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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Y B가 꾸는 꿈

그날 제이비의 세계는 무릎까지 자란 풀잎 하나와 먹구름 사이로 잠시 비춘 노을과 적막한 캠핑장의 유령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빛을 쫓는 날벌레들이 창작과 꿈과 미래에 대한 막역한 대화 사이를 날아다녔다. 계절을 지나다 만난 제이비와의 인터뷰.

UpdatedOn August 3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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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모헤어 울 플리츠 셔츠 드레스 버버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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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테크니컬 울 크롭 더플 코트·블랙 코튼 오버사이즈 티셔츠·프린지 디테일의 블랙 벨벳 후드 티셔츠 모두 버버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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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준비한다고요?
앨범은 거의 끝마쳐가는 상태예요. 연초에 앨범을 못 내고, 하반기에만 발표하게 됐어요. 앞으로는 더 일찍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지금 또 다른 앨범 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올해 큰 변화가 있었어요. JYP엔터테인먼트에서 하이어뮤직으로 옮겼죠. 하이어뮤직의 일원이 되기 전 무엇을 기대했나요?
걱정이 앞섰어요. 적응 못 하면 어떡하나 고민도 있었고요. 올해는 회사와 소속 아티스트들에 적응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는데, 다들 편하게 대해줬어요. 회사 사람들과 맞춰갈 게 많을 줄 알았는데, 제가 해온 시스템을 이해하고 계셔서 놀라기도 했고요. 소통에 전혀 문제없다는 점은 기대 이상이었어요. 일이 수월하게 흘러가고 있어요.

새 출발하는 기분일 것 같아요. 못 해본 것들을 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배우고 싶은 바람도 있겠죠. 쓴소리 해줄 우군은 있나요?
제가 우기는 편은 아니에요. 회사에 강력하게 요구한 적도 없고요. 그렇다고 회사에서 만들어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죠. 작업에 제 의견이 기존보다 크게 반영된다는 점이 달라진 부분이에요. 제가 주도해서 작업할 거라면 회사에 소속될 이유가 없죠. 회사에 들어간다는 것은 회사 직원들과 소통하겠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많이 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당연히 피드백도 해야 하고요. 회사와 합을 잘 맞춰가고 있어요. 채찍질이나 조언과 같은 도움은 이전 회사에서 많이 받았어요. 거기서 배운 게 있으니 이제는 조금 더 제 자신을 믿어야죠. 내가 아는 것을 전하고, 모르는 건 배워가고자 해요. 재범이 형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연락하고, 얘기도 많이 나눠요.

아티스트는 ‘곤조’가 중요할까요? 재범 씨만의 음악과 성격을 강조해야 할 필요성도 느끼나요?
사람마다 성향이 다르듯 아티스트들도 성격이 다르죠. ‘곤조’ 있는 아티스트를 디스하고 싶지도, ‘곤조’ 없는 사람에게 넌 아티스트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아요. 전부 인정해요. 다만 저는 이렇게 살고 있다고 얘기하고 싶을 뿐이에요. 저는 음악 만드는 게 좋아요. 아티스트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명확해야 해요. 스타가 되고 싶은 건지, 표현하고 싶어서 음악을 만드는 건지, 돈을 벌고 싶은 건지. 명확해야 해요.

아티스트로서 재범 씨의 명확한 스탠스는 뭐예요?
픽션이든 실화든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이야기를 표현하고 싶어 하는 부류예요. 갓세븐 시절에도 그랬어요. 또 내 인생은 내가 개척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게 재밌는 것 같아요. 고생스럽긴 하지만 보람 있어요. 제 작업에도 더 의미가 담기고, 더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고요. 제가 직접 한 게 아니면 마음이 조금 덜 쓰인다고 할까요.

내 작업만큼 재밌는 게 또 있을까요. 결과물을 보여주고 반응을 기다리는 그 설렘도 짜릿할 테고요.
그렇죠. 노래 좋다는 말 들을 때가 제일 좋아요. 부끄러움이 많아서 제대로 표현은 못 하는데 정말 감사하고, 뿌듯하기도 하고, 내가 헛된 길을 가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피드백을 받으면 힘든 시간이 사라지는 듯하죠. 허나 모든 피드백이 좋을 순 없잖아요. 비평이 두려워 눈과 귀를 닫는 사람들도 있어요.
솔직히 나쁜 피드백이라면 조금… 아 ‘마상!’ 이러기는 하지만, 어쨌든 그것도 평가니까 받아들여요. 자극을 받기도 하고요. 재밌어요.

이제는 솔로 아티스트예요. 부담되나요? 압박도 받아요?
압박까진 아니지만 부담은 돼요. 하이어뮤직에 들어왔고, 소속감도 느끼고 있어요. 이 회사를 통해 제가 얻는 것이 있지만, 이 회사도 저를 통해 얻는 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회사에 이득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걱정이 있어요. 기대에 못 미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도 조금 있고요.

 

“이제는 조금 더 제 자신을 믿어야죠.
내가 아는 것을 전하고, 모르는 건
배워가고자 해요.”

 

책임감이 느껴지네요.
무엇이든 시작한다는 것에는 이유와 목적이 있잖아요. 음악은 다들 좋아서 시작하는 것이고, 시작했으면 만들고 싶은 노래가 있겠죠. 그래서 안 좋은 소리를 들어서 기분 나쁠지언정 결과물이 좋으면 제작한 사람들은 기분이 좋잖아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유튜브에 본인 작업을 잔뜩 올려놨어요. ‘데프(Def.)’로서 작곡한 곡들이요. 꽤 많던데요? 다작하는 스타일인가요?
예전에는 다작했는데… 지금도 많이 만드는 편인 것 같기는 해요.(웃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작업량이 줄었어요. 체력이 안 따라주거든요.(웃음) 새벽에 작업을 시작해서 한 곡을 끝내곤 했어요. 더 할 수 있을 것 같을 때는 더 만들기도 했고요. 요즘은 딱 한 곡만 작업해도 몸만 힘든 게 아니라 기가 빨린 느낌이 들어서 많이 만들지 못하겠더라고요.

새벽 동안 곡 하나 만드는 것도 엄청 빠른 거 아닌가요?
아, 그렇죠. 예전에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그렇게 작업했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한두 번 작업해요. 그러고 보니 이제는 다작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네요.

다작이 가능하다는 건 아이디어가 많다는 뜻이죠.
작업량이 줄어든 건 아이디어가 떨어진 것도 원인이에요. 유튜브에 올려둔 믹스테이프가 다섯 개나 되고, 각각 네다섯 곡이 들어 있어요. 당시에는 그것만 작업한 게 아니라 갓세븐 곡도 작업했어요. 그렇게 달리다 보니 소재가 고갈된 느낌이에요. 어디에서 영감을 받아야 할지 두리번거리죠. 멜로디 작업을 마치고, 가사를 쓰려고 하면 막막해져요.

그런 순간을 대비해 창작자들은 소스를 모아두죠. 재범 씨는 소스를 어떻게 수집하나요?
저는 책을 읽거나 상상을 많이 해요. 그리고 요즘에는 대입법을 자주 사용하고 있어요. 영화를 보면 주인공 감정에 이입하잖아요. 중심 서사니까 당연하죠. 그런데 저는 배경의 지나가는 인물이나 조연을 봐요. 그들의 입장에서 서사를 지켜보는 거죠. 내가 저런 말을 듣는다면, 저 상황이라면 어땠을까 하면서요. 책을 읽을 때도 소스가 될 만한 단어 하나하나를 유심히 봐요. 예전에는 서사가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봤다면, 요즘은 작가가 반복하는 단어들을 체크하죠. 쓸 만한 단어나 생각이 떠오르면 메모도 하고요.

영화에서 중심 서사 외에 배경 인물을 보는 건 참신한 방법이네요.
집에서 영화 보다가 딱 생각났어요. 주인공이 단역에게 자극적이고 무례한 말을 했어요. 좀 비켜봐. 이런 대사였던 것 같아요. 그때 비키는 인물의 입장은 어떨까. 어떤 마음이 들까. 그런 생각이 들었죠.

시각이 독특하다는 말 좀 듣나요?
성격이 특이하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요.

남들은 좋다고 해도 별로면 별로라고 할 수 있죠. 그게 특이해 보일 수도 있고. 신선한 아이디어는 남다른 시각에서 나오기도 해요.
반반인 것 같아요. 다들 좋다고 할 때 저는 그냥 그럴 때가 있고, 남들은 별 반응 없는데 저만 좋아할 때도 있어요. 최근 아이디어가 좋다고 느꼈던 건 기리보이의 ‘찰칵’이라는 곡이에요. ‘찰칵’ 하는 셔터음을 총 격발음으로 사용했는데요. 이별 후 마음 정리를 마치 총 쏘듯 ‘찰칵’으로 풀어낸 게 신선했어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죠.

재범 씨도 항상 촉을 세우고 지내나요?
그러려고 노력해요. 촉이 자동으로 세워져 있진 않고, 다른 시각으로 보려 해요. 뜬금없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오늘 촬영 때도 했어요. 여긴 캠핑장인데, 캠핑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더군요. 그래서 여기저기 텐트가 쳐져 있고 사람들이 왕래할 때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했죠. 그리고 잔디에서 촬영할 때는 발 밑에 풀잎 하나가 길게 올라와 있었어요. 슬쩍 피했어야 했는데, 살짝 옆으로 밟았어요. 밟히는 풀에게 미안해서 저도 모르게 미안…. 그랬고요.

감수성도 예민하네요.
감성적이었으면 좋겠어요. 감성적이라고 하기에 저는 너무 조심스러워요.

음악을 만드니까 감성적인 사람일 거라 생각해요. 근데 유튜브에 ‘데프’의 믹스테이프는 댓글창을 닫아놨던데요.
‘데프’로 한 작업들은 100% 제가 하고 싶어서 한 작업이에요. 피드백을 원치 않아서 댓글을 막았어요. 나중에 ‘데프’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매하면 그때는 댓글을 막을 수 없겠죠. 모르겠어요. 지금 막아둔 이유는 칭찬도 비난도 안 보고 싶어서예요.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린 곡들도 댓글은 안 봤어요. 진짜 개인적인 작업들인데, 댓글 보면 흔들릴까봐 일부러 안 봐요. 개인 작업만큼은 흔들리고 싶지 않거든요. 그게 제 나름의 ‘곤조’겠죠.

데프로 만든 곡은 재범 씨의 일부라는 소리로 들리네요. 곡에 대한 진심이 느껴져요.
예전에는 평가에 무던한 척했는데, 나쁜 평가 받는 건 진짜 무서워요. 비평이 아니라 이건 별로라고 단정 짓는 댓글은 보기 두려워요. 자기 스타일이 아니라고 하면, 그건 취향일 뿐이니까. 제 곡 중에 그분 취향에 맞는 곡이 있을 수도 있고요. 안 좋고, 나쁘고, 별로라는 얘기를 듣는 건 힘들어요. 어쨌든 그 곡들은 저에게서 나온 자식이니까요.

멜로디가 촉촉한 곡들이 기억나네요. 재범 씨의 여린 감성을 발견했어요. 의외인가요?
여리다는 소리는 처음 들었어요. 맞아요. 감성적인 곡들이 몇 개 있어요. 조금 팝스럽고 힙합스럽고 우쭐대는 느낌도 내고 싶은데, 제가 그런 걸 잘 못 해요. 제 성격이 아닌 것 같아요.

재범 씨에게 좋은 멜로디란 무엇인가요?
단번에 좋다고 느껴지는 멜로디요. 요즘 음악 취향이 너무 다양해서 친구들과 음악 얘기를 해도 제각기 좋다는 곡이 달라요. 합의점을 찾기 어렵죠. 창작자 입장에서는 남들은 싫다 해도 내가 좋다고 느낀다면 그게 좋은 멜로디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좋은 멜로디를 어떻게 쓸지, 어떻게 부르고, 회사에서 좋아할지를 고민했어요. 한 걸음씩 천천히 나아가다 보니 취향은 저마다 다른 것이니까, 적어도 멜로디만큼은 내가 이 곡을 버리지 않을 정도로 좋아야 한다는 기준이 생겼어요.

개인의 취향도 중요하지만 대중의 기호를 맞추는 것도 중요한 과제겠죠. 아니 어려운 과제요.
그렇죠. 저는 아직 대중이 좋아할 만한 멜로디를 만들 감각은 부족한 것 같아요. 차근차근 공부해야겠죠. 한 가지 느낀 건, 사람들 귀에 꽂히는 부분은 있어야 한다는 거죠. 어떤 멜로디라고 설명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기준을 세운다면, ‘내가 만족하는 멜로디’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족하는 멜로디가 아닐지언정 대중이 좋아한다면 따라야 하고요.

작업하면서 트랙은 많이 쓰는 편인가요? 요즘은 수십 개의 트랙을 쌓아올린 곡이 많아요.
갓세븐 때는 화음을 많이 넣었어요. 화음이 많아서 트랙도 엄청났죠. 요즘은 최대한 간결하게 하려고 화음을 줄이고 있어요. 트랙을 많이 쌓지는 않아요. 중요한 메인 트랙에 화음 몇 개와 애드리브 몇 개 더하는 정도예요.

특히 케이팝은 여러 장르와 화음이 복잡하게 구성된 음악이 많아요. 음악이 화려하죠. 간결한 구성을 선호하는 입장에서 이런 현상은 어떻게 보나요?
좋다고 봐요. 대중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반응이니까요. 오히려 좋아요. 물론 근본도 중요하고, 공부할 필요성은 느끼지만 변화에 수긍할 필요도 있어요. 변화를 받아들여야 하죠. 또 모르죠. 저도 나이가 들면 변화를 못 받아들이고 무슨 음악이 이러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지금은 변화에 눈을 떠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듣기 힘든 곡은 일부러 몇 번 더 들어봐요.

데뷔 10년 차예요. 10년 동안 재범 씨는 얼마나 달라졌나요?
예전엔 욕심이 많았어요. 기대도 컸고요. 지금은 여유로워요. 나이 들어갈수록 예민했던 부분이 무뎌지는 것 같아요.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면 더 많은 걸 받아들이게 돼요. 제 활동 범위도 더 넓어지는 것 같고요. 예전에는 고지식한 면도 있었어요. 지금은 너무 예상하지 말고, 기대도 말고, 적당히 내 거 열심히 하자!

본업의 부담을 다른 창작 활동으로 푸는 아티스트들도 많아요. 재범 씨는 무엇으로 창작욕을 해소하나요?
취미가 사진이라, 사진을 많이 찍어요. 그림도 한창 배우다가 지금은 바빠서 못 그리고 있고. 그리고 기록을 많이 해요.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둬요. 쓸데없는 거라도 적어요. 녹음기로 제 기분이나 감상, 요즘 하는 것들을 말하기도 하고요. 또 미래의 저에게 편지를 써요. 지금 무엇 때문에 힘들고, 나에게 좋은 상황은 이건데, 미래의 나는 어떨까.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모습일까. 그런 내용으로 저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요. 연도별로 편지를 써서 봉투에 넣어놔요. 봉투에는 편지 쓴 해를 표시해놓고요.

 

“진짜 개인적인 작업들인데, 댓글
보면 흔들릴까봐 일부러 안 봐요. 개인
작업만큼은 흔들리고 싶지 않거든요.”

 

재범 씨의 시간을 아카이빙하는 거네요. 글과 일기, 편지, 사진, 음악 같은 사유를 기록하는 점에서 흥미로워요. 생각이 날아가지 않도록 저장해두는 꼼꼼함! 그나저나 이 기록물을 미래의 자신 외에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나요?
아! 보여주면 안 돼요. 오그라들어요.(웃음) 좀 창피해요. 사진이나 그림은 보여줄 수 있는데,

음성메모는 저만 간직하고 싶네요. 노년이 됐을 때 허허 웃으면서 꺼내보며 인생을 반추했으면 해요.
제 자신을 위한 기록이죠.

일상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매일 기록하나요?
내가 이 순간 이렇게 생각했다는 게 재밌어서 기록해요. 하다못해 작년이나 재작년에 쓴 일기장만 봐도 지금과 생각이 달라요. 사람이 이렇게 바뀐다는 걸 보는 게 재밌어요. 생각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매일 기록해요.

‘창작자’의 입장에서 일기는 본인의 감성을 소스로 쓰기 위해 수집하는 활동으로도 볼 수 있겠죠?
그렇습니다. 전부 기억하기에는 머리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에요. 기억을 되새김질하면서 이건 써도 되겠다, 그런 게 있긴 하죠.

최근 가장 즐거웠던 일은 뭔가요?
조금 위험하긴 한데 친구하고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녔어요. 갑자기 비가 억수로 내리는 거예요. 어쨌든 집에는 돌아가야 하니까. 비 맞으면서 오토바이를 탔어요. 흠뻑 젖은 상태로 집에 들어갔죠. 진짜 고생길이었는데 안 다쳐서 다행이었고요. 완전 새로운 경험이라 재밌더라고요. 다신 겪고 싶지 않지만 약간 모험한 기분이었어요.

오늘 화보에서 입은 버버리 2021 F/W 컬렉션도 새로운 경험일 거예요. 정제되고 클래식한 버버리와 달리 이번 컬렉션에선 많은 변화가 읽혔어요. 평소 버버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나요?
깔끔하고 정직한 스타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언젠가부터는 젊고 과감한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죠. 오늘 의상은 새로운 시도와 변화가 크지만 그럼에도 잘 정제된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자연적인 요소를 버버리만의 감각으로 깔끔하게 해석했다고 봐요. 의상을 입으면서 재밌는 아이디어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중 가장 인상적인 의상은 무엇이었나요?
하나만 꼽기는 어려워요. 중세 기사처럼 느껴진 스타일이 있었어요. 군주 같은 느낌도 받았고요. 중세에는 사냥한 곰 가죽을 입기도 했다고 해요. 그 영향이 오늘 입은 버버리에 담긴 것 같아요. 옷을 입을 때마다 중세 기사나 왕이 된 기분이 들었어요. 퍼도 동물적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요. 배경과 날씨, 콘셉트도 조화를 이뤘고요.

다시 음악 얘기로 돌아가면, 재범 씨는 이야기 만들기를 좋아한다고 했죠. 음악으로 세계관을 만들기도 하나요?
네, 앨범 단위로 세계관을 만들어요. 이 앨범에선 이런 세계관을, 저 앨범에서는 저런 세계관을 만드는 거죠. 앨범들이 이어지며 유니버스가 되는 건 아니에요. 각 앨범이 하나의 세계고, 거기서 끝이죠. 거대한 세계관을 장대하게 이어가는 건 못 해요. 앨범 하나하나에 제 이야기를 담는 걸 좋아해요.

곧 나올 앨범의 세계관을 키워드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소모퓸’이에요. 하이어뮤직에 들어와 처음 만든 앨범인데요. 이 앨범에 제 에너지와 감정, 생각을 소모했으니, 이 결과물을 여러분이 소모해줬으면 좋겠다는 의미와 제 감성이 여러분에게 향수처럼 묻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퍼퓸을 합성해 ‘소모퓸’이라고 지었어요.

앞으로 재범 씨의 음악은 어디로 흐를까요?
방향성에 대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 답이 없어요. 후회하지 않을 만큼 참여하고, 신중하게 생각하는 게 중요해요. 미래에 대한 기대가 크면 저 자신에게 실망도 클 것 같아요. 돌아봤을 때 실망하지 않으려면 열심히 해야죠. 미래에 그래도 그때는 열심히 했다는 생각이 들만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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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FASHION EDITOR 최태경
FEATURE EDITOR 조진혁
PHOTOGRAPHY 채대한
STYLIST 박지영
HAIR 김민경
MAKE-UP 보련
ASSISTANT 하예지

2021년 0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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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을 맞아 몇몇 브랜드가 개혁을 단행했다. 바로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선임하며 출사표를 던진 것. 얼마 전 데뷔를 마친 겐조의 니고부터 곧이어 2022 F/W 밀란 여성 컬렉션을 통해 ‘뉴 보테가’를 선보일 마티유 블라지 등 자신만의 색으로 브랜드를 이끌어갈 6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LIFE

    미래를 지은 건축가

    재미 건축가 김태수는 1991년부터 젊은 건축가들에게 여행 장학금을 주는 ‘김태수 해외건축여행 장학제’를 만들어 운영하기 시작했다. 장윤규, 나은중, 이치훈 등 보통 사람에게도 잘 알려진 건축가를 포함해 33명의 건축가가 건축 여행을 다녀왔다. 건축 여행 장학금은 북미나 유럽에서 볼 수 있는 선진 장학금인데, 그걸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될 때쯤인 1990년대에 만들어 매년 이어왔다. 창작자가 만드는 건 창작물만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모든 긍정적 시도 역시 한 창작자가 후대에게 보내는 귀한 선물이다. 장학제 30주년 기념집 <포트폴리오와 여행> 발간을 기념해 한국에 온 김태수를 만났다.

  • FASHION

    다이버 워치 여섯 점

    풍덩! 빠지고 싶은 다이버 시계.

  • LIFE

    2022년의 2등을 위해 #1

    2022년은 특별한 해다. 2가 반복된다. 그리고 이건 12월호다. 2가 반복되는 해의 마지막 달이라 2등만을 기념하련다. 올해 각 분야의 2위들을 재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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