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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용 스타일

대선 후보 토론회 진행자로 늘 1순위로 거명되는 남자. 정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남자. 담백하고 현명한 남자. 정관용의 화법, 외모, 패션, 그가 갖춘 스타일을 탐구해봤다.

UpdatedOn February 2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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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리 킹은 멋있었다. 머리카락을 모두 뒤로 넘기고(올빽!), 셔츠 위에 서스펜더(멜빵!)를 걸친 모습은 그의 전형이었다. ‘얼평’하거나 패션 따위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종종 이런 말들을 한다.

“누구누구는 스타일이 좋아.” 엄청나게 멋진 칭찬이다. 보통은 스타일이 좋은가 나쁜가를 논할 단계가 안 되기 때문이다. 왜냐면, 스타일 있는 사람 자체가 드물거든. 잘 꾸미고 잘 입는다고 스타일이 생기는 게 아니다. 뭐랄까, 그건, 음,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추구하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오랜 시간 그것을 품고 유지해나갈 때 생긴다.

대한민국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중엔 정관용이라는 멋진 스타일가이가 있다. 옷을 잘 입는다거나, 눈에 띄는 상징을 고정적으로 활용한다거나, 뭐 그런 게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스타일’이 옷차림이나 외모에 국한되지 않으니까. 뭐랄까, 그 사람의 도드라진 특징 같은 것일 텐데, 그게 매력적인 사람이 스타일 좋은 거겠지. 대한민국의 뉴스를, 포괄적으로는 시사 프로그램을, 곰곰이 보고 들으면, 진행자 때문에 채널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 말은 성급한 일반화일 테고, 그럼에도 적은 이유는 동의를 구하고 싶어서다. ‘나만 그런 거 아니지?’라는.

‘일단 시각적으로 매력이 없다.’ 굳이 앞의 문장에 따옴표를 친 건, 별로 이상한 문장이 아닌데 이상하게 읽힐 것 같아서다. 시각적으로 매력 있는 건 중요한데, 대체로 그걸 외모 평가라고 생각한다. 진행자가 시각적으로 매력 있는 게 왜 중요하냐고 물으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나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굳이 이유를 적자면, 가르마를 단정하게 하고 헤어 오일을 바른 진행자들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별로 매력적이지 않고 모두 그렇게 동일한 전형을 만들고 있는 게 마음에도 들지 않는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네가 말하는 건 어거지야’라고 하면, ‘알겠어’라고 할 수밖에.

시각적으로 별로인 건 뭐 그렇다 치고, 품위도 없다. 마치 유행 같다. 싸움 구경하려고 진행하거나, 싸우려고 진행한다고 느낄 정도다. 섣부르게 판단하고 강하게 주장한다. 언어의 깊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고, 무엇보다 배려하지 않는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의 수준이 그 나라 방송 문화의 수준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편이다. 여권 성향 방송이니 야권 성향이니 라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후진적이다. 물론 나는 여권 성향이어서, 여권 성향 방송을 보거나 들으면 안심한다. 원하는 말을 해주니까. 하지만 애매한 뒷맛이 남는다. 모든 방송이 개인 방송화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이 글에서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은 정관용이다. 이름은 낯설 수 있지만 사진을 보면 ‘아, 이 사람’ 하고 안다. 그만큼 변별력 있는 사람이란 이야기겠지. 뭐로? 시각적! 헤어스타일만 찾아봐도 고개를 끄덕일걸!

나는 정관용을 좋아한다. 정관용이 진행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좋아할 뿐 아니라, 정관용이라는 사람 자체도 좋아한다. 만나본 적은 없다. 나는 정관용처럼 나이 들고 싶은데, 일단 백발이 어울리며, 살찌지 않았고, 그래서 나이보다 덜 늙어 보이며, 수트가 잘 어울리고, 래리 킹만큼이나 ‘올백’도 어울린다. 내 식으론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시각적으로 매력 있다!

정관용은, 대한민국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자, 다 같이 뒤로 가자’ ‘경박하게 해보자’라고 소리치는 판에서 홀로 품위를 지킨다. 다행스럽게도 진행자의 품위는 그 프로그램의 품위다. 그만큼 진행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관용은 흥분한 여야 패널을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좌우의 입장을 고루 감안하며, 조심스럽게 질문한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여야를 떠나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요?”라고 말할 때, 역시 여야를 떠나 수긍하게 된다. 그것은 논리적 정확함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차피 논리라는 것은 내면의 성 같은 거니까. 보편함과 타당함이란 어떤 것이냐를 오래, 아주 오래 고민한 자만이 지닌 인식이라는 게 있을 거라고 나는 믿는다.

20년 넘게 대한민국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그 시간의 가치와 의미를 숙고한 사람의 언어. 보거나 듣는 사람을 배려하고, 동시에 함께 그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을 배려하며 지내온 자가 체득한 마음. 편애하지 않고 또한 애매한 중립이 되지 않기 위해 쌓은 판단의 기준들. 이 모든 것이 “자,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클로징 멘트에 담긴다. 그 언어에 담긴 마음이 따뜻하고 단단하여, 가끔은 패널들이 그들 자신의 경박한 말투와 논리를 되돌아보게 만들며, 동시에 보거나 듣는 이들을 승리자로 만든다. 나는 이것이, 정관용 스타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지난 제1차 대선 후보 초청 토론회에서 사회자 자리에 앉은 정관용을 보며 생각했다. 그가 아니면 누가 저기 앉을 수 있을까? 한 명 떠오르지만, 한국에 머물고 있지 않고, 안타깝게도 너무 많은 뉴스의 당사자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나는 그가 이 대선 국면에 왜 한국을 떠나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날 그를 보며 새삼 신뢰감을 느꼈는데, 그것은 다분히 총체적인 이미지다. 물론 ‘시각적’인 것 역시 포함된다. 대한민국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중 머리카락이 하얀 사람은 없거나 드물다. 그에겐 본인의 머리카락 색깔이 굳이 검정색이 아니어도 상관없거나, 다른 진행자들과 똑같이 검정색일 필요가 없다. 그 태도는 그의 변별력이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들이 웃기거나 독하거나 주장이 강한 사람들로 바뀐 지 꽤 되었다. 시사 프로그램이 예능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건 올바름의 판단 대상은 아니다. 트렌드일 뿐.

정관용은 이러한 흐름을 좇아가지는 않는다. 나는 그의 존재를 통해, 지금 대한민국에서 정치와 사회의 이슈를 전하고 논하는 사람이 지녀야 할 덕목에 대해 생각한다. 진영을 떠나 냉정하게 판단해볼 때,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 그런데 우리는 싸우는 걸 보고 싶어 한다. 폭로하는 걸 보고 싶어 한다.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지를 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모든 진행자가 예능 진행자가 되었거나 되기를 강요받는다. 그 와중에 여전히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서 품격을 지키는 사람이 드물게 있다. 그의 언어, 그의 표정, 그의 옷차림, 이른바 그의 스타일이 지금 대한민국의 시사 프로그램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묻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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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Editor 정소진
Words 이우성(시인, 크리에이티브 콘텐츠 에이전시 미남컴퍼니 대표)
Illustrator 송철운

2022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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