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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은 다 그래

파르르 떨리는 입술, 울먹이는 목소리, 삐질삐질 흐르는 땀. <SNL 코리아>의 인턴기자 주현영 배우가 연기한 것들이다. 인턴이 느끼는 무지에서 오는 괴로움을 표현했다. 그녀의 연기는 전국 인턴들의 마음을 쿡쿡 찔렀다. 나의 인턴 시절도 주마등처럼 스쳤다.

UpdatedOn November 15, 2021


최근 애정 가는 사람이 생겼다. ‘인턴기자 주현영’이다. 연일 화제인 인물로, 쿠팡플레이 속 정치 풍자 뉴스 코너 ‘위켄드 업데이트’에서 인턴기자 역을 맡고 있다. 그녀의 자기소개는 이렇다. “네, 젊은 패기로 신속 정확한 뉴스를 전달한다. 안녕하세요, 인턴기자 주.현.영입니다.” 이름 주현영 앞에는 반드시 인턴기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줘야 한다. 구호를 외칠 때 특유의 모습이 있다. 동그랗게 치켜뜬 눈, 마이크를 움켜쥔 두 손, 우주로 솟아오를 만큼 경직된 어깨.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득히 멀어질 수 있었던 내 인턴 시절이 다시 스멀스멀 떠올랐다. 그녀의 구호에 사회 초년생 당시 내 야망이 담겨 있었다. ‘젊은 패기와 신속 정확함.’

뉴스 시작 전, 인턴기자 주현영은 데스크에 앉은 안영미 앵커에게 ‘위트’ 있는 질문을 던진다. 문제의 발단이 그 질문이다. 안영미 앵커는 되레 그녀의 질문에 꼬리를 물어가며 반박하고 허점을 꼬집는다. 인턴기자 주현영은 그저 앵커 선배와의 딱딱한 분위기를 물렁하게 만들고자 노력한 것뿐인데 돌아온 건 강도 높은 질문과 부끄러움이다.

각목처럼 굳어버린 그녀는 심지어 ‘신속 정확한 정보 전달’이라는 모토를 잊은 듯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뉴스 주제인 ‘K방역 수칙’이 수시로 바뀌었을 때 야기되는 문제점에 대한 질문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바뀐 K방역 수칙에 대한 정보만 전달한다. 이에 안영미 앵커는 울화통이 터져 인턴기자를 구석으로 몰아붙인다. 결국 인턴기자 주현영은 울먹이며 알맹이 없는 문장만 나열하다 오열 직전인 상태로 “저 못 하겠어요”라며 뛰쳐나가버린다.

시청하면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왔다. 인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젊은 패기로 자신감 넘쳤던 초반부터 허둥대다 결국 나락으로 빠져버리는 모습을 단 3분 안에 담아내다니. PTSD가 온 이유는 내가 그랬기 때문이다. 짙게 공감한 건 나뿐만 아니었다. 코멘트 창에는 ‘저거 나였네’ ‘현실 고증 대박’이라며 한마음 한뜻의 공감 댓글이 달렸다. 인턴들은 왜 그럴까? 질문을 바꾸는 게 맞다. 인턴이라는 자리는 왜 사람을 나약하고 작아지게 만들까?

인턴은 사회 초년생이다. 더 깊게 들어가면 갓 성인이 되었을 때로 돌아간다. 내겐 어떠한 변화도 없는데 세상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듯이 느껴진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근데 성인이라는 타이틀이 괜히 그런 인상을 준다. 그래도 대학 생활 중 아르바이트도 하며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어 사회에 나갈 준비가 갖춰진 듯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건 대단한 착각이다. 겪고 보니 진짜 사회는 이해란 없는 각박한 곳이다. 아무도 ‘우쭈쭈’ 해주지 않는다. 교수에게 선보이는 프레젠테이션과는 차원이 다른 스릴을 겪고, 매일 실패하는 삶을 사는 곳이 사회다. 그 사실을 모른 채 인턴이라는 역할로 조직에 뛰어든다. 시작은 괜찮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니까. 하지만 본격적인 재앙은 업무에 대해 애매하게 알게 되면서부터 시작된다. 얕고 애매한 업무 지식과 함께 자신감이 육체를 지배해 뻔뻔하고 당당해진다.

그럼에도 인턴에겐 두 가지 감정이 공존한다. 앞서 말했듯 세상은 내게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것 같은데 또 아이처럼 굴긴 싫다. 정말 나약한 존재라고 느껴지지만 강해 보이고 싶다. 그 복잡 미묘한 감정을 뻔뻔함과 당당함으로 포장한다. 인턴기자 주현영이 뉴스 도입부에서 맥락 없이 (자기 기준에서 나름 위트 있다고 생각하는) 질문을 던진 것처럼 말이다. 나는 상사로부터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그렇듯 심박수는 급격히 빨라졌고 양 귀는 뜨겁게 달아올랐지만 두 눈 부릅뜨고 어떻게든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발버둥쳤다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사실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는 ‘아무것도 모르겠으니까 더 이상 묻지 마시길’이라는 진심이 자리했다. 하지만 감추려 애썼다. 세상을 깨우친 패기 있는 열정맨처럼 보이고 싶었다. 허점을 들키는 일은 마치 지구에 내 치부가 까발려진 것 같은 치욕스러움을 안겨줬으니까.

시간이 흐른 뒤 깨달은 진짜 이유는 ‘첫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현실 고증 연기를 선보인 인턴기자 주현영이 큰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던 건 젊은 세대가 가진 본질을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는 타인과의 끝없는 경쟁에 쫓겨왔다. 사회가 곧 조직이고, 조직에서 인정받는 게 전부였다. 방법과 수단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해왔다. 동료와의 경쟁에서 승부하지 못하면 대학에 입학할 수 없었고, 취업은 멀어져만 갔으니까. 이런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젊은 세대에게 실패는 징검다리 건너듯 요리조리 피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경쟁 사회의 냉정한 현실을 일찍부터 맛봤다면 오히려 실패에 익숙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인정받기 위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사회라는 큰 세계에서는 더 이상 실패하고 싶지 않은 마음. 그 마음 때문에 선배에게 횡설수설 늘어놓은 것이다.

인턴기자 주현영의 퍼포먼스에 달린 몇 가지 논란이 있다. 그중 하나는 사회 초년생의 어설픔을 희화화했다는 것이다. 과연 이게 논란거리가 될 일인지 모르겠다. 사회 초년생의 어설픈 행동을 가감 없이 보여줘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많은 인턴들의 공감을 끌어냈으니까). 특히 뛰쳐나가는 장면에서 희열과 쾌감을 느꼈다. 회가 거듭될수록 인턴기자 주현영은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치부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게 성장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인턴의 서러움은 인턴만이 알 수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청춘을 내거는 인턴이 알아야 할 것은 대부분의 사람은 인턴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노력은 필수 역량이 될지라도 모르면 모른다고 말할 줄 아는 용기도 필요하다. 자신을 타박하지 않고 자신에게 가혹하게 굴지 않아도 된다. 돌이켜 생각하면 선배는 내게 답을 요구한 게 아니었다. 그저 내가 갖고 있는 생각이 궁금했던 거다. 육중한 부담감을 던지고 치켜 올린 어깨는 좀 풀어버리자. 첫 실패를 두려워 말고 도전하라는 말은 하기 싫다. 인턴이라면 죽어도 이해 못 할 말이니까. 하지만 인턴기자 주현영이 말했듯 ‘젊은 패기’만 있으면 된다. 신속 정확한 정보 전달은 좀 미뤄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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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정소진

2021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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