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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알고리즘과 사주팔자

영화 <돈룩업>은 알고리즘을 비꼰다. 데이터 기반의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모든 걸 안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나의 비합리적이고 불규칙한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까. 사주라면? 뭉뚱그려 애매모호하게 내 미래를 예견하는 사주는 내 운명을 정확히 예지할 수 있나? AI 알고리즘과 사주팔자, 무엇이 더 믿음직한가.

UpdatedOn March 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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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사주를 봤다. 올해는 어떻게 돈 좀 벌 수 있나요? 전화기 너머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아뿔싸. 올해도 글렀네. 도사님은 동쪽에 좋은 인연이 있다면서, 나중에 사업에 도움이 될 테니 관계를 잘 쌓아야 한다고 에둘러 말했다. 강서구 주민으로서 참으로 반가운(?) 소리다. 사주를 믿는 건 아니지만, 돈 얘기가 나오면 괜히 신경 쓰인다. 사람이라는 게 그렇다. 원하는 말만 듣고 싶어서, 달콤한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일하기가 싫어서 유튜브를 봤다. 국뽕 채널만 잠깐 보려고 했는데, 한 시간여가 지났다. 쓸데없는 거나 보려고 인생의 한 시간을 허비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유튜브를 보면 언제나 뒷맛이 씁쓸하다. 뭔가 건설적인 일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아이디어를 내고 만들고 쓰고 그래야 하는데 불필요한 정보를 보는 데 시간과 체력을 낭비했다. 유튜브를 열면 창을 닫기가 쉽지 않다. 더구나 PC로 접속하면, 스마트폰으로 게임하면서 유튜브 영상을 보니 야무지게 시간을 허비할 수 있다. 차라리 넷플릭스로 최신 영화라도 본다면 기사 쓸 때 도움이라도 되겠지만, 인간이란 잘못된 선택을 반복하는 법이다. 나는 매일 잘못된 선택을 한다. 내 탓은 아니다. 선천적으로 나약한 의지를 갖고 태어난 나에게 유튜브 알고리즘은 너무 유혹적이어서 그렇다. 뭐 전 세계가 한국에 열광하는 놀라운 상황이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보면 괜히 눌러보게 된다. 말 같지도 않은 싸구려 정보에 속는 인간은 나 말고도 많다. 댓글에 국뽕 찬양이 이어진다. 조회수도 수십만이다. 이런 걸 국뽕 포르노라고 해야 할까. 불안함을 자긍심으로 가라앉히기는 좋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내가 어떤 종류의 콘텐츠에 휩쓸리는 나약한 인간인지를 잘 알고 있다. 그게 무척 짜증나는 점인데, 나도 날 잘 모르는데 유튜브 따위가 (프리미엄 아님) 나에 대해 아는 척하는 게 기분 나쁘다. 또다시 국뽕 영상을 클릭하는 나도 굴욕이고. 물론 나는 그런 콘텐츠가 하는 소리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1백 번쯤 보다 보면 속아 넘어갈 것도 같다. 하물며 시사 콘텐츠나 현재 논란인 사이버렉카들의 콘텐츠는 더 빨리 믿을 것 같다. 사람들이 나와서 그게 사실이고 옳은 것마냥 이야기하니까. 문제는 알고리즘이 그와 비슷한 성향의 콘텐츠들만 추천한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은 편향성을 키운다.

유튜브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이트마다 나에 대해 아는 척하며 광고를 추천한다. 유모차를 검색하면 유모차 광고가 뜨는 식이다. 검색하지 않아도 내 나이와 성별에 맞는 광고도 제공된다. 탈모 광고나 발기부전 광고는 해당 분야 어휘를 검색한 적이 없음에도 종종 등장한다. 그건 알고리즘이 아직 나를 잘 모른다는 뜻이다. 단단히 오해하고 있다.

알고리즘의 확증 편향이 논란된 것은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포털 사이트의 뉴스 편집 방식이 AI가 추천해주는 것에서, 개인이 선택한 언론사들 위주로 바뀐 것은 확증 편향이 문제로 거론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보고 싶은 언론사만 선택하니, 뉴스 화면에는 해당 언론사들만 열거됐다. 원하는 언론사의 맞춤형 뉴스를 보는 것은 과거 신문을 구독하던 것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많은 신문을 구독하는 셈이니 덜 편향적이다. 포털 사이트가 구성이 바뀌었다고 한들 그럼에도 여전히 정보의 편향성은 남아 있다. AI 알고리즘은 사용자가 원하는 콘텐츠만 맞춤해 제공한다. 사용자는 자신이 선호하는 콘텐츠 위주로 소비하는 편리함을 누리고, 소셜미디어에서도 자신과 같은 의견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만 읽는다. 편향된 정보만 섭취하면 편향적인 시각을 갖게 될 위험이 있다. 소통 창구가 늘었지만 사회 분열이 가속화된 것은 정보 습득과 공유가 편향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AI 알고리즘의 편리함은 편향성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선택할 자유를 빼앗긴 듯한 기시감이 들었다. AI가 추천하기 전에는 뭘 선택해야 할지 몰랐다. 게시물 페이지를 넘겨가며, 수많은 데이터를 스크롤링했다. 고심했다. 좋은 취향을 가진 사람이 보고 듣는 것을 따라 하기도 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이 좋은 것인지를 알고 싶었다. 더 나아지고 싶었다. AI 알고리즘에게 추천받는 것들은 새롭지 못하다. 다른 종류의 경험이 아니다. 몸에 좋은 것은 입에 쓰다. 내 취향은 아니더라도 보면 얻는 게 있다. 영화도 그렇고, 미술도 그렇다. 새로운 경험을 원할 뿐 익숙한 것들만 보고 싶진 않다. 신선함이 필요하다. AI 알고리즘은 내가 무엇에 신선함을 느낄지를 알까? 이것도 알 것 같다. AI 알고리즘의 주인은 믿을 만한가. 알고리즘을 소유한 자가 사용자에게 특정 정보만 제안할 수도 있다. 혹은 나에게만 좋은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다. 자사의 서비스에 긍정적인 사용자들에게만 더 혜택을 줄 수도 있다.

AI 알고리즘도 불공정할 수 있다. 지난해 카카오T 앱이 ‘콜 몰아주기’ 의혹을 받은 바 있다. 국내의 다른 서비스들에서도 불공정 사례가 의심됐다. 페이스북(메타)이 내부 고발자에 의해 열린 청문회는 전 세계가 주목했다. 알고리즘의 문제점을 알고도 방치해왔다는 것, 화이트 리스트를 운영해온 것 등이 청문회에서 거론됐다. 소셜미디어의 AI 알고리즘에 대한 신뢰는 하락했다. 우리는 AI 알고리즘이 내 취향에 맞는 것을 제안한다는 것만 생각했다. 편향성을 강화하거나, 필요에 의해 알고리즘을 조작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AI 알고리즘과 뗄 수 없는 세계를 산다. AI 알고리즘은 편리하다. 불평등을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편하다. 윤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로 AI 알고리즘을 금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규제가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을 우버 등 몇 개의 사례를 통해 익히 봐왔다. 규제를 막는다고 해서 더 나은 서비스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불평등과 불편함 모두 사용자 몫이다. 다시 사주 얘기로 돌아가면, 최근 사주 어플을 여러 개 설치했다. 잘 맞는다는 입소문을 듣고 설치한 것들이다. AI 알고리즘과 사주 둘 중 뭐가 더 정확할까. 데이터 사이언스를 사주역학과 비교하는 건 비약일 게다.

사주는 과학이 아니라 믿음이다. 사주역학이라는 통계를 믿을 것이냐 말 것이냐의 문제다. 믿으면 인생이 흥미롭고, 나라는 존재가 특별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든다. AI 알고리즘의 편향된 콘텐츠만 편식하며 세상을 편향되게 보는 것과 사주를 믿고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둘이 뭐가 다른가? 사주 어플에 따르면, 올봄에는 좋은 기운이 들어온다고 한다. 기분은 좋다. 그런데 가만, 사주 어플도 AI 알고리즘 아닌가!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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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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