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LIFE MORE+

NOODLE GAME

증오의 쳇바퀴, 곤약면

애정하지만 얄미운 면에 대한 이야기.

UpdatedOn October 06, 2021

/upload/arena/article/202110/thumb/49207-467625-sample.jpg

365일 다이어터에게 먹는 것은 진정 즐겁고 굶는 건 상당히 애통한 일인데, 굶기보다 비참한 먹기가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칼로리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식품, 게다가 ‘면’이라는 점.

곤약면은 다이어터가 눈 뒤집힐 만한 조건은 다 갖췄지만 결정적으로 맛이 없다. 백지 상태의 ‘무맛’이 차라리 낫다. 폐타이어와 폐에어백을 잘 씻어 말려 가방이 아닌 먹을 것으로 재생하면 이런 맛일까. 호기롭게 한 박스나 시켰는데 첫 봉부터 아차 싶다. 일단 곤약면은 따로 조리할 필요가 없다. 봉지를 뜯어 물기를 없애고 원하는 소스를 섞으면 된다. 소스와 면이 입안에서 완벽하게 따로 노는 건 그렇다 쳐도 특유의 물비린내 같은 냄새는 입맛을 뚝 떨어뜨린다. 면을 채반에 넣고 아무리 바락바락 치대도 미끄럽고 비릿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냉면 육수에 겨자와 식초를 부어도, 매콤한 비빔장을 넣어도, 고릿고릿한 굴소스로 무마하려 해도 곤약면의 기세는 꺾이지 않는다.

그러다 SNS에서 곤약 잡내 잡는 법을 발견했다. ‘뜨거운 물에 살짝 데쳐 전자레인지에 2~3분 돌린 뒤 냉수마찰, 기름 없는 팬에 살짝 볶고 음식에 넣을 때 식초를 약간 첨가한다.’ 제까짓 게 사누키 우동보다 조리법이 복잡하지만 속는 셈치고 도전해본다. 짭조름한 야키소바 소스를 붓고 필살기인 가쓰오부시를 더하니 그제야 좀 먹을 만하다. 아니, 처음 몇 입 정도는 먹을 만하더니, 그 뒤로는 영혼 없는 저작운동에 가까워졌다.

그때 번뜩 스친 생각이 ‘고수’다. 비누 향 나는 고수와 곤약은 공통된 냄새 분자를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리하여 한 팩에 200kcal가 넘는 마라탕 소스를 구매했다. 이때부터 일종의 광기 어린 시퀀스가 이어진다. 이미 칼로리는 안중에 없고 숙주, 푸주, 우삼겹을 아낌없이 넣은 마라탕에 곤약면을 투하, 면기에 담고 고수를 듬뿍 올린다. 극심한 공복과 다이어트의 피로감에 손이 떨렸고, 곤약면을 향한 분노의 젓가락질이 이어졌다. 눈은 거의 울고 있었지만, 입만은 죽은 고무같이 질겅대는 면을 게걸스레 탐하고 빨아들이길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처음으로 곤약 요리를 전부 비웠다. 곤약 냄새를 죽이려 입안에 수류탄을 터뜨린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벌거죽죽한 입 주변은 처참하고 입안에는 화약 같은 화자오의 여운이 들러붙었다. 더부룩한 속과 거북한 감각. 먹기였을까 싸움이었을까, 싸움이었다면 무엇을 위한 싸움이었을까.
WORDS 장은지(<모터트렌드> 에디터)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정소진
PHOTOGRAPHY 박원태

2021년 10월호

MOST POPULAR

  • 1
    탐험가를 위한 컬렉션
  • 2
    전설은 계속된다
  • 3
    <아레나> 5월호 커버를 장식한 이준호
  • 4
    코첼라를 접수하다
  • 5
    홍화연, "매 순간 진심을 다하려고 해요. 뭔가 결정을 내릴 때는 충분히 고민하고, 최선을 다해 책임져요."

RELATED STORIES

  • LIFE

    1마일을 4분 만에 들어올 사람 누구?

    올해 6월, 페이스 키피에곤이 여성 최초로 1마일(1.6km)을 4분 안에 완주를 하는 도전에 나선다.

  • LIFE

    Take Eat Slow

    한 끼를 먹더라도 건강하게! 저속노화를 위한 비건 맛집 5

  • LIFE

    코첼라를 접수하다

    퍼스널 컬러가 '코첼라'임을 증명한 6팀의 하이라이트 신.

  • LIFE

    하나의 공간에서 더 많은 경험을!

    일상의 재미를 더하는 동시 공간 5

  • LIFE

    다시 콜드플레이!

    세월이 흘렀어도 콜드플레이는 최정상의 밴드임에 틀림없었다.

MORE FROM ARENA

  • INTERVIEW

    제일기획 CD 이채훈

    콘텐츠를 다루지 않는 분야가 없다. 조금 과장하자면 그렇다. 콘텐츠는 더 이상 매체의 전유물이 아니다. 마케터들은 반 발 빠른 트렌디한 콘텐츠로 대중의 관심을 받는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이목을 끄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걸까. 브랜드, 광고, 공간, 데이터를 다루는 마케터들에게 물었다.

  • FASHION

    뜨거운 행사

    라도 CEO 아드리안 보스하르트와 브랜드 글로벌 앰배서더 지창욱이 함께한 행사가 성황리에 열렸다. 스위스 워치메이커로서의 아이덴티티를 공고히 하는 이벤트였다.

  • CAR

    시승 논객

    미니 일렉트릭에 대한 두 기자의 상반된 의견.

  • AGENDA

    초유의 관심사

    방탕한 형광 그래피티로 뒤덮인 스노보딩 산이 우뚝 솟아나, 발렌시아가 2018 F/W 시즌 첫 남녀 통합 쇼의 배경이 되었다. 그곳에서 아마도 올겨울을 장악하게 될 네 가지 ‘발렌시아가 스타일’을 포착했다.

  • LIFE

    Metaverse Love

    메타버스에서도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사랑, 직접 시도해봤다.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