황에서, 궁극적으로 극장과 OTT의 공생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 상호보완 관계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당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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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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