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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치고 싶던 방

여행 중 마주친 방이라면 어느 곳이든 훔쳐오고 싶을 정도로 좋았겠지만, 유독 마음을 헤집어놓은 방.

UpdatedOn October 09,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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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M•

베트남,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

최고급·초호화 호텔과 리조트는 너무도 많지만 ‘대학교 입학’이라는 경험을 제공하는 곳은 JW 메리어트 푸꾸옥 에메랄드 베이가 유일하지 않을까? 다윈 진화론의 토대를 마련한 프랑스 박물학자 장 바티스트 라마르크(Jean- Baptiste Lamarck)에게 경의를 표하며 스타 건축가 빌 벤슬리가 리조트 전체를 가상의 대학으로 꾸몄다. 1940년까지 라마르크 대학이 있던 자리에 세워진 이 리조트는 체크인 대신 입학을, 체크아웃 대신 졸업을 하는 곳이다. 총지배인은 학과장 역할을 자처하며 투숙객들에게 첫날 시험지를 나눠준다. 스위트와 빌라엔 대학 학과의 이름을 따다 붙였다. 생물학, 동물학, 조류학, 농경학 등 건물마다 전공이 적혀 있어 ‘내가 묵을 학과는 어디일까’ 추측하는 재미가 있다. 어느 학과에 머물 게 될 것인지를 두고 기대하던 차에 새를 무서워 하는 나는 하필 조류학과에 배정되었다. 엘리베이터에는 ‘조류학의 기원’이 적혀 있고 방에는 다양한 새 소품이 있었다. 콘셉트도 이 정도면 진심이다.
WORDS 서동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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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M•

일본,
간코호텔

일본은 지방공항 노선이 구석구석 있어 잠깐 사라져 있기 제격이다. 규슈 남쪽, 가고시마 북쪽엔 기리시마 산이 있다. 이 활화산 산기슭엔 오래된 온천마을이 자리하는데, 짙고 뿌연 유황천이 왕성하게 샘솟아 마을 전체에서 온천 증기가 진하게 뿜어져 나온다. 기리시마 간코호텔은 낡았지만 단정한 호텔이었다. 호텔 로비엔 버블 시대의 정취가 남아 있었고, 방마다 다다미가 깔려 볕에 말린 눅진한 풀내가 났다. 온천에 다녀와 노곤해진 채로 김승옥 소설을 읽다가 악몽과 함께 뒤죽박죽 선잠이 든 다음 날 아침. 쏟아지는 햇빛에 눈을 뜨자 낯선 정경이 펼쳐져 있었다. 창밖을 가득 메운 운해. 거인처럼 시시각각 표정을 달리하며 모였다 흩어졌다 방 전체를 감싸 안는 그것은 원천에서 솟아 나오는 거대한 증기였다. 홀린 듯 그 광경을 보는 동안 머릿속에 맴돌던 이런저런 생각과 감정, 문장들이 운무 속에 어지러이 사라졌다. 모든 것을 잊는 것. 타국의 소도시에 잠시 숨는 이유다. 한 시간 거리도 다른 은하의 별처럼 멀어진 지금, 사무치게 떠나고 싶을 때면 기리시마의 운해를 떠올린다. 그 운무 속에 휘감긴 마을과 작고 낡은 방도.
WORDS 이예지(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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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M•

영국,
린하우스

린하우스는 시바스 브라더스 그룹이 소유한 호텔로, 1백 년 이상 된 건물이다. 에어비앤비만 가던 내게 이곳은 온 마음을 쏟을 수밖에 없는 호텔이었다. 그대로 유지된 계단은 삐그덕거렸고 모든 소품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방으로 입성할 때 필요한 건 꽤 묵직한 황금 열쇠다. 마법의 나라로 들어서듯 황금 열쇠로 연 풍경은 마치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19세기로 순간이동한 듯했다. 높이와 헤드가 아주 높은 철제 침대는 고풍스러움 그 자체였다. 훔치고 싶은 걸 하나만 고르라면 침대다. 기어오르다시피 올라 누우면 단잠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낮은 키의 옷장도 영국 고전 소설에나 나올 법한 디자인이었다. 한쪽 벽면 벽난로에서 장작이 자글자글 타고 있었다. 화장실에선 푸른 숲이 보이는데, 어느 숲인진 알 수 없지만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냈다. 고전미를 흠뻑 즐긴 후 1층 로비로 내려가면 모던한 바가 있다. 그곳에서는 발렌타인과 로얄살루트, 시바스리갈 등 스코틀랜드 유명 위스키의 올드 보틀부터 현재까지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WORDS 이승률(프리랜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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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OM•

영국, 더 올드
브루하우스

그해의 이른 여름휴가는 이미 방문 횟수가 열 손가락을 넘어가던 런던이었다. 전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런던 근교 코츠월즈에 가보기로 한 것. 코츠월즈는 옛 방식 그대로의 집과 건물들이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첫 목적지인 사이렌세스터의 숙소가 바로 ‘더 올드 브루하우스’였다. 시외버스를 타고 떠난 여행 당일 더 올드 브루하우스의 계단을 올라 예약한 방에 들어선 순간, 나는 그 방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작은 플라워 프린트 침구, 창가의 하늘거리는 커튼, 깨끗하게 정돈된 샤워실을 보며 하루만 예약한 것을 후회했다. 해가 지기 전에 옥상에 가보라던 주인 아주머니의 말이 떠올라 올라간 그곳에는 집만큼이나 넓고 푸릇한 영국식 옥상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나는 종종 일상에 지칠 때면 구글 맵에서 이곳을 검색한다. 여전히 그대로인 집의 사진들을 보며 비록 하루였지만 많은 감정을 선사해준 그 방을 떠올린다. 그날의 밤이 흐르는 게 아쉬워 창가에 앉아 최대한 늦게 잠들었던 기억, 그때의 기분도 재생해본다. 동화 같은 마을의 오래된 집에서 홀로 보낸 하룻밤은 한여름 밤의 꿈 같은 존재가 되었다.
WORDS 정윤주(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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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정소진

2021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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